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2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중간선거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빨간색의 공화당은 435석의 하원의석이 걸린 이번 선거에서 11월8일 현재 아직 확정되지 않은 9석을 제외하고도 과반인 218석을 훨씬 넘는 239석을 얻어 하원을 장악했다. 공화당 의석은 선거 전보다 60석이나 더 늘었다. 이처럼 큰 차이는 5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37석을 선출하는 상원에서도 당선자 확정에 시간이 더 필요한 알래스카 주를 제외하고 공화당은 6개 의석을 더 얻었다. 상원 100석 중 민주당이 53석, 공화당이 46석이 됐다.
선거에는 늘 흥분과 우려가 교차된다.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인 오바마의 민주당정권은 집권 2년 만에 하원을 잃었다. 하마터면 상원까지 야당에 넘어갈 뻔했다. 또한 미국은 두 개의 다른 나라로 갈라졌다고 할 정도로 국론이 분열되는 듯했다.
상대후보 험담에 450억달러 쏟아
필자로선 레토릭(rhetoric·수사학) 공방으로 후끈했던 이 선거를 현지에서 지켜보는 것이 꽤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텔레비전 선거광고는 특히 치열했다. 45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광고비가 지출되었다는데 광고에는 ‘앞으로 유권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익숙해진 매니페스토 선거캠페인은 신기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텔레비전 광고는 ‘상대 후보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무조건 안 된다’는 네거티브 일색이었다. 이성과 정책은 실종되고 감정과 비난만 넘쳤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선거광고는 양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이번 선거에서 광고물량이비약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기업이나 특정단체가 정치 광고를 직접 하거나 후보자의 광고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한 지난 1월의 미국 대법원 판결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어떤 단체가 누구를 후원했는지 밝힐 필요도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월가 등 특정 이익집단의 돈이 선거광고로 콸콸 흘렀다는 것이다. 후보자가 자신의 돈을 천문학적인 규모로 쓴 경우도 있었다. 이베이 CEO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여성후보 휘트먼은 1억5000만달러 정도를 쏟아 부었다. 분석가들에 의하면 약 5%의 미확정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루 1300개의 선거용 광고를 실었으니 하늘에서 돈을 뿌린 셈이다. 미국에선 선거자금이 당락의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돈의 힘을 믿는 후보자들이 선거판을 휘젓는 일이 가능하다. 이런 선거제도를 문제 삼는 언론이 별로 없는 것이 특이했다.
개표가 진행되던 2일 밤 텔레비전 방송은 파란색의 민주당 의석이 빨간색으로 바뀌어가는 화면을 되풀이해 보여주었다. 그중 ‘폭스뉴스(Fox news)’는 신나는 표정이 역력했다. 폭스뉴스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 복합기업을 소유한 루퍼트 머독이 24시간 보도채널로 1996년 출범시켰다. 보수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다국적 언론재벌이 소유한 방송답게 미국에서도 부시 정권의 보수주의 정책과 공화당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편향성을 보인다. “공산당에는 프라우다(Pravda·러시아 국영신문)가 있고 공화당에는 폭스뉴스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머독의 자본에 속한 언론이 보수색채를 띠는 것은 자명한 일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언론이 보수주의 혹은 진보주의 색채를 보이는 것 자체는 문제 삼을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폭스뉴스가 미국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방송이 다른 방송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문제의 요지는 폭스뉴스가 방송을 불공정하게 도구화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미국사회의 분열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비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