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 같은 승리에 경거망동하다간 대선 쫄딱 망한다
文 ‘한 번 더 경험해서는 안 될 나라’ 만들어
보수 핵심은 개혁, 새 인물이 당 이끌어야 대권 가능
대선은 누가 동그라미 넓게 그리느냐 싸움
‘마스크 언제 벗나’ ‘아이들 취직하겠나’ 답하는 정당
‘3선인데 너는 어떤 희생할 거냐’ 꾸짖는 초선들
내가 유승민계?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
당 쇄신 에너지 끓는다, 의욕도 충만하다
[지호영 기자]
“꿀맛 같은 승리에 경거망동하지 말자”
당장 초선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쇄신 의지를 드러냈고, 자천타천 초선 의원들의 당 대표 출마설도 입길에 오르고 있다. ‘줄서기’와 ‘계파 챙기기’로 비판받아 온 국민의힘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걸까. ‘97세대 맏형 격’인 유의동(50) 의원을 만나 재보선에 나타난 민심과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 대해 물었다. 1971년생인 유 의원은 경기 평택을에서 내리 3선을 했고, 21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후보 중에선 유일하게 수도권 3선 고지에 올랐다. 4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선거 4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4년간 국정을 이끌어온 데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었고, 매서운 회초리를 댔다. 그런데 국민이 우리 당에 승리를 안겨줬다고 보기보다는 기회를 한 번 주셨다고 생각한다. 기회를 주신 만큼 국민의 사랑을 얻는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문재인 정부를 떠받치던 40%대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투기 의혹으로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큰 건물이나 지지율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외벽이 멀쩡해 보이니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잦은 충격으로 내부균열이 심해졌는데도 현 정권은 국민 불만과 요구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없다’며 자기기만을 했다. 균열이 심각해진 상태에서 LH 사건이나 여권 인사들의 ‘임대료 내로남불’ 사건이 터졌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착각한 거다.”
- 선거 이후에도 문 대통령 국정 기조는 바뀌지 않은 거 같다.
“많은 분이 문 정부에 대해 평가를 했는데 더 덧댈 말이 있을까.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한 번 더 경험해서는 안 될 나라’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이제부터는 야당이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국민이 다시 기회를 줬으니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테니까.”
-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은 선거 다음 날 집단 성명을 내고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영남지역 중진들을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도 나왔는데.
“성명은 초선의원 54명 대부분이 서명했는데, 그들 중에는 특정 지역(영남) 출신도 있었다. 특정 지역을 폄훼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명실상부한 전국정당, 수권정당이 되려면 반복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우리가 지금 가진 것들만 지키려고 하면 쫄딱 망하니 재보선을 발판 삼아 나가자는 거다. 오랜 선거 패배 뒤에 맛보는 꿀맛 같은 승리에 취해 경거망동하면 수권정당은 요원하다.”
“런비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게 진리’라고 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4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의원들은 “승리에 취하지 않고 당을 개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국민은 우리 당이 연령적으로 고령화됐고, 지역적으로 편중됐다는 편견, 혹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바꾸려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당이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재보선으로 당 변화와 쇄신에 대한 에너지가 더 끓어오를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됐다. ‘한번 바꿔보자’는 의욕도 충만하다. 차기 대표는 훌륭한 인물들이 공정한 경선을 통해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유권자들이 우리 당을 매력적으로 볼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 젊은 리더의 출현도 기대되지만 우리 사회의 ‘허리’인 40대는 민주당을 더 지지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다. 우리 당 102명 의원 중 1970년대생 의원은 14명이다. 과소 대표되고 있다. 70년대생, 1997세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의 현안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세대다. 자녀 교육, 부모 부양, 자신의 노후 대비 등 모든 현안의 이해당사자다. 이제는 이들의 언어로 문제를 이해하면서 국민의힘이 꿈꾸는 나라에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시각을 확장시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해 주민등록 인구(2019년 12월 31일 기준)는 5182만9023명, 이 중 40대는 829만여 명 (16.0%)이었다. 50대는 865만여 명(16.7%)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687만여 명(13.3%), 20대 681만여 명(13.1%), 60대 674만여 명(13.0%), 70대 이상 570만여 명(11.0%)이었다.
- 국민의힘은 이른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는 개혁 성향 의원들이 목소리를 낼 때 정당지지율이 50%를 상회하는 등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렇다. ‘남원정’이 한 시대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권위적이거나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현실을 바탕으로 당의 소금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 런비스(任弼時)는 ‘진리라는 게 별게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진리’라고 했다. 지금도 고담준론, 사상투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이 처해있는 현실을 말해야 한다. 마스크는 어제 벗을 수 있나, 아들이 취업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집을 한 채 마련할 수 있나, 직장을 잃었는데 재취업은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처한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자 숙제다.”
-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유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174석 대 국민의힘 102석’이라는 전장(戰場)에서는 아무리 신출귀몰한 사람이 나와도 이기기는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지지를 업어야 한다. 제가 97세대이고, 수도권 지역 출신이다 보니 초선의원들이 전략적으로 판단한 거 같다.”
- 초선의원들의 전략적 판단?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이거다’ 하고 내세울 수 있고,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비해 시대적으로 뒤처진다는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1970년대생 의원을 (당 지도부에) 진입시키자는 판단인 거 같다. 세대·지역·가치 확장을 통해 민심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원내대표는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는 자리가 아니라 당의 ‘허브’다. 의원들 사이의 정보와 전략 교환, 상호 활동이 허브를 통해 나눠지고 합쳐져야 한다. 수평적 리더십으로 의원들 의정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당 대표는 깃발을 들고, 원내대표는 엄마의 마음으로 세심하게 의원들을 챙기는 역할이라고 본다.”
“내가 유승민계?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
- 유 의원은 3선을 지냈지만 인지도가 낮다는 평가가 있다.“대기만성형인가 보다(웃음).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면에서는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앞에 나서서 어떤 결과물을 발표하기보다는 뒤에서 ‘서포트(지원)’하는 성격이다. 아무래도 국회 보좌관 출신이다 보니 일찍 피는 꽃이 일찍 지는 경우를 자주 봤다. 경험을 쌓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되자는 생각에 노출되는 일을 찾아서 하지는 않았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 초선의원들의 당 대표 도전이나 유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는 유승민 전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들려는 ‘계파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 식이면 우리 당 의원 모두가 이회창계고 YS(김영삼 전 대통령)계인가. ‘계파정치’라고 하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정치자금을 대거나 공천을 좌지우지해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런 정치는 불가능하다. 보수의 핵심 가치가 개혁이고, 끊임없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다는 점에서 유 전 의원 등과 의견이 같았다. 정치라는 게 공적 이익을 다루는 자리인데, 사적 친소관계로 본분을 망각하는 건 스스로 정치 행로를 망가뜨리는 일이다. ‘계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제가 불공정한 당 운영을 할 거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당이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파는 소멸됐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당에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변화, 쇄신을 통해 국민에게 더 다가가고 당을 확장하 는 일이다.”
- 홍준표 의원(전 자유한국당 대표) 복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갖은 고생 끝에 우리 당은 소중한 전환점을 맞이했고, 내년 대선 승리가 지상 최대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분이라도 더 모셔야 한다. 홍 전 대표도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 중 한 명이고, 이슈를 단순화해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언젠간 모셔야 한다. 다만 4·7재보선에 나타나 표심이 당장 누구를 복당하라, 어느 당과 합당하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의 임시 지도부가 아니라 향후 꾸려질 정통 지도부가 풀어가야 한다.”
“대선은 누가 동그라미 넓게 그리느냐 싸움”
-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이 함께하는 제3정당 필요성을 주장하는데.“대통령제와 소선구제를 운영하면서 양당제가 아닌 나라는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제3당이 존재하는 이유는 비례대표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례의석 규모가 작아 3당이 출현해도 20석 넘는 정당은 나오기 힘든 구조다. 물론 제3당을 만들어 제2당의 대체를 꿈꾼다면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금 전 의원의 주장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그 노력을 쏟을 바에는 국민의힘에 들어와서 목표를 이루라고 말하고 싶다. 대선은 누가 동심원을 넓게 그리느냐의 싸움이다. 누가 가치·지역·세대를 넓게 아우르느냐의 문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
“지난해 총선은 정말 힘든 선거였다. 그래서 지역구를 챙기면서 좀 쉬려고 했다. 나도 사람인데, 지금 지도부 선거에 나서면 ‘나이가 어리다’ ‘특정 계파다’ 등등의 욕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초선의원 몇 명이 찾아와 꾸짖었다. 요지는 ‘너는 3선이나 했잖아. 힘을 모아 당의 변화를 꿈꾸는데 너는 어떤 희생을 할 거냐’고 묻더라. 그 열정이 가슴에 불을 댕겼다. 그들의 열정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른 것처럼 당내에도 큰불을 질러 뜨겁게 당을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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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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