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천동 주민이 이국풍의 벽화가 그려진 축대 위에서 이불을 털고 있다.
오후의 김해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선지 낯선 풍경이 보였다. 몇 년 전에는 도착장에서 빠져나온 후 버스 정류장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한 광고판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는데, 언제 들어섰는지 허공을 가르는 새로운 시설물이 보였다. 부산을 자주 오가는 사람이나 이 일대를 삶의 거점으로 삼은 이에게는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겠지만 오랜만에 찾은 자에게는 낯설었다.
급변하는 스카이라인
이럴 때 나는 재빨리 이 새로운 인공 구조물에 대해 검색해본다. 부산 사상에서 김해국제공항을 거쳐 김해 삼계동까지 23.8㎞ 구간을 잇는 부산-김해 경전철이었다. 2006년 4월 착공해 5년여 만인 2011년 4월 완공을 보고 그 후 안전 시스템 보완을 거쳐 그해 9월 개통됐다. 총 사업비 1조3000억 원, 모두 21개의 정거장으로 구성됐으며 평속 38㎞, 2량 1편성 50량, 1일 424회 왕복 운행한다.
어느 문화기관의 조직역량 제고를 위한 토론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누군가가 그랬다. 어떤 조직이든 한번 만들어지면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그 조직은 흡사 하나의 독립 인격체처럼 자기보호 본능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내부의 철저한 자기반성이나 외부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그 자기보호 본능을 통제할 방법은 없다고. 과연 그 문화기관은 그래 보였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은 그 조직이 자기 갱신을 하지 않고 강고한 ‘철밥통’이 돼버린 이유였다.
인간의 편리와 의지에 의해 설치된 저 인공 구조물도 그렇다. 벌써부터 김해공항 일대의 시선과 동선과 관계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구조물을 두고 부산 전역에서 홍역을 치르다시피 한 논란이 있었다. 경전철이 지나는 곳의 지역성과 역사성과 경제성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그런데 이제 겨우 도착해 담배 한 대 물면서 바라본 저 구조물은 앞으로 1박 2일 동안 내가 보게 될 부산의 놀라운 급변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동아시아 최대 항구 가운데 하나인 부산이니만큼 변화는 객관 세계의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겠으나, 이에 적극 대응한 부산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이제 내가 하룻밤과 낮 사이에 보게 될 부산은 몇 년의 기억에 저장된 부산과 확연히 달랐다.
금요일 오후의 부산 시내는 꽉 막혔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간선도로는 흡사 같은 순례 목적지를 향해 일제히 몰려든 고행자들의 행렬과 같았다. 한동안 서(西)부산의 막힌 길을 달리던 리무진이 광안대교에 올라서더니, 아뿔싸, 더 막히기 시작했다. 2003년 1월 6일 개통 이후 이 대교는 누적 통행 2억6000만 대의 자동차가 오간,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 사이 7.42㎞를 연결하는 부산의 대동맥이 됐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항만물류도시의 수많은 컨테이너가 광안대교를 이용하고 있다는 경제적 측면과 부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다이아몬드 브리지’ ‘부산세계불꽃축제’ ‘부산바다하프마라톤’ 등이 이 대교와 연관된 행사라는 문화적 측면이다. 장차 광안대교를 시작으로 북항대교, 남항대교, 천마산터널, 을숙도대교, 신호대교, 가덕대교, 거가대교 등이 연계되는 총 52㎞의 ‘브리지 오브 부산(Bridge of BUSAN)’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나는 그 다리 위에서 좌우로 고개를 자주 돌리며 그 장관을 바라봤다. 좀처럼 정체가 풀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광안대교 위에서 부산의 급변을 웅변하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완상할 수 있었다. 수영만과 용호만 일대의 스카이라인이 다가왔다가 물러서고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아득했다가 아찔해진 다음, 나는 해운대 바닷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