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은평구, 지하철 3호선 녹번역과 은평구청을 잇는 도로는 평일 밤 10시 무렵부터 부쩍 복잡해진다. 인근 명성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을 집까지 데려다 줄 학원 버스며 승합차에다 학부모들의 승용차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이 학원이 은평구 서대문구 마포구 종로구 중구를 아우르는 서울 서부지역에서 특목고 및 명문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했다고 알려지면서 늦은 밤 진풍경 대열에 합류하는 이가 늘고 있다. 그러나 줄을 선다고 다 합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학원 입학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집중 과외를 했다느니, 시험엔 통과했으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학부모들 사이에 회자된다.
‘명성에서는 강남과 강북의 차이가 없습니다.’
‘2006학년도 특목고 입시 150명 합격!’
전면의 헤르메스 기둥 8개가 인상적인 육중한 건물에 들어서기 전, 입구에 붙어 있는 광고 전단지에서 이 학원의 실적이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된다. 특히 특목고 합격생의 경우 출신학교와 합격한 학교, 학생의 얼굴을 공개한 대형 현수막을 정문과 마주한 내벽에 걸어놓아 자부심을 내비친다.
학원장을 만나기 위해 상담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책장에 꽂힌 자료들을 꺼내 살펴보았다. 중등부 안내 자료엔 엘리트센터, 내신센터, 입시센터 각각의 목표와 수강 자격조건, 수업내용이 체계적으로 설명돼 있다. 엘리트센터는 내신 성적이 최상위권이면서 특목고가 아닌 일반고를 선호하는 학생에게 적합하고, 내신센터는 학교 성적 평균 70점 이상인 중상위권 학생의 실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입시센터는 민족사관고와 자립형사립고,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목표로 한 학생이 대상인데, ‘입시센터 교과계획’을 보니 다시 과고민사반, 영재과고반, 민사토플반으로 나뉜다.
중등부는 대략 일주일에 4일, 17∼18시간 수업하고, 개별보충수업까지 포함해 0교시에서 5교시까지 시간표가 짜여 있다. 학생 수준과 목표에 따라 반이 세분되고, 수업방식 및 교과과정이 다르다보니 학원 안내자료만 10여 종, 각종 입시설명회 자료까지 포함하면 자료집이 수십 종으로 늘어난다.
한 중학생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명성학원을 ‘명성야간학교’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듯싶다. 학교 수업 후 다시 4∼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니. 아이들을 초·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궁극적으로는 명문대 입시에 대비시키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전략을 세워놓은 이곳의 대표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나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생기게 마련이다. 고교평준화 이후 이른바 명문고 개념이 사라지면서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야 명문대에 합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을 둔 한 아버지는 “여의도에 살면서 아이를 중계동에 있는 학원에 보낸다”고 말했다. 나중에 특목고에 보내려면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명성학원의 특목고 합격생 배출 실적은 우리 교육 현실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심을 끌 만한 대상이다. 한 해에도 무수히 많은 학원이 생겼다 사라지고, 학원끼리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어떻게든 대치동과 중계동에 발을 걸치려고 하는 마당에 은평구에서만 25년째 한 우물을 팠고, 특목고 재학생 300여 명이 이 학원에 다닌다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지 않은가.
1982년 7평에서 시작
명성학원 이덕희 이사장과 심은숙 원장은 부부이다. 1982년 4월, 은평초등학교 옆 건물 2층 7평 공간에서 처음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만 해도 두 사람은 자신들이 교육사업에 매진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덕희 이사장은 “10여 년간 레슬링 선수 생활을 했고, 결혼 후 새로운 일을 찾던 중 주위의 권유로 학원을 열었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라 큰 기대나 뚜렷한 목적 없이 강사 한 명을 두고 주산교습소 간판을 내걸었다. 교육철학이나 경영마인드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이 이사장은 “그냥 미쳐 있었다”고 말한다.
25년 전 ‘뭣 모르고’ 학원운영을 시작해 젊음을 통째로 학원에 바친 이덕희 이사장(왼쪽)·심은숙 원장 부부.
교육에 관한 한 비전문가에 가깝던 두 사람은 커가는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점차 교육자로 성장해갔다. 이 이사장은 초창기부터 ‘눈높이 교육’을 했다고 자부한다.
“책상과 의자를 직접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자꾸 책상에 무릎을 부딪혀 멍이 들고 피가 나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직접 앉아보니 다리에 꽉 끼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책상을 높이면서 눈높이 교육의 중요성을 알았어요. 책상을 아이들 몸에 맞게 만들어야 하듯 교육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걸요. 그때 이후로 아이들끼리 대화하는 걸 유심히 지켜봤다가 수업할 때 아이들이 즐겨 쓰는 말이며 말투를 써가며 설명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공부하니 아이들 성적이 절로 올라가고, 아이들이 부모님 말은 안 들어도 저희 말은 잘 들었어요.”
특목고 합격생 배출의 폭발력
등 떠밀어 보내야 했던 학원을 아이들이 제 발로 가겠다고 하고, 학교 성적도 오르자 고마운 마음에 학원을 찾아와 눈물짓는 학부모도 생겨났다. 그러면 부부는 거드름 피우지 않고, 학부모를 학원 밖까지 배웅하며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학부모 처지에선 ‘내 아이를 저 사람들에게 맡기면 최소한 저 정도의 예의는 갖추겠지’ 하는 믿음이 생길 만했다.
학부모들의 입에서 입으로 명성이 전해지면서 학원생 숫자가 늘어났다. 2년 뒤, 학원과 붙어 있던 20평짜리 중국음식점까지 강의실로 만들어 27평 규모의 학원이 됐다. 그러다 고층 건물 한 층을 임차하고, 또 다른 건물을 추가로 임차하고…. 개원 이후 꾸준히 성장한 명성학원은 현재 지하 1층, 지상 6층짜리 본관 건물을 비롯해 모두 6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강사 수 200여 명. 학원생 수는 “초·중·고부 각각 학교 한 개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입소문의 폭발력이 엄청났다”며 웃는다. 그러나 입소문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퍼지기 어렵다.
“1991년에 2명이 과학고에 합격하고부터 입소문이 번졌어요. 잘하는 아이들에게 투자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1993년에 12명, 1994년과 1995년엔 20여 명씩 특목고에 보냈어요. 그런데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1996년 이후 특목고 학생이 내신 때문에 대입에서 불리해졌어요. 그때 많은 학원이 특목고 대비반을 없앴는데, 우리는 그때까지 아이들을 외국어고나 과학고에 보내기 위해 가르친 게 아니었습니다. 우수한 학생이 실력을 더 쌓도록 지도한 거죠. 그래서 입시제도에 상관없이 해오던 대로 계속했는데, 거기서 차이가 난 것 같아요. 우수한 학생을 가르치는 노하우가 축적된 효과가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나타났어요.”
2003년 105명, 2004년 118명, 2005년 143명, 2006년 150명. 그동안 명성학원이 배출한 특목고 합격자는 700여 명에 달한다.
“사교육계에 몸담은 분들은 알아요. 이곳 서부지역 학생층이 엷다는 걸. 한마디로 학부모의 주머니 사정이 좋질 못해요. 강남, 목동, 중계동에선 자녀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을 더 알아보고 과외 선생을 붙이면서 아이를 다그치지만 이쪽 지역 부모는 포기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도 어떻게 그처럼 많은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고, 서울대와 연·고대, KAIST, 포항공대에 보냈는지 강남 사교육 관계자들도 놀라워해요. 무슨 노하우가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노하우는 없어요. 다만 선생님들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가도 링거를 꽂은 채 나와서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은 공부하다 까무러치기도 할 만큼 열의가 있어요. 명성학원에서 가르치는 것, 공부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학교 성적 70점 이상
요즘 학원가는 테스트를 통해 일정 기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학생들만 뽑아 철저하게 수준별 교육을 시키는 풍토가 자리잡았다. 그렇게 해야 학생 관리가 수월하고, 우수한 실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명성학원은 이러한 시스템을 이미 오래 전에 갖췄다. 입학시험을 통과한 아이들은 명성학원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1991년부터 명성학원에 근무한 고등부 강사 양선숙씨는 “초창기부터 학생을 무조건 받지 않고, 레벨 테스트로 수준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에 입학시킨 것이 중요한 성공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명성학원은 한 반 학생 수가 15~20명이다. 소수정예는 아닌 셈. 그러나 꼼꼼한 학생지도와 상담으로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평을 듣고 있다.
“자정이 넘도록 남아 자율학습을 하는 아이가 적지 않아요. 새벽 1시에 퇴근하다보면 학원 밖에서 잠깐 숨 돌리고 다시 들어가 공부하는 아이들을 종종 보죠. 아이들이 그렇게 남아서 공부하면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해요. 입시철이면 더하죠. 얼른 집에 가서 쉬라고 해도 안 가요.”
그렇다고 좋은 실적의 원인이 우수한 학생들을 가려 뽑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은숙 원장은 “처음부터 우수한 실력으로 학원에 들어온 학생도 있지만 다수는 70점 이상이라는 기본 실력이 차츰차츰 향상되어 과학고에도 진학하고, 소위 명문대에도 들어간 경우”라고 했다.
명성학원은 1년에 한 번 전체적으로 반배치를 새로 하는 것 외에 평균 두 달에 한 번 자체 시험을 치러 그 결과에 따라 월반(越班) 기회를 준다. 그리고 한 반의 학생수가 늘어나면 실력에 따라 다시 반을 쪼갠다. 우열반과 구별되는 수준별 맞춤식 교육이 가능해지는 한편 학생들에겐 충분한 자극이 된다. 양선숙 강사는 “학원 초창기부터 월반제도가 학생들을 자극해왔다”고 말한다.
“성적이 어느 정도 올라 월반하는 학생에겐 상을 줘요. 이사장님이 직접 상을 주니 상을 받은 학생은 굉장한 자부심을 갖죠. 반면 욕심과 달리 몇 달째 같은 반에 머물러 있는 학생은 낙심할도 수 있어요. 그래서 간혹 학원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 성적이 부쩍 올랐을 때, 90점 이상을 맞았을 때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상을 주니까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면이 더 크죠.”
실력과 목표에 따라 잘게 쪼개진 반에선 명성학원 입시전략연구소와 교재연구실에서 제작한 자체 교재로 수업이 이뤄진다. 학년별 교육과정에 충실하되 응용학습과 심화학습을 강화, 중학생이라도 장기적으로 대입 준비에 필요한 기반을 다진다는 목표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 때문에 명성학원 강사진은 “설사 특목고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더라도 장기적으로 대입 준비를 탄탄히 한 셈이기 때문에 학생으로선 아쉬움이 있을 뿐 손해 볼 건 없다”고 자신한다.
“영어, 수학만 잘해선 안 된다”
심은숙 원장은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려는 학부모들로부터 ‘내신은 신경 쓰지 말고 특목고 입시 대비에 치중한 특별 교육을 시켜달라’는 요구를 종종 듣는다”고 한다. 자녀에게 과외를 많이 시키는 집은 영어만 해도 학교시험용 영어와 수능 영어, 그리고 회화를 따로 가르친다고도 하니 그런 부탁을 할 만도 하다. 일반적으로 특목고에 입학하려면 영어나 수학만 월등히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 그렇게 전략적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학원도 많다. 그러나 심 원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내신을 확실하게 다지도록 해요. 수학만 잘하거나 영어만 잘해서 특목고에 가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어느 한 가지만 잘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학생에게 필요한 기본 소양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대학에 가는 건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어른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래서 학부모님들께 내신을 완벽하게 정리한 아이들이 성실하고, 특목고 시험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다고 조언합니다.”
상담의 힘
이덕희 이사장은 학원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이야기할 때 자기 이름을 앞세우지 않는다. 꼭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될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명성학원 이사장 이덕희입니다”라고 인사한다. 아이들을 큰사람으로 만드는 건 지식과 숙련된 교수법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학원 복도를 돌아다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양복 주머니에 과자며 사탕을 집어넣고 달아난다. 어른이 먼저 아이를 믿어주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는 어른을 따르게 돼 있다.
“초등학생에겐 여러 말이 필요 없어요. 눈을 맞추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넌 1등’ ‘넌 100점’ ‘넌 최고’ 하면 돼요.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닌데, 아이들은 그 작은 것 하나로 굉장한 힘을 얻어요. 종일 신나서 다니죠.”
학원의 생명력은 강사의 질에 달려 있다. 명성학원은 강사를 전적으로 공개 채용한다. 이 이사장 부부는 “이제 눈만 봐도 좋은 강사인지 아닌지 가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력과 직관만으로는 선택이 완벽할 수 없으니 채용 후 3개월간 유심히 지켜본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여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만큼 비교육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사들에게 “당신의 아이를 이 학원에 보낼 수 있게끔 가르치고 행동하라”고 당부한다. 실제로 여러 강사의 자녀가 명성학원에 다니고 있다.
장기간 근무한 강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5년 이상 근무자가 대다수. 16년째 근무하는 강사도 있다. 학원 강사가 이직률이 높은 직업임을 감안할 때 흔치 않은 일이다. 사교육이 비교육적이라고 공격받는 것도 강사들이 아이들에게 지식만 주입하고, 돈 많이 준다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 보따리를 싸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1998년부터 명성학원에 근무한 강사 송지영씨는 “강사마다 직책이 있고,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다보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한다. 학원 강사는 교사와 달리 강의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명성학원은 강사 1명이 20명 안팎의 학생을 직접 ‘관리’한다. 학교의 담임교사 같은 역할이다. 학생의 출결 및 성적, 학습태도 등을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상담도 한다. 2002년부터 명성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임선아씨는 중3 때 명성학원에 다닌 이 학원 출신 강사. 임씨는 “강사 업무 중 강의와 상담 비중이 5대 5에 이른다”며 “수업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강사와 아이들이 늘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한다.
잦은 상담은 학부모의 신뢰를 이끌어낸다. 지난 여름부터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을 명성학원에 보내고 있는 평창동의 A씨는 “학원 담임선생님이 자주 전화해 아이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학원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도 알려준다”고 했다. 그전까지 아들에게 선행(先行)학습을 시켜본 적이 없다는 A씨는 “이웃의 권유로 아이를 명성학원에 보냈는데, 무엇보다 시키지 않아도 예·복습하는 습관이 생긴 점이 만족스럽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공부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아이가 또래들로부터 자극도 받은 것 같다”고도 했다.
고등부 외고·과고팀장을 맡고 있는 조승곤씨는 몇 해 전 이 이사장에게 “학원을 제대로 키우려면 대치동에 지점을 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가 단박에 거절당했다. 그는 “이사장이 ‘내가 이 지역을 떠나는 순간 나는 장사꾼이 된다. 돈 되면 안 가는 곳 없는 게 장사꾼 아니냐. 이 지역 주민들에게 명성학원에 발을 들이면 다른 지역에 안 가도 대입까지 준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 말에 지역에 대한 사명 같은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근 지역 학생들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까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논스톱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게 이 이사장 부부의 목표다. 그래서 가끔은 ‘돈 안 되는 반’도 만든다. 예를 들어 대부분 A나 B학교 진학을 희망하는데 단 2명만 C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면 그 아이들을 A 혹은 B반에 넣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C반을 만드는 것. 일단 반을 하나 만들면 국어, 영어, 수학, 과학강사가 다 동원돼야 한다. 그러나 학원 수강료는 수업시수(時數)에 따라 매겨지니 2명이라고 해서 학원비를 더 받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럼에도 반을 만드는 건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강남 등 다른 지역으로 가거나 그럴 형편이 못돼 꿈을 접기 때문이다.
학원의 위치상 내로라하는 정관계 인사 자제부터 하루 밥벌이도 힘든 서민의 자녀, 그리고 고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적 배경을 가진 학원생들을 접해온 것도 ‘논스톱 교육 서비스’ 꿈을 키우게 된 계기다. 아이가 잠재력은 있는데 가정형편상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 작은 도움으로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는 것을 보고 교육의 힘을 절실히 느낀 것.
참기름과 ‘소년의 집’
심 원장에겐 추석 무렵이면 꼭 생각나는 학부모와 학생이 있다. 남편이 몸져누운 바람에 혼자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와 자녀다. 명성학원은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생활보호대상자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탁받아 교육하는데,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남매가 공부를 아주 잘했어요. 그러다 추석 전날 어머니가 찾아와 자신이 해줄 게 이것밖에 없다며 참기름 병을 내밀었어요. 세 집을 돌아다니며 차례 준비를 해주고 오는 길이라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눈에 초점이 없고, 손이 나뭇가지처럼 거칠었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도저히 그 참기름을 먹을 수 없더군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그 어머니와 요즘도 가끔 통화를 하는데, 당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가 아이들을 명성학원에 공짜로 다니게 했을 때라고 얘기하세요.”
다행히 남매는 건실하게 자라났다. 아들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딸은 교사가 되어 요즘도 1년에 한 번은 학원을 찾아온다. 이 남매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은평구에 있는 ‘소년의 집’ 아이들에 얽힌 일화는 더 눈물겹다.
“‘소년의 집’ 수녀님의 부탁으로 연말에 예비 중1 과정을 모집할 때 그곳 아이들도 가르쳐요. 그렇다고 무조건 다 받아주는 건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입학시험에 합격해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 지난해 말엔 응시생 중 절반 정도가 합격해 학원을 다녔는데, 놀랍고도 기특한 것은 그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돌아가서는 그날 학원에서 배운 것을 나머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는 거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지방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요. 과정이 끝날 때까지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있다가, 아이들이 작별 인사를 하러 온 날 학원이 울음바다가 돼 얼마나 속상했나 몰라요. 10주 프로그램이었는데, 맨 끝 반으로 들어와서 마지막엔 제일 높은 반에서 과정을 끝낸 아이가 있었거든요. 그런 아이는 주위에서 조금만 신경써주면 인재가 될 텐데…. 사회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가능성 있는 아이가 참 많아요.”
명성학원은 이렇듯 생활보호대상자 자녀나 소년소녀 가장, 그밖에 기관에서 의뢰한 아이들, 한 부모 가정의 자녀 등 불우이웃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각종 혜택을 주는 반면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장학금은 없다. 장학금을 지급하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학원이 많다보니 으레 장학금을 받을 거라 기대하며 학원을 찾는 ‘전교 1등’ 부모도 적잖은데, 안타깝게도(?) 명성학원은 전교 1등이라고 해서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수준이 자녀 성적과 비례하고,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절망적인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데, 이 정도면 사교육이라고 무조건 깎아내릴 건 아닌 듯하다.
“특목고 합격생 유출 막아라”
그러나 불과 4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까지 ‘논스톱 서비스’를 하기에 명성학원은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다수의 특목고 합격생을 배출했지만 대다수가 합격 후 강남 등지의 학원으로 이탈했던 것. 우수한 학생들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면 우수한 강사진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맥을 총동원해 대치동 학원가의 강사진으로 팀을 구성했다.
대치동 강사를 강북으로 끌어오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때 이미 명성학원은 서울 서부지역에서 꽤 이름이 높았지만, 대치동 강사들에겐 생소하기만 했다. 설사 명성학원 이름을 들어봤다 하더라도 강북에서 강의하는 것이 결코 자신의 이력에 보탬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게 대치동 강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어렵게 구성한 대치동 강사진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특목고에 다니면 뭔가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강남까지 갔던 학생들이 ‘강남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명성학원에서도 가르친다’는 걸 알고는 다시 명성학원으로 돌아온 것. 집에서 가깝고, 학원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게다가 중학교 때 이미 명성학원에서 공부해 환경이 익숙한데 굳이 강남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명성학원 출신 특목고 합격생이 계속 명성학원을 다니게 되니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명성학원에 특목고생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 한성과학고며 서울과학고에 다니는 타 지역 학생들이 속속 명성학원 문을 두드렸다. 현재 과학고 150명, 외국어고 120명의 재학생이 명성학원에 적을 두고 있다. 특목고 재학생 비율이 높아지면서 사교육 시장에서 명성학원의 지명도도 꽤 높아졌다. 과고·외고팀장 조승곤씨의 말이다.
“몇 해 전 섭외했다가 거절당한 대치동 학원 강사에게 최근 다시 연락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더군요. 명성학원에 과학고생이 많이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다고요. 강북 소재 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규모의 과고·외고팀을 가르친다는 건 대치동 강사 이력에도 보탬이 되죠.”
과학고나 외고 재학생들은 주말에만 수업을 듣는다. 이 때문에 대치동 강사진은 주말에만 명성학원에서 강의했는데, 요즘은 주중에 일반고 3학년 학생들도 가르친다. 조 팀장은 “한 해 600∼700명의 고3 학생이 명성학원을 거쳐간다”고 말한다.
“대입학원으로서 명성학원의 최대 장점은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과 대치동식 최첨단 시스템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고1, 고2 때는 전임강사로 구성된 종합반에서 인성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다지고, 입시 최전선인 고3 때는 대치동식으로 마무리하고. 대치동은 아이들이 여러 학원에 다니다보니 어느 학원에서도 아이를 온전히 책임지려 하지 않아요. 명성학원은 고1, 고2, 길게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명성학원에서 실력을 다진 ‘명성 출신’에 대한 책임감이 크죠.”
명성학원 고유의 ‘책임지는 교육’과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에 발 빠르게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대치동식 교육 각각의 장점을 결합시켰다는 설명이다.
과학고생이 학원에 다니는 이유
한성과학고에 재학 중이면서 주말에 명성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B군의 어머니는 “명성학원이 없었다면 비싼 돈 들여 아이를 강남까지 보내야 했을 것이다. 집 가까운 곳에서 강남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고 했다.
과학고 재학생이 학원에 다닐 필요가 있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B씨는 “과학고생 대다수가 학원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심 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특목고 아이들이 분명 영특하지만, 입시제도 때문에 학원에 의지하는 거죠. 대학마다 입시전형이 다 다른데, 공교육에서 모든 학생에게 충분한 대비를 시키기는 어렵잖아요. 그러니 학원에 와서 원하는 대학에 맞는 준비를 하는 거죠. 25년 사교육에 몸담고 있다보니 정부에서는 공교육을 바로세우겠다고 입시제도를 바꾸는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제도만 바꾸니까 사교육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게 느껴져요. 지금 논술 때문에 난리잖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논술을 가르쳐서 그것을 대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논술시험을 보겠다고 하니 온 나라가 논술과외로 시끄럽잖아요.”
명성학원은 2007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연·고대, 포항공대, KAIST에 150명이 합격할 것으로 전망한다.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초등학교 교육부터 명문대 입학까지 명성학원이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부모가 아이 교육 걱정을 일절 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겠다는 생각과 의욕, 공교육이 먼저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공교육 울타리 안에 있다고 안주하지 말고 사교육에서 한 수 배워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