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개업 인테리어 해준 식당 내 손으로 철거…주인과 대성통곡”

[르포] 요식업 경기 ‘바로미터’ 황학동 주방거리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0-11-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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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 없는 거리에 물품만 가득…무너지는 자영업자

    • “IMF,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코로나가 더 무섭다”

    • 철거 업체만 ‘나홀로’ 호황…대기업 프랜차이즈도 ‘줄폐업’

    • 외식업중앙회, 1~8월 전국 3만3822개 업소 휴·폐업

    • “코로나 여파 2~3년 더 갈 것…앞으로가 더 걱정”

    11월 9일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 곳곳에는 중고 물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최창근 객원기자]

    11월 9일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 곳곳에는 중고 물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최창근 객원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과 6호선 환승역인 신당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시간이 멈춰버린 듯, 수십 년 전 내 기억 속 새겨진 서울의 시장 풍경이 펼쳐진다. 퇴계로를 따라 청계천 방면으로 걸어가면 길 양쪽으로 가구·주방기기·그릇·전자제품 상점이 즐비하다. 빛바랜 간판과 낡은 상점들에서 세월의 깊이가 묻어난다. 이 일대는 서울시내 복판에 자리한 재래시장이다. 서울중앙시장을 비롯해 도깨비시장, 주방시장이 있다. 그중 서울중앙시장 북쪽, 남쪽과 황학동 주민센터 동쪽으로 성동공고를 낀 마름모꼴의 재래시장이 ‘황학동 주방거리’로 불린다. 


    “장사도 안되는데 뭔 취재냐”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미친 3월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고 말한다. 3월 11일 주방거리 모습. [뉴스1]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미친 3월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고 말한다. 3월 11일 주방거리 모습. [뉴스1]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진 11월 9일 찾은 황학동 주방거리는 한산했다. 오전 9시 무렵 개시(開市)한 상인들은 ‘오늘은 손님이 좀 오려나’ 하는 마음으로 물건에 쌓인 먼지를 털면서 손님맞이를 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아 보였다. 문을 연 가게 주인들은 “뭐라 할 말이 없다” “장사가 안되도 너무 안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상인들의 반응에서는 체념이 묻어났다. 

    식품기계를 전문으로 파는 한 여성 상인은 “요즘엔 진짜 불황인지 중고 물품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지었다. 중고 그릇가게 점주는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속상한데 취재는 뭔 취재냐. 나가달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반응은 다른 주방거리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인들의 냉대에 가까운 반응을 보며 그들이 체감하는 불경기의 한파가 전해졌다. 

    중앙시장·도깨비시장을 지나 ‘주방거리’ 구역으로 들어서자 상점 곳곳에는 중고 물품이 한가득 쌓여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등 연이은 악재 속에서 벼랑 끝으로 몰린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황학동은 이 일대 논밭에서 황학(黃鶴)이 노닐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주방거리가 자리한 서울중앙시장 일대는 광복 이후 성동시장이 들어서면서 남대문·동대문시장과 더불어 서울시내 대표 시장이 됐다. 



    6·25전쟁 이후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청계천으로 모이면서 시장 규모는 더 커졌다. 상인들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양곡, 골동품, 고물 등을 팔았다. 오늘날 광장시장, 답십리고미술상가, 서울풍물시장의 뿌리다. 서울중앙시장의 뒷골목이라 할 수 있는 황학동 일대가 주방용품·설비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87년 무렵이다. 노점용 리어카·포장마차 제작소가 들어서 있던 일대에 그릇·주방용품 제작업체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즈음해 국내 외식업이 급성장하면서 상점 450여 개가 모인 전국 최대 규모 주방용품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전성기에는 전국 주방기구·가구 거래량의 80%를 점하기도 했다. 

    황학동 주방거리는 가정·업소용 주방기구·설비·가구를 눈으로 직접 보며 흥정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가벼운 발걸음을 하는 곳이자, 폐업을 해야만 하는 이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정든 집기들을 내놓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창업-폐업-중고물건 거래 등 한국 요식업의 순환 구조를 체험할 수 있다. 폐업 점포에서 수거한 각종 주방용품을 손본 뒤 개업하려는 소상공인들에게 되파는 만큼 자영업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한산하다 못해 스산한 주방거리

    기자가 이날 찾은 주방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스산했다. 어쩌다 손님이 가격 흥정을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실랑이 끝에 발걸음을 돌렸다. 손님을 보내는 상인의 뒷모습에서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가게 밖에는 누군가의 추억이 담겼을 손때 묻은 중고 주방용품이 한가득 쌓여 있다. 거의 다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가게 밖 간이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주방기기업체 대표 강모 씨는 “요즘 장사는 어떠신가요?”라고 묻자 “보면 몰라? 손님이 없어 놀고 있잖아. 말 그대로 개점휴업이지 뭐”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33년째 주방거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남보다 먼저 목 좋은 곳에 가게를 열었지만, 요즘은 이런 자리도 소용없다고 했다. 

    “요즘은 자기 명의 가게가 없으면 장사는 접는 게 나아. 임차료도 못 내거든.” 

    옆에 있던 상인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35년째 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1998년 IMF 외환위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어봤지만 요즈음 같은 무서운 불황은 처음”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은 중고용품 매입도 판매도 안된다. 그건 중고용품도 이미 나올 만큼 다 나왔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로 개점 휴업하는 식당·카페가 늘고 있고 기존 업소도 코로나 규제로 아직 본격적으로 문을 못 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오전 9시 가게 문을 열었지만 4시간 넘게 물건 하나 못 팔았다. 공과금·임차료 등은 빚을 내 내는 형편이다.” 

    업소용 가구·설비점을 운영하는 임모 씨의 사정도 마찬가지. 그는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버틸 만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요식업 경기가 완전히 죽다시피 했다”며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여파는 2~3년 더 갈 거 같아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주변 상인들도 오후 2시가 넘도록 ‘마수걸이’도 못했다고 푸념했다. 

    10년째 주방설비 전문점에서 일하는 황모 씨는 “코로나19로 타격이 큰데다, 건물 임차료도 인상돼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오늘 오전에 폐업 처리 한 건을 했는데, 폐업 후 나온 물건이 아까워 팔리지도 않을 중고물품을 사들였다. 장부상 매출은 오늘도 마이너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인근 주방설비 전문업체에서 일하는 박모 씨는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는 고객들이 카페나 식당 개업을 꺼려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며 “하루 매출이 ‘0’인 날도 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중고 가구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고 의자 전문판매점에서 일하는 서모 씨는 “창업이 줄면서 부피가 큰 가구가 계속 쌓이고 있다. 창고 보관 비용 등 유지 비용이 늘어 요새는 쓸 만한 폐업 가구가 나와도 받지 않는다”며 “현재 20평(66㎡)짜리 건물 4개 층과 200평(660㎡) 규모의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창고, 그리고 컨테이너 6개가 재고 의자로 가득 찼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 통계도 이들의 말을 뒷받침한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 42만 회원 업소 중 2만9903개 업소가 폐업했고, 3919개 업소가 휴업에 들어갔다. 제갈창균 회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외식업은 연쇄 도산 위기에 놓였다. 그나마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조치로 저녁 9시 이후 영업이 가능해졌지만 그동안 본 피해를 복구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절박함을 호소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가데이터 분석결과도 비슷하다. 올해 2분기 서울시내 상가 수는 37만321곳으로 1분기(39만1499곳)보다 2만1178곳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음식업 상가의 경우 1분기(13만4041곳)에 비해 2분기(12만4001곳)에 1만40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그 여파가 황학동 주방거리에 미친 셈이다. 


    “철거 업체는 직원 모자라 일용직 쓰는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폐업처리·철거 업체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날 주방거리에 자리한 한 철거 업체 대표는 연신 걸려오는 문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는 “한 달 평균 50건 정도 문의 전화가 오는데, 코로나19가 절정이던 여름에는 월 150건이 넘기도 했다”며 “예전에는 대부분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카페나 식당이었는데, 요즘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직원 7명으로는 밀려드는 일감이 감당이 안 돼 따로 일용직 인부를 쓸 정도”라고 부연했다. 

    인근 다른 철거업체 대표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그는 “불경기, 최저임금 인상 여파 때도 견뎌온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사태는 못 견디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지독한 불경기에 나만 바쁘다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참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래도 철거 업체를 부를 수 있는 쪽은 형편이 낫다고 했다. 

    “철거 비용이 보통 수백만 원 들어가는데 폐업하는 처지에서는 만만치 않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폐업도 못 하는 형편이다. 한번은 개업 인테리어 시공을 맡은 식당에서 폐업 철거를 부탁해서 맡게 됐는데, 식당 사장이나 나나 가게를 보고는 눈물이 나서 함께 통곡했다.” 

    카페 설비업을 하는 김모 씨는 황학동에서 오랫동안 이 일을 한 부모님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제품을 판매한 후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려다가 카페가 폐업 처리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불과 한 달 전에 개업한다며 제품을 구매했는데 폐업한 것이었다. 근래에 그런 사례가 두세 군데 됐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전했다. 그가 보여준 경기도 남양주 창고 폐쇄회로(CC)TV 영상 속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이 가득했다. 

    경기 불황, 최저임금 인상 여파, 코로나19라는 3중고 속에서 활력을 잃은 황학동 주방거리. 취재 중 만난 상인들은 “모두 다 어렵지만, 우리만 어려운 건 아니니 이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다. 식당·카페도 잘되고, 그 덕에 우리도 어깨 좀 펴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황학동 주방거리 상인들이 어깨 펴게 될 날은 언제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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