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기간의 변화는 주민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완벽한 비밀로 유지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위와 같은 전언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동아’는 최근 북한을 탈출한 인사들이나 북한 주민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접촉했다. 이들은 복무기간 변화, 징병제 전환 등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확인해주었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한 북한 주민은 “지난해 가을 하달된 국방위원회 명령을 통해 복무기간 변화가 공식화되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입대시점에 상관없이 일정한 나이까지 복무하던 체제였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복무기간이 달랐지만, 이 명령을 통해 모든 병사들이 같은 기간을 복무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다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일반인의 경우 5년, 대학을 다니며 군사교육을 받은 이들은 3년을 복무하는 점은 예외규정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또한 명목상이기는 했지만 지원제였던 모집방식이 의무복무로 바뀌어 주민들 사이에 상당한 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전에는 출신성분 등 다양한 인적사항을 검토해 입대 허가를 내주었으나 최근에는 중대한 신체결함이 아니면 모두 입대하는 바람에 예상치 않게 군 복무를 하게 된 주민들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신규 입대하는 병사들의 복무기간이 줄어드는 것과 병행해 이미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의 조기전역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지난해 여름 경계근무 도중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온 한 인민군 병사 출신 탈북자는 “이미 2001년 9월 31세까지였던 복무기간이 28세로 줄어드는 1차 감군 조치가 시행됐으며 고참급 병사 상당수가 조기 전역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미 지난해에 인민군 전체 규모는 90만명 정도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이 탈북자는 추산한다.
또한 이 탈북자는 “1차 감군 당시에도 인민군 내부에서는 상당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고 덧붙였다. 전체 병력규모가 급속히 줄어드는 복무연한 축소방침이 전달되자 군관(장교)들이 “도대체 어떻게 전쟁을 하란 말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감군안에 대해 북한군 내부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탈북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이뤄진 배경으로 북한의 경제체제 변화를 꼽았다. 비록 형식상이었지만 지원제였던 ‘초모제(招募制)’ 하에서도 120만 대군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군복무 자체를 ‘신성한 의무’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제대하면 노동당 입당이 가능해 취직할 때도 우대받곤 했다는 것.
군 기피현상 심화
그러나 지난해 북한의 경제개혁이 가속화하고 시장경제 시스템 도입이 본격적으로 검토됨에 따라 이같은 분위기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1990년대 이후 이루어진 인민군 복무기간의 변화는 모두 경제사정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통상 5~8년이었던 인민군 복무기간은 1995년 10년으로 확대되었다가, 1996년에 이르러 복무기간이 아닌 나이로 제대시기를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제대 연령이 남자 31세, 여자 27세로 규정됨에 따라 고교 졸업 직후인 17세에 입대한 일반인 남성은 대개 13년 이상을 군에서 보내야 했다. 대학 진학자의 경우에는 학교를 졸업한 22~23세(북한의 대학은 5년제)에 군에 입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장기복무는 이 시기 몰아닥친 극심한 식량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군입대를 희망하거나 잔류를 원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는 것. 북한 당국 입장에서도 젊은이들이 체제불만세력이 되는 것보다는 군에 남겨두고 건설인력 등으로 활용하는 게 나았기 때문에 복무기간 연장을 택했으리라는 추측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식량사정이 다소 개선되면서 군 기피 풍조가 거세졌다. 복무기간 중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군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는 것. 공식적으로는 군 복무 중이지만 실제로는 밖에 나가 있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탈영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한 탈북 병사는 “토굴을 파 지은 막사만 해도 좋은 환경이라 할 정도였으니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소속 부대의 중대 정원은 본래 150명이었지만 위탁교육을 핑계로 사회에 나가 있거나 탈영자를 빼고 나면 120명 정도였다”고 말했다. 전방부대 사정이 그렇다면 후방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같은 부작용이 발생하자 북한 군 당국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병사의 계급체계를 바꾸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전사’로 입대해 ‘상등병’을 거쳐 ‘하사’ 혹은 ‘중사’에서 전역하던 하위 계급체계를 ‘병사-초급병사-중급병사-상급병사-하사-중사’로 세분화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특히 하사나 중사 승진에는 자격시험도 도입됐다. 같은 계급을 단 채 몇 년을 보내야 하는 병사들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동기 유발책’인 셈이다.
한 탈북자는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가는 것보다 사회에 남아 ‘부업’을 하는 것이 생활에 유리하다 보니 지원자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자기만 부지런하면 암시장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누가 10년이 넘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려 하겠는가. 지원제가 의무제로 바뀌고 그나마 복무기간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주민들의 이러한 인식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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