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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대종상을

대종상 심사위원만 다섯 번 오동진의 토로

  • 오동진 | 영화평론가

나는 고백한다, 대종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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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해 말 시상식서 이병헌이 던진 화두
  • ● 대종상은 영화인의 것인가 영화 대중의 것인가
  • ● 19개 부문 23명 수상자 줄이고 쪼개자
이글을 쓰기까지 나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쓸 수 있느냐보다 쓴다고 해서 과연 뭐가 달라질 수 있겠느냐는 다소 자조적인 마음이 앞섰다. 게다가 나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대종상 심사를 맡아온, 이른바 ‘당사자’다.

대종상 심사는 늘 논란이 뒤따르고 공정성 시비에 휩싸여왔다. 내가 심사에 참여한 2003년, 2008년, 2013년과 2014년, 그리고 지난해 2016년만큼은 공정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적어도 그랬다’고는 자위하는 편이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물론 심사 과정에서 ‘밀당’이 있거나 부당한 거래가 있지는 않았다. 특히 2008년에는 대종상 심사위원회를 굴지의 제작자이자 당시 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으로 있던 차승재 씨(‘8월의 크리스마스’ ‘비트’ ‘살인의 추억’ 등 제작)가 맡기도 했다. 비록 단 한 해로 그치긴 했지만 바야흐로 심사 방식을 바꾸고 새롭게 변신하려고 몸부림치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심사에 참여한 그 다섯 번 역시 대종상 전체에 굴레처럼 씌워져 있는 ‘끼리끼리 작당의 영화상’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진 못했다. 무엇보다 토론과 논쟁이 부재(不在)하다. 다들 기계적으로 비밀투표를 한다. 대종상이 늘 공정하지 못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투명성에 대한 그 같은 강박증 때문이다. 올바른 심사란, 거기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자유롭고 정직한 토론, 유기적인 논쟁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것이 배제되면 산술적 공정함만이 유지될 뿐이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선정되지 못한, 이른바 소수의견을 낸 심사위원의 주장이 토론을 통해 공유될 때만이 실질적 공정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소수의견이 투표 이후에도 설득력을 발휘해 결과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부정이 아니다. 무조건 표를 ‘밀봉’하고 쉬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종상이 심사위원이 됐든, 수상자가 됐든, 관계자가 됐든, 관객이 됐든 이제 그 누구에게도 더 이상 기대감을 주는 영화상이 되지 못하게 된 것은 결국 그렇게 ‘끝내 밝히지 못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공정성’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종상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 자체에 오히려 놀라는 분위기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 곧 내부고발자가 되겠다는 의지인가. 그렇다면 뭔가 고발할 ‘건’이라도 있다는 얘기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더 이상 고발할 거리도 없다. 오히려 그래서 측은할 지경이다.





주목해야 할 이병헌의 수상 소감

다들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번 제53회 대종상에서 수상자로 참석한 이병헌의 얘기에 백번 공감한다. 그는 말했다. “50년 넘게 긴 시간을 지나온 대종상 영화제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는 게 단시간에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긴 시간 명맥을 유지하고 명예로웠던 시상식이 불명예스럽게 없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어떤 것이 현명한 방법이고 해결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변화라는 건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기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조금씩 고민하고 노력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젠 후배들이 20년 전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갖고 고민하고 노력해서 지켜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병헌이 멋있는 척하기 위해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얘기에는, 늘 그가 그렇지만, 진정성이 담겨 있다. 이번 수상 소감이 갖는 비중만큼은 이병헌 자체에 대한 호·불호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쩌면 이제는 이병헌의 수상 소감에 대해 화답해야 할 때다. 대종상이 ‘진짜 상’이 되기 위해서는 뭘,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시간이 더는 없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규모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모든 건 다 욕심 때문에 비롯된다. 대종상이 권위를 잃은 것은 역설적으로 규모의 문제 때문이다. 어마어마하게 화려하고, 그래서 돈이 많이 들고, 상금이 엄청나고 하는 사이즈(size)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상금이라면 ‘부일영화상’만한 시상식도 없다. 그래서인지 부일영화상은 수상자들이 매우 좋아한다. 거기에서는 최고상에 해당하는 대상에 1000만 원을 준다. 상금이 가장 많은 영화제치곤 대상의 상금 액수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부문에 상금을 주기에 이 시상식에는 전체적으로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적든, 많든, 돈은 일단 좋은 것이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배우들,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부일영화상 수상자가 다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건 그 때문이다. 부일영화상과 관련해서는 지금껏 공정성 시비가 일지 않았다. 이래저래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상이다.



이에 비해 대종상은 상금이  없다. 예산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상인 만큼 수상의 영예가 가문의 영광 수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대종상은 시상 자체에 주력한다. 시상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모든 부문을 총망라하려 애쓴다. 여기에서 규모의 문제가 발생한다.

대종상 시상 부문은 17개 부문, 21명에게 주어진다. 특별상에 해당하는 인기상과 영화발전 공로상까지 합하면 19개 부문, 23명을 선정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과부하가 걸린다. 영화 테크놀로지에 해당하는 조명상, 녹음상, 기술상은 심사위원에 따라 평가의 난도가 매우 높은 부문에 속한다. 당연히 이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사람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결정적 패착이다. 조명협회, 기술협회 등 시상식 주최자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산하의 각 협회 회원들이 당연직 심사위원으로 들어오게 되는 길을 터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심사위원회가 기이한 조합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들 심사위원 거개가 70대 이상의 원로들이다.  

총 17명이 참여하는(이 숫자는 더 많았을 때가 대부분인데 촬영, 조명, 녹음, 편집, 기술, 감독, 배우협회의 대표급 인사가 모두 참여하면 인원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심사위원회는 결국 영화인총연합회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평론가, 관련 학과 대학교수)로 나뉘는데 양측은 원천적으로 양질의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할 수밖에 없다. 협회 쪽 심사위원들은 영화인총연합회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모든 것을 사고하고 그에 따라 심사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누구를 위해 대종상은 울리나

그들은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대종상은 영화인들의 것이다.” 이 말을 가지고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해진다. “대종상은 영화인총연합회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간 해석은 이것이다. “대종상은 영화인총연합회 산하 협회의 것이며 따라서 상은 협회 회원만이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 협회의 기능과 그 이해관계를 애초부터 잘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더 나아가 알 필요가 없)는 외부인사는 이런 식의 태도가 늘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협회 측 인사의 생각과 달리 대종상이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과 반목이 근본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조합인 셈이다.

어쨌든 심사위원 간의 이 같은 기계적인 결합은 이른바 변증법적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한다. 편향된 심사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종상이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 배태된다. 무엇보다 대종상만의 특성, 그것이 보수든 진보든, 고전적인 영화 취향이든 유행의 장르적 경향을 중시하는 취향이든, 그럼으로써 이 상은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수상자를 결정하는지를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그 기준과 원칙은 늘 시대적 변화와 함께 가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LA비평가협회상과 뉴욕비평가협회상, 유럽의 칸과 베를린, 베니스영화제가 미묘하게나마 어떤 식으로든 자체의 정체성을 차별화하고 있고, 또 강화해가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시상식의 권위를 확보한다. 이를 생각해보면 대종상의 문제점은 결국 이 상은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철학의 부재’라는 근본적 측면에서 제기됨을 알 수 있다. 대종상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협회=총연합회가 우선인가, 아니면 영화 대중(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 모두) 이 우선인가.



시상 부문 줄이고 쪼개야 

이 문제는 속 시원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럴 때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해법은 일단 그 둘, 협회의 안과 밖을 쪼개면 된다. 대종상이라는 큰 행사를 둘 혹은 셋으로 분리하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전문가들이 주는 시상식, ▲각 협회가 자신들의 ‘식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 ▲그리고 관객들의 심사가 주(主)가 되는 시상식으로 세분화하면 된다. 각각의 이름은 다 따로 짓거나 그중 하나에만 ‘대종상’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게 좋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총 19개가 되는 분야는 ▲감독과 주·조연급 배우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 ▲촬영, 조명, 녹음 등 스태프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 ▲그리고 오로지 관객 투표로만 집계하되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기상 위주(혹은 신인 중심)의 시상식으로 각각 나눔으로써 각각의 ‘몸집’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셋 중 어떤 영화상은 의미가 강조되고, 어떤 영화상은 스태프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가 앞세워지며, 또 어떤 상은 순전히 재미와 축제의 성격이 내세워질 수 있도록 그 성격도 차별화할 수 있다. 심사위원도 각각의 특성에 맞게 구분해서 재조직하면 된다. 또 이렇게 되면 협회 출신의 원로 영화인과 외부 심사위원 간의 정서적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가 있다. 이런 방식이라면 영화인총연합회는 모름지기 그 이름에 걸맞게 영화계 내부와 외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될지 모를 일이다.

결국 분권이다. 제왕적으로 모든 걸 다 가지려 하다가는 사달이 난다. 그건 정치나 영화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다 내려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다 가질 수가 있다는 걸 대종상도 깨달아야 한다. 언제나 돼야 대종상이 권위를 세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파격적으로 바꿔야 한다. 일단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구조를 바꿔야 의식도 바뀐다. 그래야 반대로 내용이 다시 형식을 재창조한다. 이 선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종상을 계속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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