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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인왕제색도’ ‘압구정’

정선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인왕제색도’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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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가 누상동에 살던 1941년 9월에 쓴 시 ‘길’의 일부입니다.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 그리고 ‘잃은 것을 찾는 삶’. 이 구절은 나라를 잃은 식민지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 윤동주의 굳은 의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길은 개인의 삶일 수도 있고, 한 나라의 역사일 수도 있겠지요. 길 위에는 밝은 아침도 있고, 어두운 밤도 있습니다. 어두운 밤을 견뎌내 밝은 아침을 기다리려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려는 희망과 의지를 윤동주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민족적 자존심

정선의 그림과 윤동주의 시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정선과 윤동주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았습니다. 정선이 주목한 것은 우리 자연의 당당함과 아름다움입니다. 그는 허구의 관념 속 자연이 아니라 실제의 현실 속 자연을 그렸습니다. 정선이 위대한 화가인 까닭은 바로 우리 것, 다시 말해 우리 산천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냈다는 데 있습니다. 정선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연을 재발견하고,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비록 왕조 시대였다 하더라도 정선의 작품은 당당한 민족적 자존심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우리 자연을 좋아하고 그 자연처럼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정선의 그림에 담긴 한국인의 마음이 아닐는지요. 정선은 양반 출신임에도 전문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우리 자연을 사랑하고 우리 문화를 일궈내려는 예술가적 소망이 표현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그 자연을 존중하면서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가려고 한 게 한국인의 마음이라고 해석한다면, 제가 너무 과장하는 것일까요.



이런 소중한 나라를 외세의 침략으로 잃었을 때 느끼는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윤동주의 시는 보여줍니다. 현실이 암울하다고 해서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앞서 인용한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비록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과도 같은 상황이지만, 잃은 것을 찾아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가혹하다 하더라도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는 우리 한국인이 가진 또 다른 마음이 아닐까요.

‘인왕제색도’ ‘압구정’
한강은 그대로이되…

서울을 그린 정선의 작품 가운데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경교명승첩’(1740~1741)입니다. 정선은 65세에 양천 현령으로 임명되자 오랜 벗인 사천 이병연과 약속했습니다. 이병연이 쓴 시에 정선이 그림을 그리거나, 정선이 그린 그림에 이병연이 시를 쓰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경교명승첩’입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집은 양평 두물머리 부근에서부터 양천구 일대의 한강 하류 유역까지 한강 주변의 명승지 33곳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제 눈길을 끈 작품은 ‘압구정(鴨鷗亭)’입니다. 압구정은 세조 때 활동한 정치가 한명회가 지은 정자입니다. ‘갈매기와 친하게 노니는 정자’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휘돌아 흐르는 한강을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언덕 위에는 압구정이 우뚝 솟아 있고, 아래에는 양반들 별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왼쪽에는 청계산과 우면산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남산과 그 뒤의 북한산 연봉이 이어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와 현재의 비교입니다. 저렇게 한갓지던 압구정에 이제는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섰습니다. 압구정동은 강남이라는 현재 서울의 부촌을 상징합니다. 정선이 살던 조선 후기와 비교해보면, 서울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동호대교와 성수대교 사이를 휘돌아 흐르는 한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는 한강을 건널 때면 가끔 서울의 역사와 그 역사가 안겨주는 의미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인왕제색도’ ‘압구정’
박상희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올해 8월은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은 지 70년이 되는 시점입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았다는 게 광복의 의미입니다. 나라를 이루는 것은 산천과 사람입니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산천은 더없이 아름답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소중합니다. 마음은 시간의 구속을 넘어섭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서촌에 한 번 가보시길 권합니다. 인왕산을 올려다보면서 ‘인왕제색도’를 그린 정선의 마음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신동아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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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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