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부터 본격 개발…‘대한민국 개발’의 시발점
- 서울국제금융센터, 파크원 빌딩 완공되면 ‘국제금융도시’ 변신
- 지하철 9호선, 한강 쾌속정 시대 열리면 김포 15분, 잠실 10분
- ‘30층, 40평형 이상’ 대규모 주상복합타운으로 간다
- 36년 역사 시범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시범’ 보일까?
- 가회동, 평창동과 함께 서울에서 고령인구 가장 많은 곳
- 여의도초·중·고 단일학군의 힘
‘한강의 변신’을 가져온 현대사에는 늘 여의도가 함께했다. 20년 전인 1986년 9월에는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건설이 완료되면서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유람선 선착장이 생겼다. 40년 전인 1966년 9월에는 여의도 개발을 골자로 하는 한강개발 3개년 계획안이 처음 발표됐다. 이에 따라 1967년 12월부터 지금의 여의도 구획을 마련한 윤중제 사업(제방 쌓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의도 개발이 이뤄졌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50달러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의도 개발은 단순한 도시 개발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본격적인 한국경제 개발의 시작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수식어는 향후 한국에서 개발된 모든 지역의 규모를 가늠하는 ‘척도’로 자리잡았다. 여의도가 한국식 기법을 적용해 성공한 첫 도시개발 사례라는 점이 국가적 자부심으로 승화된 듯한 인상을 준다.
한강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여의도공원 맞은편 공터에는 지난 6월부터 서울국제금융센터빌딩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내년초에는 고급 오피스, 호텔과 쇼핑시설을 갖춘 ‘파크원’ 빌딩도 착공된다. 두 빌딩 모두 63빌딩(264m)보다 높게 지어질 예정. 2년 뒤면 강남까지 10분대에 도착하는 급행전철 9호선이 완공된다. 여의도를 한 바퀴 도는 모노레일 설치와 ‘고령’ 아파트의 재건축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든 ‘대한민국 최초의 신도시’ 여의도는 이렇듯 다시 용틀임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상업 중심지와 첨단 주거도시라는 두 가지 테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뛰어넘는, ‘여의도 특구(特區)’로의 변신은 가능할까.
2010년경 여의도에 세워질 서울국제금융센터 빌딩 개념도.
1971년 시범아파트가 건립되면서 한국에 본격적인 고층 아파트 시대를 연 여의도. 1977년 주택청약제도가 처음 도입된 뒤 그 해 실시된 목화, 화랑아파트 분양에서 각각 45대 1, 70대 1이라는 기록적 경쟁률을 기록하며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 최고의 고층 아파트단지라는 명성을 쌓아갔다.
1985년 63빌딩 건립으로 사무 빌딩의 초고층 시대도 열었으나 1990년대부터 서서히 ‘최고’ ‘첨단’의 자리를 강남에 내주고 만다. 강남이 1988년 삼성동 무역센터빌딩(55층) 완공을 시작으로 2005년 대치동 타워팰리스 3차(69층) 건립에 이르는 동안 여의도는 1987년 지상 34층의 LG트윈타워 건립을 마지막으로 대규모 개발의 역사를 잠시 접었다.
1995년부터 첨단사옥을 앞세워 정보통신 및 금융기업들이 강남 테헤란로와 경부(京釜)축 신도시권으로 서서히 입성하면서 여의도는 ‘경제 1번지’ 자리마저 확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강남구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87만평의 덩치로는 ‘규모의 경제’에서부터 밀릴 수밖에 없는 면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한생명의 모기업인 신동아그룹이 외환위기 때 부도를 내면서 대한생명 소유의 63빌딩이 이렇다 할 발전전략 없이 방치된 것도 악재였다. ‘정치인들의 식사 장소, 이외의 대표상품을 내기 힘들었던 63빌딩은 결국 2002년 말 한화에 인수된다. 올해 1월 들어서야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거쳐 쇼핑몰과 고급 레스토랑을 보강해 고객 확충에 나섰다.
한동안 여의도에서 사라졌던 신축공사는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활발해졌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표적인 다국적 금융그룹 AIG와 직접 양해각서(MOU) 체결에 관여해 화제를 모았던 서울국제금융센터(SIFC)는 옛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 1만여 평 부지에 세워지는데 터파기 공사 중이다. 최고 54층, 높이 270m의 첨단 오피스빌딩 3개동이 건립되는데, 5성급 호텔, 컨벤션센터, 복합 쇼핑몰,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을 갖추게 된다. 지하철 5, 9호선 환승역인 여의도역과 쇼핑몰을 직접 연결하는 지하보도도 건설된다. 서울시와 AIG측은 주로 홍콩이나 상하이 등지에 있는 국제금융기업, 컨설팅 회사, 법률회사,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를 SIFC로 유치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SIFC 맞은편의 통일주차장 부지에는 글로벌 부동산개발회사인 스카이랜이 1조5000억원을 투자해 내년부터 ‘파크원’ 빌딩을 지어 2010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국내 최고층이 될 72층과 59층 오피스 빌딩 두 동으로 이뤄지며, 400객실로 이뤄진 최고급 비즈니스호텔과 쇼핑몰이 입점할 예정인데, 호텔의 운영은 인터컨티넨탈호텔그룹이 맡을 것이라는 게 스카이랜측의 설명이다. 스카이랜의 최고경영자 피터 왈리크노우스키는 지난해 문을 열자마자 두바이의 명소로 자리잡은 ‘에미리트 몰(Mall of the Emirates)’ 개발을 진두지휘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신축될 SIFC(14만5000평)와 파크원(19만4000평)의 연면적은 단일 빌딩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목동 현대하이페리온이나 잠실 롯데월드호텔 쇼핑센터를 능가한다. 여의도에 이만한 오피스 수요가 있을지, 공실(空室) 대란이 일어나진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스카이랜측은 “서울이 동북아 금융허브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서울시도 “SIFC의 경우 AIG측이 정교하게 계획된 사전 입주플랜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들 두 초고층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마포대교 남단에서부터 여의도역 일대는 코엑스몰과 인터컨티넨탈호텔, 파크하얏트호텔, 무역센터가 몰려 있는 테헤란로 삼성역 일대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의 ‘뉴 맨해튼 시대’ 개막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준다.
다만 맨해튼이 고층건물과 상업시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의도의 처지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맨해튼이 카네기홀,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구겐하임·휘트니 미술관 등이 즐비하게 자리잡은 문화의 도시라는 점은, 변변한 미술관 하나 없는 여의도의 현실을 새삼 초라하게 만든다.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1대 1 대응점이 여의도광장을 헐어내고 만든 7만여 평의 여의도공원이라고 하지만, 이 공원 역시 개선의 여지가 많다. 빽빽한 나무와 잔디라는 기본요소와 자연생태의 숲, 문화의 마당, 자전거도로, 한국 전통의 숲 등 구색은 갖췄지만, 정작 공원을 찾은 사람들의 1차 목적을 해결해줄 산책로의 사정은 과히 좋지 않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빠듯한 폭으로 이어진 아스콘 길 2.4㎞는 이용객들로부터 ‘단조롭다’ ‘아름답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울 어디든 10분이면 간다
1975년 여의도의 모습. 당시의 허허벌판에 지금은 63빌딩과 함께 주상복합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오른편에 시범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9호선은 지하철로는 최초로 민자를 유치해 건설되는 노선이다. 그래서인지 비즈니스맨이 이용하기 편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지하철의 두 가지 단점, 즉 계단이 너무 많아 오르내리기(특히 올라가기)가 힘들고 의자가 불편하다는 점을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9호선에는 에스컬레이터는 물론, 대형 엘리베이터도 많이 설치할 계획이다. 또 기존의 ‘롱 시트’ 좌석 대신 일반 여객열차처럼 ‘크로스 시트’ 좌석을 배치해 좌석이 차 진행방향을 바라보게 했다. 좌석의 개인공간이 커지므로 ‘테이크 아웃 커피 마시며 편안하게 신문 읽기’도 가능할 수 있다.
뉴저지에서 페리를 타고 허드슨 강을 건너 10여 분 만에 맨해튼에 들어가는 것처럼, 2010년에 계획대로 여의도에서 출발해 10분 만에 잠실 나루터에 도착하는 쾌속정이 도입되면 여의도의 사통팔달 입지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SIFC, 파크원 프로젝트와 지금껏 ‘구상’에 그치던 모노레일도 한층 구체화하고 있다. 영등포구는 최근 모노레일 설립계획을 담은 ‘영등포구 교통종합기본계획’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국회의사당-신길역-63빌딩-여의나루역-순복음교회 등을 경유하는 8.76km 노선이 잠정 확정됐다. 지하철 1, 5, 9호선 환승역을 지나는 일반역 10개로 구성되기 때문에 일단 여의도에서는 어디든 5분 안팎이면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구청측은 2010년까지 모노레일을 완공하기로 하고, 2800억원의 예산을 민간제안사업방식으로 추진키로 했다. 과연 민자유치가 가능할지가 변수이지만, “초고층 상업빌딩 건립과 이에 따른 유동인구 증가로 사업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게 영등포구청측의 얘기다.
여의도 서울아파트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인 1978년에 분양됐다. 당시 여의도와 강남 아파트 중 최대 분양평수를 기록한 서울 69평형과 현대 80평형은 둘 다 한강변 바로 앞에 아무 장애물 없이 건축돼 조망이 탁월했다. 그 후 3년이 지난 1981년 서울아파트 69평형 시세는 1억1000만원, 현대아파트 80평형은 1억2000만원으로 나란히 ‘한국 최고가 아파트’에 오르며 최초의 ‘억대 아파트’라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비슷한 시점인 1980년에 분양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 분양가가 2049만원(평당 68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 1억원의 가치는 지금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신(新)주상복합타운 조성 중
서울아파트는 여의도의 ‘상업지구’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주거지구 아파트에 적용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이 아닌, 건축법을 이용한 재건축이 가능했다. 입주민 100%의 동의를 받아 아파트를 시행사에 팔고, 그 시행사로부터 다시 입주권을 받는 방법을 쓰면 도정법에 명시된 재건축 관련 규제, 즉 임대아파트 의무건립이나 소형평수 의무비율 책정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이 주변은 군사·비행시설이 없어 층고제한에도 해당사항이 없다.
입주민들은 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해 77층에 달하는 최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으려 했으나, 지난 8월 건설교통부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이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 개정안을 통해 ‘편법 재건축’을 불허하겠다는 게 건교부의 뜻이었다. 결국 서울아파트 재건축사업은 일단 보류됐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정권 바뀌면 재추진한다’에 가깝다. 50, 69평 192가구로 이뤄진 비교적 소규모 단지이기 때문에 제도만 받쳐주면 언제든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 요즘의 매매가도 평당 4000만원대에서 동요가 없는 상태다.
여의도에는 서울아파트뿐 아니라 수정·공작아파트 등 상업지구에 지어진 아파트가 꽤 있다. 모두 30년이 넘어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1순위로 노리고 있다. 대지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지만,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바닥면적의 비율)을 600∼900%대까지 올리면 일반 아파트와 달리 층고를 훨씬 높일 수 있어 ‘채산성’이 높다. 물론 이에 따른 ‘한강 조망권 극대화’도 빼놓을 수 없는 메리트다.
1968년 윤중제가 준공됐을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강개발’ 휘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역시 상업지구 안에 있던 백조·미주아파트는 각각 롯데캐슬엠파이어(39층)와 롯데캐슬아이비(35층)로 재건축돼 지난해와 올초 입주를 시작했다. 한성아파트 재건축으로 2008년 입주예정인 GS여의도자이(39층)는 현재 평형별로 7억∼13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상업지구 안의 빈 땅에는 최근 3~4년새 대우트럼프월드 2차(37층), 금호리첸시아(40층)가 입주를 마쳤다. 여의도공원 맞은편에 있는 ‘더 샵 아일랜드 파크’(13층)는 내년 입주 예정이다.
‘유사 주상복합’으로 불리는 새로운 개념의 주거용 빌딩(일종의 오피스텔)도 지어지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여의도역 부근에 ‘에스트레뉴’(36층)를 분양하고 있다. 다분히 외국인 수요를 의식한 것으로, 발레 파킹 서비스나 클럽하우스 제공 등 6성급 호텔의 운영관리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다.
상업지구 신규 주상복합건물들은 평형이 거의 예외없이 40평형대부터 시작해 80∼100평에 이르는 중대형을 많이 포진시켜 현재 시가로 보면 10억∼30억선에 가격대가 형성될 전망이다. 1970~80년대에 여의도가 선도적 고층아파트를 앞세워 독과점적으로 누리던 부촌(富村) 이미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서울시에 따르면, 여의도 개발 초기인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시는 직원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없을 만큼 재정난이 심했다. 1975년부터 국회의사당, KBS, 동양방송, MBC, 증권거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잇따라 여의도에 터를 잡기 전까지, 입주 초기라 할 1970년대 초반 5~6년은 ‘아파트 빼면 허허벌판’이란 인식 때문에 사무실 이전을 꺼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여의도 땅을 건설업체에 빨리 팔기 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상업지역에도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허가를 내줬다. 오늘날 여의도 상업지구가 ‘황금주’로 등극하도록 만든 역사적 요인이 실은 택지 미분양 해결을 위한 작은 행정절차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부풀어오르는 재건축 기대
지은 지 36년이 지난 시범아파트는 총 1583가구로 이뤄진 대규모 단지로, 여의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거주지로 군림해왔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이후 서울시가 명예회복을 위해 의욕적으로 건설했는데, 당시 건축분야 학계와 실무현장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사업에 대거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승강기가 설치된 12층 아파트를 내세워 고층 아파트 시대를 열었으며, 공원, 유치원, 동사무소, 쇼핑센터 등이 단지 내에 들어오고, 단지 내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열로 난방을 하는 중앙공급난방 방식이 처음으로 채택됐다. 입주 초기에 ‘엘리베이터 걸’을 두고 중장년 입주자들에게 엘리베이터 사용법을 설명해줬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워낙 신경을 써서 지었기 때문인지 국내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중 ‘최고령’인데도 안전이나 노후 문제가 불거진 적은 많지 않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는 아직도 “벽에 못을 박으면 망치가 튕겨 나갈 정도”라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올해 초 서울시에서는 여의도 고밀도 지구 재건축 기본계획을 확정, 고시했다. 반포, 잠실, 도곡, 청담 저밀도지구 개발계획 때처럼 지구를 구획해 좀더 큰 단위의 도시계획이 가능하도록 한 조치다. 골자는 공공부지 등을 인센티브로 내놓을 경우 3종 일반주거지역의 최대 용적률을 250%까지 받게 해준다는 것. 쉽게 말해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는 12층 규모 아파트를 단지의 대지면적을 감안해 최대 35층까지 고층으로 짓게 해준다는 의미다. 부동산시장에 규제가 워낙 많아 아직 가시적인 재건축 움직임은 없지만, 이런 호재 때문에 시세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여의도 아파트 중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되는 아파트는 11개 단지 6327가구로, 상업지구에 걸쳐 있는 아파트들을 빼면 사실상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11개 단지 중 이미 용적률 210%가 넘는 7개 단지는 가구수를 늘리지 않는 1대 1 재건축을 하지 않는 이상 사업성이 별로 없어 리모델링이 더 적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용적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시범(146%), 삼부(164%), 미성(178%), 광장아파트(205%)가 재건축을 할 때 최소한의 채산성을 유지할 단지로 꼽힌다. 3종 주거지의 나머지 단지들은 개발 당시부터 상업지구와 주거지역을 나누는 기준이 무원칙적이었던 점을 감안, 현재의 평가기준을 통해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재 가장 이른 시간 내 재건축 가능성이 높은 곳은 시범아파트. 용적률이 낮아 3종 주거단지들 중 기본 사업성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현재도 18, 24, 36, 48평형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 때문에 ‘소형평수 의무비율’ 적용에 따른 불이익도 없다.
영등포구청 건축과 담당자는 “시범아파트 단지는 사실상 재건축에 별다른 제약은 없으며, 안전진단이나 재건축추진위 구성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다만 현재 단지 내 일부 국·공유지에 대해 추가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주민간 내부 이견이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삼부·미성아파트도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2004년부터는 ‘재건축 대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시세도 비슷한 평형대 다른 아파트들보다 높게 형성됐다. 현재 26, 28평형이 7억∼8억원선.
평균연령 38세, ‘高齡의 섬’
여의도 주민들은 최근 ‘노령 사회화’를 실감하고 있다. ‘여의도공인’ 관계자는 “제법 비싼 주거단지치고 강남이나 목동과 다른 점은 가격 탄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50대 이상 중장년층 가운데는 준(準)여의도토박이들도 꽤 있다”고 했다. 시범아파트 단지 내의 한 중개업자는 “60대 이상 중에는 문인, 원로학자, 퇴직관료가 많이 살며, 노인부부만 사는 가구도 꽤 많다. 이들은 소비시설이나 교육여건이 좋은 신도시로 옮겨가기를 꺼리며, 굳이 돈을 더 보태 강남이나 첨단 주상복합으로 옮기는 것에도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실시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여의도동의 평균중위연령(일종의 평균나이)은 38.0세로 동 단위로 보면 종로구 가회동(38.4세)과 평창동(40.1세), 성북구 성북2동(40.5세) 등 전통의 옛 주택단지와 함께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의도가 속한 영등포구의 평균중위연령은 34.3세이며, 강남·서초·송파구는 33∼34세, 서울 전체는 34.2세 다.
강변에 ‘윤중제’라는 제방을 쌓아 구획이 정해진 지금의 여의도는 40년 남짓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 존재가 공인받은 것은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1916년 한국 최초로 여의도에 군용 비행장을 만들면서부터다. 김포비행장(김포공항의 전신)이 건설된 것은 그로부터 20년 뒤인 1936년의 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이라는 지금의 명칭은 1946년에 부여됐다.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은 1922년 여의도비행장에 운집한 군중에게 멋진 비행시범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미군이 진주한 뒤 여의도는 미군 비행장으로 쓰였으며, 광복 이후 1948년부터는 국방경비대 항공부대가 이곳에서 창설돼 한국 공군의 발상지라는 역사도 갖고 있다.
여의도광장이 ‘5·16광장’으로 불리면서 1990년대 초반까지 이곳에서 해마다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려 육·해·공군의 위용을 자랑했던 점을 상기하면 여의도가 한동안 ‘반공도시’의 색채를 띠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금의 중소기업전시장 부지도 1990년대 초까지는 ‘여의도 안보전시관’으로 쓰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부터 6·25전쟁 때까지 쓰인 세계 각국의 무기가 전시돼 있어 학생들의 야외수업이나 소풍장소로 활용됐다.
지난해 서울시는 중소기업전시장 부지 인근에 버스환승센터를 만들다가 공사장 지하에서 핵전쟁 등 비상상황시 대통령이 대피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추측되는 180평 규모의 벙커를 발견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정부에서 금강산댐 건설을 추진하며 “금강산댐이 붕괴되면 여의도가 가장 먼저 물에 잠겨 63빌딩의 3분의 1가량도 형체가 없어진다”는 여론몰이용 선전을 자주 했는데, 이로 인해 당시 여의도 지역 부녀회와 초등학생들은 자주 규탄대회에 참가했다.
1967∼68년 윤중제가 쌓이기 전까지 여의도는 섬이라기보다는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고 가물면 면적이 넓어지는 ‘커다란 모래밭’에 가까웠다. 조선시대 기록을 봐도 여의도는 한강의 퇴적작용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긴 섬으로 양이나 염소, 말 등을 키우던 목장으로서의 용도가 간단히 서술돼 있을 뿐이다. 그나마 여의도 북쪽에 있던 밤섬(栗島)과 연관지어 거명된 적이 많았다.
조선시대에 ‘잉화도’ ‘나의주’ 등으로 불리던 여의도는 홍수로 물에 잠길 때도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만은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 사람들이 ‘나의 섬’ ‘너의 섬’ 하고 말장난처럼 부르다가 ‘너의 섬(汝矣島)’이 한자화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이런 나름의 ‘긴 역사’를 이어가자는 취지인 듯, 여의도 지역 중·고교들은 학교행사 등에서 성인들도 잘 모르는 여의도의 옛 이름을 사용하곤 한다. 여의도중학교 예술제는 1900년대 초의 명칭인 경기도 고양군 여율리(如栗里)에서 따온 ‘여율제’로 이름이 붙여졌고, 여의도고교의 가을축제는 ‘너섬 축제’로 불린다.
2010년경이면 서울 강남 지역까지 10분대에 도착할 인프라를 갖추게 될 터이지만, 1970년 마포대교(당시 서울대교)가 완공되기 전만 해도 여의도에는 다리가 없어 외부로의 교통에 커다란 지장을 받았다. 육지와의 거리가 매우 가깝긴 했어도 섬은 섬이었던 셈이다.
유년 시절부터 여의도에 살았다는 30대 회사원은 “1970~80년대에 단독주택이 한 채도 없이 고층 아파트만 있던 동네는 한국에서 여의도가 유일했다. 환경이 워낙 다르다보니 배타적 기질도 강했는데, 이 때문에 다른 동네에서는 ‘섬나라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와 한강이 범람할 위기에 처하면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여의도에 먼저 물이 유입될까봐 가슴 졸이던 기억이 새롭다”고도 했다.
‘메이드 인 여의도’의 위상
여의도의 인구 고령화는 학생의 감소와 맞물려 있다. 여의도고교는 1980년대 후반 한때 51학급(각 학년 17학급)을 운영했으나 지금은 36학급(각 학년 12학급)뿐이다. 그나마 당시는 한 반이 58명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35명이 기준이다. 또 당시에는 여의도동 거주 학생들이 75∼100%에 달했지만 현재는 여의도 이외 지역의 영등포구 거주 학생이 절반을 넘어 여의도동 학생 수만 따지면 20여 년새 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학생자원의 감소와 함께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우수 학생들의 특목고 진학 트렌드 등의 요인이 맞물리며 여의도고교의 위상도 예전보다 낮아졌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강남, 목동 및 분당 일산 등 신도시권에 거대한 학원가가 형성된 데 비해 여의도는 그렇지 못했던 것도 주요 원인이었다. 일례로 여의도고 출신 2006학년도 서울대 입학생 수는 5명으로, 평준화 고교 중에서 ‘우수학교’ 축에 들 수 있는 15명선에는 많이 못 미친다.
1973년 개교한 이 학교는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10년 이상 강남 8학군의 명문 학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평준화 신흥명문고’로 입지를 굳힌 바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보도한 ‘한국의 파워엘리트 집단’ 기사에 따르면 파워엘리트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랭킹에서 여의도고는 386세대 중 15위, 포스트 386세대에서는 25위를 차지했다. 지방 비평준화 지역을 제외하고 서울 지역에서만 따지면 7위, 14위였다.
여의도고 총동문회 관계자는 “1980년대 중후반 한창때에도 경기고, 서울고 등 강남 고교에 비해 3, 4학급씩 적었지만 서울대, 연·고대 진학생 수는 비슷했으며, 의대나 법대 진학자 수만 따지면 오히려 많았다”고 말했다.
여의도고 졸업생 중에는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주원석 미디어윌 대표이사, 이선용 삼성전자 상무, 이남우 메릴린치 전무, 송시몬 주연테크 사장, 황우성 서울제약 사장, 정재훈 삼성서울병원 교수, 박찬기 가톨릭대 의대 교수, 봉욱 대검찰청 특수수사과장 등 특히 경제인, 법조인, 의사, 교수가 된 경우가 많다.
여의도고는 올해까지 3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인’에 해당하는 인물만 올린다는 ‘중앙일보’ 인물정보에는 163명의 여의도고 출신 인사가 등재돼 있다. 1973년에 함께 개교한 8학군의 상문고(110명), 영동고(144명) 출신보다 숫자가 다소 많은데, 이는 지역 특성상 다른 학교들과 달리 문화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게 이 학교 동문들의 말이다. 방송인 임백천·심형래·손지창·김자영씨, 영화배우 신현준·최성국씨, 미스코리아 김혜리씨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발간한 ‘한국교육사’ 연표에 따르면 1982년 8월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거주지를 속이고 입학 한 여의도고교 1년생 57명에 대해 입학취소 결정을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의도초-여의도중-여의도고로 이어지는, 공립학교로서는 이례적인 동계(同系) 진학 양태도 ‘특수 학군 조성’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중반에는 일정 비율의 여의도 거주 학생들을 마포고교로 배정한 적도 있으나, 이 조치가 여의도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자 이후부터는 아예 영등포구 다른 동의 학생들을 여의도 학교로 배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여의도에 거주하는 10∼19세의 연령별 평균인구는 360여 명씩으로, 앞으로도 여의도 내에 일정 규모 이상의 학원이 들어서기엔 수익성이 낮다. 한강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인근 영등포, 동작구 지역 학생들을 흡수하기 어려운 점도 학원가 형성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상주인구의 추가 유입없이 여의도가 예전처럼 ‘교육도시’로 이름을 날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