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가축 전염병 막을 ‘파수꾼’이 없다

검역은 구멍 술술, 방역은 쉬쉬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1-28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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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우병, 돼지콜레라, 구제역, 사스, 조류독감….
    •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가축 전염병이 식탁을 위협한다. 축산물 안전에 대한 공포는 커져가지만 이들을 막을 파수꾼이 없다. 탐지견까지 동원,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지만 국민건강은 여전히 ‘운’에 맡겨져 있다.
    가축 전염병 막을 ‘파수꾼’이 없다

    지난해 12월22일 충남 천안에서 오리를 살처분하고 있는 방역원들. 12월10일 충북 음성에서 조류독감이 첫 확인된 후 전국 15개 농장에서 조류독감 양성반응이 나왔다.

    “오리농장에 대한 사전 방역이 철저하게 이뤄졌더라면….”지난해 12월 중순 조류독감에 걸린 닭 2만6000마리를 땅에 파묻은 박덕규(55·충북 음성군 삼성면)씨의 절규다. 박씨의 종계장에서는 지난해 12월7일경부터 닭들이 별다른 증세 없이 급작스레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11일 조류독감임이 확인되고 살처분(殺處分)이 결정됐을 때는 고작 5000마리만 살아 있었다. 나흘 만에 무려 2만마리가 넘는 닭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음성군에서 발생한 이번 조류독감은 먼저 오리에서 발병한 뒤 닭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조류독감에 감염되면 닭은 하루나 이틀 만에 폐사하지만, 오리의 경우 별다른 증세를 나타내지 않는다. 종오리의 경우 산란율이 저하될 뿐, 폐사율은 높지 않다. 실제로 박씨 농가와 2.5km 떨어진 종오리 농장 오리들이 조류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음성군에서만 3곳의 농장 종오리가 조류독감 양성반응을 보였다. 음성군에서는 11월 중순부터 종오리의 산란율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음성군 방역 관계자들은 “박씨가 신고했기 때문에 조류독감이 확인됐지 과거에 조류독감이 발생해도 알게 모르게 덮어버린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통칭 조류독감이라 불리는 전염병의 정식 명칭은 ‘고병원성 가금인플루엔자’. 이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A군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는 고위험성 전염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발생이 확인됐다.

    20여년간 종계장을 운영해온 박씨는 이번 일로 2억원 가량의 손해를 입었다. 살아 있는 가축에 대해서만 살처분 보상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살처분 전에 죽은 2만1000마리는 한푼도 보상받지 못한다. 박씨는 “평소 오리농장에서 사전 방역을 철저히 했더라면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막막해했다.

    박씨의 말처럼 조류독감이 오리에서 닭으로 전파되기 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현재로서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국가 방역시스템의 손길이 오리농장에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성군 방역 관계자는 “닭과 오리는 방역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털어놓았다. 국가 방역업무가 구제역이나 돼지콜레라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닭이나 오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이 관계자는 “뉴캐슬병 청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산란계 농가만을 대상으로 백신을 제대로 놓았는지 확인할 뿐 양계장이나 육계장, 그리고 오리농장에 대해서는 방역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적(敵)과의 싸움. 가축 전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나 세균 등을 예방하거나 확산을 방지하는 일은 흔히 이렇게 표현된다. ‘적’은 해외파와 국내파로 나뉘는데, 해외파 적을 차단하는 일을 검역(檢疫), 국내파 적을 차단하는 일을 방역(防疫)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검역·방역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농림부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전국 40여개 가축위생시험소, 특수법인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가 그것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하 검역원)은 중앙기관으로 국내로 들어오는 모든 동물·축산물·입국자에 대한 검역과 국내 축산업에 대한 방역, 수의과학기술 연구 등의 기능을 포괄한다. 지역에 따라 명칭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가축위생시험소(이하 시험소)는 각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으로 가축 방역과 도축장 검사, 연구기능을 맡고 있다. 1999년 전국에 돼지콜레라 발생을 계기로 출범한 특수법인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이하 방역본부)는 축산농가에 대한 방역지원 업무를 도맡는다.

    매일 5만여명의 내외국민이 이용하는 인천국제공항은 우리나라를 전세계와 연결해주는 통로인 동시에 해외 전염병 바이러스의 유입로다. 그래서 가축 전염병을 막는 최전선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인천공항으로 유입되는 축산물 검역업무는 검역원 인천지원이 관할한다.

    인천지원은 인천공항뿐 아니라 인천항, 평택항까지 맡고 있다. 공항을 통해서는 소량의 냉장용 육류가 주로 들어오고, 미국산 및 호주산 축산물은 인천항을 통해 대량 수입된다. 평택항에는 주로 중국에서 수입된 애완동물이 들어온다. 이밖에도 인천지원은 인천시와 경기도 일대 축산물 작업장의 위생안전관리를 도맡는 등 관할업무가 광범위하다.

    “세관 직원들은 우리를 슈퍼맨이라 부르죠.”

    인천지원 기획계 이영철씨의 말이다. ‘슈퍼맨’은 업무 노동강도가 거의 살인적인 24시간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 근무체제에 빗대어 붙여진 별명이다.

    “CIQ에 배정된 인력으로는 매일 2만7000여명에 달하는 입국자 검역 업무를 24시간 가동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다른 부서 직원들과 과장들까지 모두 CIQ 야근에 동원됩니다. 기획, 검역검사, 화물청사, 축산물 창고 등 각자 부서에서 정상근무를 한 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공항 여객청사 CIQ에서 야간 근무를 섭니다. 그러고는 곧장 본래의 부서로 돌아가 오후 6시까지 일한 후 퇴근합니다. 그러니까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닷새에 한번씩 33시간 연속근무를 하는 셈이지요.”

    이들은 CIQ에서 입국자들이 반입금지된 축산물을 가지고 들어오는지 검역하는 업무를 맡는다. 중국이나 태국산 축산물은 구제역이나 콜레라 바이러스 등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불법반입 축산물로 분류해 적발한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된 후 미국에서 가져오는 햄이나 소시지, 육포 등 쇠고기 축산물을 찾아내 반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CIQ는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와 가축 전염병을 일으킬 가능성을 차단하는 첫 번째 차단막인 셈이다. 실제로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여행객을 통해 해외에서 유입된 바이러스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제시되곤 한다.

    인천공항 내 CIQ에는 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 국립식물검역소, 그리고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직원들이 24시간 함께 일한다. 이중 검역원만 2교대 혹은 3교대 근무가 이뤄지지 않는다. 인력부족 때문이다. CIQ에 배정된 인원 수만 비교해도 검역원의 인력부족 실정이 금세 파악된다. 세관 274명, 출입국관리사무소 264명, 국립식물검역소 21명인데 검역원은 단 11명뿐이다.

    축산물에 대한 검역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해외 공항과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호주 시드니공항의 경우 CIQ에 190명이 배치돼 하루 비행기 70편, 1만여명을 검역한다. 인천공항보다 17배 많은 인력이 인천공항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입국자를 검역하는 셈이다.

    물론 CIQ에만 인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검역원 인천지원에 배정된 인력은 총 94명인데, 이중 검역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수의사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인력은 43명에 불과하다. 지원장과 부장 등 관리직을 제외하면 겨우 35명이 현장에서 뛰는 셈인데, 그나마 2004년 1월 현재 4명이 결원 상태다. 지난해 2~3월간 근무현황을 살펴보면 대다수 직원들은 월 260~323시간씩 근무했다. 정상근무가 총 180시간이므로 45~80% 초과 근무다.

    사람 대신 개가 검역

    검역원은 부족한 검역인력을 보충할 묘안으로 탐지견을 도입했다. 훈련된 개들이 여행객의 가방을 냄새 맡아 축산물을 찾아내는 것. 2002년 도입한 탐지견은 꽤 짭짤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CIQ에서 압수한 불법반입 휴대축산물은 2002년 1800여건에서 2003년 2300여건으로 껑충 뛰었다. CIQ에서 근무하고 있는 허창열 수의주사의 말이다.

    “여행가방은 컨베이어 벨트로 나오기 전에 먼저 세관의 X-ray 검색을 거칩니다. 이때 축산물이 들어 있는 가방이 적발되면 표지를 부착해 반드시 직접 검역을 받도록 합니다. 그러나 탐지견들이 찾아낸 가방 중 표지가 부착된 가방은 단 1%도 안 됩니다. 그만큼 X-ray 검색보다 탐지견이 정확합니다.”

    그러나 탐지견만으로 모든 입국자에 대한 검역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12마리의 탐지견이 활동중인데, 한 마리 당 하루 2시간, 4~6편의 비행기를 검역할 뿐이다. 비행기가 동시에 여러 대 착륙해 입국장이 붐빌 때는, 중국이나 태국 등 주요 축산물 반입 금지국에서 들어오는 짐조차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무심결에 국내 가축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닌 축산물을 가지고 ‘무사히’ 입국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돼지콜레라나 구제역, 그리고 이번에 최초 발생한 조류독감 등 가축 전염병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때, 검역원은 1개 부서에 1개 지역을 할당하는 식으로 수의직·연구직 인력을 현장에 파견한다. 이번 사태에도 방역과는 물론 연구부서인 독성화학과, 해외전염병과, 세균과가 총동원됐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수의과학 연구원들도 소독차량에 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질병연구부 세균과 주이석 과장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전남 나주시 조류독감 발병 농가에서 보냈다. 나주시청 앞 여관에 머물면서 조류독감 양성반응을 보인 농가와 3km 이내 위험지역 농가에 살처분과 소독 등 방역업무를 지도했다. 나주시는 전국 닭과 오리 농가의 60~70%를 차지하기 때문에 전국적 확산 및 양계사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집중적인 방역이 필요했다.

    가축 전염병 막을 ‘파수꾼’이 없다

    지난해 12월26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검역관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든 종이 상자에 출고금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된 이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주 과장을 비롯하여 세균과에서 14명이 나주에 파견됐는데, 이에 따라 세균과가 담당하는 탄저병, 브루셀라, 기종저, O-157 등 세균성 질병 연구 업무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당연했다. 주 과장은 “2002년 크리스마스도 경기도 이천에서 돼지콜레라에 걸린 돼지들과 함께 보냈다”고 했다.

    가축 전염병 발생시 이런 식으로 방역 관련 전문인력이 총동원되는 시스템은 전체 방역시스템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비상사태에만 집중하다보니 전체 방역시스템의 개선은 요원하다. 검역원 관계자는 “현재 검역원이 조류독감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다보니 구제역이나 돼지콜레라 등 또 다른 악성 전염병의 방역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털어놓았다.

    잦은 가축 전염병 발생, 그리고 잦은 현장 파견에 검역원 연구원들의 불만이 높다. ‘수의직 공무원은 노가다(막일꾼)’란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 수의학과의 한 교수는 “검역원 연구원으로 입사한다 해도 연구에만 몰두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검역원은 직장으로서 인기가 없다”고 전했다.

    2002년 한 해 동안 검역원을 그만 둔 수의사는 무려 25명. 검역원 관계자는 “7~8년차 되는 수의사들이 요즘 벌이가 좋은 동물병원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박종명 원장은 “정부가 수의사 정원을 늘려준다고 해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수의학과가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면서 앞으로는 6년 과정을 마친 수의사들이 배출되는데, 월급도 빤하고 연구 여건도 열악한 검역원에 누가 지원하겠느냐”는 것.

    ‘방역인력난’은 지방에서 더욱 심각하다. 지역 방역기관인 가축위생시험소에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3~4명의 방역원이 2~3곳 시·군 축산농가의 위생과 방역을 담당하고 있다. 총 5개 농가에서 조류독감 양성반응이 나타난 충북 음성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음성군에 대한 방역은 충북도 북부가축위생시험소가 맡고 있다. 북부시험소에는 총 7명의 수의사가 근무하는데, 이중 4명은 도축장에 파견 근무를 나가고, 단 3명이 충주시와 음성군에 대한 방역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그나마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원이 2명 줄었다.

    이 정도 인력으론 농가에 자주 드나들며 위생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사무실 안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가축 채혈 진단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다. 농림부 가축방역과에 오래 근무한 바 있는 가축위생방역본부 최홍렬 사무국장은 “방역현장에는 기동타격대가 없다”고 지적했다. 시험소 방역원 인력 수준이 극히 낮아, 정부에서 방역계획을 세워도 일선에서 이를 수행할 인원이 없다는 것이다.

    검사 미흡해도 증명서 발급

    “정부에서는 전체 농가에 대해 철저하게 소독하라고 하지만, 그럴 인력도 장비도 없습니다. 조류독감 발생농가와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소독할 뿐이지요. 농가가 알아서 소독해야 하는데, 닭과 오리를 모두 살처분한 뒤 시름에 잠긴 사람들이 소독할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음성군에서 방역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1월 중순 현재 음성에서는 조류독감 발생농가와 주변 농가의 닭·오리에 대한 살처분이 모두 끝났지만, ‘보이지 않는 적’, 조류독감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소독을 위해 하루 동원되는 ‘병력’이라고 해봐야 4대의 소독차량과 4명의 방역원뿐. 소독차량 1대가 하루에 4개 농가 이상 소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력이 모자란다고 해서 방역원이 많은 수의 농가를 방문하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방역원이 오히려 바이러스 전파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역원들은 방역의 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전염병 확산 방지와 주민 생존권 보장이 그것이다. 방역원들은 “이러한 방역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인력난 때문에 살처분과 소독 등 방역업무가 늦어져 주민들이 생업에 복귀하는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각 가축위생시험소의 역할 중 하나는 도축장에서 도살되는 가축들의 건강상태, 위생상태, 질병 감염여부 등을 검사하는 일이다. 그러나 시험소들은 도축장에 수의사자격증을 가진 검사원을 1명 이상 파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가축위생시험소에서 도축장 검사원으로 일하는 최모씨는 “혹시나 탄저병에 걸린 소를 잡아내지 못할까봐 늘 두렵다”고 털어놨다. 지난 2001년 미국 전역을 ‘탄저병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탄저병은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쇠고기를 통해 인체에 감염된다. 탄저병의 잠복기는 불과 1~5일이며 치사율이 95%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복기가 2~6년에 달하는 결핵이나 광우병은 어떤 축산물이 문제인지 밝혀낼 수 없지만, 탄저병에 걸린 쇠고기는 추적이 가능하다.

    최씨가 매번 꺼림칙한 기분으로 도축검사증명서를 발급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혼자서는 도저히 도살되는 가축의 건강과 위생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동되는 도축장에서는 하루 최대 2000마리의 가축이 도살된다. 소와 돼지가 동시에 도살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서 몸을 둘로 쪼개지 않는 이상 소와 돼지를 모두 검사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최씨는 “마릿수 헤아리고 서류 확인하는 데만 하루종일이 걸린다”고 했다.

    이처럼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지만 국가 검역·방역 시스템의 인력은 거의 제자리 수준이거나 지방시험소의 경우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조직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었을 때, 검역·방역 인력이 대폭 축소됐다.

    조직개편 때마다 ‘감원’ 공포

    제주도는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가축전염병 청정화사업 추진 덕분에 가축전염병 발생빈도가 현저히 낮다. 1999년에는 돼지콜레라와 오제스키병 청정지역으로 선포됐고, 2001년에는 국제수역사무국으로부터 구제역 청정지역으로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브루셀라와 결핵병 청정지역으로 선포됐다.

    그러나 가축 전염병을 철저히 예방하는 제주도에서조차 가축 검역인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제주축산진흥원 관계자는 “10년 전인 1993년 업무량은 지금의 절반이었지만 인력은 지금보다 10명이 많은 23명이었다”고 말한다. 직제개편을 할 때마다 정원이 줄고 정년 퇴직한 직원의 후임자를 뽑지 않는 식으로 10년새 10명이 줄었다는 것이다.

    모자란 인력도 문제지만, 검역인력을 7급 공무원으로 특별채용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1980년 이후 8급 공무원으로 채용돼 직원들의 불만이 높다. 이 관계자는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모두 수의직 공무원에 대한 이해수준이 낮다. 국가 검역·방역시스템에 인력이 모자라는 것은 이공계직 차별 풍조와도 무관하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한 국가 검역·방역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수의관’ 제도 도입은 인력난 해소를 위한 묘책 중 하나. 수의사자격증 소유자에게 병역의무를 지우는 대신 공수의관으로 흡수해 모자란 방역·검역 현장의 인력을 보충하자는 것이다.

    또 가축 이동시 검역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가축들은 국내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어느 지역이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제주도는 축산업 청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육지로부터 넘어오는 모든 동물 및 축산물에 대해 강화된 검역을 실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제주도는 구제역과 돼지콜레라 등 주요 가축 전염병 청정 지역임을 이미 선포했다. 지자체간 이동시 검역·검사를 의무화하면 가축 전염병이 전국으로 확산될 위험성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최근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면서 수입 축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공항이나 항구에서 수입 축산물이 광우병에 걸렸는지 확인하는 것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소의 뇌조직을 검사해야만 광우병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의관 제도 도입해야

    수입 축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수출국 축산농가에 직접 전문인력을 파견해 축산환경의 안전성을 검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주재검역관 제도를 도입해 농축산물을 수입하기 3년 전부터 수출국에 검역관을 상주시키며 안전성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인다. 소비자단체와 검역 당국은 “미국의 주재검역관 수준은 아니더라도 주요 축산물 수입국에 검역관을 파견해 축산물 안전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우리나라도 축산물 수출국에 전문 검역인력을 배치한 적이 있다. 검역원에서 수의직으로 근무하던 송지봉씨는 1997년 호주대사관 소속 농무관으로 파견됐다. 호주산 축산물에 안전문제가 발생할 경우 현지에서 즉각 대응하고 현지 축산업자들과 정보 및 기술을 교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호주에 머무는 동안 탄저병에 감염된 소가 발견되고 ‘엔도설판’이라는 농약이 잔류된 쇠고기가 발견돼 국내 수입을 중단시키고 검사를 강화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송씨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검역인력을 해외에 파견한 일은 없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조직이 축소된 탓이다.

    그러나 송씨는 “중국에라도 검역인력을 상주시켜 먹을거리 안전문제를 상시 점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현재 국내로 엄청난 양의 중국산 먹을거리가 밀려들어오고 있지만,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과 달리 중국은 식품안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세계화되는 추세다. 국경의 울타리를 넘는 일은 좀더 수월해졌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식품은 날로 늘고 있다. 칠레를 시작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가 늘어날수록 슈퍼마켓에서는 좀더 쉽게 외국산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국경의 문턱이 낮아질수록 반갑지 않은 손님인 ‘해외 바이러스’의 방문도 잦아질 전망이다. 실제로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 지급규모는 1998년 35억7800만원에서 2002년 45억5000만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수입 축산물에 대해 검역·검사해야 하는 항목 또한 늘어나고 있다. 1997년에는 전염병 83종, 잔류물질 115종, 미생물 7종이었지만, 2003년 10월 현재 전염병 142종, 잔류물질 170종, 미생물 18종으로 검역 대상이 크게 확대됐다. 국민 건강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가 검역·방역 시스템을 강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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