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국회의원 일부가, 해양 주권 확보를 위해 도입하는 해경 초계기의 성능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바람을 잡고 있다. 이에 해경 지휘부도 끌려가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익을 무시하고 파행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는 해경 초계기 도입사업의 문제를 고발한다.
해경이 지난해 도입 계약을 체결한 스페인 카사의 C-212(오른쪽)와 미국 레이시온사의 비치-350 항공기. C-212는 고익기에 후방문 구조이며, 비치-350은 저익기에 해치 구조이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초계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갖춰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압박을 가하는 데 있다. 초계기를 도입하는 이유는 빈발하는 해양사고와 서·남해에서 일어나는 중국 어선의 우리 수역 침범, 그리고 일본과 마찰을 빚고 있는 독도 영유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해경 경비함은 최고 속도가 시속 40㎞ 내외인지라, 사고와 사건이 일어나면 신속히 현장으로 달려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시야 가리는 주날개
현재 해경이 보유한 3000t이 넘는 대형 경비함은 퓨마 헬기를 싣고 갈 수 있다. 그러나 퓨마 헬기가 감시하고 경계할 수 있는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이 헬기는 조종사를 포함해 최대 8명이 탑승하는 소형인지라, 구조대원과 구조장비, 그리고 구출한 조난자를 안전하게 싣고 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야간항법 장치나 계기비행 장치도 없어 야간이나 안개가 짙을 때에는 아예 비행하지 못하는 결정적 약점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 해안경비대와 일본 해상보안청은 장시간 비행이 가능하고 많은 장비를 싣고 더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고정익기를 초계기로 도입하고 있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가장 시급한 것은 현장 파악이다. 고정익 초계기는 속도가 빨라 현장에 신속히 도달할 수 있다.
현장에 도착한 초계기는 선회비행을 하는데 이때 조종사와 승조원은 밑을 내려다보면서 현장을 파악한다. 육안으로 보거나 망원경 등 장비를 이용해 살펴볼 수도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초계기의 주날개이다. 이쪽에서는 잘 보이던 것이 선회를 하면 주날개가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비행기는 주날개가 동체 아래에 달려 있어 승조원과 조종사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데 방해를 받는다. 그렇지 않아도 비행기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창은 매우 작은데, 주날개마저 시야를 가린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주날개가 동체 위에 있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고익기(高翼機)를 초계기로 선택하는 추세에 있다.
현장에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익기와 고익기는 더 큰 차이를 보인다. 현장에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상황은 주로 사고를 당한 배에서 생존자가 발견된 경우이다. 초계기는 이들이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구조물품을 떨어뜨려주어야 한다. 이때 관건은 정확한 투하이다. 구명보트와 식량 등 물품을 조난자로부터 반경 20~30m 안에 투하해야 조난자가 헤엄쳐 갈 엄두를 낼 수 있다. 50m쯤 되는 곳에 떨어뜨린다면 지친 그들은 초계기를 향해 오히려 삿대질을 할 것이다.
정확하게 투하하려면 조종사와 승조원이 조난자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초계기의 주날개가 조종사의 시야를 가린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해 해경은 고익기 구조 항공기만 초계기로 도입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 원칙을 만족시킨 스페인 카사(CASA)의 C-212 도입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올해 몇몇 국회의원이 고익기만 도입 대상으로 정한 것은 불공정한 처사라며 고익기 조항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초계기는 속도가 빠를 필요가 없다. 현장에 신속히 달려가기 위해서는 속도가 빨라야겠지만, 현장에 당도한 이후에는 저속 비행을 해야, 현장을 살펴보고 구조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초계기는 속도가 느린 터보프롭 항공기를 선택하고 있다. 저속 비행을 하는 데는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터보프롭 항공기가 제트엔진기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그런데 일부 국회의원은 ‘사고 현장에 신속히 날아가야 한다’ ‘과거 미국과 일본도 제트기를 해경용 초계기로 사용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속도 빠른 항공기를 초계기 도입 대상으로 선정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해치로는 구조물품 못 내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초계기는 세 가지 방법으로 구조물품을 투하한다. 첫째, 기체 밑바닥에 있는 ‘해치(hatch)’를 열고 투하하는 방법이다. 해치는 직경 50cm 정도로 도로에 설치된 맨홀뚜껑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항공기의 기체 밑바닥엔 이보다 큰 해치를 만들 수는 없다.
문제는 구명 고무보트가 해치보다 크다는 데 있다. 고무보트는 8~24명이 타도록 제작된 것이라 압착해도 직경이 1.4m 이하로는 줄어들지 않는다. 따라서 해치만 있는 초계기는 조난현장의 상황만 보고할 뿐 구조 작업을 할 수가 없다.
둘째, 기체 옆에 있는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투하하는 방법이다. 슬라이딩 도어는 해치보다 커서 좀더 큰 물체를 떨어뜨릴 수 있으나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강력한 풍압(風壓)이 발생한다. 이 풍압 때문에 ‘정확한 지점에 투하’하기가 어렵다. 구조물품이 먼 곳에 떨어진다면 조난자들은 오히려 좌절할 것이다.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투하한 물품이 난기류로 인해 치솟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치솟은 구조물품이 초계기의 꼬리를 친다면 저공비행을 하던 초계기는 중심을 잃어 바다로 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후방문(Rear Ramp)’을 갖춘 터보프롭기를 초계기로 선택하고 있다. 리어램프는 군용 수송기에서 보는 것처럼, 기체 뒤쪽 바닥이 내려가는 형태로 열리는 문을 말한다. 리어 램프는 큰 물체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열리고 기계를 이용해 투하하므로 정확한 투하가 가능하다. 난기류로 인해 떨어뜨린 물자가 치솟더라도 항공기를 칠 염려가 적다.
이것이 초계기의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나라당의 A의원, 열린우리당의 K의원 등은 고익기일 필요가 없고 해치만 있으면 후방문은 반드시 갖추지 않아도 되며 저속 조항도 없애라고 해경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 해경은 ‘챌린저’라는 이름의 초계기를 한 대 보유하고 있다. 챌린저는 제트기이기 때문에 저공과 저속비행이 불가능하다. 저익기인데다 후방문이 없어 현장에 날아가도 구조활동을 전혀 하지 못한다. 챌린저의 이러한 한계 때문에 해경은 새로운 초계기를 도입하려는 것인데, A의원과 K의원 등은 챌린저 수준의 항공기를 초계기로 도입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들이 압력을 가해야 할 사안은 다른 쪽이라고 지적한다. 해경 초계기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한국 수역을 침범하는 중국 어선과 독도 근처를 배회하는 일본 배에 대한 감시이다. 감시를 하려면 반드시 해상추적레이더가 있어야 한다. 초계기에 탑재된 레이더는 함정에 실린 레이더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를 탐지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한 요구인가
해경은 새로 도입할 초계기에 반드시 레이더를 탑재해야 한다는 조건을 삽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예산 부족 때문. 같은 이유로 해경은 야간비행장치와 어둠 속에서도 조난자를 찾는 특수 장비를 탑재해야 한다는 조건도 추가하지 못했다.
해상사고는 심야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는 열이 발생한다. 이 열을 탐지하는 장비가 있다면, 야간이라도 이 장비를 이용해 조난자가 있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장비가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나오는 열을 적외선으로 감지하는 FLIR(Forward Looking Infra Red)이다.
양식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해경에 해상레이더와 FLIR, 야간비행 장치, 후방문, 고익 구조를 갖춘 항공기를 초계기로 선정하라고 압박해야 한다. 그러나 의원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이들은 누구를 위해 이런 주장을 내놓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국회의원들을 수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