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기는 개인 존재의 확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현대문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가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한 곳에 집중하기 위한 과정이다.’ 제어장치 없이 빨라지기만 하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제동을 걸고, 걷기를 통해 몸의 의미를 본래대로 되돌려놓자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대부분의 걷기는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한 걷기이거나 노동의 연장선이 됐다. 대낮에 도시 한복판을 하릴없이 한참 동안 어슬렁거린다면 검문당하기 딱 알맞다.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길, 걷다 지치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 마련돼 있는 길, 그런 길을 찾기도 힘들다. 때문에 걷기를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현대성에 대한 도전으로, 개인 존재의 확인인 동시에 승리의 보증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사뭇 비장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처음 이 책을 접하면 걷기에 대한 서정적이고 여유 넘치는 에세이로 간주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속도를 숭배하는 현대문명 일반에 대한 심각한 이의 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 오토바이, 기차, 지하철,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탈것들을 발명함으로써 인간은 거리와 시간의 제약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탈것들로 인해 인간의 몸이 삶으로부터 소외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시대·지역 뛰어넘는 五感의 교류
역시 프랑스 사람으로 생물학자이자 걷기 예찬론자인 이브 파칼레는 ‘걷는 행복’(궁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효율성을 숭배하고 속도의 강박증에 걸려버린, 그리고 오로지 결과와 잇속만이 횡행하는 이 사회를 싫어한다. 나는 우회, 주저, 뒤로 걷기, 맴돌기, 방랑의 편이다. 시간과 공간의 풍성한 결합을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속도로보다는 야생의 오솔길을 좋아한다. 놀람, 갈림길, 숨을 곳, 비밀을 직선보다 좋아한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뜻밖의 경이를.’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나서 첫걸음을 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대략 12억5000만 걸음을 걷는다. 이는 지구를 22번 도는 거리. 그래서 저자는 걷는다는 것이 인생의 은유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어디로, 무엇을 향해 걷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우리가 걷는 길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