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워 1945~2005’ :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플래닛, 1권 732쪽·2권 712쪽, 각권 3만2000원
우리가 입는 옷이나 사는 집의 종류에서 정부 형태, 의회제, 정당정치, 교육제도, 언론기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수입’되지 않은 것이 없다. 지난 세기에 ‘근대화’는 곧 ‘서구화’였는데 서구화란 곧 (서)유럽(및 유럽의 변형태인 미국) 따라잡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배워온 세계사 자체가, 그리고 고대-중세-근대라는 시기구분 자체가 유럽중심주의적인 역사요 시대구분법이었다. 대체 유럽이 무엇이길래?
영국의 역사가 토니 주트(Tony Judt)의 야심작 ‘포스트워 1945~2005’는 바로 이런 유럽의 시대가 끝난 지점에서부터 논의를 전개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시작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결로 끝난 20세기 전반(前半)의 역사는 유럽이 세계를 지배한 마지막 시대였다. 양차 대전 모두 유럽이 시작한 전쟁이었고 파시즘(이탈리아와 독일)도, 혁명(러시아)도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식민지 면적도 최고조에 달했다. 주트의 ‘포스트워’는 그러한 시대가 끝난 뒤의 유럽을 다룬다.
무려 1350쪽에 달하는 주트의 저작은 2차대전 종전 후 60년간의 유럽사를 4부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우선, 1부 ‘전후시대 1945~1953’은 가장 짧은 시기를 다루지만 분량은 가장 많다. 그만큼 중요한 시기다. 앞부분에서 ‘전쟁과 점령, 국경 조정, 추방, 종족학살 덕분에… 유럽은 그 어느 때보다 민족적으로 훨씬 동질적인 국민국가들로 구성되었다”는 분석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히틀러와 스탈린 덕분에 ‘더 정돈된’ 유럽이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이 시기는 또 유럽이 서유럽과 동유럽으로 나뉘고 두 세계가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국면이기도 했다. 서유럽이 마셜플랜(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이 서유럽 16개 나라에 행한 유럽부흥계획.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마셜이 공식 제안해 ‘마셜플랜’이라 불림) 덕분에 ‘극적인 변화와 전례 없는 번영의 시기에 진입하려던 순간에 동유럽은… 망각된 대륙의 더러운 구석에 처박’혔다. 특히 주트는 서방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동구권의 억압적인 현실에 눈감은 상황을 질타하고 있다.
3부의 제목은 ‘퇴장송가 1971~1989’다. 무엇의 퇴장인가? 서유럽에서 1970년대 초에 번영의 시대가 끝났고 저항과 희망의 ‘60년대’도 끝났다. 1974~75년에는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에서 독재의 시대가 끝났고, 끝으로 1989년에는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