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네 개의 죽음
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 384쪽, 1만5800원

왜 그랬을까. 당장 인터뷰 섭외를 하고 싶지만 이미 수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니 그럴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남긴 증언에 귀 기울이게 되는데, 이것이 극과 극을 오간다. ‘조선왕조실록’의 사관들과 정약용, 성대중 등이 남긴 글에 따르면 영조야말로 성군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임금이었다. 늘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고, 검소하고 명철했다. 자신의 적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으나 민생 개혁을 위해서는 뚝심 있게 밀어붙이기도 했다. 영조가 아니었으면 정조도 없었을 것이고, 실학도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며느리이자 사도세자의 짝이던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을 보면, 영조는 폭군일 뿐 아니라 성격파탄자, 심지어 정신질환마저 의심된다. 자식에 대한 편애가 심해 화평옹주나 화완옹주는 임금 체통도 아랑곳없이 귀여워하면서, 사도세자나 화협옹주는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집요하게 미워하고 괴롭혔다. 견디다 못한 사도세자는 아버지 그림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으며, 급기야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이런 영조는 겉으로는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찬양하는 듯한 정조가 아버지를 위한 묘지문에서 은근히 암시하는 영조이며, 최근 개봉돼 상당한 인기를 모은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영조이기도 하다.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인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사실을 왜곡한 주장인가.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영조 본인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한쪽에서 ‘사실’이라고 믿은 것이 ‘오해’인 경우도, 한쪽에서 자신의 관점에 따라 해석한 영조의 행동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미를 띠는 경우도 드러나리라 봤다. 심지어 통설과 달리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인 것이 아니었을’ 수도. 그래서 영조 본인의 글을 포함한 방대한 자료를 훑고, 앞서의 책에서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선조, 고종 등을 조명하고 분석한 경험을 살리며 추리와 상상을 조합해 ‘영조 스스로가 말하는 영조’를 구축했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냉정한 자료보다 선호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말이 꼭 신뢰할 만하지는 않음도 알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이나 자화자찬, 개인적 편견 등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축해 낸 영조의 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숙고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처지, 그가 사로잡혀 있던 당대의 통념과 사상을 한결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시대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찰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조 모놀로그’가 갖는 의미, 또는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함규진 |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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