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교육평론가는 “원격교육 확장이 코로나19로 인한 교육격차 극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MBC 제공]
4월 26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YTN은 최근 3년간 전국 중‧고교 수학 학업성취도 분포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중학교 75.9%와 고등학교 66.1%에서 중위권 비율 감소가 확인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월 25일 발표한 ‘코로나19 교육격차 해소방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87.2%가 ‘교육격차가 심해졌다’고 답했다. 응답자는 총 1450명이고 그중 905명이 학부모였다.
한국은 원격교육 성공 사례
교육은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한다. 코로나19가 남긴 여러 격차 중 교육격차에 대한 우려가 많은 이유다. 이 평론가와 불가피한 비대면 수업의 효율을 높이는 법과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격차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 평론가는 국내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 창립 멤버다. 대치동에서 수능 과학탐구 영역 ‘1타 강사’로 활동했다. 사교육 시장 핵심에 있던 이 평론가는 ‘배움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2003년 돌연 학원가를 박차고 나왔다. 이후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교육정책 보좌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연구소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2017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해 진보교육계 인사들과 현 정부의 교육정책 개발에 관여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이후의 교육’을 출간하기도 했다.이 평론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보편적 원격교육을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에도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K-에듀 플랫폼’을 통해 한국이 교육격차를 극복한 교육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줌(Zoom·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한 화상 인터뷰로 진행됐다.
4월 8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신동아’와 화상으로 인터뷰 중인 이범 교육평론가. [박해윤 기자]
“교육 비교 연구다. 각국 교육정책과 시스템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 분야에서 미국은 전통이 짧고 영국이 강해 영국으로 왔다.”
- 코로나19 상황 아래서 교육 문제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처는 한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세계에서 원격교육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라는 한국과 싱가포르 정도 밖에 없다. 둘 다 방역에 비교적 성공했다. 또 전자기기 보급률이 높고 초고속 인터넷 공급률이 높다. 요즘 영국에 록다운으로 인한 공교육 공백을 만회 할 방법이 없다는 기사가 많다. 그나마 온라인 교육 모범 사례라고 언급하는 학교는 모두 사립학교다.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초중고 전체 재학생의 5% 남짓이다. 영국은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록다운 상태다. 학교는 3월에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공립학교에서도 온라인교육을 시도했다. 런던 근교에 거주 중이라 인근 학교에 알아보니 온라인 수업이 하루에 한 시간이 안 되더라.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연구 논문은 이미 여러 편 나왔다.”
- 한국은 전자기기 보급률도 높고 초고속인터넷망 기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격차가 벌어지는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이 비교적 선방한 것이지 원격교육의 효율은 오프라인 교육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교육은 오감을 활용할 수 있으나 온라인은 그렇지 못하다.”
-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전까지 완전한 오프라인 수업은 불가능하다. 효율적인 온라인 수업을 위해 정부와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실시간 쌍방향 수업 비율을 높여야 한다. 오프라인 수업만큼 효율이 좋을 수 없지만 미리 찍어놓은 VOD를 보게 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 VOD 수업은 학생들이 딴짓하기 쉽다. 쌍방향 수업에서 학생은 선생님이 자신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느낀다. 딴짓이 줄고 수업 참여율이 높아진다. 또 숙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학습(學習)의 학(學)이 수업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습(習)은 혼자서 익히는 과정이다. 익힘을 위해 전통적으로 제일 많이 사용해 온 방식이 숙제다. 한국 진보교육계에는 숙제가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부정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우려스럽다. 숙제는 원격교육 위주 수업이 이루어질 때 동시 피드백을 통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관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숙제를 내주는 노하우는 현장의 교사들이 이미 다 가지고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좋겠다.”
- 유명 강사가 녹화한 VOD의 학습효과는 높다. 학생들의 집중도 저하는 일선 교사의 강의 역량 차이가 원인 아닌가.
“인터넷에 검증된 스타 강사의 VOD와 평범한 교사의 강의의 질은 물론 차이가 있다. 한국이 주입식 교육을 계속할 계획이라면 모두 스타 강사의 수업을 VOD로 들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극단적으로 학교도 필요가 없다. 쌍방향 수업을 하는 이유는 학생과 소통을 통해 창의적 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 등교하지 못한 학생들의 사회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초등학교에 그런 문제를 토로하는 학부모나 교사를 여럿 봤다. 심각한 문제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비대면 교육 기술 활용해 격차 해소
- 코로나19가 안정세에 접어든 후 정부와 학교가 격차 해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비대면 교육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 원격교육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한국에 한정되는 이야기다. 온라인교육을 위한 K-에듀 플랫폼이 좋은 방안이다. 오프라인에서 교사가 숙제를 내주고 검사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교사의 업무가 가중된다. 온라인에서 숙제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서둘러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민간 에듀테크 기업들이 플랫폼 내에서 경쟁하는 오픈 마켓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겠다. 한국에 훌륭한 온라인 학습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에듀테크 기업이 많다. 교사가 자율적으로 수업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업체를 선택하게 한 다음 비용은 정부가 종량제로 지불하면 된다.”
- 다른 방안은 무엇이 있나.
“중·고등학생 교육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고교학점제에 온라인교육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과목 선택권이 없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르면 2021년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번에 다시 보류돼 2025년에야 시행된다. 대부분 선진국은 중학교에서부터 상당수의 선택 과목을 운영한다. 한 학생이 독일어를 배우고 싶다고 가정하자. 독일어를 배우고 싶은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학교마다 교사를 두기 어렵다. 온라인 학점제를 시작하면 학생은 원격으로 독일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지금 당장 도입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 외국어와 예체능 과목에 대한 수요가 많다. 듣고 싶은 과목을 배우는 학생들이 더 주도적으로 학습하지 않겠나. 하지만 학생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으려 하다 보니 실행이 늦어지고 있다.”
- 기반 시설이 갖춰져 있고 제도적 문제가 없는데도 이런 아이디어들이 현장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우리나라 진보 교육계가 자유주의 의식이 부족해서 그렇다. 여기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를 얘기한다. 보수도 그렇고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586세대의 큰 결함 중 하나라고 본다. 최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많이 한다. 고종석 전 한국일보 기자도 같은 취지의 비판을 많이 했다. 요즘 들어 크게 공감한다. 진보 교육계에서 자기 개혁을 하지 않으면 금방 벽에 부딪힐 수 있다. 아니 이미 어느 정도 벽에 부딪힌 상태다. 책을 쓴 이유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이 평론가는 책에서 비슷한 요지의 비판을 했다. 일례로 교육 현장에서 행정의 논리가 교육의 논리를 압도한다고 지적한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육청이 한 학교에 1년간 내려보내는 공문은 1만 건 넘는다. 날마다 30건 가까운 공문이 행정실과 교사에게 분배되는 셈이다.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교육 부분에 한정해 정부 간섭이 지나치다는 견해인 것 같다.
“‘정부의 개입이 교육에 미치는 효과’가 영국에서 중점적으로 공부하려고 하는 주제다. 정부의 지나치리만큼 심한 간섭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도 비슷하다. 단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교사에게 교과서 선택권, 집필권 같은 자율성을 거의 주지 않는다. 그렇게 손발을 묶어놓고 ‘창의적인 수업을 하라’고 요구한다. 북미와 유럽은 좀 문화가 다르다.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고민은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이냐’이다. ‘어떤 권한을 교사에게 줘야 하냐’를 고민하는 우리와 생각 자체가 다르다.”
자율성 부여해야 변화 가능
- 교사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교육격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나.“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많았던 ‘나머지 공부’를 요즘은 볼 수 없다. 교육 당국이 교사에게 학생을 방과 후에 남기는 권한을 주지 않아서다. 민원에 민감한 교장·교감 선생님들이 ‘아이가 학원에 가야 한다’고 전화가 오면 담임에게 아이를 집에 보내게 한다. 생각해 보면 방과 후 담임교사 주도 아래 보충 수업을 하는 일은 아름다운 전통이다. 교육 선진국인 독일이나 핀란드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나머지 공부는 외벌이 가정이나 학원에 가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다. 교사에게 좀 더 권한을 준다면 격차를 줄이는 데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다.”
- 문재인 정부 이후 차기 정권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교육 과제는 무엇인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필사적으로 교육 경쟁을 낮춰야 한다. 포용적인 대학 상향 평준화가 답이 될 수 있다. 한국 학벌 서열화의 원인은 학생당 교육비에 기인한다. 흔히 말하는 ‘서연고’ 순 대학 서열과 학생당 교육비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서울 주요 대학의 1인당 교육비는 주요 대학을 제외하고는 평균과 격차가 크다. 등록금은 똑같이 비싸지만 지방의 대학들은 학생당 교육비가 서울 주요 대학에 미치지 못한다. 교육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일부 학교는 구조조정을 통해 통폐합해서 대학 수를 줄인 뒤 정부가 대학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전반적인 교육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유일하게 초중고 교육보다 대학 교육에 투자를 적게 하는 나라다. 청년들이 자식을 낳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나마 교육 부분이 정부가 단기간에 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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