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법장 스님이 3개월 먼저 태어났으니 형님”
- MB, 법장 영결식 조사 낭독 직후 마른 하늘에 ‘햇무리’
- 지금은 믿기지 않는 이명박과 불교계의 ‘봄날’
- ‘봉헌 발언’ 파문 이후 MB의 불교정책 경색
- ‘불교 갈등’ 피로감이 ‘편안한 기독교’ 의존 심화
- 정권 최고위급에서 실무진까지 불교계 씨 말라
- 경찰의 ‘종교인 체포’ 발언, 불교계 단결 불러
- 親불교 ‘영남 중년여성’, 민심 이반의 핵 될 수도
이명박 서울시장이 2005년 9월11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 빈소에 분향헌화하고 있다.
불교계가 지적한 ‘이명박 정부 취임 후 불교차별 사례’는 22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MB와 불교’ 3시간 증언
이 대통령의 전(前) 종교 참모(2007년 이명박 후보 선대위 간부) S씨는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표출되고 있는 ‘불교계와의 갈등’, ‘불교 대란’의 내막에 대해 최근 ‘신동아’와 3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S씨는 이 대통령 측의 종교 활동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여러 스토리를 얘기하면서 “불교대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S씨의 육성을 정리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에겐 열심히 공을 들여야 하는 기관이 한 곳 있다. 바로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조계사다.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이 있는 곳이다.
이 대통령은 1996년 종로에서 제 15대 국회의원(신한국당)에 당선됐다. 의원 재임기간 이 대통령도 조계사를 자주 예방했다. 그는 2002년 7월 서울시장이 됐다. 서울시장의 선거구는 서울 시내 전체이므로 ‘선거구 관리차원’에서 조계사의 비중은 종로 국회의원일 때와 비교했을 때 현격히 낮아진다. 그러나 이 시장은 틈만 나면 조계사를 찾았다. 서울시청에서 조계사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이명박 시장의 단골 한정식집도 조계사 부근에 있었다. 가까이 있으니 자주 찾게 되는 측면도 있었고, 이명박 시장이 조계사에 대해 갖는 정성도 그만큼 각별했다.
총무원에서도 서울시장에게는 이런 저런 부탁을 할 거리가 있었다. 대단한 민원(民願)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시장은 힘닿는 데까지 성사시켜 주었다. 이 시장은 민원 처리도 불도저 스타일로,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가 분명하고, 될 수 있는 건 시원시원하게 해준다. 이 때만 해도 이시장과 불교계의 관계는 ‘봄날’이었다. 당시 조계사 총무원장은 법장 스님이었는데, 이 시장과 법장 스님은 자주 만나 ‘말동무’가 되다시피 했다. 법장 스님은 1941년 6월생이고 이 시장은 1941년 12월생으로 동갑이다. 그런데 이 시장은 나를 비롯한 측근들에게 “법장 스님의 ‘스킬(skill·사람을 다루는 재능)’과 ‘정신세계’가 뛰어나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보다 3개월 먼저 태어나셨으므로 스님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 마음, 하늘에 닿았다”
법장 스님이 갑작스레 입적하게 되어 조계사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이 시장은 무척 슬퍼했다. 그는 서울시장 자격으로 영결식에 참석해 자신이 직접 쓴 조사(弔辭)를 낭독했다. 그런데 이 시장이 조사 낭독을 끝낸 직후 마른하늘에 ‘햇무리(햇빛이 대기 속의 수증기에 비쳐 해의 둘레에 둥글게 그려지는 빛깔이 있는 테두리)’가 나타났다. 조계사 마당에 모인 스님과 불교 신도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다. 일부 불자는 “이 시장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며 이 시장을 찬양했다. 2008년 지금의 만신창이가 되다 시피 한 이명박 정부와 불교계의 현실에서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얘기겠지만, 그 때는 그랬다.
내가 오랫동안 이 대통령 곁에서 그의 종교관을 지켜본 결과, 그는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없으며 오히려 개방된 종교관을 갖고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모태 신앙’임에도 ‘신화는 없다’에서 어린 시절 선친이 교회에 적대감을 드러낸 일을 가감 없이 기술하고 있다. “아버지는 스물여덟 살 때 목사와 크게 언쟁을 벌인 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추수감사절 때 목사가 헌금 낸 사람의 이름만 특별히 거명해 축복하는 기도를 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 됐다. ‘왜 물질을 낸 사람만 위해 기도하느냐.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간절한 기도를 해줘야 할 것 아니냐.’ 아버지는 목사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40쪽)
이명박 시장과 불교계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관계는 단 하나의 사건에 의해 엄청난 내상을 입게 됐고, 마치 암덩이처럼 수 년에 걸쳐 악화되어 오다 마침내는 온 나라를 종교 갈등에 몰아넣는 형국에까지 이르게 됐다. 여러 언론에 보도된 이른바 ‘수도 서울 봉헌’ 발언 파문이다.
일 시 | 내 용 |
2월 22일 | 이명박 정부, 기독교 편중 인사 단행. |
3월 8일 | ‘기독교 도시화’ 계획 정장식 전 포항시장 중앙공무원연수원장 임명. |
4월 15일 | 교육과학기술부, 종교사학의 학내 선교 사실상 용인. |
4월 30일 | 청와대, 정무직 공무원 종교 조사. |
5월 1일 | 주대준 청와대 경호처장, ‘모든 정부부처의 복음화가 나의 꿈’ 발언. |
5월 12일 | 27사단 참모장, 국가지정 공휴일인 부처님 오신 날 비상작전 시행. |
5월 15일 | 이 대통령, 목사 등 3000여 명과 국가조찬기도회. |
6월 7일 | 추부길 청와대 홍보수석, ‘촛불집회 참가자 사탄’ 발언. |
6월 15일 | 소망교회 김재철 목사, ‘이 대통령은 주님의 아들’ 발언. |
6월 20일 | 이 대통령, 김황식 대법관 조찬기도회 참석 뒤 그를 감사원장 임명. |
6월 20일 | 국토해양부 ‘알고가’ 전자지도에 교회만 표시하고 불교 사찰 누락. |
6월 24일 | 어청수 경찰청장, 경찰 복음화 금식대성회 광고포스터에 사진 개제. |
6월 28일 | 서울 송파구청 기독교 일색으로 대학생 멘토링 사업 추진. |
7월 11일 | 국토해양부 경관법과 경관계획 수림지침 대상에 전통사찰 누락. |
7월 29일 | 경찰,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차량 검문검색. |
7월 30일 | 선관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교회엔 397곳, 사찰엔 4곳 투표소 설치. |
8월 7일 |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지리정보에 교회만 표시하고 불교 사찰 누락. |
8월 8일 | 국토해양부, 국가지리정보유통망에 교회가 사찰보다 더 잘 노출되게 함. |
8월 13일 | 서울시, ‘지리정보시스템 포털에 교회만 표시하고 사찰 누락’ 사과. |
8월 14일 | 서울시 주최 ‘건국 60주년 경축 음악제’에서 찬송가 TV방송. |
8월 28일 | 이 대통령, 종교차별 규탄 집회 직후 목사 초청 청와대 만찬. |
그러나 이 사건의 발단과 실체적 성격은 지금껏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잘못 알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실제보다 과장되게, 악의적으로 전파된 측면이 있다. 사건의 실체는 이랬다. 2004년 5월30일 밤 9시~31일 새벽 4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청년학생연합 기도회’를 여는 주최 측이 이 시장에게 행사 참석을 요청했다. 이 시장은 ‘시정이 바빠 약속을 못 드리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당시 서울시의 버스노선 개편으로 시민의 민원이 빗발치고 언론은 연일 서울시를 성토하는 기사를 쏟아내는 상황이어서 이 시장은 대책 마련에 정신이 없었다. 몸도 녹초가 돼 있었다. 이 행사에 참석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예고도 없이 새벽에 찾아와…
5월31일 새벽 이 시장을 잘 아는 교회 지인이 시장 관사에 예고도 없이 찾아와 이 시장에게 행사 참석을 종용했다. 이 시장은 결국 행사장으로 갔다.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바로 단상으로 안내됐다. 이어 이 시장에게 A4지 한 장이 건네졌다. 이른바 ‘봉헌사’였다. “…서울 기독 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로 끝나는 내용이었다.
곁에 있던 이 시장 수행원은 명색이 서울시장인데 종이 한 장 들고 서 있는 것이 보기가 좋지 않다고 판단해 이 종이를 급한 김에 서울시청 결재판에 끼워 주었다. 결재판에는 서울시청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주위에서 봉헌사를 읽어 내려가는 분위기에 따라 이 시장도 종이를 보면서 글을 따라 읽는 모양새가 됐다.
이 시장이 참석하기로 약속된 행사였으면 시장이 낭독하는 글은 사전에 비서진이 원고를 조율했을 것이다. 종교행사장의 정제되지 않은 이러한 봉헌 발언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이 시장은 잠자다가 억지로 불려나와 문장을 제대로 검토할 여유도 없이 주는 대로 읽었다.
얼마 뒤 한 언론은 “이명박 시장이 최근 한 기독교 행사 봉헌식에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내용의 봉헌서를 직접 낭독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시장이 봉헌사를 읽는 장면은 기독교TV 카메라에 잡히고 자막 처리가 돼 보도됐다. 엄숙하게 선언하는 표정이었다. 서울시 문양이 새겨진 결재판에 봉헌사가 꽂혀 있는 사진도 보도됐다. 영락없이 시장이 사전에 직접 준비한 글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하도 ‘딱 떨어지게’ 당해서 이 시장 측은 제대로 반박도 못했다.
‘MB 훼불’ 괴(怪)CD 살포
봉헌 발언 파문은 이명박의 종교관계를 ‘파문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대(大)사건이었다. 이 파문의 여파는 2년여의 잠복기를 거쳐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의도된 발언이 아니었음에도 이 대통령은 불교계로부터 의심을 받는 처지가 됐다. 불교계의 ‘반(反) 이명박’ 정서는 이 대통령 측으로 하여금 불교에 대해 서운함이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작용도 해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2006년 6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 기독교 행사에 이 대통령은 축하 동영상만 보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이명박 장로님께서 우리 거룩한 행사장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셨다”는 소개가 있었다. 이후 이 행사장에서 한 참석자는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등 부산 경남 지역 대표 사찰을 거명하면서 “사찰아 무너져라”고 기도했다. 대선을 앞두고 있던 이 대통령은 또 논란에 휩싸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남 지역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다소 나빠졌다. 사찰을 불태우는 ‘훼불’ 동영상과 함께 광신도들이 “무너져라”라고 아우성을 치고, 이어서 이 대통령이 “행사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오버랩되는, 이른바 ‘괴(怪) CD’가 누군가에 의해 영남권 사찰을 중심으로 전국 사찰에 일제히 살포된 것이다.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이명박=장로’ ‘이명박=종교 편향’ 이미지가 불교계 유권자들의 의식에 단단하게 축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고 나서부터는 이 대통령 측 내부에서 종교문제와 관련해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이 대통령 주변에서 불교계 인사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 대통령이 불교계와의 지속적인 갈등 과정에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껴 자기 집과 같이 편안한 기독교계에 더 의지하게 됐을 수 있다.
9월10일 어청수 경찰청장(가운데)이 동화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다 떠나고 있다.
‘이명박 인재풀’에서 이처럼 불교계가 자취를 감추게 되니 집권 후 그 인재풀에서 나오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장·차관에 불교계가 희박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강만수 못 내치는 ‘진짜 이유’
(※ 편집자 : 이와 관련, 이명박 정부의 한 고위 공직자는 기자에게 “이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무수한 비판과 악화된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여전히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여기엔 ‘종교적 이유’도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1998년 국회의원 직을 잃은 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전까지 서울 강남 소망교회에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에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난 강만수 전 차관도 소망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새벽 일찍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봉사활동을 한 뒤 테니스를 치고 아침식사를 하는 식으로 하루 일과를 열었다. 이 때 강 전 차관은 빈번히 이 대통령의 새벽 기도, 테니스, 식사 스케줄에 동참했다. 아침식사가 끝난 뒤 강 전 차관은 개인 연구소에 가 연구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이 ‘나와 더 얘기하자’고 붙잡아 이 대통령과 시간을 한참 더 보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국회의원을 하다 물러난 때였고, 강 전 차관은 재정경제원 차관을 하다 그만둔 상태였다. 강 전 차관의 경력이 당시의 이 대통령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대통령은 국가경제 전반을 직접 경영해본 강 전 차관의 식견을 높이 사 그와의 대화를 즐겼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 년의 ‘백수 시절’ 동안 거의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눠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이가 됐으니 강 장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뢰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의 종교생활을 모르면 이 대통령의 지금의 통치방식이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정권의 호전적 불교정책
집권 후 ‘고소영 S라인’ 인사 파행 논란은 이명박 정권 출범에 협력한 불교계 인재들에게도 자괴감을 줬다. 특히 소망교회 출신 박미석 교수를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에 끝까지 임명하려 한 것은 문제였다. 박 교수의 학자 경력은 나무랄 데 없었으나,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현장경험이 없다’는 복지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를 서울복지재단 대표이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었다. 그런 박 교수를 더 크게 끌어안으려다 결국 각종 의혹이 터지자 포기하는 모습은 인사에서 완전히 소외된 불교계의 ‘상대적 박탈감’을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렸다.
정부 전자지도의 불교사찰 누락,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에 대한 검문검색, 어청수 경찰청장의 포교사진 등이 지금의 불교대란을 촉발한 대표적 매개로 꼽힌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명박 정권의 인사(人事)에 있다.
스님의 성향이나 경전의 내용에서 잘 나타나듯 불교는 ‘논리’나 ‘계산’보다는 ‘인정(人情)’을 우선시하는 종교다. 박정희 정권의 이후락, 전두환 정권의 권익현, 노태우 정권의 김태호, 김영삼 정권의 서석재에 이르기까지 전임 정권에선 불교계와 정권을 마음 대 마음으로 이어주는 대통령의 최측근이 존재했다. 이들이 청와대와 불교계의 중요한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현 정부에선 이런 역할을 맡아줄 거물 정치인이 없다. 중진 이상 중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기독교인인 대통령 형 이상득 의원의 불교계 접촉은 애당초 무리였고, 실패로 귀결됐다.
실무급으로 내려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나라당이 ‘불교 몫’이라고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모 의원은 실은 불교계의 주류와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 인물이다. 불교계에선 “자기들 정치하면서 불교 이름 팔지 말라”며 불쾌해 한다. 이 대통령은 “집권하면 불교를 전담하는 전통문화비서관을 청와대에 두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 중에도 불교계의 주류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불교계 일각에선 “청와대와 내각이 기독교 일색이면, 적어도 불교업무 담당자 정도는 불교계와 소통이 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것 아니냐. 불교를 완전히 무시한다”고 본다. 최고위급에서 실무진까지 불교계는 씨가 마르고 있는 상황이다.
‘실세 중의 실세’ 이재오 전 의원은 현 정권 초기 수경 스님이 대운하에 반대한다고 하자 그 스님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공개리에 퍼붓기도 했다. 수경 스님의 진보성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터다. 자기 목소리만 내면 되는 거지 종교인을 상대로 싸울 이유가 없다. 현재의 불교 파문은 불교계의 극소수에서 시작된 ‘반(反)이명박’ 움직임에 다수의 불교인이 동참해 낳은 결과다.
경찰의 지관스님 차량 검문검색 직전 경찰은 “촛불시위 수배자 검거를 위해 조계사에 강제진입하고 시위에 참여한 종교인도 체포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경찰의 이 같은 움직임이 불교계에 주는 충격은 컸다. “갖은 차별을 받던 끝에 드디어 칼 앞에 놓이게 되는구나”라는 불안감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투쟁심을 촉발시킬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배타적·호전적 접근법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것이다.
청와대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퇴진 문제를 국정철학의 문제, 법치의 문제로 격상시킨다. 그러나 그의 퇴진이 왜 ‘법치의 붕괴’나 ‘경찰의 사기추락’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청수 청장은 임기도 보장되지 않는 국민의 ‘공복’일 뿐이다. 쓰고 싶을 때는 쓰고 부담스러울 때는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존재가 공복이다. 그럴 수 없다면 공복이 아니라 동업자나 주인이다.
영남 중년여성, MB정권에 뿔 나
이명박 정부는 불교계 반발에 대해 아직은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와 불교는 깊은 구조적 유관성이 있다. 영남은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지지기반인 동시에 ‘불교의 메카’다. 정권에 대한 불교계의 이반은 점진적으로 불교 신도의 이반, 이어 이 지역 유권자의 이반으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때’마다 절을 찾는 엄청난 인구의 ‘영남 중년 여성’이 ‘민심 변화의 핵’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들이 지금 이명박 정권에서 이반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태가 더 악화될 경우 이들은 “제발 이명박을 지지하지 말라”며 남편과 자녀와 친구들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한나라당 주류집단에도 중장기적으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폭락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율은 정당 중 여전히 1위다. 그러나 이미 한나라당에서도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기독교이며 불교는 턱없이 적다. ‘종교 갈등’의 수위에 올라 선 불교 문제는 청와대 뿐 아니라 한나라당에도 언제든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확전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