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위직 판·검사의 변호사 개업 제한해야
- 판사 승진제도 없애고 대법원장은 인사권 내놓아야
- 특수부 밀실수사에서 브로커 연결고리 생긴다
- ‘서류재판’ 밀어내고 국민에 귀 기울이는 ‘구술재판’으로
왼쪽부터 방희선변호사, 박인환 변호사, 임지봉교수.
▼ 일시 : 2006년 10월2일
▼ 장소 :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6층 회의실
▼ 참석자 : 방희선(方熙宣) 변호사, 박인환(朴仁煥) 변호사, 임지봉(林智奉) 서강대 교수
▼ 사회 : 신동아 조성식 기자
사회 : 브로커 김홍수 사건으로 법조계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가운데 이용훈 대법원장 발언으로 법조계가 시끄러웠습니다. 검찰과 변협은 대법원장이 자신들을 비하하고 모욕했다고 분개했습니다. 상당수 언론도 대법원장으로서 신중치 못한 발언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발언의 진의야 어떻든 이번 사태는 바람직한 사법개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현 사법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법조비리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사법개혁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건지 국민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개략적으로 짚어보는 것으로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발언이 논란에 휩싸인 원인은, 겉보기에는 거친 표현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공판중심주의로 대표되는 사법개혁 방안을 둘러싼 법조 기관들의 직역(職域)이기주의 대립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논란이 된 대법원장의 발언은 광주, 대구, 대전 세 고등·지방법원에서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광주에서는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사람을 속여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지요. 변호사 처지에서는 매우 기분 나쁜 얘기일 텐데 이 발언을 접한 느낌이 어땠습니까.
방희선 변호사 : 저는 대법원장 발언의 진의를 알기 위해 그분이 광주고등·지방법원, 대전고등·지방법원을 순시하면서 한 얘기의 전문을 살펴봤어요. 언론에서는 직업간 대립으로 모는데 그건 지극히 피상적인 관점입니다. 발언 전문을 읽어보고 제가 느낀 것은 대법원장이 시기적으로나 내용에서나 상당히 부적절하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겁니다. 그 뒤에 서울고등·중앙지방법원에서 해명한다면서 ‘유감’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들끓는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한 수사(修辭)였고 실제로는 자기의 발언을 재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았어요.
갑자기 공판중심주의라는 것을 들고 나와 이슈로 삼았는데, 그 배경과 일련의 흐름을 보건대 한 나라의 사법부 수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정치적인 언동과 처신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요 근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립과 갈등, 분열을 조장하는 편 가르기 술책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마키아벨리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식으로 이상한 화제를 던져 이쪽저쪽 편을 갈라 싸우게 하고 그 과정에 내 편은 내부 단속을 하고 결속시키면서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방어로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법률가로서, 특히 대법원장으로서는 매우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는 거죠.
브로커와 판사의 만남
왜 이 시점에 그런 발언을 했느냐. 윤상림, 김홍수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법조 브로커 사건에 판사·검사가 연루되고 심지어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구속되는 끔찍한 사태에 이르러 어떻게 하면 법조계가 실추된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에 갑자기 대법원장이 법원과 검찰, 변호사 간에 싸움을 붙이는 이상한 화두를 던졌어요. 윤상림이나 김홍수 사건은 대법원장의 말씀과 달리 검찰의 수사방식이나 공소유지가 잘못됐다거나 변호사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법조삼륜의 관계가 잘못돼서 발생한 게 아닙니다. 그 두 사건의 공통점은 변호사나 검사와 관계없이 저질의 브로커가 판사와 직접 만나 사건을 의논하는 이상한 연결고리예요.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대법원장이 해야 할 일은 법원이 그 지경에 이른 원인, 즉 음습한 브로커와 뒷거래를 하는 판사의 타락한 행태에 대해 국민 앞에 반성하고 법원 윤리를 강화하는 등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런데 갑자기 그와는 관계없는 공판제도, 변론제도를 들고 나와 사태의 본질을 가려버렸습니다. 검사와 변호사가 하는 일은 엉터리고 법원이 최고라는, 판사에 대한 격려성 발언으로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대법원장이 할 말입니까. 판사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고 공판에 문제가 많으니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며 초점을 엉뚱한 쪽으로 돌린 거예요.
박인환 변호사 : 저도 처음 그 발언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공판중심주의는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검찰만 하더라도 증거분리제출 등 공판중심주의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어요. 민사재판의 구술변론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사는 ‘미루어 조진다’
그런데 마치 변호사업계나 검찰이 그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표현하면서 법원이 주도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전부인 양 현실을 호도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공판중심주의나 구술변론주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법원 쪽에서 물적, 인적 시설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나아가 판사들이 법원 편의주의에 빠져 사건이 많다는 핑계로 그런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이제 와서 마치 검찰이나 변호사가 협조하지 않아 공판중심주의나 구술주의가 안 됐다고 하는, 그 이상한 논리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 전문적인 분야는 일반 국민은 잘 몰라요. 공판중심주의? 구술주의?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그러면 이때까지 우리 재판이 밀실에서 이뤄졌습니까? 아닙니다. 지금도 무죄를 다투는 사건의 경우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느라 (1심 법정구속기간인) 6개월 안에 재판이 끝나지 않습니다. 6개월이 지나면 보석으로 풀어준 다음 재판을 계속합니다. 1심에만 2년, 3년씩 걸리는 사건이 수두룩해요.
실상이 이런데도 마치 모든 재판이 2초, 3초 만에 끝나는 것처럼 국민에게 선동적으로 얘기한 것은 정말 잘못된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도 사안에 따라서는 피의자가 법정에서 할 말 다하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자백하는데 거기에 뭘 더 하자는 겁니까. 한 가지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번에 대법원장이 한 말씀인데, 검사는 조서를 꾸미고 -‘꾸민다’는 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뜻이죠 - 또 변호사는… 뭐라 했지요?
사회 : ‘산다’고 했죠.
박인환 : 변호사에 대해 물건처럼 ‘산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토록 법관생활을 오래 한 대법원장이 왜 가장 중요한 말을 빼먹었는지…. 옛말에 ‘판사는 미루어 조진다’고 했습니다. 법조계에선 다 아는 얘기잖아요. 경찰은 때려서 조지고, 검사는 불러서 조지고,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직접 사법 서비스를 하는 판사는 미루어 조진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자기들이 미루어 조져놓고 이제 와서는 재판을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검사와 변호사가) 도와주지 않는다? 저로선 납득할 수 없어요. 이 사태의 핵심은 국민이 전문적인 법률용어나 법조계 실태를 모르는 걸 악용해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판사 뒷조사’에 대한 불만?
사회 : 여기서 잠깐 대법원장이 지방법원을 순회하면서 한 발언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광주에서는 아까 언급한 대로 변호사 관련 발언이 주로 문제가 됐는데, ‘법조삼륜’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냈죠. 대구에서는 구속영장 발부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얘기했고….
박인환 : 다 맞는 말이지요.
사회 : 대전에서는 ‘밀실’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죠. 법정진술이 검찰진술보다 상당히 우위에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검찰수사기록을 낮추보는 듯한 얘기를 했어요.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고.
방희선 : 단순히 표현이 거칠거나 말하다보니 실수한 차원이 아닌 것 같아요. 법원을 돌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한 발언입니다. 사례로 든 것마다 뭔가를 비꼬아서 한 얘기입니다. 예컨대 “압수수색영장을 왜 함부로 발부하느냐. 이렇게 몇 년씩 남의 계좌를 조사하고 뒷조사하면 여기 있는 판사들이나 나나 남아나겠느냐”고 말한 것은 근래 검찰이 브로커사건을 수사하면서 판사 뒷조사를 한 것을 뒤집어 얘기한 겁니다.
사회 : 법조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임 교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시각이 좀 다를 수도 있을 듯싶은데요.
방희선 : 사법제도를 고치는 것은 국가적인 과제입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문제점을 모두 드러낸 다음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의하고 합의해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 사개추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원들이 서로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어떤 문제를 얘기할 때 자기가 알지 못하는 점을 상대방이 아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점을 감안해 서로 맞춰가면서 논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개혁이고 거기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반(反)개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이분법적 사고가 횡행했어요. 그러니 대화가 안 되고 싸움만 나는 거죠.
예컨대 법원측에서 법정진술만이 증거라고 주장하니 검찰이 반발했죠. 그럼 우리는 어떻게 수사하라는 말이냐, 공소유지를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하고. 그런데 이건 시비 대상이 아니거든요. 상대 의견을 반영해 정반합의 통합적인 자세로 토론했다면 극한대립을 피하고 좀더 발전적인 방안이 나왔을 겁니다. 그러한 노력을 법조 수장들이 이끌어줘야 합니다. 나 잘났다고 상대방을 치지 말고.
박인환 : 사법개혁 방향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참여정부 출범시 이미 결론이 나와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로스쿨이나 배심·참심제, 나아가 참여민주주의, 얼마나 좋은 슬로건입니까? 저는 이것이야말로 선동정치의 표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왜 다른 나라에서는 하지 않습니까.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어요. 일본도 시행착오에 허덕이고 있고요. 덮어놓고 미국식이라면 좋게 여기는 풍토가 문제입니다.
일반 국민은 먹고살기에도 바쁩니다. 왜 인류가 대의제, 간접민주제를 만들었겠습니까.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국민은 생업에 종사하는 게 바람직해서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국민에게 정치에 직접 참여해라, 사법에도 참여해라 하면 듣기엔 좋은 얘기 같지만 실은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거죠. 사법개혁은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이해집단 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감을 유도하고 나아가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한국식 사법제도의 좋은 점을 하루아침에 버리려 하지 말고.
임지봉 : 사법제도개혁위원회(사개위)에서 공판중심주의가 집중적으로 논의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과거에는 재판과정보다 수사과정을 중시하는 조서중심주의였습니다. 특히 군사정권과 같은 권위주의체제에서는 법원과 검찰이 정권에 복무하면서 고문 등으로 강압적인 수사를 하고 그것을 조서로 받아내 그 조서에 기초해 기소하고 거의 자동적으로 유죄를 선고하는 그런 반민주적인 소송구조였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즉 서류재판주의를 밀어내기 위해 공판중심주의가 논의됐다는 것을 국민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법권력은 ‘그들만의 놀음’
사개위에는 법조 세 직역을 비롯해 학계와 시민단체 대표도 참여했습니다. 사개위에서 사법개혁 방안을 짜고 사개추위에서 법안으로 만들었는데, 지금 국회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대법원장이 좀 거친 표현으로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강조하자 법조 세 직역간 자존심 싸움, 감정싸움이 벌어진 겁니다. 지금 논란이 되는 몇 가지 쟁점에는 법조 세 직역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뿐 국민은 빠져 있습니다. 저는 대법원장 발언의 취지가 무엇이든, 정치적인 의도를 깔고 있든 없든,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박 변호사께서 사개추위 안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거기에 대한 반대 의견은 없습니까.
임지봉 : 여러 가지 사법개혁안이 갑자기 나온 게 아닙니다. 사개위만 해도 1년 넘게 치열한 논의를 벌였는데, 어떤 점에서는 법조 세 직역간 타협도 하면서 개선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사개위 개혁안은 다 사법민주화 차원에서 마련된 것입니다. 참·배심제가 무엇입니까. 이제껏 국민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전문법조인들, 즉 판·검사나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법절차가 진행되어 왔단 말이지요. 그래서 국민도 배심원이나 참심원으로 직접 재판에 참여해 사법과정에 국민의 뜻을 담아내자는 것이죠. 그것이 민주화된 사법부 아니겠습니까. 사법권력이라는 것도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법권력은 그들만의 놀음이었습니다. 당사자인 국민은 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고요.
방희선 : 임 교수님 말씀을 가만히 들으니 이제까지의 사법개혁논의가 왜 이상한 방향으로 빠졌는지 그 원인을 알 것 같습니다. 개혁은 현실을 개선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간경변 환자를 에이즈 환자라고 주장하면서 온갖 처방을 하겠다고 나서면 사람 잡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 사개추위에 비전문가가 많이 들어갔어요. 예컨대 형사재판의 공판중심주의가 이토록 화두가 된 것은 재판을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상상만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맞춰 뭔가를 만들려 했기 때문이에요. 재판 전에 미리 자료를 훑어보면 안 된다는 것은 재판의 철칙입니다. 당사자주의의 핵심이죠. 민사도 똑같아요. 그런데 사개추위 참여자들은 민사재판의 경우 도리어 미리 소송자료를 다 보고 쟁점을 잡아야 한다고 해요.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민사재판도 오로지 소장과 답변서만 보고 들어가 당사자들의 법정공방을 지켜보는 게 원칙입니다.
형사재판도, 제가 판사를 하던 1980년대에만 해도 수사기록은 본 적이 없어요. (검사가) 공소장만 제출했어요. 그 공소장도 제대로 못 읽고 재판에 들어가는 게 현실이에요. 법정에서 피고인이 물으면 그때 판사도 같이 봅니다. 학자들이 형사재판 현장을 봐야 실상을 파악할 수 있어요.
미리 답 내놓고 꿰맞추지 말아야
사회 : 사개추위 안에 대해 비판적이신데, 우리나라가 배심제나 참심제를 도입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신다면.
방희선 :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 된다, 안 된다 답을 미리 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배심제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만나본 판사의 대부분은 배심제에 대해 냉소적이었습니다. 쇼 경연장이라고. 실제로 미국 형사재판의 90% 이상은 배심 없이 재판이 끝납니다. 독일식 참심제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미리 답을 딱 던져놓고 그것에 맞춰 논의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툭 던져놓고는 싸움을 붙인 셈이에요. 각자 코끼리의 일부만 보고 얘기하면 싸움밖에 안 된다는 것이죠.
임지봉 : 아니, 몇 년 전부터 사개위와 사개추위에서 많은 법률전문가가 논의해온 것을 누가 툭 던져놓고 싸움만 붙인 거라니요. 그건 아니거든요. 토론하고 설득해서 어느 정도 합의된 것을 법률안으로 만들어 내놓은 것입니다.
박인환 : 법조비리나 법조윤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사법개혁 논의를 다시 하면 좋겠어요, 제도만 얘기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고위법관과 고위검사를 지낸 경우엔 무엇무엇을 하지 말자든가. 이번 사태만 하더라도 대법원장이, 판사들이 반성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공판중심주의 하자는 말만 하니 시끄러워진 겁니다. 나는 그것이 참 섭섭해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중범죄 재판의 오심률은 세계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참심, 배심한다고 오심이 줄어드는 건 아니거든요.
방희선 : 저는 사실 어느 쪽에도 서 있지 않은데 사법개혁에 대해 논의하는 걸 지켜보니 서로 한쪽 얘기만 하더라고요. 사법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앉아서 이상한 보고서를 써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법개혁을 논하고 싶다면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을 만들어 대법원장이나 대법원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참여토록 해야 합니다.
사회 : 사법개혁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확인하는 유익한 좌담회가 된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세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이용훈 대법원장이 9월26일 서울고법·중앙지법을 방문해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저도 언론보도와 기자들을 통해 (논란이 된) 대법원장 발언의 앞뒤 문맥을 알아보았는데, 대법원장 발언의 취지는 국민의 사법불신 해소라고 봅니다. 사법불신 해소를 위한 1차 과제가 바로 공판중심주의라는 것을 강조하는 와중에 그런 거친 표현들이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말은 하나의 문맥 속에서 파악돼야지, 어떤 구절만 딱 끄집어내 문제 삼기 시작하면 소모적인 감정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정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발언이라는 시각도 있는 모양인데, 그런 식으로 보면 정말 감정싸움, 정치싸움이 되는 것이죠.
저는 대법원장 말의 핵심은 공판중심주의 강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장은 취임 초부터 사법불신을 위한 1차 과제가 공판중심주의임을 여러 번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김홍수 법조 브로커 사건으로 조관행 고등법원 부장판사 비리가 터졌을 때도 법원장회의에서 일종의 대(對)국민사과를 하면서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천명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공판중심주의 강화가 대법원장의 주된 정책과제 중 하나라고 여기고 그것을 법원순시를 통해 법관들에게 알리고 독려하는 과정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를 들어,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그 의미를 동아일보에서 아주 잘 파악했던데 - 앞뒤 문맥을 보면 형사재판이 아니라 민사재판에서 형사기록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공판중심주의 강화라는 것은 조서재판이나 서류재판을 없애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료의식보다 독립의식이 강해야
과거에는 공판정에서 나오는 양 당사자의 진술이나 신문, 증거조사보다는 검사의 수사단계에서 생산된 수사기록이 유·무죄에 대한 법관의 심증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검찰 조서로 이미 유·무죄가 대략 결정된 상태에서 공판은 그것을 판사가 확인하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모든 문제를 국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국민이 검사에게 조사받을 때는 아무래도 좀 위축되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자기 할 말을 다 못했다가 공판이 열려 판사 앞에 서니 하소연이 마구 터져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조서재판, 서류재판에서는 이미 판사의 심증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판사가 (피고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판사가 진술을 가로막는 경우도 많았고요. 국민인 피고인은 재판이 자신한테 유리하게 굴러가는지 불리하게 굴러가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검사나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로 이미 재판의 결론이 나온 것 같고. 대법원장은 그것이 바로 사법불신을 일으키는 주범이라 본 것 같습니다. 공판중심주의는 재판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국민이 재판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자기의 이야기를 아주 속시원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봅니다.
또한 대법원장의 발언 취지는, 법조삼륜이라 해서 판·검사와 변호사 간에 지나치게 동료의식이 강조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마는, 사법고시 합격자를 사법연수원에 다 몰아넣고 똑같이 교육시켜 은연중에 끈끈한 동료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법정에서 판사는 중립적인 판단자이고 검사와 변호사는 당사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3자는 동료의식보다는 독립의식으로 무장돼 있어야 하는데, 특유의 법조문화 때문에 조화와 협력 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강조된 반면 적절한 견제를 통한 긴장 관계가 소홀히 여겨진 면이 있었다는 거죠.
방희선 :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 같네요. 대법원장이 법조삼륜을 언급한 취지는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판·검사, 변호사)가 한 틀에서 놀다가 폐쇄적인 집단이 됐다는 얘기가 아니라 법원 직원들에게 법원관료주의를 심어주기 위해 한 말입니다. 즉 ‘모든 재판은 우리 법원이 하는 거지, 그까짓 변호사, 검사가 뭐란 말이야’ ‘어디까지나 법원이 중심이고 검찰과 변호사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와 동격이냐, 같이 놀 수준이 못 된다’고 잘라 말한 것입니다.
수사기록 보고 예단하지 않는다
전체 발언 내용을 보면 그런 맥락이에요. 또 ‘내가 변호사를 해봐서 아는데 변호사가 쓴 것은 전부 장난치고 속여먹으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건 법률소비자인 국민을 모독하는 말이에요. 변호사한테 돈 주면서 ‘판사 만나 밥 먹고 술 먹고 접대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변론 잘해달라, 서류 잘 써달라’고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임 교수께서 대법원장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사법개혁을) 독려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은 좋은데, (대법원장 발언의) 잘못도 지적해야 합니다.
대법원장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공판중심주의가 아니라 오럴 플리딩(oral pleading·구술변론)입니다. 즉 법정에서 당사자가 ‘나도 판사와 말 좀 하고 살자’는 것인데, 미국 법원에서 실시하는 것이고 우리도 법에 민사구술변론주의라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의 재판은 형사소송법상 수십년 동안 공판중심주의로 진행돼왔어요. 공판중심주의라는 것은 공개된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 당사자가 출석해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필요한 주장을 하고 증거를 제시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대법원장 말대로 이제껏 공판중심주의를 안 했다면, 안가(安家)나 밀실에서 검사와 변호사와 판사가 몰래 만나 합의를 봐왔다는 얘기입니까? 그런 재판은 없습니다. 다만 구술변론의 기회가 적었다는 것뿐이지요. 우리 재판 현실상, 인력과 시간 때문에. 지금 임 교수께서 아주 위험한 발언을 하셨어요. (수사)기록을 보고 예단한다고 그러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박인환 : 기록 안 봅니다.
방희선 : 제가 판사생활을 해봤잖아요. 그건 이상한 말입니다.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도 허황된 말이에요. 형사재판을 하는 판사의 경우 한 기일에 하루 수십건씩 넘어오는데 공소장 외에는 볼 것이 없어요. 공소장 일본주의를 선언할 필요가 없어요. 판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사기록 안 봅니다. 볼 시간도 없고, 볼 필요도 없고. 조서재판이라는 말도 그래요. 서증도 증거이고 물증도 증거입니다. 조서를 제출해 동의하면 증거가 되고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가 안 됩니다.
이렇게 공판중심주의를 해왔는데, 대법원장은 거기에 구술변론주의를 갖다 붙여 개념을 혼동하게 했어요. 미국식 구술변론은, 민사(재판)에서도 소장진술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준비서면을 받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글자 그대로, 말로 하는 것입니다. 오전에 한 건 하고 오후에 두 건 하면 하루가 끝납니다. 그렇다면 미국식 구술변론주의가 우리 법조현실에서 가능한가. 우리 재판구조상 힘들기 때문에 그동안 못한 것입니다. 그것을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이는 누가 누구를 탓해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적인 과제로 선정해 법원과 검찰, 변호사협회, 학계 관계자가 모여 법정과 사법체제를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매사 구술변론주의가 맞는가
사회 : 오늘 좌담회에 판·검사 출신 변호사 두 분을 모신 것은, 이 대법원장 발언의 진의를 떠나 우리가 선진국형의 사법제도개혁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분이 재조(在曹)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사법개혁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대법원장 발언에 대한 판단은 이 정도로 하죠. 박 변호사께서 검사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관행이나 재판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 방 변호사께서는 판사 경험을 바탕으로 해주시고요.
박인환 : 사실 판사들이 서류를 못 봅니다. 오히려 그게 안타까워요. 또 바깥에서 변호사가 판사와 만난다는데, 연수원 출신 젊은 변호사는 판사 근처에도 못 갑니다. 5년 동안 60억원을 버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나 (판사실) 문 두드리고 들어가는 거지, 연수원 출신으로 사무실 유지하기도 힘든 젊은 변호사가 판·검사 찾아가서 접대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방희선 : 저도 판사 만난 지 2~3년 됐어요.
박인환 : 저는 아예 만나지를 않는데, 이 대법원장이 과거 변호사 시절에(판사를) 만나놓고 마치 모든 변호사가 그러는 것처럼….
사회 : 그런 얘기는 나중에 전관(前官)예우 등 법조비리를 논할 때 다시 하도록 하고, 지금은 사법개혁 방향에 초점을 맞췄으면 합니다.
방희선 : 사법개혁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법원이 정치적인 외풍이나 권력의 압력에 흔들리고 않고 올바른 법의 수호자로 남는 거시적인 목표로,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인사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법관이 제자리를 찾고 과거와 같이 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인가. 이에 대한 대법원장의 뼈아픈 선언이 있어야 합니다.
대한변협이 대법원장 사퇴를 주장하자 9월26일 법원노조 서울중앙·가정지부가 이를 반박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대한변협을 공격했다.
그리고 매사 구술변론주의가 맞느냐. 지금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서면주의입니다. 그렇지만 구술변론을 하지 않는다고 헌재가 불신받는 일은 없어요. 국민이 불만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의사소통이 잘 되고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사건, 대법관 출신이 독점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하급법원과 달리 대법원에서는 서면심리만 있고 구술변론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법원 재판에는 변호사가 참석할 수도 없습니다. 일반 변호사는 대법관 면담도 안 됩니다. 대법원 사건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만이 맡습니다. 이들이 비공식적으로 대법관을 만나 변론을 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대법원장이 균형감각이 있다면 구술변론주의와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기에 앞서 대법원 재판의 문제점부터 지적했어야 합니다.
박인환 : 국민이 모르고 있는 게 문제예요.
방희선 : 지금도 대법원은 전혀 (법정)심리를 하지 않습니다. 저도 대법원 사건을 맡아봤지만 상고이유서와 준비서면 써 내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대법원장한테 질문하고 싶어요. 대법원에서는 구두변론하지 말라고 법에 씌어 있습니까?
임지봉 : 공판중심주의의 핵심은 서류재판을 지양하자, 공판이 열리기 전에 작성된 수사기록에 의존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동의하시리라고 봅니다.
박인환 : 맞습니다.
임지봉 : 그런데 공판중심주의가 정착되려면 집중심리주의가 도입돼야 합니다. 공판이 열리면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재판이 한정 없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사법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또 공판중심주의 한다고 피의자가 검찰수사 단계에서는 전부 거짓말만 하고 재판정에서만 참말을 하겠다고 한다든지 법정에서 피고인이나 증인이 위증(僞證)을 일삼는다면 공판중심주의 도입취지가 무색해지고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공판중심주의로 가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많은 법관과 법정이 필요합니다.
박인환 : 비용을 누가 댑니까.
임지봉 : 국민의 세금으로 대야겠지요. 저는 공판중심주의를 사법의 민주화로 이해합니다. 법정 더 만들고 판사 더 뽑는 데는 그만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사법민주화에 따른 부담과 이익을 감안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 : 박 변호사께서 검사를 지낸 분의 관점에서 이번 대법원장 발언에 검사들이 왜 이렇게 분개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박인환 : 수사단계에서는 괜히 겁이 나니까 거짓말했다가 재판장에 오면 참말을 한다는 임 교수님의 전제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저의 검사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예컨대 정치인 뇌물사건을 보십시오. 검사 앞에서는 자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법정에 서면 전부 부인합니다. 그렇다면 부인하는 것이 진실입니까? 또 사기사건의 경우 제 경험으로는 사기꾼이 검사 앞에서 겁이 나서 자백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까 (임 교수께서) 위증에 대해 걱정했습니다만, 민사든 형사든 법정이 거짓말의 경연장이라는 것은 오히려 국민이 더 잘 압니다. 특히 민사재판의 구술변론주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원고측 증인은 100% 원고를 위해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피고측 증인은 100% 피고를 위해 증언합니다. 이처럼 검사와 판사는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모두의 허위진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재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검찰에서는 거짓자백을 하고 법원에서는 사실대로 말한다는 전제는 버려야 합니다. 정치인은 검찰에서도 법원에서도 자백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유죄판결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방희선 : 세상의 진실은 다양합니다. 경찰과 검찰에서 한 진술이 허구일 수도 있고 법원에서 한 진술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세 단계의 진술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마약밀매사건의 경우 현장에서 확보된 사진 등 물증이 있는데도 피의자가 억울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성폭력을 당한 아이가 ‘저 아저씨가 맞다’고 가리키는데도 피의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부인합니다.
이렇듯 당사자의 말은 증거력이 떨어지니 증인을 내세웁니다. 증인은 대체로 편들어주기 위해 나오는 사람입니다. 미국에서는 위증을 중죄로 다스립니다. 징역 5년에서 10년까지도 선고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명백히 짜고 거짓 증언한 사실이 드러나도 벌금 10만원, 20만원에 그칩니다. 이런 제도 아래서 어떻게 법정진술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위증죄 처벌 강화해야
또 ‘수사기관에서는 엉터리로 말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수사기관에서 허위진술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제도적 장치가 없어요. 이렇듯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민의 중지를 모아 전체적인 관점에서 어떤 제도를 채택하고 보완해야지 대법원장처럼 어느 한쪽을 후려치는 방식은 곤란하죠.
사회 : 대법원장의 사과로 법조 세 기관의 대립은 일단 진정된 양상입니다. 하지만 검찰이 증거서류 분리제출을 전면 실시하겠다고 공언해 또 다른 갈등의 조짐이 보입니다. 취지야 공판중심주의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그래. 한번 해보자’는 반발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임지봉 : 말씀하신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검찰의 증거서류 분리제출은 공판중심주의에 동참하는 행위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면 공판중심주의 실현이 굉장히 어려워지죠. 공판중심주의의 목표가 피고인의 방어권 강화인데 검찰이 증거서류를 내놓지 않으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이 곤란해지는 면도 있거든요. 물론 검찰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어요. 그런 게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확실한 공판중심주의를 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저는 이것을 힘겨루기라기보다는 공판중심주의 실현을 둘러싼 자연스러운 문제제기 과정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우려스러운 현상 가운데 하나는 변호사단체에서 변호사 시간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겁니다. 공판중심주의가 되면 한 변호사가 여러 개의 사건에 신경 쓸 수 없기 때문이죠. 한 사건에 집중적으로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상담에서 마지막 변론에 이르기까지 들인 시간을 계산해 돈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인데, 그렇게 되면 변호사 수임료가 올라가 국민의 사법서비스 이용 부담이 커질 수 있죠. 그런 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서로 대화해 슬기롭게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환 : 증거분리제출제도는 검찰이 1회 공판이 열리기 전까지는 공소장만 법원에 제출하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증거능력이 인정된 것만 분리해 순차적으로 제출하는 것입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고요. 증거조사를 하다보면 자연히 시간이 걸리게 되죠. 과연 우리 재판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우려스럽습니다.
또 한 가지, 변호사의 관점에서 증거분리제출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일본처럼 증거개시제도, 즉 첫 공판기일 전에 (피고인과 변호사가) 증거를 열람하고 등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검찰이) 증거를 움켜쥐고 있으면서 찔끔찔끔 하나씩 주면 재판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판사는 ‘미루어 조지게’ 됩니다. 사실 판사나 검사는 답답할 게 전혀 없습니다. 그저 갇혀 있는 피고인과 변호인만 답답하죠.
사법불신의 핵심, 전관예우
방희선 : 원래 우리 소송법에 따르면 수사기록을 내놓지 않게 되어 있어요. 증거로 채택돼야만 내놓는 것인데 그동안 재판이 복잡하고 힘드니까 판사가 검사에게 편의상 받은 것입니다. (증거를) 법원에서 가려보겠다며. 그런데 대법원장이 부적절한 발언을 하자 검찰이 ‘그렇다면 법대로 원칙대로 하겠다’고 대응한 것입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죠. 서로 고민해 발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놓고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겁니다.
수임료 문제도 그렇습니다. 미국도 과거에는 총액으로 받았는데 지금은 시간제가 대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법인은 10여 년 전 이미 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개인 변호사들도 수임료를 어떻게 받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두고 오래전부터 고민해왔어요. 결코 대법원장 발언에 시비를 거는 차원에서 거론한 게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1990년대만 하더라도 시민단체에서 시간제로 하라고 소리쳤어요. 왜 무조건 한 건에 300만~400만원을 받느냐고. 그런데 이제 시간제로만 하겠다고 하니 왜 시간제냐고 또 문제를 삼아요. 시간제로 한다고 무조건 비싸지는 게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 싼 변호사와 비싼 변호사의 간격이 커졌어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합니다.
사회 : 이제 법조비리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전관예우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용훈 대법원장이 서울고등·중앙지방법원에서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는 과정에 그 문제를 언급했지요. 또 법조 브로커 김홍수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검사가 자신이 수사했던 피의자를 불구속기소한 이유에 대해 법정에서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처음 맡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제이유그룹 사건 초기에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주수도 회장의 변호인으로 나선 것도 논란이 됐습니다. 나중에 담당검사가 “상당한 심적 부담을 느꼈다”고 고백했죠.
임지봉 : 전관예우 문제는 우리 법조의 가장 아픈 부분이지요. 그것 하나만으로도 국민의 사법불신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관에 대해 인지상정으로 조금 더 생각해줄 수는 있겠지만, 우리 법조의 경우 그것이 관행으로 굳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평생 법관’ 보장해야
그 원인은 아주 잘못된 인사제도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 법조에서는 제도적으로 평생 법관, 평생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판사의 경우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를 만들어 발탁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수문화의 폐해로 법관들이 서열을 이루고 있는데 동기나 후배가 고등부장이 되고 자기는 못 되면 분위기에 떠밀려 법복을 벗을 수밖에 없지요. 여기서 전관(前官)이 생겨나는 겁니다.
이 전관예우 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나오는 거죠. (재판에서) 꼭 이기고 싶다면 엄청난 돈을 주고라도 방금 법복을 벗은 전관을 찾아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과거에 (전관 변호사가) 소송에서 많이 이겼어요. 그것을 지켜본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야말로 돈이 힘이구나, 뛰어난 전관을 대리인으로 삼아야 이기겠구나, 하지 않겠어요?
재벌회장 뒤에서 가방 들고…
특히 고위직 판·검사를 지낸 분, 검사장급이나 부장판사급으로 계시던 분이 퇴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사라고 재벌회장 뒤에서 가방 들고 따라다니는 모습이 TV에 비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도 불법을 저지른 재벌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 된다고 외치던 분들아닙니까. 그러니 법조인에게 존경심이 생기겠습니까.
전관예우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법관과 검사의 인사제도를 크게 손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공판중심주의가 되면 아마 변호사님들, 변론 기법 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셔야 될 겁니다. 과거에는 그저 조서 잘 써 내고 서류 잘 써 내면 됐지만 앞으로는 법정에서 변론을 잘하는 게 관건이 되겠죠.
박인환 : 쇼를 해야지요.
임지봉 : 그야말로 쇼맨십도 필요하고요. 변론이 중요시되는 풍토에서는 전관에 대한 예우가 조금 줄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전관이 수임하면 대체로 결과가 좋았지만 이제는 전관이라 할지라도 공판정에서 변론을 잘 못하거나 증인이나 피고인 신문을 제대로 못하면 재판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뛰어난 변호사의 기준이 새로 정립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되면 전관예우 폐해가 어느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방희선 : 저는 전관예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변호사 개업지로 마지막 근무지역을 피했습니다. 임 교수께서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 제가 생각하는 전관예우의 문제는 법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고 국가적인 해결과제입니다. 국민생활의 모든 면에서 나타나는 연고주의, 정실주의입니다.
따라서 국민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것을 선호하는 수요자가 있는 한 (전관예우 관행은) 안 없어집니다. 국민이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저는 이런 악습을 없애고자 개업지를 바꿨는데 의뢰인이 찾아오지 않더군요. 법원장을 지낸 분이 (마지막 근무지가 아닌) 다른 데 가서 개업했다가 1년 만에 사무실 문 닫았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국민은 훌륭한데 법원이 타락했습니까. 아닙니다. 국민이 타락해 타락한 법정을 갖게 된 겁니다. 이것을 명백히 드러내고 우리 모두 자기비판을 해야 합니다. 언론이 법조만 비판하고 국민에게는 면죄부를 주니 국민은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줄 알고 남 욕만 해요. 사법 종사자의 의식과 함께 국민의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저도 의뢰인이 상고심을 앞두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기에 그쪽으로 연결해주고 사건에서 손을 뗀 적이 있어요.
임 교수께서 잘 지적하셨는데, 문제의 근원은 관료주의예요. 미국처럼 판사가 판사로 영원히 봉직하고 직급이 존재하지 않으면 병원의 의사처럼 계속 남아 있게 되죠. 우리는 승진을 하는 관료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고착되고 있는데, 지금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도 계속 그 짓을 하고 있어요. 자기 밑에서 충성한 사람을 발탁해 자리를 내줍니다. 대법원장이 인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법관 인사제도를 고치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대법원장, 대법관 출신은 개업 안 해야
그렇지 않고서는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자고 얘기해봐야 공염불이지요. 법관의 보직제도를 바꾸고 법관의 윤리를 감독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처럼 감독위원회를 두어서 법관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청문회를 열어 조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대법원장이 자신의 권한을 내놓아야 하는데 안 내놓거든요. 법원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대법원장이 다 처리합니다. 대법원장은 사법권 내에서 신(神)입니다. 신격화한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을 깨야 한다고 이미 십수년 전부터 얘기했습니다. 대법원장이 (비리를) 감쌀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관예우의 실체를 정확히 봐야 하는데, 형사재판의 경우 형을 좀 가볍게 해주는 정도지, 전관이 나섰다고 해서 유죄가 무죄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민사는 증거에 의한 변론재판이므로 말할 나위도 없고요. 이런 면에서 솔선수범해 재미를 본 분들이 바로 대법관을 비롯한 법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이에요.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분은 변호사를 하면 안 됩니다.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거나 연수원에서 지도하거나 저술활동을 해야지….
박인환 : 이 아킬레스건을 지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희선 : 뒤에서 재미 보고 앞에서는 다른 얘기를 하니 신뢰를 못 받는 거죠. 국민이 판 돌아가는 걸 대충 알아요. 변호사가 서류 잘 써 내고 변론 잘한다고 양형에서 유리한 게 아니고, 대법관 출신을 선임해야 판사 앞에서 사건 설명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이것이 전관예우의 굉장히 큰 폐해입니다. 그리고 고위직 법관이 (변호사로) 나오면 파산절차는 모조리 맡는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에요.
박인환 :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도 검사 시절 전관의 부탁을 받고 (피의자를) 봐준 적이 있습니다.
방희선 : 저도 판사 시절 전관의 압력을 받은 적이 있어요. 단독판사를 지낼 때는 개의치 않고 판결했는데 합의부 판사 때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더군요.
박인환 : 사실 이번 대법원장 발언 파동의 근본 원인은 이와 같은 법조불신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 덮어버리고 엉뚱하게도 공판중심주의를 들고 나와 문제의 핵심을 완전히 흐려놓았어요. 방 변호사 말씀처럼 법조불신을 없애려면 법조윤리를 강화하는 게 필수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느 신문도 법조윤리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무조건 공판중심주의만 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보도하고 있어요.
검사 출신으로서 좀 부끄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검사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직 출신도 사실은 개업해서 이른바 브로커라는 직원을 고용하지 않으면 사건을 맡지 못합니다.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도 개업해서 처음에는 남들처럼 사무장을 두고 일을 해봤습니다. 그 친구들이 사건을 가져오기에 저는 착각했지요. 사람들이 나를 봐서, 나를 알아보고서 찾아오는구나 하고.
사무장 안 두니 사건 수임 안 돼
그런데 수임료를 몇 번 받아보면서 거기에 브로커 비용이 들어가고 그 비용을 의뢰인이 부담한다는 걸 알고 나니 그러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바깥에서 사법개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그때부터 사무장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부터 사건이 뚝 떨어지는 거예요. 아니, 아예 없었습니다. 지금도 사무장 안 두고 일하는데, 정말 돈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안 찾아옵니다. 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사회 : 대부분 사무장을 두지 않습니까.
박인환 : 대개 두지만, 방 변호사님도 안 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방희선 : 요즘은 안 두는 변호사가 많아요.
박인환 : 고위직 출신이 모범을 보여 브로커로 오해받는 사무장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대법관이나 대법원장, 검찰총장, 법무장관을 지낸 분은, 개인적으로 안됐지만 그만큼 영예를 누렸으면 개업하지 않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합니다마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한꺼번에 가지는 것은 비록 그것이 시기이고 질투일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개업지 제한 문제만 제기해도 막 들고일어나는 게 현실이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아마 헌법소원을 낼 겁니다. 그런데 재산권을 보십시오. 그토록 제한해도 아무도 헌법소원 내지 않아요. 과연 재산권보다도 거주이전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가 더 중대한 가치인지 잘 모르겠어요. 고위층 몇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제한조치가 그토록 문제가 될까요. 법조 기득권층의 치열한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그 분들이 정 변호사 개업을 하고 싶다면 공익 분야에 종사하면 되겠죠. 그런데 저나 방 변호사님이나 대한변협, 서울변협 일을 해봐서 알지만, 공익 분야에 종사하는 변호사 중에 고위법관이나 고위검사 출신은 거의 없습니다.
현 대법원장께서도 5년 동안 변호사 하면서 대한변협이나 서울변협에서 공익 봉사, 예를 들어 무료법률상담이나 중소기업 무료상담, 국선변호를 한 적이 있는지, 제가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분이 대법원장이 돼 ‘변호사는 다 사기꾼’이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여하튼 사법개혁의 초점은 전관예우를 비롯한 법조비리를 해소하고 법조윤리를 강화하는 쪽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수부 조사실 개방해야
그 다음으로 검찰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특수부 검사실은 밀실조사를 한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저희 같은 평범한 변호사는 물론이고 대단한 변호사조차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폐쇄돼 있습니다. 그런 것은 검찰도 고쳐야 합니다. 그렇게 폐쇄된 밀실에서 조사해놓고도 언론에 폐쇄된 곳이 아니라고 발표하는 걸 보면 씁쓸합니다. 폐쇄된, 밀폐된 공간에서 조사하다보니 가끔 가혹행위도 일어나고 자살사건도 발생하는 거지요. 무엇보다도 조사실을 개방하는 것이 검찰의 자기혁신이 아닌가 싶어요.
또 하나 얘기하자면, 특수부 검사실의 주요 수사대상은 돈 많은 기업인이나 사회지도층입니다. 브로커가 붙기에 적합한 환경이죠. 한번 특수부 밀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나오면,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마는 브로커 연결고리가 형성됩니다. 바로 그 검사실 조사관이 변호사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 메커니즘은… 그런데 이러다 변호사 하기도 곤란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두 웃음)
사회 : 오늘 나온 얘기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것 같은데요.
방희선 : 곳곳에 존재합니다. 경찰관도 그렇게 하고 교도관도 그렇게 하고….
박인환 : 몇 시간 엄하게 조사받고 나면 어떤 피의자든지 검사 모르게라도 자기를 조사하는 수사관한테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인지상정이지요. 피의자가 ‘저의 억울함을 대신 말해줄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검사실 직원이 ‘아, 얼마 전까지 우리 특수부에 있다가 나간 모 검사가 있다’거나 ‘모시던 특수부장이 어디서 개업을 하고 있다’거나 ‘모 검사장이 몇 달 전에 나갔는데 바로 이 검사님이 얼마 전까지 모시던 상사였다’고 하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커넥션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검사실에서 그렇게 말하면 어느 피의자가 그 변호사를 안 찾아가겠습니까. 상당히 높은 수임료를 요구받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임하게 되죠. 그런 식으로 사건을 맡는 변호사가 이른바 검찰의 전관입니다. 이런 커넥션 속에서 가끔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전화변론이라고 전화 한 통 해주고 사건에 관여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거죠. 왜 검찰청의 일부 직원이 그런 일을 하느냐. 거기서 떨어지는 소개비 때문이죠. 검찰 고위직 출신부터 검찰직원을 이용한 그런 비윤리적인 커넥션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방희선 : 검찰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모든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는 커넥션입니다. 어디든 존재한다고요.
박인환 : 소개료가 수임료의 20~30%인데, 이게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죠. 제 친구가 자기가 검찰에서 조사받을 일이 생겼다며 변론을 맡아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사무실에 몇 시까지 오겠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요. 그래서 전화해 보니 “사실은 너한테 가려 했는데 조사하는 수사관이 너보다 누구누구가 더 낫다고 해 그 사람을 선임했다”며 미안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쪽에서 얼마 부르더냐 물어봤죠. 얼마라고 얘기하기에 “바보야, 나한테 오면 훨씬 더 싸게 해줄 텐데”라고 했죠. 뭐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법조 고위직을 지내면 연금도 나오니 사건 수임이 많지 않은 젊은 변호사들을 위해서라도 개업을 자제하면 법조불신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될 텐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최근에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퇴임한 판사들이 다 떳떳하게 개업했습니다.
변호사 개업지 제한법 만들자
임지봉 : 지난번에 대법관이 한꺼번에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누가 새 대법관이 되느냐로 시끄러울 때 저는 ‘퇴임하는 대법관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글을 신문에 썼습니다. 국민의 사법불신의 원흉이 전관예우 관행이고 그 출발은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이니 제발 변호사 하지 말고 아까 박 변호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익활동이나 후학을 가르치는 길로 가주십사 하고 부탁드렸는데, 벌써 다들 개업했군요.
예전에는 대법관 출신이 대법원 사건만 맡았는데 요즘에는 하급심 사건까지 맡는다는 얘기마저 나옵니다. 그런 대법관을 국민이 어떻게 존경하겠습니까. 그리고 젊은 판·검사들이 그런 걸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공판중심주의도 좋지만 전관예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해요.
그리고 국회에서 (변호사) 개업지 제한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관예우를 발본색원하는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국회에 변호사 출신이 많아서인지 법사위 논의과정에 자꾸 폐기되더라고요. 직역이기주의가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하고 아쉬웠습니다.
사회 : 방 변호사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법조윤리 강화를 말씀하셨는데, 변협 차원에서 재직 당시 비리를 저지른 판·검사의 변호사 개업을 막는 방법이 없을까요. 이번에도 그 문제가 논의됐다가 없던 일이 돼버렸잖아요.
방희선 : 그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재직 중 저지른 비리는 사실 형사처벌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안에서 견책을 받았는지 질책을 받았는지. 설령 (좌천성) 인사조치를 당했더라도 정식 징계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 알아낼 길이 없죠.
제가 대법원장을 자꾸 비판하는 건, 이처럼 허심탄회하게 법조의 문제점을 토의하다보면 어떤 문제든 한 번에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치열한 자기반성이나 고백성사 없이 마치 지고지순한 천상에 있는 것처럼 남을 나무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분이 변호사 시절 어떤 사건들을 맡았는지 법조계에서 다 압니다. 또 선임계를 내지 않고 맡은 사건이 몇 건이나 있는지, 스스로 잘 알 겁니다.
사회 : 선임계 안 내고 수임하는 것을 변협 차원에서 차단할 방법은 없나요.
방희선 :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하급변호사를 내세워 수임합니다. 서류작성도 변론도 하급변호사가 다 합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하는 일은 의뢰인을 면담해 ‘내가 뒤를 봐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니, 막을 길이 없습니다.
참·배심제 도입은 선동정치의 표본
사회 : 끝으로 사개추위 안(案)을 중심으로 과연 무엇을 어떻게 고치는 것이 바람직한 사법개혁인지 논의했으면 합니다. 논란이 된 주요 쟁점으로는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 참·배심(參·陪審)제 도입, 로스쿨 도입 등이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