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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 경위
전진우 동아일보 대기자, 소설가 정길연, 문학평론가 하응백씨(왼쪽부터) 등 본심 위원들이 당선작을 가리고 있다.
응모작은 총 38편이었고, 이 가운데 7편이 본심에 올랐다. 3명의 본심 심사위원이 각각 7편을 검토했으며, 9월25일 ‘신동아’ 회의실에서 최종 당선작 3편을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서영호씨의 ‘어느 채권추심원의 일기’를 최우수작으로, 박미애씨의 ‘파리에는 95번 버스가 있다’와 백이호씨의 ‘홍콩 트랩, 컨테이너터미널 공사’를 우수작으로 뽑았다.
▼ 심사위원
본심 : 하응백(문학평론가) 정길연(소설가) 전진우(동아일보 大記者)
예심 : 이상락(소설가)
▼ 심사평
〈하응백〉 “오늘,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생동감 두드러졌다”
논픽션의 가장 기초적인 구성 요건은 삶의 핍진(逼眞)성과 기록의 충실성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문장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06년 신동아 논픽션 현상공모 본심에 올라온 여러 작품이 그러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심사위원 세 사람 모두 최우수작으로 서영호씨의 ‘어느 채권추심원의 일기’를 지목했다. 이 작품은 1997년 금융위기 직후, 직장을 잃은 화자(話者)가 몇 년 고생하다가 채권 추심업체의 추심원이 되어 경험한 일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신용불량자가 되어 빚을 지고 쪼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빚 변제를 독촉하고 돈을 받으러 다니는 한 인간의 심리와 처지를 담담하게 묘사했다. 그 담담함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화자는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 있지만, 그의 처지도 채무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공감이 온다. 이 시대에는 누구나 실직자가 될 수 있고, 거리로 내몰릴 수 있으며,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
우수작으로 박미애씨의 ‘파리에는 95번 버스가 있다’, 백이호씨의 ‘홍콩 트랩, 컨테이너터미널 공사’, 김은숙씨의 ‘남기고픈 캡슐 이야기’ 세 작품이 물망에 올랐다. ‘파리에는 95번 버스가 있다’는 세련된 문장과 감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개인적 체험의 부족이, ‘홍콩 트랩…’은 기록의 충실성에는 공감이 가지만 내용 전개가 다소 늘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남기고픈 캡슐 이야기’는 삶의 진실성은 인정되지만 다소 주관적이라는 것이, 각각 장점과 약점으로 지적됐다.
토론 끝에 박미애씨와 백이호씨의 작품을 우수작으로 결정했다. 박미애씨의 신선함에, 그리고 백이호씨의 기록의 충실성에 좀더 호감이 갔기 때문이다. 김은숙씨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김정강씨의 ‘4·19에서 6·29까지’도 6·3세대의 꼼꼼한 자기 기록이라는 점에서 애정이 가는 작품임을 밝힌다.
전반적으로 2006년의 작품은 보다 현재적이었다. 오늘 바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생동감 있는 이야기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전개되어 반가웠다.
〈정길연〉 “논픽션은 사진(寫眞)…고백 진솔할수록 감동 커”
픽션은 인간사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글로 녹여내는 문학 형식이다. 어떤 소재나 제재든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과장하고 비트는 것이 허용된다. 그럴 듯하게 꿰어 맞춘 과정이 정교할수록 감동의 폭이 커진다.
그러나 논픽션은 다르다. 삶이나 사건 그 자체의 기록이다. 자기 미화나 합리화의 유혹을 떨치고 객관적으로 진술해야 한다. 그 고백이 성실하고 진솔할수록 공감의 파장이 넓다. 픽션이 회화에 가깝다면, 논픽션은 사진에 가깝다.
지난해와 비교해 전반적으로 향상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거니와, 본심에 올라온 7편 모두 나름의 성실성과 소재적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논픽션 본류의 미덕에서 벗어난 자의적 해석이라든가 울분 토로형의 회고, 기술자(記述者) 행보의 모호함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개인사적으로나 한 개인을 뛰어넘는 사회사적으로 의미 있는 기록임에도 선외로 밀려난 ‘4·19에서 6·29까지’의 김정강씨, ‘남기고픈 캡슐 이야기’의 김은숙씨 두 분을 비롯해 본심에서 아깝게 탈락한 분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한다.
〈전진우〉 “문장력 향상돼 반가웠다”
예년에 비해 본심에 오른 작품의 수는 줄었으나 그 질은 높아졌다. 특히 과거사나 역사적 인물의 평전(評傳)이 주요 소재였던 것에 비해 이번 작품들은 삶의 현실이나 현대사 읽기를 보여주고 있어 시공간적으로 한층 앞당겨진 느낌이다. 또한 문장력의 수준도 한결 높아져 반가웠다. 논픽션이 그 성격상 소재주의에 치우치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장력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어느 채권추심원의 일기’의 장점은 필자가 자신의 겉과 속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렸다는 점이다. 이는 좋은 논픽션의 가장 큰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파리에는 95번 버스가 있다’는 특별한 소재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논픽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특히 감각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글쓰기와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결합이 자칫 상투적일 수 있는 이야기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홍콩 트랩…’은 장황하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해외건설 현장의 꼼꼼한 기록이란 점에서 우수작에 올렸다.
‘4·19에서 6·29까지’는 현대사의 소중한 기록이지만 필자의 회고록으로 보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기고픈 캡슐 이야기’는 ‘중소기업 흥망사’보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으면 하는 아까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