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북중 국경지대에서 만난 북한 마약상

“돈 되는 물건은 마약뿐, 구매자는 한국인…국가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나”

  • 김형덕 남북문제 평론가

    입력2006-11-07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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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24일 검찰은 중국 단둥(丹東)에서 인천항을 통해 히로뽕 1.8㎏을 밀반입해 유통시키려 한 혐의로 유모(46)씨 등 탈북자 4명을 구속 기소하고 히로뽕을 모두 압수했다고 밝혔다. 현지 마약총책인 박모씨는 북한 신의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검찰의 발표. 북한산 마약이 심각한 국제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탈북해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형덕씨가 지난 9월 북중 국경지대에서 만난 한 마약상의 사례를 통해 북한산 마약의 실태와 유통경로를 들여다본다.
    북중 국경지대에서 만난 북한 마약상
    필자는 9월10일부터 2주일에 걸쳐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애초의 목적은 두만강 하류를 시작으로 압록강 하류까지 돌아보며 최근의 북한사회 전반을 엿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서 행로는 크게 바뀌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북한 상인의 마약밀수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중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해 국경지역에서 밀무역을 하는 북한 상인 일부가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북한산 마약을, 그것도 한국인에게 판매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 중국산 마약이 대거 반입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마약은 대부분 중국산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북한산으로 확증된 적은 없다. 일부에서 북한산 마약의 국내 반입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말 그대로 가능성에 머물렀다. 반면 북한에도 마약 복용자가 있다는 사실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한 바 있다. 필자가 여행 하면서 만난 마약상의 움직임과 판매과정은 북한산 마약이 한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이상 가능성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

    쉴새없이 넘나드는 북한 주민들

    필자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다롄(大連)으로 향한 것은 9월10일이다. 다롄에서 하루를 묵고 난 다음날 오전 다롄발 옌지(延吉)행 열차에 올라 22시간 만에 옌지에 도착했다. 옌지에서 일단 하루를 더 묵으며 두만강 하류인 훈춘(琿春)으로 가는 교통편을 물색했다. 지인의 협조로 승용차를 이용, 훈춘을 지나 북·중·러 국경지대인 팡촨(防川)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팡촨으로 가는 길은 계속해서 북한이나 러시아 국경과 맞닿았고, 북한 나진으로 가는 철로와 도로가 이어졌다. 취안허 국경세관은 국가공휴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늘 통관이 가능한 곳인데도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 한산했다. 팡촨의 중국측 전망대에서 바라본 러시아와 북한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훈춘, 투먼(圖們), 허룽(和龍), 룽징(龍井)을 거치는 두만강 상류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길에서 만난 국경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최근 2~3년 새 북한 주민의 불법월경이나 탈북이 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1995년 대기근 이전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필자의 눈에도 탈북자는 현저히 줄어든 것이 역력해 보였다. 2004년 이전만 해도 북중 국경지대 농촌지역에서 암암리에 수소문을 하면 탈북주민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힘들었다.

    반면 북한 주민이 당국의 공식허가를 받고 중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늘어난 듯했다. 최근 북한의 친척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들은 북한의 실정에 대해 한마디로 “많이 개방됐다”고 말했다. 시장이 활성화해 장사문화가 발달하면서, 중국에 친척이 있음을 입증하는 편지나 서류를 구비하고 약간의 돈을 내면 중국방문을 허가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친척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요식 절차일 뿐, 관건은 뇌물을 어느 정도 바치는가와 가족 중에 남한으로 넘어간 탈북자가 있는지 여부라고 했다.

    창바이-혜산 국경지대의 풍경

    싼허(三合)에서 두만강 상류로의 여정을 마감한 필자는 압록강의 시발점인 창바이(長白)현으로 향했다. 창바이현과 함경남도 혜산을 오가는 물자와 인원을 관리하는 북한 세관 바로 옆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혜산과 마주한 창바이현은 북중 국경지대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북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빨래하러 나온 북한 주민과 직접 대화가 가능할 정도.

    강변을 지켜보던 필자의 카메라에 재미있는 광경이 포착됐다. 3인조로 근무 중이던 북한 병사 중 한 명이 갑자기 무기를 동료에게 맡기고 옷을 벗은 채 중국측으로 건너와 조선족 주민이 건네는 아이스크림을 받아가는 게 아닌가. 옆에 있던 한 조선족 사내는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조선족은 밀수꾼이고, 물건을 통과시켜주는 북측 군인들이 원하는 것을 사다가 전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낮에 근무 중인 병사가 국경을 넘어와 물건을 받아갈 정도라면 야간에 밀수품을 넘겨주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을 터였다.

    강 옆의 집 앞에는 트랙터 타이어와 널빤지, 밧줄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보트가 세워져 있었다. 밤에 사람이나 물건을 북한쪽에서 가져오거나 내보낼 때 사용한다고 했다. 그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깃들자 다시 압록강으로 나갔다. 강기슭에서 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북쪽과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었다. 강 건너 밀수품을 보낼 북측 초소지점과 시간 등을 상의하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밀수품을 가져오고 있다”고 태연스럽게 답했다. 그러면서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자신은 북쪽 사람이라며 접근했다. 그렇지만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검은색 점퍼와 앞이 긴 끈 없는 검은색 구두를 신은 모습이 영락없는 중국인이었다. 내가 다시 “진짜 북한인이냐?”고 묻자, 그는 가로등 밑으로 나를 이끌고 가서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줬다. 분명 북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중국 체류기한을 넘겨 불법체류 중이라고 했다. 또한 북한사람처럼 보이면 중국인은 물론 조선족마저 무시하기 때문에 중국인처럼 보이는 게 좋다고 했다. 무엇을 밀수하는지 묻자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다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뭐 요구되는(필요한) 것 있냐”고 물었다. 필자는 MP3 플레이어의 녹음단추를 조용히 눌렀다.

    “빌린 돈 갚으려면 ‘약장사’ 불가피”

    필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지금은 작업(밀수) 중이니 끝내고 나서 자세히 말해주겠다”고 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내 숙소로 오겠다는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난 후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그는 호텔에 나타났다.

    그의 공식적인 중국여행 목적은 옌볜의 모 도시에 거주하는 삼촌과 친척 방문. 그게 벌써 1년 전이었다는 것. 물론 실제 목적은 돈벌이였다. 약간의 물건을 강을 통해 밀수했지만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아 체류기한을 훨씬 넘긴 지금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요 장사품목은 유화나 고전화(古傳畵), 도자기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물건을 사는 고객은 대부분 한국인이지만 조선족 브로커가 중개하기 때문에 직접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고 했다. 북한 밀무역상이라면 누구나 남한 사람들과 직접 거래하기를 원하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오늘 건너온 물건은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내 신분을 확실히 알기 전에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여권을 보여주고 북한 출신임을 알려주자 그제야 그도 마음을 열었다. 그가 내보인 통행증은 그가 북한 정부기관 직원(우리로 치면 공무원)임을 보여줬다.

    그는 가져온 물건이 ‘약’이라고 했다. 확인해보니 그가 말한 약이란 고체 형태의 메스암페타민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히로뽕. 처음에는 산삼이나 보약인 줄 알았던 필자는 마약이란 사실을 알고 적잖게 놀랐다. 그가 왜 이런 위험한 물건에 손을 대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처음엔 장사를 해볼 요량으로 넘어왔지만, 어디 뜻대로 되나? 중국으로 오면서 빌린 돈의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보면 돈 되는 물건을 찾게 되는데, 북한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갖고 나오면 목돈이 될 만한 품목 중 으뜸이 약이야.”

    이번에 그가 가져온 것은 히로뽕으로 제조하는 중간단계의 약물로, 품질이 고급으로 나오면 중국 돈으로 5만위안(한화 600만원), 품질이 낮은 것으로 판정되면 3만위안(한화 360만원)을 받기로 돼 있다고 했다. 거래장소는 옌지. 구매자는 한국인이지만 중간에 조선족 브로커가 있단다. 브로커를 제치고 단독으로(직접) 거래하고 싶지만, 그건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했다. 이번 일이 워낙 위험한 일이라 친구에게 며칠에 한 번씩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했단다. 만일 갑자기 전화를 안 받고 연락이 두절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알려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북중 국경지대에서 만난 북한 마약상
    그는 돈을 벌려면 마약밀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뿐인 것도 아니고, 중국을 드나들며 장사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목돈을 만들 수 있는 품목은 마약뿐이라는 건 상식에 가깝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진 빚 8만위안(한화 960만원)만 갚을 수 있다면 약을 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북한의 배급사정은 부정기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했다. 엄청난 탄압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왔다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에 귀의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시간 반 남짓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그와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이튿날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물건은 쉽게 구한다”

    이튿날 창바이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작은 검은색 가방과 포장용 테이프로 여러 차례 휘감은 누런색 포장박스를 들고 있었다. 예의 그 ‘물건’이었다.

    그는 옌지까지 차를 렌트해 갈 생각이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1500위안 정도의 렌트 비용은 감수할 수 있다는 자세였다. 나는 대중교통이 승용차보다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며 버스로 기차역까지 가자고 제안했다. 기차역까지 130km, 거기서 옌지까지는 다시 기차를 타고 300~400km를 더 가야 한다.

    그에게 “북에도 마약 복용자나 중독자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은 드물다”고 했다. 다만 몇몇 ‘놀새’(남한의 오렌지족에 해당)가 복용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약을 누가 제조하느냐”고 묻자 정부기관 차원에서 해외에 밀수하는 약은 각 지방 제약회사에서 만들고, 개인 차원의 밀매품은 제약회사에서 기술을 배운 개인이 제조한다고 했다.

    정부기관은 주로 공해상에서 일본쪽 조직들과 거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마약을 제조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함경남도 나진의 한 제약공장은 국제적인 문제가 되어 폐쇄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공장 출신들이 개인적으로 기계를 설치해 다시 약을 제조하고 있다는 것. ‘정부도 하는데 왜 개인은 안 되나’ 하는 것이 약장수(마약밀매업자)들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혜산에만 가도 마약을 구입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고, 다만 중국측에서 구매자를 찾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이번에 자신이 찾은 거래자도 6개월 이상 수소문한 끝에 비로소 만났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도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가정 이야기며 직업과 군경력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었다. “이제라도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은 없냐”고 묻자 그는 그럼 자신이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엄청난 빚 때문에 어차피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됐고 중국에서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차라리 한국에 가서 새 삶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의 삶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 특히 그러자면 어떤 일이 있어도 마약 장사만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마약범죄에 대해 단호하기는 미국, 일본뿐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도 마찬가지며 특히 중국 정부는 마약사범에 대해 총살을 원칙으로 할 만큼 강경하고, 한국 정부도 마약범죄 전과가 있는 탈북자라면 망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총살’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그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분명 이런 일을 처음 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드리운 북한산 마약의 그림자

    어느새 버스는 쑹장허(宋江河)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표를 산 다음 그에게 다시 한번 마약장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내겐 그에게 새로운 선택을 제공할 힘이 없었다. 안타까웠다. 최종 구매자라는 한국인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위험할 것 같아 그와의 동행을 이쯤에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도착한 기차를 타면서 그와 작별했다.

    그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퉁화(通化)를 거쳐 지린성 지안시 소재 광개토왕릉을 관광하는 것을 끝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원래는 압록강 하류인 단둥까지 돌아보고자 했지만 문득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북한에 흘러들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물결, 먹고 살 것을 찾아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마약장사에까지 손대게 된 현실을 전하고 싶었다. 북한산 마약이 국경을 넘고 중국 전역을 흘러다니는 현실에서, 한국 역시 안전지대일 수 없음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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