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섬비행장은 여기가 왜 ‘살인의 추억’ 현장 같은 느낌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한다.
“날 보러 와요”
어섬은 ‘漁島’를 뜻한다. 고기가 많은 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버려진 곳이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1994년 시화지구 간척사업 과정에서 섬이 육지로 변해버렸다. 물고기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마치 폐선처럼, 이곳에서 한때 창공을 비행하기를 꿈꾸며 희희낙락하던 비행기의 흔적들만 남아 있다. 그리고 정적. 고즈넉하고, 한편으로는 불길한 고독 같은 것이 평야 전편을 휘감는다.
기이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서울에서 기껏해야 두 시간이 안 걸리는 곳에서 바람을 마주하며 갑작스러운 명상(冥想)을 요구받을 수 있으리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왜 화성은 저렇게 됐을까. 화성시장은 얼마나 고민일까. 사람들이 화성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제(未濟) 연쇄살인사건이 됐으니까.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실은 얼마나 애를 쓰고 있을까.
영화 ‘살인의 추억’ 원전이 된 연극 ‘날 보러 와요’의 배우 권해효가 늘 하는 얘기가 있다. 그건 ‘살인의 추억’을 만든 봉준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연극을 보는 내내 객석에 살인자가 앉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정말 끔찍한 공포였다.” 그래서 연극의 제목이 ‘날 보러 와요’였던 셈이다.
그건 마치 살인자가 몰래 연극을 제작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러 다니다가 착각해서 내뱉은 말과도 같은 것이다. 연극 보러 오세요, 라고 하던 그가 잘못해서 날 보러 오세요,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생각만 하면 목덜미에 살짝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화성 연쇄살인의 범인은 한 명일까, 두 명일까, 여러 명일까. 샌프란시스코의 조디액 킬러도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1969년의 일이니까 무려 46년 전이다. 화성 연쇄살인은 1986년에 시작됐으니 30년에 가깝다.
여기서 화성 살인사건을 복기할 생각은 없다. 그건 사실 추억도 뭣도 아니니까. 어쩌면 깔끔하게 범인을 잡고, 처벌하고, 기억 속에서 지웠어야 되는 사건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10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다. 그중엔 할머니도 있고 여중생도 있다. 정확한 살인 장소는 화성군 태안읍 반경 2km 이내였다. 넓은 구역이 아니다. 그런데 범인은 감쪽같이 여성들을 끌고 가서 살해하고 유기했다. 시신마다 심각하고도 엽기적인 훼손이 자행됐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은 채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사건 자체가 소멸된 상태다.

봉준호는 영화에서 살인범을 쫓는 척하면서 사실은 우리 사회 혼란상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이 기막힌 미제 살인사건을 토대로 봉준호는 역설적으로 빼어난 걸작을 만들어냈다. 봉준호가 그리려 한 것은 사실 살인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넘는 시대의 혼란상이 그의 영화 속에는 고스란히 담겼다. 영화는 종종, 아마도 그것은 박두만 형사 역을 맡은 송강호의 캐릭터 때문인데, 코믹한 지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이 극심하게 혼돈에 처하면 실소(失笑)가 나온다. 우습기까지 하다. 실제로 웃기는 일이 중간중간 끼어든다. ‘살인의 추억’은 그것을 여지없이 그려낸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논두렁을 지나 숲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되는 장면이다. 봉준호는 이 장면을 기막힌 롱 테이크 한 컷으로 찍는다.
박두만은 동분서주, 도무지 제대로 하는 일 없이 여기저기 우왕좌왕하기에 바쁘다. 논과 논 사이 신작로에 난 군화 발자국 같은 것에 나뭇가지를 꺾어 동그랗게 선을 그어놓은 채, 신참으로 보이는 경찰에게 더듬더듬 말한다. 이거, 이거 범인 발자국일지도 몰라. 건드리지 마. 그대로 보존해. 그러면 박두만의 등 뒤로 논두렁을 내려가던 경찰들이 차례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반장(변희봉)도 미끄러진다. 그 바쁜 와중에 박두만은 그들을 향해 소리친다. “원 XX. 논두렁에 꿀물을 발랐나….” 그리고 카메라는 다시 송강호가 있는 곳으로 턴하는데 기껏 동그라미를 그려둔 범인 발자국에 차가 한 대 지나가며 바닥을 뭉갠다. 박두만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그 코믹의 도가니는 이때의 경찰 수사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혼돈의 시대였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아무것도 제자리에 있지를 못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만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형사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그때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랬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