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의 문화사’ 샌더 길먼·저우 쉰 외 지음/이수영 옮김/이마고/600쪽/3만5000원
다시 말하지만 무슨 조폭 모임이 아니다. 이 고교는 당시 전국 서열 2, 3위를 다투던 이른바 명문이었고 ‘마시고 피우는’ 입반식(入班式)은 오랜 전통이었다. 그저 ‘문학을 하려면 그래야 하나보다’ 하고 짐작했다. 캑캑거리는 기침과 더불어 좁은 실내가 연기로 가득했다. 그때는 그 연기로 30년 세월이 흘러갈지 미처 몰랐다. 나는 지금도 하루 2갑 정도를 피우는 헤비 스모커다.
“술과 밥은 없어도 되지만…”
돌이켜보니 그때의 담배는 파괴이자 치장이었다. 교칙 따위는 잊어라, 청소년에게 가하는 금제(禁制)와 억압을 거부하라, 그리고 멋스러워라! 그랬다. 숨어서 피우는 담배는 멋스럽고 세련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듯한 착각을 안겨주었다. 교내 양아치와 자칭 문사들이 소통하는 지점, 그것이 담배였다.
1492년 10월15일, 콜럼버스의 선원들이 쿠바 원주민에게서 선물로 받은 마른 잎은 니코티아나 타바쿰이라는 식물의 잎사귀였다. 선원들이 발음을 잘못 알아들어 타바코라고 부른 그 마른 잎이 매독과 더불어 유럽을 휩쓸게 되는 데는 채 2세기가 걸리지 않았다. 치료제이자 자극제 기능을 한 담배는 상류문화의 일부가 되었고, 곧 전 사회 계층 속으로 파고들었다. 연기는 유럽 바깥으로 오토만 영토를 지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항상 최신 유행의 모습을 띠고서였다. 중앙아시아와 인도는 예술의 형태로 흡연을 받아들였고, 1600년 4월에 최초로 일본에 상륙한 파이프 흡연은 남성, 여성은 물론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깊숙이 번져 나갔다. 일본을 거쳐 중국에 상륙한 담배 흡연은 곧장 기존의 차(茶) 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일부가 되었고, 17세기 중반 무렵 아편 흡연이 만연하는 길을 닦아놓았다.
한반도에는 조선 중엽에 수입되어 수십년이 지나지 않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문객 이옥은 ‘담배의 경전’이라는 의미의 ‘연경(烟經)’을 집필했는데, 그 안에는 17단계에 이르는 담배의 재배와 성질, 도구, 담배와 관련된 문학적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옥이 기록한 담배 애호가의 사연 하나를 인용하면 이렇다.
담배가 처음 들어왔을 때 한담이 매우 좋아하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질문하였다. “술과 밥, 담배 가운데 부득이 꼭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셋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리겠소?” “밥을 버려야지요.” 또 물었다. “부득이 이 둘 중에서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을 먼저 버리겠소?” “술을 버려야지요. 술과 밥은 없어도 되지만 담배는 하루라도 없을 수 없소.” |
콜럼버스의 선원들이 받은 선물에서부터 조선조 이옥의 ‘연경’에 담긴 예화까지 이 모든 지식은 의학자 샌더 길먼과 문화인류학자 저우 쉰이 편집한 ‘흡연의 문화사’에서 간추려본 것이다(조선의 담배 문화가 소개된 1꼭지는 국내 출판사측에서 추가한 내용이다). 총 33인의 전문필자가 동원된 이 책의 제목이 담배의 문화사가 아니라 흡연사로 넓혀진 것은 담긴 내용이 아편, 코카인, 마리화나 등 ‘빨 수 있는’ 모든 향정신성 물질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량이 무려 600쪽! 여간해서는 완독하기 힘든 분량이다. 그러니 먼저 왜,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 답을 찾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맛 좋은 친구인가, 위험한 친구인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답의 단서는 ‘재미’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가령 19세기에는 교황도 코카인을 즐겨 마셨다는 사실, 담배로 친분을 도모하는 호치민과 마오쩌둥의 유쾌한 만남, 여송연 박스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던 초창기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사연, 쉰 살이 넘도록 담배 피우는 포즈로 유럽과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섹스어필…. 하지만 담배 혹은 마약이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게 우리 당대의 사회 환경이다. 19세기 말, 월터 해밀턴이라는 영국인이 엮은 ‘흡연자를 위한 책 묶음; 담배를 찬양하는 시와 패러디 묶음’에는 오늘날의 고민이 이미 담겨 있다. 그중 ‘흡연을 고민하는 햄릿’이라는 패러디는 이렇다.
피울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인가? 도덕적으로 볼 때, 담배를 맛 좋은 친구로 간직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음흉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습관이라고 표현하듯, 위험한 친구로 여기고 피해야 하는지, 어느 쪽이 더 값진 일일까…. |
시의 지은이는 스목스피어(smokespeare), 그러니까 스모크와 셰익스피어의 합성어니 순 우리말로 하자면 ‘담배피어’쯤 될까. 이 친구 ‘담배피어’가 증언하고 있듯 흡연행위는 19세기에 이미 ‘음흉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습관’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었고, 더 거슬러가자면 문명세계에 본격적으로 전파된 400년 전 이래 담배는 줄곧 찬미와 지탄의 양극단을 오갔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담배를 금하는 주된 이유로 그것이 신앙심과 예의범절을 해칠 수도 있다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흡연을 하면 사형에 처하거나 코와 입술을 베어버리기도 했다.
오늘날의 흡연반대론자들이 크게 내세우는 건강권의 문제도 전파 초기부터 대두된 관심사였다. 담배가 건강에 이로운지 해로운지 확인할 길 없던 시절에는 편의상 귀중한 약재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유럽에서는 매독 등의 전염병을 퇴치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뇌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던가 핏줄 안에 검댕이 끼게 만든다는 주장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흡연행위는 가히 장미의 전쟁에 비유될 만큼 사랑과 미움이 교차된 역사를 지녔다.
금연운동의 종교성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흡연의 역사와 문화, 제2부 예술과 문학 속의 흡연, 제3부 성(性) 그리고 민족성의 차이, 제4부 불붙은 흡연논쟁. 각자의 기호에 따라 관심사가 다를 테지만 내게 흥미로운 대목은 역시 2부 예술과 문학 속의 흡연이다. 황금기를 맞이한 17세기 네덜란드 화단의 화가들은 술집이나 매음굴 또는 가난한 이들의 삶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담배 파이프를 빈번히 등장시켰다. 흡연은 사회적 일탈의 의미를 띠는 최하층 계급의 오락이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흡연 풍경은 유럽의 회화에서 거의 사라졌다가 18세기 말, 19세기 초반 들어 루소식(式) 자연주의가 성행함과 더불어 재등장한다.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고상한 미개인’을 찬미하는 표현으로 고요하게 파이프 물고 있는 인물상을 설정한 것이다. 그밖에도 동양의 규방에서 성행한 궐련 피우기, 관능적 쾌락,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연관된 오페라 속의 흡연 장면, 니코틴을 찬양한 서적들, 바이마르에서 할리우드로 이어지는 영화 속 흡연 장면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부와 건강과 장수가 추구하는 가치의 모든 것처럼 보이는 이 21세기 초엽의 흡연문화는 앙상하기 그지없다. 흡연은 의지력이 부족한 자, 사회적으로 하층계급, 타인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잠재적 범법자의 행위로 가차 없는 공박을 당한다. 금연의 목소리는 마치 ‘환경을 보호하자’는 주장과 맞먹는 사회적 공리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가령 ‘무작정 오래만 살아서 무얼 하려고?’ 같은 흡연자의 항변은 끼어들 곳이 전혀 없다. 21세기에 흡연자는 노예, 흑인, 동성애자 등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다.
‘흡연의 문화사’는 흡연에 대한 찬성, 반대론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지만, 흡연 습관의 역사성을 규명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논란 역시 오랜 전통의 맥락에 놓여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지난날의 흡연 금지령이 대부분 종교적 도그마에 의한 것이었듯이 오늘날의 금연운동 또한 종교성을 띠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와 건강과 장수라는 세속신앙을 말한다. 이 지배적인 종교를 신봉할 의향이 없는 사람들은 지하로 아니 건물 바깥으로 쫓겨나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모두가 100세 수명이 달성되는 다음 시대에는 또 어떤 흡연문화가 도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