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탤런트 임현식 - 농사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게 살다 가야죠”

  • 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입력2006-11-07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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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고난 배우인 듯 보이지만, 길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닌지 자못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뭔가 부업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일 때 촬영장을 오가다 고향과 닮은 곳을 발견했다. 젖소나 키워보자며 어머니와 터를 잡은 경기도 송추. 어언 30년이 흘러 어머니와 아내는 뒷산에 나란히 누웠다. 홀로 남았지만 추억이 서린 자연이 있어 외롭지 않다.
    탤런트 임현식 - 농사

    소형 트럭을 몰고 콩밭으로 향하는 임현식씨.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탤런트 임현식 - 농사

    그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를 반평생 동고동락한 집과 뜰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묻었다. 수시로 아내 곁을 찾아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랜다. 앞마당 메마른 잔디밭에 물을 주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뛰어나오는 그. 꾸밈없는 일상 그대로다.

    서울 광화문에서 승용차로 40여 분이면 닿는 경기도 송추, 그가 일러준 대로 큰 길에서 골목으로 진입해 두리번거리니 요란하지 않게 멋들어진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문패도 확인 않고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브라운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차림새의 그가 눈앞을 휙 지나간다. 흰 러닝셔츠에 반바지, 모자에 운동화. 한 손엔 연장이 들려 있다. 양수기로 도랑물을 퍼다 잔디에 물을 흠뻑 줄 참이다. 구름 한 점 허락하지 않는 청명한 가을 하늘에 마당 한쪽의 잔디 속이 바싹 탔다. 스프링클러에서 시원한 물이 뿜어져 나온 뒤에야 그와 눈을 마주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푸근한 인상 그대로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이 좋은 날씨에 몸과 마음을 좀 소독해야죠. 사무실과 집, 술집만 오가면 몸에 곰팡이 슬지 않겠어요? 허허.”

    탤런트 임현식(林玄植·61)씨를 만난 이곳은 요즘 유행하는 전원주택이나 주말농장이 아니다. 1974년 터잡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다. 민속촌의 장인들이 1년 넘게 걸려 지은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한옥은 1999년에 완공됐다. ‘대장금’ ‘서동요’ 등 사극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드는 데 한몫 단단히 한 그는 일찍부터 한옥에 살고픈 꿈이 있었고, 그것을 기어코 실현했기에 집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탤런트 임현식 - 농사

    어머니와 아내의 무덤가에 손수 돌탑을 쌓았다. 수개월에 걸쳐 ‘참회’하는 마음으로 한 층 한 층 견고하게 쌓았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내를 향한 진한 애정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탤런트 임현식 - 농사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켜는 임현식씨. 아내나 딸의 피아노 연주가 있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했다. 운 좋게도 줄곧 자신의 삶이 묻어나는 배역을 맡아왔다는 그는 최근 비중 있는 역할로 영화 촬영을 시작했다.



    1969년 MBC 공채 탤런트 1기로 연기자가 된 그는 초창기, 내성적인 성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연기로 먹고살기는 힘들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이곳 송추가 눈에 들어왔다. 촬영장을 오가는 길에, 도랑에서 고기 잡고 과수원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고향을 쏙 빼닮은 풍경을 만난 것. 땅을 사서 농사짓고, 젖소를 키워보자며 어머니를 설득해 정착했는데, 30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집은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갖췄다. “나무 한 그루 잘 키우면 말년에 술값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사서 심은 주목이며 향나무, 소나무가 집을 운치 있게 만든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콩이며 고추농사도 병충해 없이 풍작이다.



    “젊은 시절, 너무 내성적이어서 고민이었는데 이곳에 터를 잡고 연기자로 성장하면서 삶 자체가 개방형이 됐어요. 자연히 어깨에 힘이 빠지면서 데뷔 8년 만에 조연상을 탔고, 그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 출연료로 먹고살 수 있게 됐죠(웃음).”

    그는 2년 전 아내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냈다. 어머니를 잃은 지 2년 만에 겪은 사별이라 충격과 고통이 컸다. 처음엔 그리움에 못 이겨 한밤중에도 묘를 찾아 흐느끼며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집과 밭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어머니와 아내를 나란히 눕혔다.

    “연기자로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질없이 살아온 터라 이제는 가족도 좀 챙기며 건강하게 살자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뒤로 더 바빠졌어요. 밤늦게까지 촬영하고, 술 많이 먹고. 집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떠나버릴 줄은 몰랐죠. 한동안은 내 인생도 끝났고, 남은 삶은 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남은 시간이 너무 아깝고, 어떻게든 아껴 쓰고 싶습니다. 아내도 제가 열심히 살아서 아이들에게 자기 몫까지 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 같고요.

    요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과일 한쪽 먹고, 토마토도 갈아 마셔요. 그러고 나서 집 안팎을 돌아보면 나무며 풀들이 제 발소리를 알아듣고 반기는 것 같아요. 꽃은 예쁘게 핀 걸 봐달라고 하는 것 같고, 나무는 가지를 좀 정리해달라면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고. 그렇게 움직이고 나면 찌뿌드드하던 몸이 한결 가뿐해져요.”

    그는 “전문 이발사나 정원사 다음으로 가위질을 많이 한 사람은 나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뒤뜰에 심어진 코스모스며 깨, 배추, 상추, 이름 모를 나무와 꽃, 그리고 콩이며 고추가 모두 그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가위질만 잘하겠나 싶다. 이렇게 농사 지어 거둔 작물은 대부분 지인들에게 나눠준다. 농사를 지으며 추억을 더듬고 삶이 윤택해진 것만으로 충분히 배부르기 때문이다.

    “한때 김장에 필요한 무와 배추를 많이 재배해놓고 사람들을 불러 자동차에 실어 보냈는데, 그러면 다들 발렌타인 30년산 선물 받은 것 이상으로 좋아하죠.”

    기자가 그의 집을 찾은 날, 마침 내년 1월 결혼하는 큰딸의 웨딩촬영이 있었다. 아내가 과년한 딸을 셋이나 남겨두고 홀연히 떠난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던 그는 그래도 담담하게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지나치면 스트레스가 되죠. 되도록 스트레스를 안 받고, 짜증 없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해요. 나는 내 인생, 이런 나를 좋아해요. 즐거움의 철학을 담은 인생을 살면 좋겠어요. 그래서 죽을 때도 웃으면서 죽고. 인생을 맛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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