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바보나 다름없었어.”
그날의 후유증인 듯 약간은 어눌한 발음으로 입을 여는 윤추자(71) 씨.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2년의 시간.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기적과도 같다는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8년 전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아들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윤씨. 그 하루도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잠시 방에 누워 있던 윤씨는 불현듯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웬일인지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엉금엉금 기어서 방을 나서니 거실에 있던 의자가 머리에 와서 탁 받혔다. 피해가려 했지만 그저 생각만 머리에서 맴돌 뿐, 방향을 트는 것도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힘들었다.
“봄이었는데, 그때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어. 입이 얼어붙은 듯 말도 안 나오고….”
필사적으로 기어가 아들 부부의 방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를 듣고 나온 며느리에게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애미야, 내가 이상하다….”
놀란 며느리와 아들이 윤씨의 몸을 주물렀다. 혼자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윤씨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지만 자꾸만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아들 김준열(51)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음식을 짜게 드시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선지 혈압이 좀 높긴 했지만, 평소에 건강하셨기 때문에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요.”
검사 결과는 뇌경색. 뇌 속의 혈관이 막히는 병으로, 뇌출혈과는 달리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담당 의사는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결국 별다른 치료 없이 집으로 모셔가라고 했다.

차나무 씨앗 기름을 병에 붓는 김준열 씨와 기름이 떨어지는 모양.

“그때는 서기만 해도 좋겠다 싶었어. 자꾸만 쓰러지니 그것조차 마음대로 안 됐지. 이리 가고 싶은데 저리로 가고….”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치매 증세까지 나타난 것. 아들 부부가 일을 나간 후 혼자 외출한 윤씨는 2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의 문 비밀번호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윤씨를 이웃 주민이 발견하고 보살펴주는 일이 허다했다. 아들 김씨는 그런 윤씨를 위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숨겨놓고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윤씨는 그곳마저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죽은 거나 똑같았지. 아무것도 생각 안 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니 바보가 된 것 같았어.”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윤씨의 우울증은 깊어졌다. ‘이대로 죽겠다’며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다. 그런 윤씨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며느리 정병숙(49) 씨다.
“속상한 마음에 ‘그럼 같이 죽자. 어머니만 가시지 말고 저도 죽고 아비도 죽고 다 같이 죽자’고 했어요. 정말 그런 마음이면 식사 안 하셔도 된다면서….”
그렇게 함께 부여잡고 통곡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윤씨는 며느리가 주는 음식을 다시 받아먹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에 남다른 재능이 있던 아들 김씨는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운동 교사를 자청했다. 누워서 팔다리를 흔드는 ‘모관 운동’, 붕어가 헤엄치는 모양을 따라 하는 ‘금붕어 운동’, 바로 누워 합장을 하고 양발을 붙이는 ‘합장 합족 운동’…, 몸이 굳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의 몸을 주물러가며 차근차근 가르쳤다.
형제 하나 없는 외아들로 3대 독자인 김씨는 그때부터 어머니의 건강에 좋을 만한 것은 뭐든지 갖다 드렸다. 별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던 그때, 가족이 살고 있는 경남 하동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 하나를 알게 됐다.

가지에 달린 차나무 열매와 씨앗(원 안). 이 씨앗의 껍질을 벗겨 볶은 후 짜면 기름이 나온다(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