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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사람과 새들의 땅 강원도 철원

긴장과 悲感 걷어내는 선 굵은 淸淨山河

순박한 사람과 새들의 땅 강원도 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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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규칙이 하늘을 제압할 수는 없는 법. 곳곳에 숨어 있는 지상 최대의 군사력과 긴장은 시베리아를 거쳐 내려온 겨울철새들에게는 한낱 남의 일일 따름이다. 가혹한 역사의 상처를 뒤로한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 철원에서 맞는 새벽안개는 오래도록 가슴을 시리게 했다.
순박한 사람과 새들의 땅  강원도 철원

민통선 안 벌판에서 만난 두루미떼의 어스름 비행.

길을 떠났다. 짙뿌연 안개가 찬 겨울공기와 뒤섞여 거대한 스모그를 만들어내는 서울을 뒤로하고 나선 참이었다. 꽉 막힌 한낮 도심을 피해 한순간이라도 빨리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욕심에, 의정부 너머 포천으로 곧게 뻗은 북행 3번 국도 대신 에둘러가는 자유로를 택했다. 한강변을 따라 달린 지 30여분 만에 북녘이 뻔히 건너다보이는 파주 문산을 지나, 곳곳에 대전차장애물이 놓인 연천길을 굽이굽이 달려 닿은 곳은 강원도 철원땅. 외박 나온 병사들이 무리 지어 오가는 거리가 철원군청이 자리한 갈말읍, 이름하여 ‘신철원’이다.

김주영의 단편소설 ‘쇠둘레를 찾아서’(1987)는 두 명의 중년사내가 의기투합해 철원을 찾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차를 달려 닿은 철원은 이름만 철원일 뿐, 기억 속의 그 거리가 아니다. 한참을 헤매고 또 헤맨 끝에 기억 속의 철원은 휴전선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음을, 그나마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어 옛모습을 거의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음을 알고는 망연해하는 것이 소설의 끝이다.

해방 직후에는 북한 땅이었다가 한국전쟁 뒤에 ‘수복’된 철원은 종전 반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곳곳에 그 기억을 상처처럼 안고 있는 고장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군사시설 표지판은 물론이요, ‘김일성이 짓던 다리를 전쟁 후 이승만이 이어받아 마저 지었다’고 해선 붙인 이름이라는 승일교, 어린 시절 교실 뒤 게시판의 단골손님이던 ‘달리고 싶은 철마’가 있는 월정리역, 백마고지전투 기념비까지, 이들을 둘러보는 하룻길 여행코스가 이름하여 ‘안보관광’이다.

그렇다고 역사를 생각하며 비감해하는 것이 철원 여행길의 전부는 아니다. 관광명소를 한바퀴 휘휘 돌아 민통선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10여분 만에 수천 마리 기러기가 떼를 지어 하늘을 뒤덮었다. 하루 전에 미리 연락하지 않으면 통과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군 경비초소를 지나 민통선 안 쪽 양지리 마을에 들어서면 ‘철새마을, 평화의 땅에서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세요’라는 표지판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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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사진: 김성남 기자 photo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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