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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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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곱징역.’ 무기수로서 20년을 살면서 그 가운데 5년여를 독방에서 보낸 한때의 청년 지식인은 가장 낮은 곳에서 저미고 되새긴 생각의 편린을 봉함엽서에 담아 내보냈다. 세상이란, 사람이란, 문명이란 어쩌면 존재가 아니라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그의 사고는 동양고전과 만나 이전의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위로와 지평을 남겼다. 온 세계가 위기에 처한 2009년, 탐욕을 넘어 ‘더불어삶’을 꿈꾸는 그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
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옥(獄)’이라는 한자는 “늑대(·#53398;)와 개(犬) 틈새에서 말(言)을 못하는 형국”이라고 했다. 좌우에 짐승들이 버티고서 말을 감시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한자다. 말은 사람의 몫이요, 짐승은 소리를 낼 뿐이다. 그러므로 감옥이란 ‘소리에 말이 갇힌 짐승의 땅’을 일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감옥, 그것도 독방에 오래 갇혀 있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언어를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감방을 왔다갔다하면서 혼잣말이라도 중얼거리게 된다 한다. 사람이란 역시 피부로 부대끼며 대화를 나누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20대 후반의 한 청년 지식인이 감옥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온갖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장장 20년이라는 세월이라면, 잃어버린 젊음의 시간을 기억의 어느 한 모퉁이에라도 남기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될 것이다. 젊은 지식인은 자신의 일상과 성찰을 담은 엽서 쓰기를 계속했다. 무질서한 생각을 아무렇게나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 하나를 떠올리면 면벽명상을 거듭한 뒤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어 머릿속에서 정리와 교정까지 끝낸 다음, 누에가 고치실을 뽑아내듯 완성된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오랜 작업을 한 것이다.

‘엽서’에 실어 나른 세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그 후 2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 가운데 5년여는 독방 생활이었다. ‘곱징역’을 산 것이다. 가혹한 역사적 중압 속에서 신영복은 ‘밑바닥의 철학’과 상충하는 관념적 지식의 잔재를 비판적으로 청산하고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인적(全人的) 체득’과 ‘양묵(養默)’에 정진했다. 그는 감옥에서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사색을 엮어 부모와 형수, 계수와 조카들에게 엽서로 실어 날랐다.

1988년 5월 막 창간된 ‘평화신문’에 그 내용이 발췌되어 실렸고, 이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하 ‘사색’)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사색’이 처음 나왔을 때 이 무명의 낯선 필자에게 독자는 고압전선에 감전되었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정양모 신부는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축복”이라고 했고, 소설가 이호철은 파스칼의 ‘팡세’, 몽테뉴의 ‘수상록’, 심지어는 공자의 ‘논어’에 비교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신영복이 출옥한 1988년 8월은 민주화의 열기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였다. 그러나 곧 혼돈이 밀려왔다. 중국에서 벌어진 천안문 사태에 이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국내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화운동 진영이 패배하기는 했지만 공세적 국면이 유지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운동가가 제도정치권으로 뛰어드는 기회주의적인 작태를 보였다. 당시 신영복은 운동단체는 물론 정계로부터도 많은 러브콜을 받았지만 일절 응하지 않았다.

‘사색’은 독서시장에 나오자마자 단박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넓은 의미의 인문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이 시장에서 외면당하기 일쑤이던 1980년대 후반 이른바 보수회귀의 시대에, 독자들은 왜 책으로 세워진 ‘신영복의 학교’에 기꺼이 입교했을까. 사회적으로 꽤나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이 ‘사색’을 읽고 난 뒤 남긴 독후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영복의 글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회와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준엄한 비판의 칼이 들어 있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삶을 배우고 문장의 극치에 도달한 아름다움을 배우는 것이다.”(조정래)

“봉함엽서 한 장 분량에 쏟아져 있는 글을 읽고 나면 바로 다음 글로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밀도 있고 감동이 있는 글이다. 어떤 때는 책장을 편 채로 가슴에 대고 멍하게 생각에 빠진 적도 있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두 달이나 걸렸다.”(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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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무한│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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