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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담벼락에 분칠한 기 뭐 볼 거라꼬…”

21세기 해운대에서 20세기 감천동까지

“남의 담벼락에 분칠한 기 뭐 볼 거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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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해운대의 마천루가 연출한 밤 풍경을 보며 우와~ 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그러곤 잃어버린 ‘무언가’가 남아 있으리라는 소망을 갖고 감천동을 찾는다. 먹고살 만해진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힐링 수단으로 소비한다. 그러나 가난은 이곳 사람들에게 추억이 아닌 현실이다.
“남의 담벼락에 분칠한 기 뭐 볼 거라꼬…”

감천동 주민이 이국풍의 벽화가 그려진 축대 위에서 이불을 털고 있다.

6월 14일, 남보다 조금 일찍 부산에 갔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라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심하게 흔들리며 김해공항으로 들어섰다. 승무원들은 침착했고 아마도 기장 또한 이런 정도의 악천후는 평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흐린 날씨라서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한참이나 낮춘 다음에야 갑자기 활주로가 나타났다. 내내 시커먼 구름 속에 있다가 일순간 세상 밖으로 나온 비행기는 낙동강 하류와 인근의 화물창고 지대를 스치나 싶더니 곧 활주로에 안착했다.

오후의 김해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선지 낯선 풍경이 보였다. 몇 년 전에는 도착장에서 빠져나온 후 버스 정류장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한 광고판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는데, 언제 들어섰는지 허공을 가르는 새로운 시설물이 보였다. 부산을 자주 오가는 사람이나 이 일대를 삶의 거점으로 삼은 이에게는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겠지만 오랜만에 찾은 자에게는 낯설었다.

급변하는 스카이라인

이럴 때 나는 재빨리 이 새로운 인공 구조물에 대해 검색해본다. 부산 사상에서 김해국제공항을 거쳐 김해 삼계동까지 23.8㎞ 구간을 잇는 부산-김해 경전철이었다. 2006년 4월 착공해 5년여 만인 2011년 4월 완공을 보고 그 후 안전 시스템 보완을 거쳐 그해 9월 개통됐다. 총 사업비 1조3000억 원, 모두 21개의 정거장으로 구성됐으며 평속 38㎞, 2량 1편성 50량, 1일 424회 왕복 운행한다.

어느 문화기관의 조직역량 제고를 위한 토론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누군가가 그랬다. 어떤 조직이든 한번 만들어지면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그 조직은 흡사 하나의 독립 인격체처럼 자기보호 본능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내부의 철저한 자기반성이나 외부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그 자기보호 본능을 통제할 방법은 없다고. 과연 그 문화기관은 그래 보였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은 그 조직이 자기 갱신을 하지 않고 강고한 ‘철밥통’이 돼버린 이유였다.



인간의 편리와 의지에 의해 설치된 저 인공 구조물도 그렇다. 벌써부터 김해공항 일대의 시선과 동선과 관계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구조물을 두고 부산 전역에서 홍역을 치르다시피 한 논란이 있었다. 경전철이 지나는 곳의 지역성과 역사성과 경제성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그런데 이제 겨우 도착해 담배 한 대 물면서 바라본 저 구조물은 앞으로 1박 2일 동안 내가 보게 될 부산의 놀라운 급변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동아시아 최대 항구 가운데 하나인 부산이니만큼 변화는 객관 세계의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겠으나, 이에 적극 대응한 부산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이제 내가 하룻밤과 낮 사이에 보게 될 부산은 몇 년의 기억에 저장된 부산과 확연히 달랐다.

금요일 오후의 부산 시내는 꽉 막혔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간선도로는 흡사 같은 순례 목적지를 향해 일제히 몰려든 고행자들의 행렬과 같았다. 한동안 서(西)부산의 막힌 길을 달리던 리무진이 광안대교에 올라서더니, 아뿔싸, 더 막히기 시작했다. 2003년 1월 6일 개통 이후 이 대교는 누적 통행 2억6000만 대의 자동차가 오간,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 사이 7.42㎞를 연결하는 부산의 대동맥이 됐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항만물류도시의 수많은 컨테이너가 광안대교를 이용하고 있다는 경제적 측면과 부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다이아몬드 브리지’ ‘부산세계불꽃축제’ ‘부산바다하프마라톤’ 등이 이 대교와 연관된 행사라는 문화적 측면이다. 장차 광안대교를 시작으로 북항대교, 남항대교, 천마산터널, 을숙도대교, 신호대교, 가덕대교, 거가대교 등이 연계되는 총 52㎞의 ‘브리지 오브 부산(Bridge of BUSAN)’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나는 그 다리 위에서 좌우로 고개를 자주 돌리며 그 장관을 바라봤다. 좀처럼 정체가 풀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광안대교 위에서 부산의 급변을 웅변하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완상할 수 있었다. 수영만과 용호만 일대의 스카이라인이 다가왔다가 물러서고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아득했다가 아찔해진 다음, 나는 해운대 바닷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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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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