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해전의 승부수 군함⑧] '유럽의 명량대첩' 트라팔가 해전 그 서막

해운의 시대, 국가 사활 걸고 해군 양성한 영국

  • 정재민 前 방위사업청 지원함사업팀장 박나영 해군 소령

    입력2021-03-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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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과 넬슨, 임종도 비슷해

    • 해군으로 세계 제패한 영국, ‘팍스 브리태니카’ 시작

    • 영국 해군의 자랑, 넬슨 제독과 빅토리호

    • 사람보다 포가 중요했던 주력 범선 ‘전열함’

    허레이쇼 넬슨 제독의 기함인 빅토리호. [동아DB]

    허레이쇼 넬슨 제독의 기함인 빅토리호. [동아DB]

    허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은 ‘영국의 이순신’이라 할만한 해전의 명장이다. 이순신과 넬슨, 두 사람은 살아온 여정도 비슷하다. 둘 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나라를 구한 영웅이고, 한때 직위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했으며, 해전 중에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총탄을 맞고 난 뒤에 남긴 이야기도 유사하다. 이순신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고, 넬슨은 “손수건으로 나의 얼굴을 가려라”고 했다. 지휘관의 죽음이 알려지면 전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언이다. 

    넬슨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기까지 약 네 시간 동안의 행적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보다 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넬슨은 처음 총탄을 맞고 실려 가면서도 지휘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마침내 승전 보고를 받고도 적선 몇 척을 나포했는지 물었다. 부하가 15척을 나포했다고 대답하자 “난 20척을 예상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전투가 끝나고 확인한 결과 나포한 적선은 21척. 넬슨의 상황 판단이 얼마나 정확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트라팔가 해전은 영국 해군이 함선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상대로 압승을 거둔 해전이다. 당시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군은 유럽 최강의 육군력을 자랑하는 강군이었다. 여기 ‘무적함대’라 불리는 스페인이 가세했다. 이들은 총 33척의 군함을 이끌고 영국으로 향했다. 이에 맞서는 영국의 함대는 총 27척에 불과했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인 명량해전도 열세를 뒤집은 승리다. 1597년 전라도 해남과 진도 사이에 위치한 ‘명량 수도(水道)’에서 일본 군함 133척과 조선 군함 13척이 맞붙었다. 10분의 1에 불과한 전력이었지만 승리한 것은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 함대였다. 

    트라팔가 해전은 126년간 계속돼 온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크고 작은 해전에 종지부를 찍은 해전이자 범선시대의 마지막 해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는 5000여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고, 8000여 명이 포로가 됐다. 군함은 21척이 나포되고, 1척이 격침됐다. 반면 영국 함대는 단 한 척도 나포되거나 격침되지 않았다. 피해라고는 400여 명의 전사자가 전부였다. 서양의 명량대첩이라 할 트라팔가 해전에 대해 2회에 걸쳐 자세히 다뤄본다.

    이순신과 넬슨의 만남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허레이쇼 넬슨 제독. [동아DB]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허레이쇼 넬슨 제독. [동아DB]

    2005년은 트라팔가 해전 200주년이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영국은 포츠머스 항에서 국제 관함식을 열고 전 세계 군함을 초대했다. 32개국의 군함 168척이 참가한 대대적인 규모였다. 필자는 당시 해군사관학교 1학년 생도였으므로 관함식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4학년 생도만 순항 훈련의 일부로 영국 관함식에 참석했다. 생도 4학년은 소위 임관 전에 약 4개월 동안 순항 훈련을 한다. 군함을 타고 전 세계의 기항지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해군과 교류하고 국제적 안목을 키운다. 



    이때 우리나라의 군함이 크고 좋으면 우리 생도들이 상륙해서 외국 해군을 만날 때에도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2005년 4학년들이 영국에 타고 간 군함은 당시로서는 최신예 구축함이던 4000t급 ‘충무공이순신함’과 군수지원함 ‘천지함’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세종대왕함, 율곡이이함, 서애류성룡함과 같은 이지스함이 나오기 전이었다. 

    당시 영국 관함식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군함은 ‘빅토리(Victorty)’호였다. 빅토리호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이 타고 영국 함대를 지휘한 기함(flag ship·지휘관이 타는 군함)이다. 자그마치 243세 최고령으로 현재에도 명예 기함으로서 영국 군함 명부에 등재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군함이다. 비록 거북선이 영국에 간 것은 아니지만 대신 ‘충무공이순신함’이 갔으므로, 이순신(1545~1598) 제독과 넬슨(1758~1805) 제독이 수백 년의 시간과 동서양의 지리적 거리를 넘어 서로 만난 셈이다. 

    트라팔가 해전이 벌어질 무렵 영국은 이미 당대 최강의 해군력을 갖춘 국가였다. 영국 해군은 1588년 칼레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제압했다. 신대륙 발견으로 해상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영국 해군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섬나라인 영국은 지리적으로 신대륙을 오가기에 가장 유리한 나라였다. 이에 따라 무역과 해운업이 발달했다. 신대륙을 오가는 상선을 지켜줄 수 있는 군함과 해군의 역할도 커졌다. 

    영국이 부상하기 전까지 유럽 무역 최강국은 네덜란드였다. 1602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세계 최초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주식거래소를 만들 정도였다. 영국이 네덜란드를 넘어 유럽 최고의 해운무역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강한 해군이 있었다. 1651년 영국의 호국경(혁명정권의 최고행정관)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들고나는 상품은 영국의 배나 영국 선원만 운반할 수 있다는 항해 조례를 선포했다. 네덜란드 해운업에는 직격탄이었다. 네덜란드는 함대를 조직해서 영국에 맞섰으나(영란전쟁·1652~1674) 무역은 몰라도 해전에서는 영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군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깨달은 영국은 군함 개발에 매진했다. 플리머스, 포츠머스에 위치한 영국 왕립 조선소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1793~1805년까지 8년간 영국 군함 수는 500척에서 950여 척으로 거의 2배 늘었다. 현재 구축함 한 척을 만드는 데 10년 안팎이 걸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군함을 ‘찍어낸’ 셈이다. 영국 해군의 조선 기술이 발전한 데에는 프랑스에서 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도망 온 조선 기술자들이 기여한 부분도 있었다.

    혁명으로 주춤한 프랑스 해군 양성

    한편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절정기인 태양왕 루이 14세 때(1643~1715)부터 해군 육성에 나섰다. 당시 프랑스의 재상이던 콜베르는 상인 출신답게 중상주의 정책을 내세우고 식민지를 오가는 해외무역에 공을 들였다. 그는 영국을 보며 무역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강한 해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프랑스는 사람보다 배에 집중했다. 해군 양성을 위해 황실 조선소를 만들고 270여 척의 함선 건조에 나섰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서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공화정이 수립되며 해군 양성에 차질이 생겼다. 노련한 기술과 경험을 지닌 해군 장교들이나 선원들이 혁명 이후 프랑스 해군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이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고(1799) 마침내 황제로 즉위(1804)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원하는 다른 국가의 시민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낀 영국, 신성로마제국, 프로이센, 스페인 등은 프랑스 혁명정부 타도를 공동의 목표로 삼고 대프랑스동맹을 결성했다. 나폴레옹은 영국 본토에 대한 침공작전을 계획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지상군은 유럽 최강이었지만 해군은 그렇지 못했다. 앞서 설명했듯 혁명을 거치며 해군 장교가 대거 프랑스를 떠났다. 그만큼 유능한 지휘관이 부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804년에는 지중해함대 사령관으로 영국과 해전을 치른 경험이 있는 트레빌 제독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프랑스 연합함대의 총지휘관으로 임명된 인물은 피에르 빌뇌브. 나일강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크게 패하고 도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열함에 활용된 고급 조선 기술

    당시 주력 전투함은 전열함(戰列艦·Ship of the line)이었다. 전열을 갖추어 전투하는 함이라는 뜻으로 전술적 개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시대에는 군함 여러 척을 한 줄로 길게 세워 전열을 만들고 배 옆에 장착된 대포로 포격전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술이었다. 영국의 전열함은 돛대를 3개 달고 포를 50문에서 많게는 140여 문 탑재한 목조 범선 형태였다. 포격전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는 포를 많이 탑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배가 커야 했다. 전열함을 한 척 건조하는 데에만 작은 숲 하나가 통째로 소모됐다. 선체와 프레임을 구성하는 떡갈나무와 느릅나무는 물론이고, 목재 간 연결을 위해 사용하는 단단하고 내수성이 높은 전나무를 충분히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은 부족한 목재를 발트해 지역의 스웨덴 등지에서 수입해 와야 했다. 

    목재로 만든 선박이다 보니 갑판과 외판의 방수 처리가 중요했다. 그 해결책은 ‘뱃밥’이었다. 뱃밥은 물이 새어들지 않도록 틈을 메우는 물건으로 천이나 나무껍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뱃밥으로 버려진 로프에서 뽑아낸 섬유질 부스러기를 사용했다. 군함에 들어갈 뱃밥이 부족해지자 영국 왕실은 뱃밥 추출에 교도소 수용자들까지 동원했다. 

    배의 외부 바닥 면에 붙어 함정의 속력을 떨어뜨리는 따개비 등 해양생물의 문제도 해결했다. 지렁이같이 생긴 배좀벌레조개는 배의 벽을 갉아 먹어 구멍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선체 내부로 물이 새어 들어왔고, 방치할 경우 배가 침몰하기도 했다. 영국 해군은 이를 막기 위해 선체 밑면에 얇은 구리판을 입혔다. 오늘날에도 ‘copper-bottomed’라는 단어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배 밑부분에 따개비가 붙는다. 오늘날에는 구리판 대신 특수 페인트를 칠하고 선체에 약간의 전류를 흘려주는 등의 조치로 해양생물이 잘 달라붙지 않게 한다. 

    당시에는 무엇보다 돛대와 돛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마스트가 부러지거나 돛이 찢어지면 전투는커녕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섬세한 기동을 위해서는 크기가 다른 돛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튼튼한 마스트와 돛을 연결하기 위해 밧줄과 같은 삭구(索具)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라팔가 해전의 기함인 빅토리호의 가장 높은 마스트는 높이가 55m에 달한다. 3개 마스트에 걸린 돛의 총넓이는 5428m2다. 이를 연결하는 데 드는 밧줄의 길이는 약 42km다. 많은 돛과 삭구를 섬세하게 조종하기 위해서는 선원과 지휘관의 숙련도가 중요했다.

    전열함의 약점은 선수와 선미

    세로로 길고 좁게 제작된 배의 구조상 대포의 화력은 배의 옆구리인 현측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므로 전투할 때에는 옆으로 늘어서서 포를 상대에게 겨누었다. 그러다 보니 좌우 현측의 선체는 두껍지만 머리와 꼬리인 선수와 선미 쪽은 취약했다. 선미는 특히 취약했다. 적함이 선미를 향해 산발탄을 쏘면 군함 내부에서 수십, 수백 발이 터지면서 좌우에 설치된 포나 그 사이에서 일하는 승조원들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장기간의 항해를 위해서는 선원들의 생활공간도 중요했다. 하지만 대포의 수가 곧 배의 전투력이었으므로 선실보다는 대포를 놓을 자리를 먼저 챙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승조원들의 생활공간은 비좁고 열악했다. 식사는 대포와 대포 사이에 놓인 접이식 테이블에서 했고, 잠은 천장에 걸린 해먹에서 잤다. 긴 항해 동안 먹을 식량도 문제였다. 냉장고도 통조림도 없던 시대였으므로 말리거나 절인 음식, 딱딱한 십 비스킷(건빵의 원형)을 주로 먹었다. 

    1개 함대는 보통 10~25척의 전열함과 가볍고 빠른 프리깃함으로 구성돼 있었다. 프리깃함은 전투 외의 보급이나 정찰 및 연락선으로 활용됐다. 길게 늘어선 전열 대형의 특성을 고려해 전열의 선두나 최후미로 기함의 신호를 중계하는 역할도 했다. 전투를 담당하는 것은 전열함이다. 영국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전열함을 이끌고 트라팔가곶에서 맞붙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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