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장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표지(標識)이니, 분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도장을 어떻게 가벼이 다룰 수 있겠습니까?”
최병훈(崔炳勳·61) 명장은 “도장 새기는 일은 곧 신분증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만 주민등록증처럼 똑같은 디자인의 신분증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 신분증 말이다.
“작은 공간에 들어가는 네 글자로 그 사람을 표현해야 하는데, 넉 자가 모여 한 문양이 되도록 조화를 이뤄야 해요. 그 도장을 쓸 사람과 대화하며 그 사람에게서 받은 느낌, 그리고 저의 심성을 담아 새겨야 제대로 된 표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랫사람을 시켜 도장을 주문하는 이들을 썩 반기지 않는다. 그 도장을 쓸 주인공을 알지 못한 채로 새기는 것은, 보지도 못한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다만 선물하기 위해 주문하는 사람의 정성이 지극할 때는 그도 감복할 때가 있다.
“한번은 부산에서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액수는 얼마가 되든지 간에 최고로 좋은 도장을 새겨달라는 겁니다. 누가 쓸 것이냐고 물었더니 백일을 맞는 손자에게 선물할 거라고 하더군요.”
손자가 평생 지닐 수 있는 소중한 선물로 도장을 주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염두에 두고 그는 나무를 직접 손으로 깎아 정성 들여 다듬어 도장을 새겼다. 그리고 도장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할아버지께 말했다.
“이 도장은 꼭 장롱 깊이 보관했다가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손에 쥐여주라고 아이 어머니에게 전하세요. 미리 주어서 아무 데나 찍으며 노는 장난감이 아니라 귀하게 보관하고 함부로 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전자체(篆字體)로 도장을 새기는 까닭은

작은 공간에 글자를 새겨 아름다운 도형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말초신경과 씨름하는 일이다. 도안부터 수정작업까지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전자체가 제일 오래된 서체이자 새기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갑골문이 있었지만 서체라고 보기는 힘들고 춘추전국 시대 발전한 전서, 특히 진나라 시대의 소전체(小篆體)가 인장에 널리 쓰였어요.”
하기는 ‘전(篆)’이라는 글자 자체가 새긴다는 뜻이다. 종이가 나오기 전, 글자는 쓰는 것이 아니라 새기는 것이었다. 점토나 돌, 나무, 동물의 뼈, 죽간 등에 칼로 파서 새기거나 전쟁 때는 금속을 때려서 새겼으니 이에 가장 적합한 글자체가 바로 전서다. 진시황이 글자를 통일해 확립한 서체가 바로 소전체로, 인장이나 비석의 큰 글자는 아직도 소전체를 많이 쓴다. 새기는 데 적합할 뿐 아니라 조형미가 있고, 가장 오래된 글자라는 권위도 갖기 때문이다.
또 획을 많이 구부려 파는 것을 구첩전(九疊篆)이라고 하는데, 꼭 아홉 번 구부리는 것이 아니라 글자에 따라 횟수를 달리한다. 이는 글자의 간격을 맞추기 위해서다. 획이 단순한 글자는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그 공간을 메우는 것이다. 실제로 인장을 팔 적에 가장 어려운 글자는 획이 단순한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 도장장이들은 복잡한 글자를 더 좋아한다.
“요즘 분들은 구첩전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한글 인장에는 맞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인문(印文)의 균형미를 위해서라도 한글 전서체나 구첩전을 더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오래된 전통을 포기하는 걸 원치 않는 듯하다. 인장의 세계가 비록 사방 한 치(3.03㎝)를 메우는 ‘방촌(方寸)의 예술’이라고 하나, 그 안에는 유구한 역사와 모든 문화의 시원(始原)이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자가 나오기 전 자신을 상징하는 그림을 새긴 ‘고도형새인(古圖形璽印)’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그림도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다 글자가 나오면서 인장이 되었고, 나중에 인쇄로 이어지죠. 또 떡살이나 다식판, 기와의 수막새 문양, 옷의 금박까지 새기고 찍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가 재현해낸 고도형새인은 말 타고 활 쏘는 사람, 춤추는 사람, 호랑이를 탄 사람 등을 단순하지만 매우 분명하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들이다. 그는 이렇게 고대 문헌과 자료를 뒤져 연구하고 파보면서 인장의 아름다운 세계에 푹 빠져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