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의 북핵 해법

“美 - 中 , 불개입-비핵화 약속하면 北 정권교체 타협 가능”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6-11-06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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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핵, ‘협상용이다’ ‘자위용이다’는 무의미한 논쟁
    • 미국이 모든 요구 들어줘도 北은 절대 핵 포기 안 해
    • 중국도 결국 북한 경제봉쇄 동참할 것
    • 北 정권교체는 중국에 달렸다…급변사태 대비해야
    •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 막으면 우리도 고립, 파멸
    • 햇볕정책은 남북한 현실 제대로 알게 하는 데 기여
    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의 북핵 해법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순영(洪淳瑛·69) 전 장관만큼 북핵 문제에 대해 폭넓은 식견을 가진 전문가도 많지 않다. 그는 1994년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 IAEA(국제원자력기구) 핵사찰 거부 등 숨가쁘게 전개된 1차 북핵위기 당시 외무부 차관이었다. 1998년 북한의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과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로 촉발된 2차 북핵위기 때는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또한 2001년 열린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에는 통일부 장관으로 참가해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홍 전 장관은 40년이 넘는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를 몸과 머리로 체득했다. 특히 러시아 대사, 중국 대사 등을 역임해 동북아 열강들의 대북정책을 깊이 알고 있다. 또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햇볕전도사’로 불릴 만큼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적극 관여했다.

    북한 핵실험 사태 이후의 전망에 대해 그의 경륜이 실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한국외교협회를 찾았다. 그는 한국외교협회 고문직을 맡고 있다.

    손수 녹차를 대접하며 기자 일행을 맞은 홍 전 장관은 “나이가 많다고 다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관직에 있었다고 다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다”며 겸손하게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 대신 “가볍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하자”며 말문을 열었다.

    “하도 답답해서 ‘동아일보’(10월13일자)에 ‘핵실험은 햇볕정책 배신 신호탄’이라는 시론을 썼습니다. 아직도 북핵의 본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북한 핵이 대미 협상용이냐 아니냐,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운명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수단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부질없는 논쟁입니다. 핵은 분명히 남한을 겨냥한 겁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에서 ‘우리가 죽게 되면 남한부터 죽이고 죽겠다’고 협박할 최후 카드입니다. 이게 북핵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이제 북한의 ‘핵 공갈’ 앞에 처하게 됐는데 남한에서는 내부 분열이 일고 있습니다.”



    “핵은 남한을 겨냥한다”

    ▼ 현재의 사태를 보면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에도 막판까지 위기로 치닫다가 북-미 간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십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1994년 상황을 보면 김일성 주석이 막판에 물러섰지만, 뒤에서 몰래 핵개발을 계속 했습니다. 합의의 여지가 있다면 이번에도 뒤로는 핵개발을 계속하면서 겉으로만 물러서는 척하는 정도라고 봅니다.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현재까지의 과정만 보면 김 위원장은 그동안 ‘경제부흥’과 ‘군사력 증강’ 사이를 왔다갔다하다가 결국 군사력 쪽으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 미국이 북한의 요구대로 양자 대화에 응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등 북한의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준다고 해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보십니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제가 오래전부터 해온 이야기입니다. ‘정치적 무기’라는 성격 못지않게 ‘군사적 무기’의 성격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김정일 위원장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 핵개발을 놓지 않습니다. 과연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될까요? 김정일 체제는 아마도 최후의 순간까지 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을 겁니다. 미국도 역시 그렇게 판단하고 있을 테고요.”

    ▼ 북한의 핵개발을 계기로 일본도 핵을 보유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대만도 그런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고요. 자칫 동북아가 핵확산 위기를 맞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북한이 이미 핵을 가진 상태에서 일본과 대만이 핵무장을 추진한다면, 그건 국제공동체가 보기에도 납득할 수 있는 핵개발입니다. 불량국가가 핵을 가지고 있는데 민주국가가 안 가질 수는 없으니까요. 국제공동체 기준으로 봐서 인정될 만하면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미국이나 중국 처지에서는 그걸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지난 수십년 간 핵확산 방지를 절대적 목표로 추진해온 미국은 핵 도미노 현상을 절대로 좌시할 수 없겠지요. 중국으로서도 대만이 핵을 갖는다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이들이 어떻게든 북한 핵 문제에 개입해 아무리 많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믿는 근거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20∼30년 뒤에는 많은 중소국가도 핵을 보유하려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럼 그때마다 지금 북한의 경우처럼 개입하고 제재해서 이를 좌절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외 없이 다 제재하느냐,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하냐, 아니면 지역의 평화를 위해 제한적으로 핵을 갖도록 허용할 것이냐를 놓고 이미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는 논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 20∼30년 후에 중소국가들의 핵무장이 일반화하리라고 본다면 지금 북한의 핵 보유에 반대해 개입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지요. 정반대입니다. 그런 상황을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지금은 테러리즘의 시대입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좌시할 수 없는 이유는 테러집단으로의 핵 확산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자신이 개발한 핵을 내다팔 수 있는 이른바 ‘깡패국가(rogue state)’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핵심 수뇌부를 제거하는 게 부시 행정부의 당면과제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허술한 경제봉쇄도 심각한 타격”

    ▼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 결의안이 통과됐고, 미국과 일본은 보다 강력한 제재에 나설 모양입니다.

    “두 나라는 강력한 경제봉쇄로 갈 겁니다. 안보리의 경제제재와 미일 두 나라의 봉쇄시도만으로도 북한에는 심각한 타격이 되리라고 봅니다. 과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 체제와 관련해서 서방국가들이 경제봉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남아공은 견디지 못하고 굴복했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물론 정권까지 만델라 대통령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백인정권이 무너지기 2년여 전에 그곳 외무장관을 만난 적이 있어요. 남아공은 해안선도 길고, 인접 국가들도 많아서 완전한 경제봉쇄가 불가능한 국가였지요. 우리나라도 알게 모르게 상당한 규모를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남아공 외무장관이 저에게 ‘우리나라는 곧 무너진다’고 말해 깜짝 놀랐어요. 경제봉쇄가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

    유엔 결의가 있더라도 이를 실행하는 것은 각국의 재량입니다. 일본은 벌써 제재를 시작했잖아요. 일본이 만경봉호 등 북한 선박의 입항을 금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수위의 제재입니다. 비록 구멍이 숭숭 뚫린 경제봉쇄라 해도 북한에는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 그렇지만 일각에는 북한이 워낙 폐쇄경제체제이기 때문에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1990년대 대기근으로 엄청난 숫자의 아사자가 생겼어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햇볕정책으로 인해 1990년대 후반 이후 북한 관료들이나 주민들의 의식이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졌죠. 시늉뿐인 개방으로도 많은 주민이 조금씩이나마 자본주의화했고 사회주의 시각에선‘타락’했다고 봅니다. 일반인들은 물론 관료들까지 노골적으로 돈을 바라는 정도니까요. 권력층 엘리트들에게서도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이 1990년대 중반처럼 엄청난 경제위기 속에서도 김정일 체제를 지지하며 감내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어느 정도 가담하느냐인데, 서서히 미국 쪽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는 중국도 북한의 핵 보유를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어떻게 간섭할 것인지를 놓고 미국과 거래하겠죠. 미국이 북한에 친중(親中) 정권이 들어서는 걸 용인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미국은 ‘우리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는다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일 겁니다.

    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의 북핵 해법

    2001년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 때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촛불을 켜고 이야기를 나누는 홍순영 전 장관과 북한 김령성 단장.

    거꾸로 중국은 북한에 급변사태가 생길 경우 미군이 휴전선을 넘어 진주하는 상황을 우려한다는 분석이 많은 듯합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미군과 대치하는 시나리오를 염려한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런 우려는 사실상 기우라고 봅니다. 미국이 북한지역에 대해 영토야심을 가질 리 없으니까요. 반대로 중국이 북한에 진주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미군과 맞설 리도 없다고 봅니다. 두 나라는 지금 긴장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완충지대를 원하는 거니까요.

    이 부분만 명확해진다면, 다시 말해 미국은 ‘북한에 진주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고 중국은 대안 정권의 비핵화만 약속한다면, 그래서 최소한의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대안 정권이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라면, 미국과 중국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젠 냉전시대가 아닙니다. 미국에는 지역 내에서 영향력 범위를 확장하는 일보다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어요. 북한의 미래에 대한 두 나라간의 타협 공간은 분명 존재한다고 봅니다.”

    ▼ 결국 핵심은 북한 체제의 내구성일 텐데, 경제제재가 진행되면 북한은 얼마나 버틸 것 같습니까.

    “그 역시 북한 에너지의 공급선을 쥐고 있는 중국이 경제봉쇄에 어느 정도로 동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식량이 없으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등 ‘고난의 행군’을 강행하면 몇 년은 버틸 수 있지만 에너지가 떨어지면 국가 기능이 정지되거든요.

    우리나라 경제가 튼튼한 것 같지만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교역량의 20%를 차지하는 일본만 우리와 경제관계를 끊는다고 가정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세요. 경제 사정이 나쁜 북한은 훨씬 더 심하겠죠. 현재의 압박만으로도 얼마나 어려웠으면 북한이 ‘경제제재만 풀어주면 핵개발 안 하겠다’고까지 했겠습니까. 그것 또한 진심이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외부의 무력 때문이 아닙니다.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 거지요. 북한 정권교체에 대한 의지는 미국이 더 강하겠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이나 능력을 가진 나라가 있다면 현재로서는 중국뿐이라고 봅니다. 미국도 그 구체적인 방법과 수단에 대해서는 중국에 일임하고자 할 겁니다. 과거 미국이 휴전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중국이 평양 내부의 친중파를 움직이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봅니다.”

    햇볕정책, 이상과 실패

    ▼ 북한의 핵실험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주무장관으로 일했던 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햇볕정책은 북한을 교류와 협력의 마당으로 끌어내고, 시장개방을 바탕으로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남북한이 평화공존을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 구상한 것을 김대중 정부가 받아들였는데, 계획 자체는 지금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김정일 정권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은 것뿐이지요.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국은 지금도 자신들의 틀에 맞게 시장경제체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십년에 걸친 체제전환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덩샤오핑은 이를 위해 시간을 두고 국민을 교육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그럴 만한 리더십도, 비전도 없었던 것이지요.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周恩來) 같은 당시 중국의 지도층은 대부분 프랑스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세계의 흐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에게는 그런 식견이 없었던 것이지요. 나라를 개혁, 개방함으로써 자유와 풍요의 바람이 일어나면 자신의 권력유지가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선군정치로 돌아간 겁니다. 이번 핵실험으로 햇볕정책의 기능은 끝났다고 봐야죠.”

    ▼ 햇볕정책이 실패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일단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햇볕정책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나라엔 친북세력이 훨씬 많아졌을 겁니다. 사회주의의 유혹이란 그렇게 강렬한 겁니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통해 남한 사람들은 사회주의 북한의 독재 현실과 주민의 처참한 생활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이 햇볕정책의 가장 큰 성과지요. 북한에도 크게 기여했어요. 북한 사람들도 남한의 현실이 어떤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됐고, 자신들의 처지도 알게 됐습니다. 그들이 돈과 시장의 위력을 알게 된 것도 큰 성과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평화공존, 경제공존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관광사업, 개성공단, 장관급회담, 군사회담 등 대부분의 대화와 교류가 일진일퇴만 반복했지 애초에 기대했던 수준으로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햇볕정책은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고, 그래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는 듯한데, 저는 거기에 좀 회의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다른 선택을 했을까요.”

    ‘남한 핵무장’ 주장의 위험성

    ▼ 햇볕정책이 아니라 엄격한 상호주의 정책을 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미국과 ‘대(對)북한 온도’를 맞췄다면 핵실험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오늘과 같은 상황이 더 빨리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돌파구가 생겼을 수도 있겠죠. 근본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보면 어찌됐든 북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핵개발 그 자체였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북정책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북한과 교류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습니다. 남한도 서서히 국제적으로 고립, 소외되고 있어요. 현재의 정책이 계속 유지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국제사회에서 남한은 북한과 동일시되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극히 일각이긴 하지만 ‘북한의 핵이 우리의 핵’이라는 논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외국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북한과 동일하게 취급받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졌으니까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도 똑같은 이유에서 대단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의 핵 보유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것, 한국이 꿈꾸는 이상적인 통일국가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북한과의 협상도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이뤄져야 주변국들도 한국의 위상과 입지를 인정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국민적인 단합이 절실합니다. 가치관을 통합해야 합니다. 이게 가장 시급한 과제예요. 핵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막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북한과 똑같은 부류로 취급받아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위기 속에 있어요.”

    ‘반기문 총장’에 대한 기대 지나쳐

    홍순영 전 장관은 2000년 1월 외교통상부 장관을 물러나면서 최근 유엔사무총장 내정자로 임명된 반기문 현 외교통상부 장관을 차관으로 상신한 바 있다. 홍 전 장관과 반 장관은 충주고 7년 선후배 사이로, 종종 함께 골프를 칠 정도로 막역한 관계다.

    ▼ 반기문 장관을 ‘가장 아끼는 후배’로 생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반 장관이 고등학생 때 영어를 워낙 잘해 충주에서는 유명했거든요. 고향이 같으니까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게다가 제 동생이랑 고교동창이에요. 같이 일도 많이 한 편입니다. 옛날부터 착하고 똑똑했어요. 지금도 세계 외교무대에서는 ‘나이스 가이’로 통하지요. 그런 가치를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인정했기 때문에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까지 갈 수 있었겠지요.”

    ▼ 반면 워낙 국제정세가 엄중하다보니 ‘나이스 가이’라는 장점만으로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을 첫 무대가 핵실험 문제가 된 셈입니다만….

    “최종 인준 전부터 그런 우려를 표한 외신도 있더군요. 그러나 그 기사 역시 ‘그렇지만 그게 그 사람의 장점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재능력을 한번 지켜보자’는 식으로 끝을 맺더군요.

    사실 유엔은 상임이사국이라는 초강대국들의 게임장입니다. 사무총장 혼자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기대죠. 다만 세계평화를 방해하는 위협과 분쟁에 대해 아이디어를 갖고 강대국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해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 그 정도이지요. 물론 그조차 쉽지 않은 일이고요.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순간 자연인 ‘반기문’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일 뿐입니다. 북핵 문제를 자유민주주의, 세계평화라는 세계적인 관점에서 봐야지 민족주의 같은 좁은 틀에서 해석하면 안 돼요. 실제로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그런 자세를 요구받지요. 반 장관이 잘 해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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