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는 기존의 체계와 구조에 집중하지만 리더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관리자는 단기 목표에 급급하지만 리더는 넓은 시야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한다. 관리자는 현상유지에 매달리지만 리더는 계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도모한다. 진정한 리더를 육성하는 일이야말로 한국 교육의 과제다.
하지만 한국인이 ‘세계의 리더’로 선출됐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리더십의 위기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 기업, 노조에 이르는 사회 지도적 인사가 한국이 당면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의 실망감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변화가 절실한 때, 뛰어난 리더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날개 없는 추락, 한국의 경쟁력
나는 ‘신동아’ 10월호 칼럼에서 한국이 정체에서 벗어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근본적인 변화를 감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앞으로도 하향조정이 불가피하다(200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대에 머물러 있다).
세계 각국의 경제전망을 가늠하는 국가경쟁력 지표를 보면 한국은 심각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는 이 같은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005년 19위에서 올해 24위로 하락했다.
경쟁력 하락을 초래한 원인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기술 준비도 같은 높은 점수를 받은 분야가 있는 반면 아시아에서 성공한 모델로 대접받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조한 분야도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공제도 부문의 하락이다. 지난해 38위에서 올해 47위로 밀려났다. 기업 이사회의 역할 부문도 86위에 머물렀다. 노사관계는 121개국 중 114위였다. 사실상 최하위권이다.
이런 문제는 내가 지난달 칼럼에서 주요 문제로 지적했던 것이다. 이는 ‘이익집단의 덫’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이번 연구결과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발표하는 기타 국가경쟁력 순위와 일맥상통한다. 한국의 하락세와 그 원인이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리더십은 꼭 필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누가 리더인가. 답은 간단하다. 진정한 지지자를 가진 사람이다. 일개 부서나 회사, 더 나아가 일국의 지도자를 막론하고 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한다. 익숙한 관행과 방관하는 태도에 길들여진 조직원을 격려하고, 비록 낯설고 힘들어 보이지만 새로운 길로 한 단계 도약하도록 인도해야 진정한 리더다.
리더는 무엇보다 지지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기관과 리더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 ‘한겨레’가 2003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신뢰도는 한심할 정도로 낮다. 언론에 대한 신뢰를 표명한 응답자는 23%에 불과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사법부가 14%, 행정부가 15%로 매우 낮았다. 재벌에 대한 신뢰도는 13%에 지나지 않았다.
2005년 12월 세계경제포럼과 갤럽은 한국과 14개의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을 비교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정부에 부여하는 신뢰도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수직 하락했다. 2002년 ‘0’에서 2005년 ‘-50’으로 하락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평균 하락치는 ‘-9’였다.
리더의 빈번한 교체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던 시민단체의 신뢰도 역시 급격히 하락했다. 한 시민단체 간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시민단체가 신뢰를 잃은 이유 중 하나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거대기업, 노조와 같은 주류 기관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시민단체는 이익집단의 덫에 걸렸다. 결국 신뢰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기반이던 독립성이라는 자산을 잃어버린 것이다.”
최근 들어 신뢰와 정직이라는 두 가치는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계는 더 그렇다. 예컨대 기업과 정계의 스캔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뒤집어놓는다. 미국 최고의 사전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사에 따르면, ‘정직’은 2005년 미국인이 가장 많이 찾아본 단어였다.
한국이 리더십 갭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리더십의 질적인 측면을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과거 부즈앨런해밀턴의 서울사무소가 이런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모 재벌기업의 리더십 역량을 평가한 후 이를 국제적 벤치마크와 비교했다. 13개의 리더십 세부분야 중, 한국 기업은 12개 분야에서 세계 최악의 기업에도 못 미쳤다.
한국의 리더십 갭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는 글로벌 및 아시아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 CEO의 재임기간이 매우 짧다는 점이다. 일례로 LG경제연구소가 2002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2.4년으로, 세계 평균의 4분의 1이었다(2004년도 부즈앨런해밀턴의 CEO 승계 연구 참고).
정부의 수장인 장관의 재임기간은 기업의 CEO보다 더 짧다. 단기간에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는 능력으로 유명한 한 전직 장관은 내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처음 장관에 취임했을 때 역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을 알아봤어요. 겨우 1년 남짓이었습니다. 1년 가지고는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없어요.”
오늘날 이런 상황은 더 심화되었다. 교육부총리의 빈번한 교체가 대표적인 예다. 2002년 7월, 민주당 대통령후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 배명중학교 일일 교사 체험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만큼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해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최초의 교육부총리를 임명하면서 노 대통령은 그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후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6번째 교육부총리를 임명했다. 이런 현실에서 국민이 정부의 능력에 대해 좋게 평가할 리 없다. 한국의 리더들은 자리보전조차 못하고 있으며, 정부 부문에선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하다.
소소한 잡무에 시간 허비
그렇다면 리더십 갭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총체적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 조직이나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명확하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말이다. 동시에 원대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도 미흡했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의 리더는 대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개혁하겠다’는 식의 구호와 약속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인기에 편승한 모호한 슬로건 때문에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계획 및 필요조치는 뒷전으로 미뤄졌다. 결국 난관에 봉착했고, 지지자와 국민은 이들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둘째, 한국의 리더들은 상황을 관리할 뿐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다. 리더는 몇몇 주요한 전략적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 외의 분야는 효과적으로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리더는 여전히 너무 많은 분야에 과도하게 관여한다. 소소한 잡무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고 경영진이 참석하는 회의 중 4분의 3은 소소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은 하루 중 10∼25%의 시간만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소비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성과평가, 역량개발, 브랜드 창출 및 강화 등의 전략을 짜내는 데 사용한다.
셋째, 차기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인적자원 관리에 소홀하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재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한국기업이나 기관은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인적자원 부서는 임금 지급이나 채용 같은 행정적 절차만 다룬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조직은 구성원이 전문역량을 배양하고 적합한 기술을 획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결국 고위직을 수행할 만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장애를 겪고 있다.
삼성은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리더 선발 절차를 개발해 실제현장에 투입한다.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고 길러내는 데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예를 들어, 부장이 상무로 승진하려면 360도 다면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가장 적합한 인재를 골라낸다. 한국에서 이 정도 체계화 돼 있고 전략적인 평가 시스템을 갖춘 조직은 찾기 힘들다.
넷째, 일반적으로 리더십은 너무 협소한 의미로만 쓰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훌륭한 리더를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 정도로 간주한다. 리더십은 그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또 더 총체적이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리더란 ‘지지자를 가진 사람’이다. 이 간단한 정의에서도 리더십은 단순한 목표달성 이상의 많은 것을 요구한다.
박정희, 이건희, 히딩크
예를 들어, 리더는 상이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그들의 이익을 절충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반기문 장관은 갈등을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데 뛰어났기에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혹자는 맹목적인 추종자를 많이 거느린 사람이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군대의 리더십을 살펴보자. 이는 무조건적인 충성에 기반을 둔다. 예컨대 미국 해병대는 충성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해병대에 대한 헌신’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진정한 충성심은 깊은 신뢰로부터 나온다. 우쭐대면서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는 대신 부하를 격려하고 그들의 불만과 고충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할 때 신뢰는 더 깊어진다.
많은 한국인은 이러한 리더십 갭을 알고 있으며 근본적인 문제도 이해하고 있다. 한국이 리더십 갭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리더십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사 인터넷 검색창에 ‘리더십’이란 단어를 넣어보니 무려 1000권이 넘는 검색 결과가 나왔다.
이는 리더십이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 화두인지를 보여준다. 기업, 대학으로부터 정부기관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리더십 열풍이 계속 확산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리더십이란 쉽게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리더십은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계발한 실제적인 토대 위에서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리더십은 귀감이 되는 모델을 통해 효과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모범적인 리더의 경험과 지침은 간접체험을 제공해 리더십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내세울 만한 리더의 모델은 누구인가. 설문 결과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훌륭한 리더로 꾸준히 꼽힌다. 하지만 그가 오늘날 한국을 이끌어갈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특히 젊은 세대)은 거의 없다. 경영자 중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가장 존경 받고 있다. 그러나 삼성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감안할 때 이 회장이 앞으로도 널리 존경받는 모델이 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진정한 리더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은 한국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리더는 한국인이 아니라 네덜란드 사람인 히딩크였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른 후, 그는 4700만 지지자를 갖게 됐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업적이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비결은 추진력, 결단력, 올바른 조언을 받아들이는 능력 등 한국인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을 글로벌한 시각과 태도로 조화롭게 결합한 데 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조합을 의아해하고 불신했지만 히딩크는 결국 놀라운 결실을 거뒀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는 비생산적인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능력 중심주의의 원칙을 세웠다. 나이, 연줄이나 배경 대신 개인의 역량이나 팀워크를 대표팀 선발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이양했다. 선수들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맛보도록 한 것이다.
또한 그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서 실현했다. 한때 그의 별명은 ‘5대 0’이었다. 그의 팀은 새로운 스타일의 경기방식과 리더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만일 히딩크가 정부 부처의 장관이었다면 몇 달도 못 가 물러나야 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더 많은 히딩크가 필요하다. 다만 이제는 ‘한국인 히딩크’가 나타나야 한다. 한국인 히딩크가 출현하려면 몇 가지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우선 교육제도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식 교육’은 리더가 아닌 관리자만 양성할 뿐이다. 리더는 관리자와 다르다. 관리자는 기존의 ‘체계와 구조’에 집중하지만 리더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관리자는 단기 목표에 급급하지만 리더는 넓은 시야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관리자는 현상유지에 매달리지만 리더는 계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도모한다. 진정한 리더를 육성하는 일이야말로 한국 교육의 중요한 과제다.
한국의 조직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절절히 체험했을 것이다. 남과 다른 생각과 접근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튀는 사람’으로 찍히고, 이들이 낸 아이디어는 묵살된다. ‘모난 돌’은 제대로 발굴해서 육성하기만 한다면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느 한 분야의 정상에 서면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설킨 관계와 의무의 굴레에 얽매이게 마련이다. 대부분 부당한 호의를 베풀어 친구나 친척 혹은 선배에게 보답하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는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관행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영국 역사가 리델 하트는 “진정한 충성심은 맹목적이지 않으며, 진실과 관용이라는 더 높은 가치에 복종할 때 그 가치가 존재한다”고 했다. 과연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충성을 고수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리더는 몇이나 될까.
반기문과 차세대 리더들
진정한 리더십을 구축하려면 먼저 재벌 오너, 정부의 고위관료, 노조 집행부, 시민단체 활동가, 대학교수와 같은 권력과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이들은 각자 필요한 변화를 촉구하고 이를 주도할 용기와 결단력을 지녀야 한다.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위태롭게 하는 듯 보여도 편협한 사익(私益)을 고수하려는 이들을 과감히 쳐내야 한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감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보통 사람이라고 이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모는 자녀에게 억지로 공부만 강요하는 대신 자녀가 잠재성을 발현해 진정으로 자기 삶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들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부모는 리더가 돼야 한다.
기업의 중역은 그저 기존의 규정과 관습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혁신을 이해하고 업적을 일궈내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
선거권을 가진 국민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비록 단기적으론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져야 한다. 시급한 경제적 도전을 해결할 수 있는 후보자를 지지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한국 리더십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굿 뉴스다. 그는 유엔 내의 관료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를 타파하고 이익단체의 팽팽한 갈등과 요구를 객관적이고 건설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여러 이익단체의 충돌을 외부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풀어야 할 차세대 리더의 임무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비단 유엔을 잘 이끌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 차세대 리더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