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모로 보나 판이한 두 작품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김하늘의 상대역이 연하의 아역배우 출신 스타라는 사실이다. ‘블라인드’에서는 ‘국민 남동생’ 유승호를, ‘너는 펫’에선 ‘신 한류왕자’ 장근석을 연기 파트너로 만난 그는 대한민국 누나 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짓궂게 물었다. “이성으로 보면 누가 더 매력적이냐”고. 이쯤에서 그의 참한 인상이 살짝 일그러지거나 동공이 커질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간다.
“둘 다 매력이 있지만 이성으로 보긴 어렵네요. 워낙 잘 자라서 누나 팬들이 굉장히 좋아하던데 내 눈엔 그저 어리게만 보이거든요. 하하하.”
그를 만난 건 2월 8일 오후. ‘너는 펫’ 프로모션을 위한 일본 출국을 이틀 앞두고서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개봉했지만 흥행하지 못한 이 영화는 현재 일본에서 선전 중이다. 1월 21일 개봉 첫 주부터 일본 박스오피스 5위를 기록하며 꾸준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1월에도 영화 홍보차 일본을 다녀온 김하늘은 “장근석 씨 팬이 워낙 많은 데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아 몇 번씩 보는 분들도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멜로와 ‘로코’ 사이
▼ 장근석 씨의 일본 팬들이 질투하진 않던가요?
“안 하더라고요, 다행히(웃음). 비슷한 연배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제가 근석 씨를 털털하게 대해선지 질투하는 사람은 없어요.”
▼ ‘1박2일’에서도 털털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실제 성격도 그런가요?
“요즘 좀 혼란스럽긴 한데 ‘1박2일’에 비친 것처럼 평소에도 밝고, 재미있는 것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것 좋아하고 그래요. 원래는 내성적이었는데 연기하면서 많이 변했어요. 상대방이 불편해하거나 오해하니까.”
▼ 오해를 받은 적이 있나요?
“많죠. 하하하. 사람들이 저에 대해 선입관을 갖고 있더라고요. 예전엔 오해를 사면 저 혼자 끙끙 앓았는데 팬도 많아지고 제 이름에 책임질 나이가 되면서 오해하게 만든 나한테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굳이 ‘오해하지 마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오해하게 만들지는 말자’고 다짐했죠. 우선 주변사람들부터 편하게 만들어줬어요. 나로 인해 즐겁게 일할 수 있게요. 예전에는 챙김을 받는 쪽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챙기는 편이에요. 근데 올 들어 생각이 많아졌어요. 밖에 나가면 깔깔거리고 다니니까 항상 활기차고 즐거운데 집에 있을 땐 간혹 멍하거든요.”
▼ 성격을 바꿔보려는 노력이 버거웠던가 보네요.
“억지로 즐거운 척한 건 아니에요. 그게 훨씬 편하고 좋았어요. 한 번 웃을 것을 세 번 웃으면 진짜 웃어지잖아요. 가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 그렇게 했는데 어느 순간 그조차 지치더라고요. 너무나 밝게 살려다 보니 지친다는 걸 지난 연말부터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무튼 요새 좀 변하긴 했지만 가까운 친구들과 엄마 앞에선 여전히 많이 웃어요.”
한동안 슬픈 멜로드라마의 섭외 1순위였던 그에겐 어느새 ‘로맨틱코미디의 여왕’이라는 애칭이 생겼다. 팬들은 이를 줄여 ‘로코퀸’이라 한다. ‘너는 펫’ 외에도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잊지 마세요’ ‘7급 공무원’ 같은 로맨틱코미디 영화에서 유독 좋은 반응을 얻어서다. 이들 작품에서 그와 짝을 이뤘던 권상우, 강동원, 강지환도 이후 주가가 껑충 뛰었다.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김하늘과 로맨틱코미디를 찍으면 잘 풀린다’는 말이 떠도는 이유다.
▼ 가장 잘 맞는 장르가 로맨틱코미디인가요?
“딱 잘라 그렇다고 확언할 순 없지만 즐겁게 촬영하는 건 맞아요. 연기할 때도 내 안에 잠재돼 있던 밝은 성격이 나오더라고요. 제법 유머감각이 있거든요. 멜로 연기를 할 땐 슬픈 감정에 완전히 몰입해야 하니까 힘들 수밖에 없죠.”
▼ 몰입을 심하게 해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적도 있나요?
“첫 영화 ‘바이준’이나 ‘로드넘버원’을 끝내고 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로드넘버원’이라는 드라마는 시대상황이 암울하고 무거운 작품이어서 캐릭터에 깊이 빠졌던 것 같아요. ‘블라인드’가 끝난 뒤에도 감정 정리가 쉽지 않았는데 바로 ‘너는 펫’ 촬영에 들어가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