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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본 한중일 문화인류학 8

‘먹을거리 자주권’은 21세기 새 테제 제주도엔 제주음식이 없다 박물관 쇼윈도에 있을 뿐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먹을거리 자주권’은 21세기 새 테제 제주도엔 제주음식이 없다 박물관 쇼윈도에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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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민들이 즐겨 먹던 음식을 맛보려면 쌀밥을 위주로 한 육지식에 비해 비용이 몇 배 이상 든다. 더욱이 몇몇 향토음식점을 제외하면 제주도는 온통 횟집과 삼겹살 식당으로 가득 차 있다.
  • 고유의 향토음식이 설 자리는 좁아졌고, 서양 손님들이 제주도 향토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도 안내할 곳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 되고 말았다.
‘먹을거리 자주권’은 21세기 새 테제 제주도엔 제주음식이 없다 박물관 쇼윈도에 있을 뿐

고급 음식이 된 전복죽.

1991년 가을, 나는 제주도의 김치를 조사하기 위해 제주에 갔다. 전국의 김치를 조사하고 있던 터라 제주도의 김치, 특히 김장을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도 문화재 전문가인 김순이 선생의 소개로 제주시에 거주하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제주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을 ‘육지사람’이라 부르며 상대화한다. 나도 육지사람이다. 제주도가 육지에 편입된 역사나 4·3사건에 대한 지식만 갖고 있던 나는 제주도에서도 당연히 김장을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익숙하게 김장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의 질문에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제주도에서는 원래 김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제주도에서는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무리 육지에 비해 따뜻하다고 해도 겨울에는 한라산에 눈이 쌓이고, 폭설이 내린다는데 김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김치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먹을거리 자주권’은 21세기 새 테제 제주도엔 제주음식이 없다 박물관 쇼윈도에 있을 뿐

1960년대 제주 일상식사 재현.

제주도는 김장을 안 한다?

할머니 말씀이 채소가 사시사철 나오니 굳이 김장을 할 필요가 없단다. 그래도 날채소와 김치는 맛이 다르지 않으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한 할머니는 제주에는 예전에 소금도 귀했다고 했다. 사면이 바다에 접한 제주도에 소금이 귀하다니,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아닐까?

제주도에서 소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닷물을 솥에 넣고 끓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땔감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이후 행정당국에서 나무를 마음대로 연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재했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나무를 구한다고 해도 끓인 바닷물에서 나오는 소금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다. 배추도 육지의 결구배추와 같은 것은 1960년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늦겨울에 자라는 봄동이란 채소가 배추와 닮았다. 이것을 살짝 절여서 봄동김치를 해 먹는 일은 있지만, 배추김치나 깍두기와 같은 김치는 1960년 이전에는 많지 않았다. 요사이 제주도의 식당에서 나오는 김치는 대부분 육지의 김치다. 결국 제주도 김치에 대한 조사는 봄동김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4년 나는 제주대학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다시 제주도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제주도 음식과 육지음식을 비교해달라는 주문이었다. 2001년부터 매년 제주도에서 열리는 각종 학술회의에 참석하면서 육지에는 없는 제주도의 지역음식에 대한 정보를 간간이 들어왔지만, 그러한 작업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1991년의 기억에 비추어볼 때 제주도는 육지와는 음식이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음식에 대해 정리해둔 많은 책에서는 이른바 육지음식의 연장선상에서 제주음식을 다루고 있을 뿐, 제주도의 독자적인 음식 소비 시스템을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다만 제주도의 ‘향토음식’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육지에서 맛볼 수 없는 제주도의 특이한 음식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왜 그런 음식들이 ‘향토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심지어 ‘향토음식’을 먹고 싶으니 식당을 소개해달라고 제주도 사람에게 부탁하면 대부분 난색을 표하기 일쑤였다. 대부분 오분자기 된장국이나 몸국을 판매하는 식당을 소개하는 데 그쳤다. 전주나 목포나 마산에 가면, 외지에도 많이 알려진 그 지역의 ‘향토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제법 많다. 예컨대 전주에 가면 백반을 판매하는 식당에서 전주의 가장 일상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제주도에 가는 육지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횟집으로 직행을 한다. 아니면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을 판매하는 식당만을 찾는다. 이름마저 생소한 제주도 음식에 대한 기대보다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육지 음식을 제주도에서 찾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 곳곳에는 전국의 해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횟집이 똑같이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제주도의 호텔에서조차 제주도 음식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는 제주도의 고급 호텔 뷔페식당에는 수십 가지의 한식과 일식, 그리고 서양음식이 즐비하지만, 제주도 음식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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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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