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死地로 돌진해 승리한 넬슨의 파격 ‘11자’ 전술[해전의 승부수 군함⑨]

영국 세계 최강국 만든 트라팔가 해전

  • 정재민 前 방위사업청 지원함사업팀장 박나영 해군 소령

    입력2021-04-1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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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함대 지상 목적은 영국본토 상륙

    • 라인강 전선 생기며 틀어진 프랑스의 상륙작전

    • 프랑스 복귀 중 영국함대와 트라팔가 곶에서 격돌

    • 적 포격 뚫고 돌파 강행해 승기 잡은 영국함대

    빅토리함 위에서 연합함대와 영국함대 수병들이 얽혀 백병전을 벌였다. [gettyimages]

    빅토리함 위에서 연합함대와 영국함대 수병들이 얽혀 백병전을 벌였다. [gettyimages]

    트라팔가 해전은 1805년 10월 21일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가 트라팔가 곶에서 영국해군과 격돌한 전투다. 당시 유럽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것은 영국이었다. 연합함대는 애초에 해전에서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다. 이들의 지상목표는 영국 본토에 프랑스 육군을 상륙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이하 나폴레옹)는 영국 본토로 상륙하기 위해 영불해협에 접한 프랑스 블로뉴 해안에 18만 명의 대군을 집결하고 수송선 2000여 척도 준비했다. 영불해협의 최단거리는 약 34km. 바람의 방향만 잘 맞는다면 범선으로 3~4시간 만에 건널 수 있는 거리다. 지상전의 대가인 나폴레옹은 일단 영국에 상륙하기만 하면 이후의 승리는 자신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 상륙하기 위해서는 영국해군의 봉쇄를 뚫어야 했다. 

    하지만 이조차 쉽지 않았다. 강력한 영국해군을 프랑스함대가 정면으로 돌파해 상륙하기는 어려웠다. 나폴레옹은 유인책을 짰다. 프랑스함대가 영국함대를 서인도 제도 해역으로 유인한 다음, 스페인함대와 연합하여 재빨리 영불해협으로 돌아와 나폴레옹의 군대를 싣고 영국에 상륙시키는 것이었다. 계획이 성공하려면 프랑스함대가 영국함대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함대는 장기간 봉쇄를 당하며 항구 안에서 최소한의 유지보수 정도만 할 뿐, 제대로 된 항해나 포술 훈련을 할 수 없어 날이 갈수록 전투 실력이 퇴보하고 있었다.

    연합함대와 영국함대의 술래잡기

    1805년 3월 프랑스함대 사령관 빌뇌브는 6척의 전열함을 이끌고 프랑스 남부에 있는 툴롱항을 나섰다. 아후 스페인 카디스항에서 스페인의 그라비나 함대(전열함 6척과 프리깃함 1척)와 합류해 서인도 제도로 향했다. 

    넬슨은 프랑스함대가 이집트를 목표로 삼을 것이라 예상하고 동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연합함대가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연합함대를 쫓았다. 연합함대는 넬슨을 따돌리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는 척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북상했다. 넬슨은 남쪽으로 연합함대를 쫓다가 빌뇌브의 기만 작전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계속됐다. 레이더가 없던 시대이니 영국함대는 눈으로 직접 보거나 지나가는 선박에 물어 적 선단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자연히 추격전은 길어졌다. 



    연합함대도 추격전을 즐기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빌뇌브의 연합함대는 복귀하는 길에 스페인 항구를 봉쇄하던 영국함대에 공격을 받는 등(피니스테라 해전, 1805년 7월) 고전 하고 있었다. 

    한편 나폴레옹은 영불해협에서 연합함대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연합함대가 카디스항에 정박해 있는 사이에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지상군이 라인강 방면으로 이동하며 프랑스를 위협해왔다. 나폴레옹은 우선 프랑스 북부의 항만도시 블로뉴에 주둔 중이던 영국 침공군을 라인 강 방면으로 이동시켰다. 동시에 빌뇌브에게 연합함대를 이끌고 나폴리로 이동해 육군 수송 지원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하나였던 전선(戰線)이 두 개가 되며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계획이 뒤틀리는 순간이었다. 

    빌뇌브는 함대 정비와 삭구류 보급문제 등을 핑계 삼아 출항을 주저했다. 나폴레옹의 지시보다 영국함대와 넬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각 배의 함장들을 모아 출항 여부를 두고 투표에 부치기도 했다. 빌뇌브는 나폴레옹이 자신을 해임시키기 위해 후임자를 카디즈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전 함대에 나폴리로 출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출항에만 이틀이 걸렸다. 거대한 몸집의 전열함들이 일일이 출항하려면 해당 항구와 수로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도선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미 넬슨의 함대는 연합함대가 카디스항에서 출항한 사실을 알고 이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연합함대가 출항한 다음 날 아침, 빌뇌브는 지브롤터 해협을 향해 동진하고 있는 영국함대와 맞닥뜨렸다. 전열함 27척, 프리깃함 6척으로 구성된 대형 함대였다. 빌뇌브는 어차피 전투를 치러야 한다면 좁은 지브롤터 해협 안보다는 넓은 바깥이 낫겠다고 판단해 항로를 정반대로 돌렸다. 영국함대가 연합함대를 뒤쫓고 나서며 지브롤터 해협에서 50㎞ 가량 떨어진 트라팔가 곶에서 해전이 벌어졌다.

    넬슨 터치와 종사 공격

    트라팔가 해전 당시 횡렬로 늘어선 연합함대에 맞서 영국은 두 개의 종렬 진으로 맞섰다. [gettyimages]

    트라팔가 해전 당시 횡렬로 늘어선 연합함대에 맞서 영국은 두 개의 종렬 진으로 맞섰다. [gettyimages]

    연합함대는 33척의 함선이 한 줄 횡대로 늘어서 있었다. 넬슨의 영국함대는 2개의 긴 종렬 진을 만들어 11자로 연합함대에 정면으로 돌격해왔다. 종렬 진의 돌진은 당시 함선의 형태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함대 운용이었다. 범선의 주무기인 대포는 배 측면에 설치돼 있다. 선두와 선미에도 대포 설치가 가능하지만 공간이 좁아 측면에 비해 화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범선의 전투는 양 함대가 횡렬로 늘어서 포격을 주고받는 형태였다. 즉 영국함대는 연합합대의 포신을 향해 강행 돌파에 나선 격이다. 

    적함과 직각으로 서서 현측의 포를 이용해 적함의 선수나 선미에 사격을 가하는 것을 종사공격(raking)이라 한다. 영어로 ‘rake’는 ‘갈퀴질을 하다’는 뜻인데, 말 그대로 함포를 이용해 적함의 함수부터 함미까지 길게 긁어내는 공격방법이었다. 배는 일반적으로 길고 좁은 형태이기 때문에, 아군 군함이 쏜 포가 적함의 현측을 관통하면 그곳에 있는 선원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군 군함이 쏜 포탄이 적함의 선수나 선미로 들어가면 함선 전체가 관통당하게 돼 살상력이 더 크다. 넬슨의 기동방식대로라면 영국함대는 접근하는 내내 종사공격을 당할 수 있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넬슨은 이 기발한 기동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단일화 된 지휘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해전경험이 적은 연합함대를 11자로 돌파해 세 동강 내버리는 데 일단 성공하면 그 이후에는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넬슨은 교전이 있기 전날, 각 함정의 지휘관들을 모아 자신의 전술과 의도를 충분히 설명했다. 전열을 돌파한 후에는 난장판이 될 것이니 별도 지시가 없더라도 현장상황에 맞게 독립적으로 행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상급지휘관의 의도 내에서 현장지휘관이 주도력을 발휘하도록 지휘하는 방법을 군사용어로 ‘임무형 지휘’라 한다. 오늘날의 ‘임무형 지휘’를 발휘한 넬슨의 리더십과 그가 사용했던 돌파전술을 통칭해 ‘넬슨터치(Nelson Touch)’라 한다. 

    넬슨은 영국함대 선봉에 본인이 타고 있던 빅토리함을 배치했다. 보통 지휘함은 전열의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적 함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아군에게 유리한 기동을 하려면 선두에 서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적함의 포문이 일제히 영국함대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넬슨은 앞장서서 함대를 지휘했다. 

    영국함대에게는 신속한 접근이 가장 중요했다. 적함의 포화를 받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영국함대의 제2사령관 콜링우드와 넬슨은 각각 한 개의 종렬 진을 이끌고 연합함대의 횡렬 진을 향해 돌격했다. 횡렬 진을 관통해 연합함대의 진을 선두와 중앙, 후미로 삼등분할 계획이었다. 영국함대가 접근하는 동안 연합함대의 종사공격은 계속됐지만, 넬슨의 예상처럼 연합함대의 포격솜씨는 정확하지 않았다. 일부 명중탄도 있었지만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조준하는 곳 달랐던 두 함대의 대포

    콜링우드가 탄 로열소버린(Royal Sovereign)함이 제일 먼저 연합함대 전열로 파고들었다. 콜링우드는 때를 놓치지 않고 연합함대의 산타아나(Santa Anna)함 선미로 종사공격을 가했다. 산타아나함은 단번에 초토화되었다. 그러자 연합함대의 지휘체계가 흔들렸다. 

    뒤이어 다른 열 선두에 선 넬슨의 빅토리함은 빌뇌브가 타고 있던 연합함대의 기함, 뷔상테르(Bucentaure)함의 선미를 향해 대포로 종사공격을 퍼부었다. 마스트에 화려한 지휘기를 달고 있었기에 쉽게 식별이 가능했다. 뷔상테르함 함장을 포함해 280여명의 병사들이 죽거나 심하게 다쳤다. 뷔상테르함은 더 이상 기함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넵튠(Neptune)함은 빅토리함을 가로막으며 종사공격을 해왔다. 그러나 빅토리함은 앞 돛대와 삭구 일부가 끊어졌을 뿐 선체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같은 종사공격이었지만 영국함대와 연합함대가 받은 인명 피해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두 함대의 대포가 조준하는 곳이 달랐기 때문이다. 영국해군은 애초부터 인명살상을 포격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주로 적함 선체에 대포를 쏘았다. 반면 연합해군은 적함의 기동을 멈춰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돛대와 삭구를 끊는 데 효과적인 연결탄(barshot·두개의 반구 사이를 긴 쇠막대로 연결한 긴 포탄)이나 사슬탄(chainshot·두개의 구형탄을 쇠사슬로 연결한 포탄)을 사용했다. 

    이어 르두터블(Redoubtable)함이 빠른 속도로 빅토리함을 향해 다가왔고 두 함정 간에 근접전이 벌어졌다. 르두터블함은 포문을 닫고 수병들 대부분을 갑판 위로 불러 모았다. 당시의 해전은 대포 사격으로 시작하더라도 최종 단계에는 함정을 나포하기 위해 적함에 올라 백병전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했다. 르두터블함의 함장 루카스는 수병들에게 대포 훈련보다 해상 백병전에 대비한 소총 사격술과 수류탄 투척훈련을 강조했었다. 

    당시 넬슨이 탄 빅토리함은 1급함이었고 르두터블함은 3급함이었으므로 빅토리함의 덩치가 더 크고 돛대도 더 높았다. 사격전에서는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를 점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빅토리함에 탄 수병들은 이 같은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 당시 넬슨은 돛과 배에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총수를 돛대 위에 배치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반면 르두터블함의 소총수들은 자유롭게 돛대 위로 올라가서 빅토리함의 갑판을 내려다보며 저격 할 수 있게 됐다. 빅토리함 포갑판에 위치한 수병들은 차례차례 쓰러졌다. 넬슨의 어깨에도 르두터블함의 프랑스 소총수가 쏜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하느님, 저는 저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총을 맞은 넬슨은 “손수건으로 나의 얼굴을 가려라”고 했다. 넬슨은 하갑판으로 실려 가면서도 근무를 서고 있는 선원을 향해 “저 밧줄을 다시 묶어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후 네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서도 숨을 거둘 때까지 지휘권을 위임하지 않았다. 르두터블함이 빅토리함을 거의 집어삼키려던 때, 영국함대의 테메레르(Temeraire)함이 르두터블함의 함미 쪽으로 접근하며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테메레르함의 포탄이 르두터블함의 상갑판을 휩쓸었고 르두터블함의 함장 루카스도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가까스로 빅토리함이 나포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오후 5시 경까지 이어진 악전고투 끝에 연합함대는 저항을 멈추고 전멸했다. 그 소식을 들은 넬슨은 그제서야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저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승전 보고를 받고도 몇 척을 나포했는지 물었다. 부하가 15척을 나포했다고 대답하자 “난 20척을 바랐는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전투 결과 영국함대는 총 21척의 함정을 나포했고, 빌뇌브와 루카스 함장을 포함해 약 8천여 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이로써 나폴레옹의 영국침공 계획은 결국 좌절됐다. 이 해전을 계기로 더 이상 영국에 도전장을 내밀 상대가 없게 되어 대영제국의 황금기,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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