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린 마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다
발가락에 쥐가 나고
그림 박용인
남는 게 없는 생활도 하고
남는 게 없는 생활 아닌 것도 한다
보도블록만 보고 걷다가
이파리만 보고 걷기도 한다
해가 짧아지고 흐린 날이 많다
어두운 계절이 온다
다시 한 번 바쁜 척하며 살기로 한다
끊임없이 움직이기 위해
빗속에서도 뛰지 않고
햇빛 속에서도 모자를 쓰지 않기로 한다
생각에도 쥐가 나기를
검붉게 솟아오른 소나무 뿌리에 귀를 대고
트럭에서 토막 나는
제주 은갈치의 눈알에 코를 박고
사람들의 변화하는 표정에
하늘 높이 나는 흰 물새의 목덜미에
눈을 맞추기도 하고
*시집 ‘바람의 기원’(실천문학사, 2015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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