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잘린 손가락도 재생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곧 현실로?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6-11-09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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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아줄기세포는 잠재력이 아주 크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따라서 원하는 대로 분화하도록 고삐를 죌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간세포로 분화해야 할 것이 엉뚱한 신경세포가 되거나, 아예 암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잘린 손가락도 재생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곧 현실로?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한 대원이 아기 인형이 담긴 얼음 조각과 ‘인간 생명에 대한 특허를 중지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발생학자 제임스 톰슨은 1998년 11월6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해 배양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발표되자마자 전세계를 격렬한 논쟁과 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일으킨 소용돌이는 잦아들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졌다. 그의 이름조차 모르던 수많은 일반 대중까지 집어삼키면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를 뒤흔든 3쪽짜리 논문

    과학적 발견이 으레 그렇듯이, 그의 발견도 그저 새로운 가능성으로 향한 문을 활짝 연 것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그 가능성이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라 ‘엄청난 것’이라는 데 있었다. 그보다 2년 전에 이뤄진 복제 양 돌리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그 발견은 인류의 미래를 뒤바꿀 영향력을 지녔다. 탄식과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이 당연했다. 물론 그는 7년 뒤 한국에서 그 여파가 일그러진 형태로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겠지만.

    톰슨은 시험관 수정을 시도한 사람들이 기증한, 남는 배아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면 수정란이 되고, 그 수정란은 배아를 거쳐 태아로 발달한다. 수정란은 하나의 세포인데, 그 세포는 계속 분열해 2개, 4개, 8개 식으로 증가한다.

    그 세포들의 덩어리가 바로 배아다. 수정란이 분열을 시작한 지 4∼5일쯤 지나면 세포의 수는 약 100개로 늘어나며, 배아는 마치 속이 빈 공처럼 변한다. 이때의 배아를 배반포라고 하는데, 거의 텅 빈 안쪽에는 약간의 세포가 들어 있다. 그 세포들을 내부 세포 덩어리라고 한다.



    내부 세포 덩어리는 계속 분열하고 자라서 나중에 우리의 몸을 이루는 다양한 세포, 조직, 장기를 만드는 기능을 한다. 톰슨은 그 내부 세포들을 꺼내어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배아줄기세포다.

    줄기세포는 분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증식하면서 적절한 환경이 갖춰지면 분화한 세포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줄기세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톰슨이 분리해낸 것은 배아줄기세포다. 톰슨의 정의에 따르면, 배아줄기세포는 자궁에 착상되기 이전의 초기 배아에서 얻은 것이다. 오랜 기간 미분화 상태에서 분열과 증식을 계속할 수 있고, 오랫동안 배양한 뒤에도 분화한 온갖 세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여전히 간직한 것이다.

    또 하나는 성체줄기세포다. 이는 발달한 동물의 여러 조직에서 발견되는 것을 말한다.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보다 발달 잠재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만들어낼 수 있는 세포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톰슨의 3쪽짜리 논문은 자신의 연구진이 배양한 것이 다양한 세포를 만들어낼 능력을 지닌 줄기세포임을 입증하는 분석과 실험 결과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 발견이라는 것일까? 그것은 꿈의 세포를 발견했다는 의미였다.

    종양 속에 뼈, 이빨, 머리카락이!

    배아줄기세포의 발견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기 쉽도록 암세포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암세포는 무분별하게 계속 증식한다는 점에서 정상 세포와 다르다. 정상 세포는 몸의 다른 세포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이겠지만, 대개 분열하는 횟수가 한정되어 있다.

    반면 암세포는 한없이 증식할 수 있다. 암세포의 이런 능력이 몸 전체에는 해가 된다. 하지만 정상 세포가 필요할 때 그런 증식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큰 상처가 났을 때나 손가락이 잘렸을 때 그 능력은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자라는 도마뱀과 달리, 잘려나간 인간의 손가락은 다시 자라나지 않는다. 병든 신장이나 심장도 재생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정상 세포는 암세포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지닌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사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암세포와 만난다. 1953년 미국 잭슨 연구소에서 일하던 암 연구자 르로이 스티븐스는 담배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잎담배와 암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는 실험용 생쥐들을 잎담배 성분들에 노출시켰다. 그러자 고환에 종양이 생긴 생쥐들이 나타났다. 종양을 짼 그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뼈, 이빨, 머리카락 등 온갖 신체 조직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그런 종양을 테라토마라고 한다.

    그는 종양을 일부 잘라 다른 생쥐에게 이식해보았다. 그러자 이식된 종양은 다양한 세포와 조직으로 자라났다. 그런 특이한 현상을 관찰한 뒤로 그는 테라토마 연구에 매달렸다. 수십년 동안 테라토마를 연구한 끝에 그는 그 종양이 배아줄기세포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는 그 종양을 일으킨 세포를 ‘만능 배아줄기세포’라고 불렀다. 그럼으로써 줄기세포 연구 분야가 탄생했다.

    스티븐스는 테라토마를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세계 각지의 연구실에 테라토마와 배양 기술을 전파했다. 그 뒤로 수많은 연구자가 암의 근원을 파헤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81년 에번스와 카우프먼이라는 두 연구자가 생쥐의 배반포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더 지난 뒤 제임스 톰슨은 1995년 영장류의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 기술을 이용해 3년 뒤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테라토마는 연구자들이 분리한 세포가 정말로 배아줄기세포인지를 판단하는 용도로 쓰이게 됐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생쥐에게 이식하면 테라토마가 생긴다. 테라토마가 안 생기면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다.

    재생 전문가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DNA 연구만큼이나 역사가 깊은 셈이다. 사실 배아줄기세포는 훨씬 전부터 존재가 예견됐다고 봐야 옳다. 배아줄기세포가 없다면 세포 하나로 된 수정란에서 200여 종류의 수십조 개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으로 자란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포에서 다양한 종류의 분화한 세포가 만들어지려면, 발달이 이뤄지는 동안 계속 미분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피부, 털, 뼈, 근육, 신경 등 분화된 다양한 세포와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세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때로 진정한 원인과 기본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성과를 내곤 한다. 성체줄기세포가 그렇다. 1965년 연구자들은 백혈병에 걸린 아이에게 골수를 이식해 치료에 성공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골수에서 혈액이 만들어지므로, 건강한 사람의 골수를 이식하면 혈액암인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생각은 옳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식한 골수에 들어 있던 것, 즉 백혈병을 치료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것은 성체줄기세포의 하나인 조혈모세포였다.

    골수를 이식했을 때 치료하는 것이 성체줄기세포임이 밝혀진 지금은 골수 이식 대신 조혈모세포를 사용한다. 가령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을 사용해 백혈병에 걸린 환자의 골수 세포를 죽인 다음, 기증받은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혈관에 주입한다. 그러면 조혈모세포는 혈관을 타고 돌다가 골수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뒤 건강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제대혈에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해 이식하기도 한다. 제대혈은 출산할 때 탯줄에서 뽑은 신생아의 피다. 그 피에는 조혈모세포 같은 성체줄기세포가 들어 있다. 신생아는 아직 면역체계가 덜 발달한 상태이므로, 제대혈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면역반응이 덜 일어난다.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체의 각 부위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곧 간, 치아, 근육, 창자, 피부, 혈액, 뇌, 심장 등 여러 부위에 성체줄기세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찾아보면 더 많은 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상처가 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재생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부위에는 성체줄기세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피부나 간이 대표적이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줄기세포의 능력이 모두 똑같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에 맞먹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다. 수정란에서 발달이 진행될수록 줄기세포도 점점 분화하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세포의 종류가 줄어든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피부세포가 간세포로?

    배아줄기세포는 200여 종류나 되는 몸의 모든 세포를 만들 수 있는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만들어낼 수 있는 세포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 듯했다. 간에 있는 줄기세포는 주로 간세포를 만들고, 창자에 있는 줄기세포는 주로 창자 세포를 만든다. 성체줄기세포 중에서 능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조혈모세포인 것 같았다. 조혈모세포는 주로 골수에 들어 있지만 지라, 간, 림프절, 탯줄, 혈액 등에도 들어 있으며, 아홉 종류의 혈액 세포를 만든다.

    조혈모세포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희귀한 형태의 줄기세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네소타 대학의 캐서린 버페이 연구진은 다능성체전구세포라는 것을 찾아냈다. 연구자들은 맵시(MAPC)라고도 하는 이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국내 연구진도 맵시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외에도 성체줄기세포가 의외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가령 백혈구가 손상된 근육을 치료한다거나, 조혈모세포가 뉴런을 만든다거나, 피부에 있던 줄기세포가 골수 줄기세포로 바뀐다거나, 신경 줄기세포가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세포로 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기존의 발생학 원리들을 무시하는 듯 여겨진다. 발생학적으로 보면 세포에도 계보가 있다. 배반포를 지난 뒤 배아의 세포들은 세 층으로 나뉜다.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이라는 세 세포층은 족보 맨 앞에 나오는 조상과 같으며, 각자 세포들의 계보를 형성한다.

    중배엽에서 나온 세포끼리는 서로 같은 계보에 속하므로 한 세포가 다른 세포로 바뀐다고 해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중배엽에서 유래한 세포가 외배엽에서 유래한 세포처럼 변한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그런 변화를 전환분화라고 한다. 예를 들면 피부세포가 간세포로 바뀌는 식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성체줄기세포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거나, 성체줄기세포가 있는 지점의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바뀌면 전환분화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반박하는 측은 연구자가 줄기세포를 혼동했거나 실험할 때 여러 줄기세포가 섞였을지 모르며, 혹은 세포융합이 일어난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줄기세포 연구가 시작된 지 10년이 채 안 된 상황이니 어느 쪽이 옳은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다.

    연구가 아직 미흡하다는 점은 현재 단계에서 줄기세포를 치료에 이용하는 것이 섣부르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려면 신뢰성과 안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먼저 줄기세포의 능력이 과학적으로 검증돼야 한다. 다시 말해 줄기세포의 활동이 발생학적 및 분자생물학적으로 상세히 밝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직 분화 과정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배아줄기세포는 더욱 더 그래야 한다.

    조급증이 낳은 ‘황우석 사태’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조혈모세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으면서도 골수 이식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거론한다. 구체적인 치료 과정은 몰라도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기본적으로 타당한 추론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재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을 내놓기 위해 앞다투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마도 신생 분야일수록 서둘렀을 때 선취권을 얻고 그에 따르는 이익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을 개발해 동물이나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들어갔다는 뉴스만 살펴봐도 연구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뼈질환 치료, 심장질환 치료, 척추 손상 치료, 뇌졸중 치료, 파킨슨씨병 치료, 암 치료, 요실금 치료, 유방 조직 재생, 방광 배양 이식, 뇌질환 치료, 난청 치료, 시력 회복, 당뇨병 치료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임상실험에는 긴 시간이 걸리므로 실제로 검증된 치료법이 나오기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런 경쟁에 치중하다보면 안전성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거기에 법과 제도의 허점이 버무려지면 탄식을 내뱉던 사람들이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재현이 불가능한 일회성 치료 효과를 과장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어쨌거나 그런 조급증이 ‘황우석 사태’를 빚어낸 한 축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연구자의 조급증에 정부와 대중의 조급증이 버무려져 상승 작용을 일으킨 셈이었다. 황우석 사건 이후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그 사건이 반성하고 뒤돌아볼 시간적 여유를 준 셈이다. 그 시간이 아주 짧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식용 장기 제작

    제임스 톰슨은 자신의 발견이 신약 개발, 장기 이식 등에 유용하리라는 것을 간파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발생학이었다. 선천성 기형, 불임, 유산처럼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발생학적인 사건을 실제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배아를 대상으로는 연구할 수 없다. 그는 배아줄기세포가 그런 원인을 규명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착상 이후 단계의 발생 과정은 연구할 배아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른 종(種)을 연구해서 그 결과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에도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아주 유용하다. 게다가 생쥐와 인간의 발생학적 차이를 밝히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봤다. 물론 이식용 장기를 만들고, 병든 조직을 대체하고, 신약과 새 치료법 개발에도 쓸모가 있으리라는 점도 언급했다.

    톰슨이 제시한 연구 방향은 이후 얼마나 진척됐을까. 그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윤리 논란에 얽매여 사실상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는 시험관 수정을 하고 남은 배아를 기증자의 동의 아래 실험에 썼다.

    그런 조치를 취한다 할지라도 배아줄기세포는 생명윤리 논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배아를 파괴하고 내부 세포 덩어리를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배아를 온전한 생명이라고 본다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배아라는 생명을 파괴하는 셈이다.

    미국은 생명과학 연구비의 대부분이 정부기관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새로운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해 배양하는 연구에는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리 확보해둔 기존의 배아줄기세포의 수는 얼마 되지 않고, 게다가 생쥐 세포에서 배양했기에 이식용으로 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배아줄기세포 자체의 문제도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잠재력이 아주 크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포이다. 따라서 원하는 대로 분화하도록 고삐를 죌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간세포로 분화해야 할 것이 엉뚱한 신경 세포로 분화하거나, 아예 암으로 바뀔 수도 있다.

    고삐를 죄려면 그 분화 과정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상세히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기초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기 전까지는 배아줄기세포를 치료용으로 쓴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배아줄기세포는 이식 치료용보다는 발생 과정 같은 생물학적 기초 지식을 규명하는 데에 쓰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식용으로는 부작용이 적은 성체줄기세포 쪽이 더 나을 수 있다.

    난치병 치료 막는 이분법 사고

    그래도 배아줄기세포는 강력한 연구 도구가 될 수 있다. 환자에게 맞는 신약이나 치료법 개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톰슨 같은 연구자들은 아예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라는 이분법을 폐기하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제대로 이해하려면 양쪽을 다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분법에 얽매여서 한쪽에만 치중하다가는 반쪽 지식밖에 얻지 못하며, 제대로 된 지식을 얻어야만 진정으로 난치병 치료와 수명 연장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발견되기 2년 전, 복제 양 돌리가 탄생했을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장기 이식을 위해, 혹은 후손을 보기 위해 복제 인간을 만든다면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것이라며 탄식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복제 기술이 생물학 기초 지식을 확충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된 끝에 인간 복제는 금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복제 배아 연구는 금지하거나 엄격한 지침과 관리 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어쨌든 현재 동물 복제 기술은 생물학 지식과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복제와 줄기세포는 체세포 핵 이식이라는 기술을 통해 서로 만난다. 복제를 하려면 난자의 핵을 없앤 뒤 거기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해야 한다. 그 기술이 바로 체세포 핵 이식이다.

    잘린 손가락도 재생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곧 현실로?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이른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같은 기술을 써야 한다.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난자에 이식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면 이식했을 때 거부 반응이 없다. 둘은 배반포 단계까지는 동일하다. 줄기세포를 얻을 때는 그 배아를 파괴하고, 복제를 할 때에는 그 배아를 그대로 발달시키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톰슨의 실험은 복제 실험과도 이어진다. 현재 둘은 사실상 생물학과 의학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정치, 사회, 윤리 등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이 미치고 있다. 하나의 실험이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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