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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시절 중에서 가을을 가장 사랑하듯이, 꽃도 가을꽃을 좋아한다. 꽃치고 정답고 아름답지 아니한 꽃이 어디 있으리요마는, 나는 꽃 중에서는 가을꽃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들국화를 한층 더 사랑한다. 가을에 피는 꽃들은 어딘가 처량한 아름다움이 있다. 가을꽃치고 청초하지 않은 꽃이 어디 있는가? 코스모스가 그러하고, 들국화가 그러하다. 들국화는 특별히 신기한 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에 외로이 피어 있는 기품이 그윽하고, 봄, 여름 다 지나 가을에 피는 기개가 그윽하고, 모든 잡초와 어울려 살면서도 자기의 개성을 끝끝내 지켜나가는 그 지조가 또한 귀여운 것이다. 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그러기에 꽃도 가을꽃을 사랑하고, 가을꽃 중에서도 들국화를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정비석의 들국화, 록밴드 들국화

들국화 1집 앨범(1985).
그날 이후 나는 들국화를 내 마음의 꽃으로 정해버렸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그냥 들국화라 부르던 꽃들이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각시취 등 저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철이 들고 알았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도통 구별할 수 없고 그저 소박한 들국화로 족하다.
그런 들국화가 내 마음의 꽃에서 내 인생의 유일한 꽃으로 자리 굳힌 것은 전설의 밴드 ‘들국화’가 한몫했다. 들국화가 이 땅에 던진 메시지는 엄청나다. 그들의 노래는 트로트나 발라드에 익숙해 있던 한국인에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선 밴드 이름부터 그렇다. 들국화는 꽃 이름이니 당연히 여성적인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연약한 꽃 이름을 들고 나온 밴드는 놀랍게도 산짐승처럼 거세고 사자 갈기처럼 머리를 한껏 기른 우악스러운 수컷들의 집합이었다. 낯설기도 하거니와 밴드 구성원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이름의 들국화가 1985년 처음 음반을 발표했을 때 대중의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들국화를 기점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실제로 이들의 등장은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보통사람들은 밴드 이름과 그들의 음색, 좌충우돌 통제되지 않는 성격, 생김새가 너무나 다르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전율한다. 가녀린 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이 밴드는 일약 그 시절의 새로운 ‘아이돌’로 떠올랐다.

2013년 4월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들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