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역사에서 2005년은 퍽 의미있는 한 해였다. 프리미엄 PC로 구분됐던 노트북 가격이 100만원대를 찍었다. 삼보컴퓨터가 100만원짜리 노트북 ‘에버라텍’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켰고, 델컴퓨터는 70만원대 노트북을 선보였다. ‘에니악’이 5억원을 호가했으니 기술진화 속도가 눈부실 지경이다.
좀더 충격적인 소식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사진)는 세계경제포럼에서 10만원짜리 노트북 제작을 제안했다. 굶주림과 노동착취로 고통받는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10만원짜리 노트북을 보급, 선진국과의 정보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급진적인 제안이지만, 터무니없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저가 CPU에 윈도가 아닌 무료 리눅스를 운영체제로 쓰는 등 원가를 낮추는 복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2006년 하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내친김에 100만원짜리 슈퍼컴퓨터도 소개하자. 슈퍼컴퓨터란 1초에 수백조회 연산이 가능한 초대형 컴퓨터다. 가격도 수백억원을 거뜬히 넘는다. 그런데 컴퓨터와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묶어 가상의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이른바 ‘그리드 기술’이면 내 책상 위의 100만원짜리 PC도 슈퍼컴퓨터가 된다.
실제로 IBM은 전세계 PC 사용자의 컴퓨터를 연결해 만든 가상 슈퍼컴퓨터로 에이즈 퇴치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리드 기술로 묶인 PC들이 하나의 슈퍼컴퓨터가 돼 12만개에 이르는 단백질 구조의 비밀을 밝혀내고 있다. IBM은 PC 기증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리드 커뮤니티인 WCG(월드커뮤니티그리드) 홈페이지에서 별도 프로그램(일종의 스크린세이버)을 다운로드해 PC에 설치하면 내가 쓰지 않는 동안(스크린세이버가 돌아갈 때) 다른 컴퓨터와 연결돼 슈퍼컴퓨터가 된다.
10만원짜리 컴퓨터가 등장하면 관련 국내 기업들은 재빨리 손익계산을 해야 한다. 모니터와 하드디스크 등 전세계 주요 PC 부품의 약 30%를 국내 기업들이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100만원짜리 슈퍼컴퓨터는 기술이 문제이지, 대환영이다. 슈퍼컴퓨터 원천기술과 투자가 부족한 대신 초고속 네트워크가 발달한 우리나라가 슈퍼컴퓨터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기부도 2005년부터 수천억원을 투자, 전국의 컴퓨팅 자원을 가상으로 모으는 ‘국가 그리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