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규모는 G-20 정상회의를 넘어서는, 한국이 주최하는 사상 최대의 정상회의이다. 이 회의에서는 핵 테러를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후 인류 현안으로 대두된 핵 안전 대책을 논의한다. 그러나 북핵은 테러기관이 아닌 북한이라는 국가가 다루는 것이라 의제가 되지 못한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A to Z를 알아본다.
2010년 4월 12~1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 한국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3월 26~27일 이틀간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회의 명칭인 ‘핵안보정상회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핵 안보는 핵 테러를 방지한다는 뜻이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무기를 모두 철폐해 핵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를 핵 테러를 방지하고 인류의 안전과 세계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회의다.
핵물질은 무기와 에너지 자원으로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이중 용도적 물질이다. 무기로 사용한 예로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돼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핵폭탄을 떠올릴 수 있다. 오늘날 개량된 핵무기는 히로시마 등에 투하된 핵폭탄의 수천 배가 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동되고 있는 443기의 원자로는 전 세계 전기의 15%를 생산하는 핵심 에너지원이다.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아왔다.
이와 같이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진 핵과 원자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는 사용자의 ‘의도’와 직결되는 문제다.
핵물질을 손에 넣으면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핵무기를 만드는 데는 핵분열성 물질인 고농축우라늄 25㎏이나 플루토늄 8㎏이 필요하다. 고농축우라늄은 방사능 배출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동 시 찾아내기가 어려우므로 테러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핵 안보의 핵심은 테러리스트를 포함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아예 핵물질에 접근할 수 없도록 가능한 경로를 차단하고 핵물질 방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소련 해체로 본격화한 핵 테러 위협
1991년 소련 해체로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급 핵물질과 고급 핵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또한 9·11테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대규모의 민간인 살상도 개의치 않는 테러집단의 악의성이 증명됐다. 가공할 형태인 핵 테러 시나리오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 위협으로 대두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불법거래 데이터베이스(Illicit Trafficking Database·ITDB)에 의하면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보고된 핵 및 방사성물질 관련 사례(분실·도난 등)는 1773건에 달한다. 분실된 물질의 60%가 결국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POL)의 사무총장도 2005년부터 IAEA와 협조해, 핵·방사성물질의 밀매 정보를 다루는 ‘프로젝트 가이거’를 펼쳐 2500건 이상의 사례가 축적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세계에는 1600여t의 고농축우라늄과 500여t의 플루토늄이 존재한다. 이는 약 12만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최근에도 핵·방사성물질의 분실과 도난 및 불법거래 시도가 연간 200여 건씩 발생하고 있다.
구소련의 연방국이었던 몰도바에서는 지난해 6월 우라늄 235의 밀매 시도가 있었다. 재작년 8월에는 우라늄 238을 1차 정련한 ‘옐로케이크(yellow cake)’의 밀거래 시도가 적발됐다. 2006년에는 고농축우라늄(HEU) 80g을 100만 달러에 판매하려던 러시아인이 조지아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2010년 미국 정부가 발표한 ‘핵태세보고서(NPR·Nuclear Posture Review)’는 위와 같은 상황 평가를 반영해, 핵 테러를 미국이 당면한 극단적인 위협(the most immediate and extreme danger)으로 명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핵안보정상회의 창설은 2009년 4월 프라하 연설에서 주창한 ‘핵무기 없는 세상’과 ‘4년 내 전 세계 모든 취약한 핵물질의 방호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이다. 핵 테러 방지를 위한 논의를 정상급으로 격상시켜 신속하고 집중적인 문제해결을 도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2010년 4월 개최된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47개 국가 및 3개 국제기구 대표들은 주로 고위험 핵물질(고농축 우라늄 및 플루토늄)의 관리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결과문서로 ‘워싱턴 코뮤니케’와 이의 이행을 위한 보다 기술적인 성격의 ‘작업계획’을 채택했다. 코뮤니케에서는 참가국들이 자국 영토 안에서 핵물질에 대한 효과적인 방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고농축우라늄 사용의 최소화, 정보와 최적관행 공유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개정 핵물질방호협약과 핵테러억제협약 등 핵 안보 관련 주요 국제협약에 모두가 가입하는 보편성을 추구하고, 대량살상무기(WMD)의 비확산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40호의 충실한 이행 필요성을 지적하며 GICNT(세계핵테러방지구상) 및 대량살상무기와 원료물질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G-8 글로벌 파트너십을 지지했다.
세계핵테러방지구상(Global Initiative to Combat Nuclear Terro-rism·GICNT)은 2006년 7월 G-8 정상회담에서 미-러 정상 간의 합의에 따라 핵물질 불법거래 방지 및 핵 테러 대응 관련 정보교환 촉진을 목적으로 결성한 구속력 없는 포럼이다. 2011년 6월 우리나라에서 이 포럼의 총회가 개최된 바 있다. 현재는 82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IAEA, INTERPOL, 유럽연합(EU),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이 포럼은 국제 핵 안보체제에서 IAEA가 수행하는 핵심적 역할을 다시 한번 인정해주었다.
워싱턴 정상회의는 공통의 합의문서인 워싱턴 코뮤니케 외에 약 30개국이 발표한 국가별 공약사항의 자발적 이행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2010년 워싱턴 정상회의 이후 지금까지 각국이 이행한 성과를 보면 우크라이나 106㎏, 카자흐스탄 33㎏ 등 총 7개국에서 약 400㎏의 고농축우라늄(핵무기 16개 제조 가능 분량)이 회수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7t과 48t의 잉여 군사용 고농축우라늄(핵무기 2200개 제조 가능 분량)을 민수용 저농축우라늄으로 전환했다. 2010년 4월 이후 12개국에서 핵 안보 교육·훈련센터 설립이 새로이 진행되고 있다. 7개국이 GICNT에 새로 가입하고, 정상회의에 참가하지 않은 나라를 포함해 17개국이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을, 12개국이 핵테러방지협약을 새로 비준했다.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은 핵물질의 방호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유일한 국제문서다. 이 협약은 국내 원자력시설은 물론이고 사용하고 있거나 보관·운송 중인 핵물질의 보호를 목표로 한다. 원 협약은 이동 중인 핵물질의 물리적 방호에만 한정돼 있었으나, 9·11테러 이후 원자력시설의 물리적 방호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협약이 개정됐다.
2011년 12월 현재 개정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52개국이다. 개정 협약이 발효되려면 원 협약에 참가한 97개국의 3분의 2인 65개국이 비준 동의를 해야 하는데,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해 개정 협약은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 회의에서는 이 개정 협약이 조속히 발효될 수 있도록 참가국에 노력을 촉구할 예정이다.
서울 정상회의는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원칙을 재확인하고 각국이 공약 사항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점검하는 동시에, 핵물질 제거를 위해 보다 많은 새 공약이 발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워싱턴 정상회의와 차별화된 의의를 갖기 위해 실천 지향적인 핵 안보 이행지침을 도출해내고, 2010년 이후 변화한 국제 안보 환경을 반영해 의제를 확대해나갈 것이다.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의 교훈을 반영해 핵 안보와 원자력 안전 간의 연계(nexus)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에 대해서도 다룰 계획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안보(security), 안전(safety), 안전조치(safeguard)의 3S가 많이 거론돼왔다. 그러나 3S 개념 간의 연관성과 시너지 창출은 이론적으로만 논의돼왔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 3S를 통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는 매뉴얼 강국인 일본조차 테러공격을 포함한 대형 원전사고 등에 대한 대응책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원전 내에는 막대한 분량의 방사성물질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원전 사고라고 할지라도, 접근통제 시스템이나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테러리스트들에게 악용돼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다.
“안전 없이 안보 없다”
핵 안보와 안전 문제는 인명과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기에 핵 안보의 권위자인 매튜 번 하버드대 교수는 안전과 안보의 관계는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다며 “안보 없이 안전 없고, 안전 없이 안보 없다”고 정리한 바 있다.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한 지도자들은 핵 안보의 맥락에서 원자력 안전 문제를 논의해나감으로써, 두 개념과 목표가 분리돼 있기보다는 통합되어 다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인식할 것이다.
방사능 테러 가능성에 대응해 방사성물질 관리 문제 논의도 본격화할 것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암 진단과 치료, 비파괴검사(중성자를 이용해 문화재·폭발물 등을 손상시키지 않고 내부 정보를 파악하는 검사), 종자개량 등의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수많은 의료기관과 산업체, 연구소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영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민간 부문에서의 광범위한 사용에 비해 방사선원(源)의 보안은 핵물질에 비해 훨씬 취약한 상황이다. 방사능 공격은 핵 공격보다 피해는 미미하지만 심리적 여파가 크고, 피해 발생 후 오염을 제거하기 위한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은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문제도 논의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다. IAEA는 발전용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원료의 총량이 2015년까지 28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훼손시킬 경우 안보와 안전에 문제가 발생한다.
한발 더 나아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한다면 핵 테러에 악용될 수도 있다. 이는 안전조치 등 비확산과 연결되기에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다루는 것은 시급한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국으로 선정된 것은 우리나라의 비확산에 대한 확고한 의지, 세계 6위의 원전 운영 능력, 국제 현안의 해결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와 외교력 등이 고려된 결과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우리나라가 개최한 최고 수준,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위상이나 역할을 국제사회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G-20 정상회의가 경제 선진국으로의 도약,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의 변화를 보여줬다면, 이번 정상회의는 국제사회의 중대한 도전인 핵 테러 위협에 대응하는 국제적 논의를 주도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안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인 5대 핵 보유국과 NPT 비회원국이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원전 정책 재검토국인 독일, 일본 등 다양한 국가가 참여한다. 의장국인 한국은 입장 차이를 조율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 가능한 많은 성과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많은 국민과 학자들이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 문제를 다룰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북핵 문제는 본질적으로 국가 간의 핵무기 기술이전 또는 국가의 핵무기 개발 문제다. 따라서 테러리스트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에 의한 핵테러 방지를 위해 핵·방사성물질 및 원자력시설의 안보를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직접적인 의제는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회의가 열리는 만큼 북핵 문제는 주요국 정상들이 양자회담 등의 형태로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고 이를 국제사회의 틀을 통해 확고히 합의한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를 사용한 테러를 자행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사전대비하기 위한 세계 최대의 정상회의다. 이 회의를 통해 우리는 보다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정부는 2010년 11월 설립된 ‘핵안보정상회의 준비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와 2011년 3월 발족된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단장 외교통상부 장관)을 중심으로 정상회의의 의제와 행정, 의전, 홍보 등의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 정부, 산업계 그리고 민간 부문은 21세기 핵 안보 강화라는 목표 실현에 있어 서로 협력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해나가고 있다.
2010년의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 경험을 토대로 모든 이해당사자가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협력 채널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행사지원요원과 자원봉사자 선발, 다양한 공모전 운영 등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의 취지를 살려나가고 있다. 정상회의 직전에 개최되는 부대행사로 ‘2012 서울 원자력인더스트리 서밋 (3월 23~24일)’과 ‘2012 서울 핵안보심포지엄(3월 23일)’을 열어 세계 원자력 산업계와 민간 전문가들의 핵 안보에 대한 의견교환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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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만 발생해도 미래 세대의 생활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릴 수 있는 핵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핵무기와 핵물질, 그리고 원자력시설에 대한 방호체제를 최대한 강화하는 것이다.
국경에서의 핵물질 이동과 밀수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공조와 협력도 중요하다.테러 발생에 대비한 사후대처 시스템 구축 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 안보 문제만큼은 예방이 곧 최우선의 투자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현재와 미래 세대의 평화와 안전을 만들어나가는 회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