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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글 쓰지 않으면 짐승 한 마리가 내 생살을 뚫고 나오거든”

등단 40년, 40번째 소설 준비하는 박범신

  • 이소리│ 시인·문학in 대표 lsr@naver.com

“글 쓰지 않으면 짐승 한 마리가 내 생살을 뚫고 나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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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前) 작가’ 될까 하는 두려움 커
  • ● 시골집에는 귀신들이 두런거리는 것 같아
  • ● 고향 내려왔지만 뭘 써야 할지 지금도 모르겠어
  • ● SNS? 적과 아군만 있다는 격앙된 태도는 좋지 않아
  • ● 네 번 자살 기도는 너무 이기적인 선택이었지
  • ● 문학은 인생의 방부제…다시 태어나면 목수 하고파
“글 쓰지 않으면 짐승 한 마리가 내 생살을 뚫고 나오거든”
지난해 39번째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펴낸 뒤 고향(충남 논산)으로 흘러들어간 작가 박범신(66). 지난해 11월 ‘50년 만의 귀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8개월 동안 소설 한 줄을 쓰지 못했고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렸어요. 뭔가 내 안에 있고 그 신호를 강경하게 받지만 그게 뭔지 모르겠더라고. 내 마지막 시기가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내려가 겨울을 보내면 무언가 여명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그는 올해 나올 작품에 공을 들인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은 그의 등단 40년이 되는 해다. 40번째 작품은 그의 작품세계의 결정체가 될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도 크다.

작가 박범신의 문학활동은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등단한 1973년부터 1979년까지 계급갈등을 중심으로 글을 쓰던 ‘청년작가’ 시기다. 1979년부터 절필을 선언한 1993년까지는 세태소설을 쓰던 ‘인기작가’ 시기였고, 문단 복귀 후 2000년대는 뿌리에 대한 욕망을 그린 ‘갈망의 시기’였다. 이제 박범신은 4기 시대를 열려고 한다.

2월 6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내 안에 늙지 않는 짐승이 하나 있어 글을 쓰지 않으면 그 짐승이 생살을 뚫고 나오기 때문에 안 쓸 수 없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둘레가 30㎞가 넘는 탑정호(湖)가 보이는 고향집(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있어야 할 그가 서울 집(평창동 소재)으로 잠시 올라온 것은 강추위 때문이었다. 고향집에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 현재 집수리 중이란다.



세속 욕망 버리니 근원에 대한 욕망이 꿈틀

▼ 4기 시대를 여는데 추위가 발목을 잡았군요.

“그렇군요(웃음). 돌이켜보면 청년작가 시절은 참 가난했습니다. 그땐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시절이었죠. 인기작가 시기에는 독자들 사랑도 많이 받았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원고청탁도 많이 들어와 행복했지만, 어쩌면 그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때이기도 했어요. 찬사와 비난의 가파른 경계에 서 있었거든요. 절필 이후 갈망의 시기에는 나이가 자꾸 드니까 ‘시간을 이길 수 없구나’하는 생각에 좀 쓸쓸하던 때였어요. 스스로 깊어졌다는 느낌? 그때부터 근원적인 것에 대한 갈망과 영원성에 대한 욕망이 생살을 뚫고 나오면서 신성(神聖)에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그동안 세속에 대한 욕망을 잘 이겨낸 것 같아요. 대견스러울 정도로(웃음). 그런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니까 근원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커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땐 쓰고 싶은 것만 썼기 때문에 자부심이 충만했어요.”

▼ 최근에는요?

“지금은 1년 정도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그전 2년 동안은 ‘은교’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3편의 장편소설을 썼어요. 지금 장편소설을 못 쓰고 있는 것은 그런 탓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 이제 한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한 시기가 시작되는 때인 것 같아 쉽지 않네요.”

▼ 지난해 등단 39년을 맞아 서른아홉 번째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펴냈어요. 등단연도와 장편소설집 권수가 딱 맞아 떨어집니다.

“등단 39년에 장편소설 39권을 냈다는 것은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썼다는 거죠. 거기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싶어요. 저는 ‘전(前)’ 작가가 될까 두렵습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늙고 현역작가로 죽는 게 꿈이죠.”

▼ 올해 구상 중인 소설은 어떻습니까.

“지금 많은 소설이 머릿속에 흘러가고 있어요.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희한하게도 몸은 고향에 가 있고 마음은 평택이나 천안쯤 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고향으로 내려가 글을 쓰겠다는 그런 생각은 예전엔 해보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고향에 있으면서도 ‘작가로서 나는 왜 고향으로 왔을까?’하고 자문하고 있어요. 고향에서 그렇게 서너 달 지내다 보니까 어떤 날 밤에는 귀신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집 앞에는 큰 호수가 하나 있는데, 낮이면 경치가 참 아름답지만 밤이 되면 캄캄해져요. 그래서 그런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주술적인 기분도 들지요.”

패배의 역사 간직한 고향 논산

▼ 고향 논산은 어떤 곳입니까?

“논산은 금강문화권을 중심으로 수천 년 동안 그 역사가 이어져왔지만 승리의 역사보다 패배의 역사가 더 많았습니다. 제가 사는 집 주변이 황산벌이에요. 황산벌은 계백장군이 전사하면서 백제가 망한 곳이자 후백제가 망한 곳이잖아요? 고려 태조 왕건이 만든 ‘훈요 10조’ 가운데 훈요 8조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차현(車峴·현재의 차령산맥) 이남, 공주강(公州江·현재의 금강) 밖의 산형지세가 모두 본주(本主)를 배역(背逆·금강의 유역이 남에서 북으로 역류함)해 인심도 또한 그러하니, 저 아랫녘의 군민이 조정에 참여해 왕후(王侯), 국척(國戚)과 혼인을 맺고 정권을 잡으면 혹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혹 통합(후백제의 합병)의 원한을 품고 반역을 감행할 것이다.’ 고려 광종 때에는 호족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는 자가 줄을 이었고, 임진왜란 때에도 왜군 침략으로 해를 많이 입은 곳이죠. 조선 중기에는 기호학파 중심지로 회덕에는 송시열, 논산에는 김장생·윤증 등 사대부들이 지배했죠. 동학 때도 우금치 전투에 앞서 남북 접주들이 마지막 회의를 한 장소였고요. 고향 논산에는 그런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어요.”

▼ ‘귀신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여기나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었겠어요. 가끔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혹시 그분들이 저를 매개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하는. 저는 그래도 살아 고향에 돌아왔잖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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