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대상이 아닌 물고기엔 연구비가 지급되지 않으므로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종이 사라져도 모르는 것이다. 해수어를 관상어로 수입해 기르고 있는 이들도 많다. 그 중엔 우리 연안에 있는 어종도 있으며, 우리 연안의 특색에 맞게 토박이로 사는 아름다운 어종도 상당히 많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어종일수록 보편적으로 수심이 깊지 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이들이 오염으로 인해 사라진다면 그로 인한 연쇄반응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나는 뭍의 오염이 바다로 흘러들어 토박이 생물뿐 아니라 난류를 타고 멀리 해외에서 우리 연안으로 놀러오는 물고기들이 사라지는 불행을 막으려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예전엔 없었지만 요즘 여러 대학에는 행동생태학이란 전문학과가 생겨났다. 물고기의 행동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고 할 만큼 그들의 행동은 다양하다. 애정을 갖고 이들을 대한다면 인간과 물고기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더욱이 개인 연구실의 특성상 수백수천 종을 한꺼번에 사육할 수 없어 연구에 필요한 어종을 그때그때 채집해오는 형편이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많은 물고기의 생활사를 알리고 싶다. 어떤 물고기에 독이 있으며 어떤 물고기가 관상어로서 탁월해 수입대체 효과를 볼 수 있는지 등도 조목조목 알리고 싶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짤막한 설명과 소수의 어종만 소개해야 해 안타깝다. 여기서는 학문적 용어는 지양하고 이해하기 편한 일반적 용어를 사용하겠다.
[냉혹한 승부사, 앞동갈베도라치]

앞동갈베도라치
앞모습은 사나운데 뒤로 갈수록 연약한 여인네처럼 보이지만, 이놈에겐 강한 투지가 살아 꿈틀댄다. 이들의 생태는 자세히 연구된 바 없으므로 여기서는 행동생태학적으로만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앞동갈베도라치의 성격은 너그럽지 못하다. 체구에 비해 과격한 편이다. 동료들 중에서도 비슷한 체구의 수컷과는 피가 나도록 싸워 자칫 심한 상처 때문에 죽기도 한다. 물고기가 싸우는 것을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물고 뜯는 것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보통의 물고기들도 상대와 겨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협에 그친다. 싸움에서 패한 놈은 상대의 기에 눌려 꼬리를 옆으로 뒤틀거나 뒤도 바라보지 않고 냅다 도망가는 것이 통상적인 싸움 방식이다. 그러나 앞동갈베도라치는 상대의 한 곳을 물고 늘어진다.
결국 도구를 이용해 싸움을 말려보지만 이들은 수조 속에 놓아둔 돌 뒤로 들어가 또다시 혈투를 벌인다. 어느 한 쪽이 항복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가 사경을 헤맬 때까지 싸운다. 이들은 적당한 것을 모른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의미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목숨을 거는 것이리라.
왜 이렇게 이해와 양보를 모를까. 누군가 이들에게 요즘의 세태를 알려주었을까. 물속 세상만이라도 어지럽지 않은 게 내 소망인데….
아무튼 이렇게 악착같은 앞동갈베도라치가 사는 곳은 돌이 많은 얕은 곳이다. 돌틈 사이에 보금자리를 만들어놓고 경우에 따라서는 돌의 움푹 팬 곳을 휴식처 삼아 달라붙어 지낸다. 돌에 납작 붙어 있을 때는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