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이순신 | 작은숲, 259쪽, 1만5000원
무언가 영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치는 것처럼. 2008년 6월 미국산 소고기 협상으로 100만 명의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광장에는 ‘명박산성’이라고 불리던 컨테이너 박스가 설치됐다. 그 위에서 이순신 장군은 민란을 진압하러 나온 조선시대 장군처럼 눈을 부릅뜨고 ‘즉각 해산하라. 불복하는 자는 연행한다’고 외치는 듯 사뭇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뭔가 둔중한 것에 맞은 듯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날부터 내가 알고 있던 이순신이 혹시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표상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2년 뒤인 2010년 11월, 광화문 이순신 동상이 40년 만에 붕괴 위험에 처했고, 보수를 위해 임시 철거된다는 기사를 봤다. 좀 얼떨떨한 의문에 사로잡혀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여러 문제점에 직면하게 됐다. 이 동상은 탄피·고철 등을 녹여 만든 뒤 청동색을 내기 위해 페인트를 칠한 부실공사의 산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부실한 고증 탓에 중국식 갑옷을 입고 일본도를 찬 모습으로 제작돼 1979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가 결정됐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시대가 이순신을 어떻게 표상화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를테면 이순신 장군이 실제 사용한 칼(쌍룡검)은 분실됐다. 그를 기리는 현충사의 조경은 일본식이다. 거북선에 탑재됐다는 이유로 국보 274호로 지정됐던 총통은 가짜로 드러나 국보에서 해제됐다.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동아일보가 1969년 실제 크기의 6분의 1 크기로 제작해 현충사에 기증한 거북선이 돛을 내린 채 전시되는 모습이었다. 확인해보니 천장이 낮아서 돛을 올릴 수 없다고 했다.
2012년 임진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이 되는 해다. 5000년 민족사에서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웠을 시기, 기울어가는 민족의 기둥을 혼자서 지탱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의 쓸쓸한 심경을 헤아려봤다. 우리 시대는 무슨 생각으로 이순신을 앞세워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우리 시대를 위해, 가짜와 일제의 잔재 속에 울고 있을지 모를 불운한 영웅 이순신을 위해 나는 한 편의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다. 그런 취지에서 이 책은 시대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살아갔던 고독한 영웅에게 바치는 참회의 눈물이다.
문득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진 글귀가 떠오른다.
一揮掃蕩 血染山河(일휘소탕 혈염산하 : 한칼에 쓸어버리니, 붉은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문득 가슴이 뜨거워진다.
껍데기는 가라.
혜문│승려,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New Books
광기의 리더십 | 나시르 가에미 지음, 정주연 옮김
미국 보스턴 터프츠 의대 교수이자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위기의 시대에는 정신적으로 정상인 지도자보다 정신질환이 있는 지도자가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 논거로 윈스턴 처칠, 에이브러햄 링컨, 마하트마 간디 등 세계적인 지도자 여덟 명의 인생과 업적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처칠과 링컨은 위기에 처했을 때 남이 보지 못하는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냉철하게 간파했고,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며 진정으로 공감했다. “그들은 들떠 있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기도 하지만, 결코 아주 건강하지는 않다. 그러나 큰 재난이 닥쳤을 때 … 그들은 우리가 잠시 잃어버린 용기를 주고, 우리를 지켜줄 불굴의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의 약점이 바로 그들이 가진 힘의 비결이다” 같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학고재, 432쪽, 1만8000원
모두 변화한다 |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어릴 적부터 나는 재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운이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망치는 재주를 타고난 듯했다.”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작가 모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 책은 모옌이 국제문학상을 받으러 이탈리아에 갔다가 만난 한 인도인 편집자의 요청을 받고 쓴 자전 에세이. 1969년 어느 오후, 학교에서 쫓겨난 외로운 열네 살짜리 사내아이였던 저자가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해방군에 입대하고, 1981년 ‘메마른 하천’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의 삶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1987년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인 장편소설 ‘홍가오량 가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 뒤 2008년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담담하게 담았다. 모옌의 문학세계와 더불어 지난 30여 년간 중국에서 일어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생각연구소, 168쪽, 1만2000원
장칭 | 로스 테릴 지음, 양현수 옮김
‘영웅 마오쩌둥을 타락시킨 창녀’ ‘사악한 여자’.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한 장칭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페어뱅크 동아시아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는 저자는 이런 평가를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는 장칭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미국 유럽 등 여러 대륙을 오가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그의 옛 지인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실인 이 평전은 1984년 첫 출간된 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며 화제를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 장칭은 마오쩌둥의 아내이자 가장 충직한 비서로 혁명과 전쟁의 마지막 시기를 함께 겪었다. 자신의 자아를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고, 타인에게 의지하는 나약함을 증오했으며, 세상 누구도 자신을 심판하도록 두지 않았다. 봉건적인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려는 남성에 맞서 평생 투쟁했다. 교양인, 728쪽, 3만2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
다석전기 | 교양인, 680쪽, 3만 원
공자(孔子)는 인류 문화의 기축 시대에 태어나 이 세상에 73년을 머물고서 떠나갔다. 공자와 그의 사상은 ‘논어’라는 책 한 권으로 남았다. 그 ‘논어’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씀을 고르라면 ‘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의)’를 들겠다. 아침에 진리의 말씀을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이다. 내가 쓴 ‘다석전기’는 이 사람에게 ‘조문도석사가의’라 할 진리의 말씀을 들려준 스승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의 생애와 사상을 적은 것이다.
1959년 겨울, 26세 청년이던 내게 스승 류영모와의 첫 만남은 벼락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류영모 선생은 1928년부터 서울 종로에 있는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강의를 하셨는데, 나는 바로 그 연경반에서 스승을 처음 뵈었다. 그날 류영모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한 말씀이 떨어졌다. “어머니가 낳아준 이 몸은 ‘참나’가 아니다. 하느님이 주신 얼이 ‘참나’다. ‘몸나’는 멸망의 생명이라 반드시 죽어야 하고 ‘얼나’는 영원한 생명이라 죽음이 없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제나(몸나)’로는 죽고 ‘얼나’로 솟나기 위해서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낳아주신 ‘몸생명(몸나)’밖에 몰랐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마치 나 자신이 공중분해된 듯 공황을 느껴 온몸이 오싹했다. ‘제나’로 죽고 ‘얼나’로 솟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답답한 세월을 보내면서 스승의 강좌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61년 11월 스승이 구기동 집 현관에서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외손녀를 안고 굴러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스승은 2주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다. 모두가 돌아가시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다시 의식이 깨어나 28일 만에 퇴원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962년 3월부터 YMCA 연경반 강의를 다시 잇게 되었다. 죽었다 살아난 스승에게 이 버릇없는 제자가 글 장난을 했다. 공자의 ‘조문도석사가의’를 “아침인 제자가 도를 들었다면 저녁(多夕)인 스승님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라고 풀어 보낸 것이다. 스승으로부터 회신이 오기를 ‘加我數年學易無大過矣(술이편, 일부 줄임)’라고 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한 구절이었다. “몇 년 더 살아 또한 배운다면 큰 허물은 없겠다”라는 뜻이다. 버릇없는 제자의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스승은 1981년 2월 3일에 ‘몸나’를 벗고 귀천하셨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가서야 이 미련한 사람에게도 ‘얼나’의 깨달음을 체득하는 은혜의 순간이 왔다. 나는 하늘을 향해 다시 한 번 ‘朝聞道夕死可矣’를 외쳤다. 이 사람이 생애를 바쳐 다석 스승의 전기를 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석 스승의 전기를 읽고서 사람마다 멸망의 생명인 ‘제나(ego, 自我)’에서 초월해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의 생명 옮김인 천명(遷命)을 이루기 바라서다. 예수가 말하기를 “내 말을 듣고서 하느님이 보내신 ‘얼나’를 깨닫는 이는 죽은 ‘몸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박영호 의역)
박영호│다석사상 연구가│
New Books
역사를 읽는 방법 | 켄틴 스키너 지음, 황정아·김용수 옮김
“우리 세계가 개념에 의해 구성되는 만큼, 개념 사용의 양상이 달라지면 사회 현실의 구성요건이 변화한다. 언어는 제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이다.” 영국 런던대 퀸 메리 칼리지 교수인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하나의 역사 텍스트를 두고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역사가 언어적인 구성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역사를 제대로 읽으려면 언어의 지시적인 의미를 넘어 현실과의 관계까지 읽어내야 한다고 한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역사’는 사건과 사실뿐 아니라 관념과 사상 등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삶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사실뿐’이라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속 대사를 인용하면서,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에는 이미 역사가의 해석이 전제돼 있으므로 실증주의의 과신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돌베개, 356쪽, 1만8000원
분단 저널리즘 뛰어넘기 | 신석호 지음
저자는 동아일보 기자로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과 쿠바의 경제위기와 개혁’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분단 현실이 해소되기 전까지 기자들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며 취재하고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소개한 책. 북한을 방문해 직접 팩트를 모으는 것이 가장 좋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돼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다양한 간접 취재 방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 번에 조금씩만’ 확인해주는 당국자 여러 명을 일정 기간 주기적·반복적으로 만나 팩트를 교차 확인할 것,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를 통해 북한 당국의 발표문과 보도를 일정 기간 묶어 분석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읽어낼 것, 함께 북한을 바라보는 남한 전문가와 일반 국민의 의견을 들어 지혜를 모을 것 등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 리북, 336쪽, 1만5000원
풀이 | 김열규 지음
서울대에서 국문학·민속학을 전공하고 서강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저자는 60여 년간 한국인의 삶을 연구해왔다. 그는 한국 사회가 현재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려면 ‘풀이’와 ‘신바람’의 정서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풀이와 신바람은 언제나 우리 민족이 위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풀어야 산다. 풀이를 시작했을 때, 답이 나온다. 우리 한민족은 부단히도 풀어오면서 살았다. … 풀었다면 신바람, 신명을 내야 한다. … 신바람은 긍정이다. 우리는 고단한 삶의 일상에서 기쁨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고단한 일상을 채웠다. … 그것은 신바람으로 삶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긍정은 곧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든다. 그것을 신바람 났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아북, 194쪽, 1만3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
위험증폭사회 | 궁리, 400쪽, 1만8000원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종 재난사고를 비롯해 자살, 성범죄, ‘묻지마’ 살인, 교통사고, 암 등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각종 위험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맘 편한 세상, 불안 없는 사회는 모두의 바람이요 희망이다. 안전이 곧 행복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사고는 잦아진다. 위험은 줄어들지 않고 증폭된다. 위험에 대처하는 국가의 능력 또한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자신이 돌보는 한편 국가로 하여금 위험을 예방하고 위험 발생을 줄이는 데 힘을 쏟도록 만들어야 한다. 안전한 사회는 국민의 생명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지난 2년여 동안 ‘위험소통가’로 대중매체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위험의 성격과 특징, 위해 사건의 전말과 교훈 등에 대한 글을 쓰고 대학 및 정부기관 등에서 강연을 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우리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크고 작은 위험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었다. 이 책은 위험증폭사회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위험은 어떤 것이고, 그 위험의 성격은 어떠하며, 그 위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위험 가운데는 지진이나 태풍처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현명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도 있지만 교통사고, 술·담배, 게임중독과 같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줄일 수 있거나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있다. 우리는 위험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른다. 어떤 이는 위험을 잘 알면서도 이를 피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특히 알코올과 담배에 중독된 사람들의 행동이 그렇다. 대수롭지 않은 위험을 엄청난 위험으로 간주하기도 하며 정말 피해야 할 위험인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이 책은 한국인들이 어떤 위험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 구실을 할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위험을 담지는 못했지만(물론 책 한 권에 담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관심을 가져야 할 알코올·담배 중독과 도박·인터넷·게임중독, 직업병·산업재해, 의료사고, 식품, 자살, 방사성물질, 석면,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생활 주변 화학물질 등 다양한 위험을 다루고 있다. 그 위험에 관한 정보와 대처방안뿐만 아니라 위험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과 기업주 및 정부의 자세, 위험을 보는 철학 등도 들어 있다.
이 책은 전문가를 위한 책은 아니다. 대중을 위한 책이다. 위험사회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관련 공무원, 전문가, 대학(원)생을 가리지 않고 읽어볼 만하게 꾸몄다. 한 번 읽고 서가에 처박아둘 성격의 책은 아니다.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이다. 곁에 두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자료로 사용하거나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에 무관심한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결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없다.
안종주│위험소통가,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
New Books
소로우의 강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월든‘ ’시민의 불복종‘ 등의 저서를 통해 19세기 가장 위대한 지성인으로 평가받는 저자가 20대 초반 형과 함께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으로 떠났던 휴가 여행을 기록한 책. 저자가 무척 공을 들여 쓴 첫 작품으로, 평생 가장 사랑했던 책으로도 꼽힌다. “나는 콩코드 강둑 위에 서서 모든 진보의 상징인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우주와 시간과 모든 피조물이 따르는 같은 법칙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강바닥의 물풀들은 물결의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하류로 몸을 굽힌 채 아직도 씨앗이 가라앉은 곳에서 자라지만, 머지않아 그들도 죽어 물결처럼 떠내려갈 것이다. … 드디어 나는 이 강이 나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그 물결의 가슴팍 위에 띄워 보낼 결심을 했다”와 같은 서정적인 산문과 여러 시인의 시, 철학적인 단상 등이 담겨 있다. 갈라파고스, 524쪽, 1만6000원
당신은 이미 읽혔다 | 앨런 피즈·바바라 피즈 지음, 황혜숙 옮김
공동 집필한 ‘보디랭귀지’를 미국에서만 500만 부 이상 판매하면서 화제가 된 인간행동연구가 피즈 부부가 새롭게 펴낸 책. 심리학·생물학·뇌과학·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몸짓 언어의 메시지를 집대성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위로 치켜뜨면 눈이 커다란 어린아이 같은 느낌을 준다. 어른보다 훨씬 키가 작은 아이는 어른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데, 이런 표정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불러일으킨다.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턱을 당기고 눈을 위로 치켜뜨면서 연약한 목을 내보이는 고도의 기술을 구사하곤 했다. 눈을 치뜨는 어린아이 같은 몸짓 조합은 전 세계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처럼 유명 인사들이 어떻게 몸짓을 활용했는지를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한다. 일반인이 몸짓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기에 유용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흐름출판, 312쪽, 1만4000원
왕의 화가들 | 박정혜·황정연·윤진영·강민기 지음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왕실의 회화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왕의 화가들’을 다룬 책. 조선 초기 만들어진 ‘도화서’에 속해 일하던 기능직 장인 ‘화원’, 왕을 직접 대면해 초상을 그리고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던 ‘어진화사’ 등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임에도 행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저자들은 왕족의 생활공간을 치장한 길상화, 가례ㆍ상례ㆍ즉위식 등 행사에 쓰인 그림과 행사 기록화, 건물을 치장한 벽화와 단청 등 ‘왕의 화가들’이 남긴 다양한 자료와 역사 기록을 통해 이들의 가치를 재평가한다. 또 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정치적 혼란기에 전문인으로 발돋움하며 예술가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근대 전환기 화가들’도 소개한다. 왕, 그림, 화가를 중심으로 다룬 ‘조선시대 궁중회화 3부작’ 마지막 책이다. 돌베개, 407쪽, 3만 원
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史通 | 유지기 지음, 역사비평사, 1048쪽, 4만5000원
중국 역사학자 첸무(錢穆)는 “‘사통(史通)’이란 책은 중국 학술 관련 저작 가운데 매우 특수한 지위를 지닌다. 중국인은 학문을 하면서 ‘통론(通論)’ 같은 종류의 책을 쓰는 경우가 매우 적은 것 같다. 예컨대 문학통론, 사학통론 같은 책 말이다. 중국인은 실제적인 작업을 중시할 뿐 ‘통론’이나 ‘개론’ 같은 책을 쓰는 사람은 아주 적다. ‘사통’은 중국의 사학통론에 해당하는 책으로서, 아마도 중국 유일의 사학통론서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첸무의 말은 새삼스럽지 않다. 명(明)나라 황정견(黃庭堅)은 “문학을 논할 때는 ‘문심조룡’, 역사를 논할 때는 ‘사통’이다. 두 저서는 반드시 보아야 하니, 실로 후학에게 보탬이 있을 것이다”라고 해 ‘문심조룡’과 ‘사통’을 문(文)-사(史)를 공부하는 필독서로 꼽았다.
“오늘 사관(史官)으로 뽑힌 자들은 스스로 사마천(司馬遷)이나 반고(班固)라고 생각하고, 자기 집안을 유향(劉向)이나 유흠(劉歆) 부자 같다고 자칭합니다. 막상 하나의 사건이라도 기록하고 한 마디 말이라도 싣고자 하면, 모두 붓을 놓고 서로 빤히 쳐다보며 붓을 물고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머리가 하얗게 새도록 역사서의 완성은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정이나 민간에서 다 알고, 붓을 채 놓기도 전에 조정 관리들이 모두 읊조리고 다닐 정도입니다.” - ‘사통’ 중 ‘이대로는 안 됩니다(·#53716;時)’ 중에서
우리가 아는 실록은 당나라 태종 때 처음 편찬됐다. 동시대사, 당대사의 정리·간행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직 실록 편찬 수준이 높지 못했던 그때, 유지기는 ‘측천무후실록(則天武后實錄)’을 편찬하러 궁궐에 들어갔다가 경악하고 나와 바로 이 ‘사통’을 쓰기 시작했다.
유지기는 실록 편찬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못마땅한 마음이 ‘사통’을 쓰게 만들었다. ‘사통’이라도 써서 남겨야 그걸 보고 사관들이 공부할 것이고, 그렇게라도 해야 이 웃기지도 않는 역사 편찬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통’은 역사서의 범주, 사관 제도의 역사, 역사서에 실리는 기록의 종류, 역사서의 장단점, 분류사의 서술과 특징, 역사 사실의 왜곡과 오류 등을 날카롭게 살핀, 사료 비판에 대한 종합적인 관찰과 서술이다.
내편 36편, 외편 13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내편 36편은 6개의 범주로 정리할 수 있다. 범주1은 역사서의 연원과 종류, 범주2는 기전체의 구조. 범주3은 그 구조를 에워싸고 역사가가 선택하고 구성하는 역사서의 양식(Style)에 대한 논의, 범주4는 역사 서술의 방법·기준·원칙에 대한 논의, 범주5는 역사가의 자격, 범주6은 집필 동기다. ‘사통 외편’은 이러한 ‘사통 내편’ 구조의 보론(補論)이자 구체적인 사례와 실습이다.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New Books
음식의 제국 | 에번 D.G. 프레이저·앤드루 리마스 지음, 유영훈 옮김
영국 리즈대 지구·환경학부 교수이자 저명한 농경학자인 프레이저와 미국 ‘보스턴글로브’ 등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리마스는 인류가 그동안 ‘음식이 지배하는 제국의 노예’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살아남기 위함만은 아니다. 음식은 혀를 만족시키고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음식은 동료애와 추억에 관한 것이며,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에 관한 것이다.” 저자들은 근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부터 근대 대영제국, 현대 미국과 중국까지를 넘나들며, 음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세세하게 짚어내고, 식량이 떨어졌을 때 인류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소개하면서, 기후변화·연료비 상승·한계에 다다른 농경지 등의 문제에 직면한 21세기 ‘음식의 제국’을 진단한다. 알에이치코리아, 488쪽, 2만 원
왕의 하루 | 이한우 지음
“조선의 왕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침전에서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 파루와 함께 왕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침전 주변 상궁과 궁궐 시녀들은 맡은 바 임무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왕이 기침하는 순간 왕의 방 테두리의 작은 방들에서 숙직을 섰던 지밀상궁들이 들어와서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수라간에서는 왕의 아침 수라 준비로 요란하고 양치와 세수, 옷을 책임진 대전의 차비(差備·담당자)들은 조금의 실수도 없도록 치밀한 준비를 갖춘다.” 조선왕의 하루 일과를 사실적으로 소개한 프롤로그 이후 저자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날들을 꼽아, 그날 왕의 하루를 소개한다. 태조가 조선을 세우던 날, 연산군과 광해군이 왕좌에서 쫓겨나던 날, 소현세자와 정조가 죽음을 맞이한 날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김영사, 392쪽, 1만5000원
리슨: 5분 경청의 힘 | 버나드 페라리 지음, 장세현 옮김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외과의사이자 병원최고책임자로 일했고, 맥킨지앤드컴퍼니 등에서 경영 컨설턴트로도 활동한 저자는 ‘지금껏 만나온 사람 중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모두 위대한 경청자였다’고 말한다.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직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고집쟁이형 청자는 항상 ‘들어봐’로 말을 시작해 ‘맞지?’로 끝낸다”고 지적하며, 훌륭한 ‘청자’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상대의 말에 끼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나는 대화를 나눌 때면 말을 하기 전 속으로 다섯까지 센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감돌 수도 있다. 침묵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한다. 또 질문을 통해 대화를 재구성함으로써 사고의 새로운 길을 여는 법을 소개한다. 걷는나무, 246쪽,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