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호

[시마당]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 양안다

    입력2024-06-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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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은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꽃의 음악이 무더기로 시들고 있다거나
    서랍에 차곡차곡 쌓이는 알약들의 색깔.
    한밤중에 쏟아지는 폭설을 바라보는 시간과
    이제 그만 죽고 싶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진심이니.
    햇빛이 두 눈을 조각내도 괜찮겠냐고.
    서영은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어깨가 아름답구나.
    나의 마음에 너를 초대할 수 없었다. 꿈에서 너는 날 죽이는 유일한 생물체였다.
    더운 나라로 도망가고 싶지 않아?
    마지막 꿈.
    재능 있고 차분한 너의 목소리가 어디서든 재생되었고
    우리의 작은 신이 너의 슬픔을 만들다가 도망친 날.
    미러볼이 돌아가는 동안 희망을 발견하며……
    나의 토막 난 심장들은 어디서 음악을 만들고 있을까.
    얼음 같아.
    테이블을 가로지르는 술잔처럼.
    두 눈이 폭설에 사로잡히는 것처럼.
    얼음처럼.
    얼음처럼.
    침묵 속에서 서영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널 만나기 전에는
    불안이라는 괴물이 아름다움을 뒤집어쓰고 나의 목을 조르더구나.
    집에 일찍 가버리는 너의 뒤통수만 기억에 또렷하더구나.
    내가 미친 걸까?
    이제 그만 죽어도 좋겠지.
    바닷가.
    햇볕에 새까맣게 탄 해바라기.
    침엽수림을 헤매다가
    무심하게 서로의 이름을 발음하기.
    미래가 상상되기 시작했다.
    서영, 네가 나의 발걸음을 믿었으면 좋겠어.
    손가락에 묻은 설탕을 빨아먹고
    번들거리는 입술로 너의 힘찬 노래를 듣고 싶다.
    살아 있을 수 있다면.
    그래. 내가 살아 있으면……
    무릎이 성할 날이 없을 때까지 반쪽 기도를 올리고
    향을 피우고
    나의 작은 손으로 너를 들어 올리고 싶어.
    그동안 기웃거리던 폭력과 야만을 짓누르고
    다정한 시간으로 걸어가고 싶어.
    티타임.
    찻잎은 뜨거운 물에서 우러나지.
    티타임.
    고딕적인 찻잔이 너의 손목과 어울리지.
    티타임.
    춤을 추자.
    뒷머리가 많이 자랐구나. 여름 일기에 기이한 마음을 기록하는 일.
    작은 집에 모여 사는 자매들과 발코니에 놓인 재떨이에 대해. 한여름 햇빛에 마르는 흰 양말들에 대해. 이제부터 꿈을 꾸지 않기. 한밤중에 묻는 안부처럼 평화를 이해하기.
    우리보다 오래된 세계에도 비참한 것이 무성했다.
    잘 봐.
    연인들의 그림자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없구나.

    [Gettyimage]

    [Gettyimage]

    양안다
    ● 1992년 천안 출생
    ●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숲의 소실점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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