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금봉은 당찬 며느리, 독립심 강한 딸 등의 배역을 거쳐 한국 영화사에 유례 없던 악녀 캐릭터를 완성한다.
내가 처음 본 도금봉의 영화는 ‘콩쥐팥쥐’(조긍하 감독, 1967)였다. 콩쥐 문희를 괴롭히는 간악하고 심술궂은 계모 팥쥐 엄마로 나온 도금봉은 나에게 계모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심어줬다. 그런데 ‘새댁’에서의 도금봉은 전혀 다른 여자가 아닌가? 순박하고 소박한 보석 같은 눈망울의 여자가 몇 해 후 다른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토록 성깔 사납고 부리부리한 눈알의 계모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1962년, 도금봉이 주연한 또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 제목은 ‘또순이’. 당시 인기 라디오 연속극이던 ‘행복의 반생’을 영화화한 것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돼버린 서울 금호동의 산동네 판자촌 버스 종점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금호동에서 종로까지 운행하는 마이크로버스의 차주 최남현의 막내딸 도금봉은 하루치 버스 수익금을 아버지에게 전하며 오늘 일을 했으니 일당을 달라고 한다. 최남현이 “가족끼리 무슨 일당” 하며 무시하자 도금봉은 “자식은 자식이고 일은 일, 공과 사를 분명하게 하라”고 따진다. 아버지가 일당 줄 기색이 안 보이자 “언젠가는 내 노동의 대가를 꼭 되돌려 받겠다”며 밖으로 나가 잘 곳이 없어 서성이는 이대엽에게 담배를 사준 뒤 그에게 잠자리를 알려주고는 “나중에 돈 벌면 꼭 갚으라”고 한다. 도금봉은 차주의 딸이지만 시집갈 생각은 전혀 없고, 곤궁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도움을 주며 나중에 사정이 나아지면 꼭 갚으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기가 세고 독립심이 강한 딸은 언젠가 아버지와 부딪쳐 파국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법. 줏대도 없고 나약하며 싹수가 노랗다고 생각한 이대엽을 딸이 도와준 것에 노발대발한 최남현은 도금봉을 앉혀놓고 일장 사설을 읊는다. “네 엄마와 함경도에서 무일푼으로 서울로 내려와 내가 머슴살이를 하고 엄마는 식모살이로 출발해, 나는 버스 스페어 운전수, 엄마는 차장으로 고생을 하며 너희들을 먹여 살렸다”고 하자, 도금봉은 “엄마 아빠가 돈 벌러 나갔을 때, 내가 살림 다 하고 언니 학교 보냈다. 일곱 살 때부터 일했으니 그동안 식모살이 월급을 달라”고 한다. 최남현이 질쏘냐. “이런 고얀 놈” 하며 “지금까지 키워준 돈 내놓으라”고 한다. 또순이는 지지 않고 “그건 부모의 의무다. 낳았으면 키워야 한다”고 반박한다. 아버지와 딸의 언성이 높아지고 화가 난 또순이는 독립을 선언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도움을 안 받고 이제부터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총명하고 독립적인 신여성
그때까지 이런 종류의 여자 캐릭터는 한국 영화에 없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아버지에게 지지 않고 덤비는 딸이라니. 또순이 이전의 여자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남자가 의붓아버지의 친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눈물 줄줄 흘리며 ‘우리는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할 운명인가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거나, 다른 여자를 얻은 남편에게 큰소리 한 번 못 치고, 폐병을 앓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도박을 하고 새벽에 들어온 남편을 위해 피를 토하며 밥상을 차렸다. 하얀 손수건을 들고 극장으로 몰려간 우리 엄마, 이모, 고모들은 그 시절, 남자의 잘잘못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여주인공의 삶을 보며 한 맺힌 설움을 함께 나누고 꺼이꺼이 손수건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