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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 기행

사슴이 뛰어놀던 골짜기에 왜장의 전설이 되살아나고

우록마을

  • 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사슴이 뛰어놀던 골짜기에 왜장의 전설이 되살아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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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 뛰어놀던 골짜기에 왜장의 전설이 되살아나고

건너편 언덕에서 잡은 우록마을 전경.

1592년 임진왜란 와중에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한 왜군 장수가 조선에 귀순한다. 이후 그는 조선군에 합류해 의령전투에 참가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큰 벼슬을 받는다. 광해군 당시 정헌대부까지 오르고 병자호란 때는 경기도 광주에서 큰 전과를 올린다.

이후 그는 조정에서 하사받은 경상도 오지의 땅(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 은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주인공의 일본 이름은 사야가(沙也可). 왕실로부터 받은 한국 이름은 김충선(金忠善·1571~1642)이다. 현재 전국에 17대까지 대략 2000가구, 7000여 명의 후손이 있다. 주요 인물로는 김치열 전 내무부 장관, 김재기 전 수원지검장 등이 있다. 400년 전 조국을 등졌던 바다 건너 청년 장수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김충선에 관한 두 이야기

그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주로 일본 쪽에서 전해오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오랜 전쟁으로 조선의 민심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뭔가 반전이나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장군은커녕 요즈음으로 치면 중·소대장급 정도의 하급 무사가 투항해 오자 조선 조정은 민심을 선무하기 위해 급한 대로 써먹기로 했다. 그래서 가토 휘하 높은 계급의 장수가 귀순했다고 선전한다. 시호를 내리고 땅을 하사하는 등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올해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4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흑룡 임진년.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처럼 잘 모르는 부분도 많은 것이 임진년 왜란의 역사다. 우리에겐 잔인한 이미지로 각인된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가 됐던 임해군과 순화군이 “그 자비로움이 부처님 같으니”라는 감사편지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어느 김충선의 이야기가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확실치 않다. 재야 사학자 이덕일 선생에게 물어봤다. 이 선생은 조선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 선생은 사야가가 여러 자필 문헌에서 스스로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 장수임을 밝히고 있고 국내 문건도 장수급이라고 기록하는 점을 들어 어느 정도 지위에 있던 장수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문이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전란 중 귀화해 공을 세운 높은 지위의 장수에게 하사한 땅이, 서울이나 경기도 아니고 저 멀리 경상도 산골이라니. 필자는 김충선이 여생을 보낸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마을로 향했다.

달성군은 특이한 지역이다. 우선 위치가 묘하다. 과거 달성군 중심지역은 대구시로 편입됐다. 이로 인해 달성군은 대구시의 서쪽을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달성군 현풍면에서 하빈면으로 갈라 치면 대구시를 대각선으로 관통해야 한다.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같은 지리적인 특이함 때문에 오랫동안 군청을 달성군내가 아닌 대구시 중심부에 뒀다.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역구로 매스컴을 타는 곳이고 달성 서씨가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 하다.

사슴이 뛰어놀던 골짜기에 왜장의 전설이 되살아나고

산 속에 가건물을 짓고 판소리를 하는 국악인.

조선 조정이 김충선에게 하사한 우록마을 일대는 현재 달성군의 몇 안 되는 개발제한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달성군 지역의 상당부분이 도시화되어 있지만 이곳엔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요즘도 이러한데 시간을 거슬러 선조·광해군 시대에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우록은 사슴이 노닐었다는 데에서 따온 이름이다.

현풍을 거쳐 청도 이서로 넘어가는 팔조령을 목전에 두고 우측 오르막 도로를 한참 가다 보면 우록동이 나타난다. 팔조령은 조선시대에 행인들이 문경새재와 함께 손꼽았던 험악한 고개. 산적패가 득실거려 8명이 모이지(八助) 않고는 고개를 넘지 말라는 말에서 연유했다고 전해진다.

도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면 산동네에 어울리지 않은 아담한 서원을 만난다. 이름 하여 녹동서원으로 김충선을 기리는 곳이다. 1992년과 94년 일본 NHK TV가 김충선 특집방송 프로그램을 방영한 이후 일본인 관광객과 수학여행 학생이 늘었다. 그러자 관청이 서원 주변에 한일우호관이라는 콘크리트 건물을 세웠다. 당시 NHK 프로그램 제목은 ‘출병에 대의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배반한 사무라이 사야가’였다. 조선에 투항한 사무라이의 꽁꽁 감춰진 사연에 일본인이 호기심을 가질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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