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코는 음기로 다스려라

  • 입력2010-12-06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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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런 코를 많이 흘리면 공냥이 넓어서 부자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냥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코 흘리는 일이 일상이었던 우리의 유년에는 나름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그 많던 누런 코는 사라지고 맑은 코의 알레르기가 우리를 괴롭힐까.

    이뿐만 아니라 아이들 대부분이 싯누런 콧물을 줄곧 인중에 매달고 다녔다. 인중을 타고 흘러내린 두 줄기의 콧물이 입술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 하면,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아이들은 훌쩍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면 두 줄기의 콧물은 잽싸게 콧구멍 속으로 퇴각해서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고 인중에는 두 줄기의 콧물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린 하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나 콧속으로 들어간 콧물은 어느새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인중을 타고 내린다. 시달리다 못한 아이가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하여 옷소매로 인중을 쓱 문지른다. 그래서 대다수 아이들의 윗도리 양쪽 소매는 말라붙은 콧물로 반질반질 윤이 났다.

    소설가 김주영은 어릴 적 콧물 얘기를 이처럼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런 코를 거의 보기 힘들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명찰 밑에 손수건을 매달던 광경도 사라졌다. 지난 세월 동안 거리 풍경뿐 아니라 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한의원을 열고 코를 치료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유행이 지나가고 사람이 달라졌지만, 오래전 치료해준 어린이 환자가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과거 코 치료의 대세는 바로 누런 코, 즉 축농증을 없애는 것이었다. ‘동의보감’에도 누런 코를 치료하는 처방이 많이 나온다. 특히 부비동(副鼻洞)에 있는 코를 빨아내 배설시키는 외용약으로 유명한 것이 과체산인데 ‘과체(瓜?)’는 참외꼭지를 가리키는 약재 용어다. 이 약엔 참외꼭지를 비롯해 4가지의 약물이 더 들어가는데, 코에 불어넣으면 강력한 배농작용을 해 누런 코가 줄줄 흐르면서 증상이 깨끗해지곤 했다.



    이 약물을 넣으면 코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국물을 떠먹기 힘들 정도였다. 어느 환자가 겪은 얘기다. 과체산으로 코를 치료한 후 딸네 집에 들렀다. 딸은 엄마가 오랜만에 오셨다며 쇠고깃국에 파를 듬뿍 넣어 맵게 끓였다. 그런데 사위와 마주하고 국을 먹다가 코에 끼워넣어둔 과체산 솜뭉치가 흘러내려 국에 빠지고 말았다. 환자는 아까운 생각에 쇠고깃국 속의 솜뭉치를 숟가락으로 떠내고는 다시 코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사위가 “아니, 장모님 쇠고기를 왜 코에 넣어요?”라고 물어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두 얼굴의 알레르기

    코는 음기로 다스려라
    요즘도 가끔 누런 코를 흘리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다. 그래서 참외꼭지를 사다가 가루약을 만들어 써봤는데, 콧물이 별로 나오지 않아서 왠지 약효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외꼭지가 중국산이라 그런가 싶어서 집에서 먹던 국내산 참외꼭지를 말려 가루약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약효는 그저 그랬다. 왜 그럴까.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참외이다보니 외꼭지가 제대로 쓴맛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외꼭지는 햇빛을 많이 봐야 쓴맛이 강해지고 쓴맛이 코 안의 농을 배설시킨다.

    알레르기 비염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과체산 덕분이었다. 환자의 코에 과체산을 넣자 콧물이 폭발적으로 쏟아진 것이다. 그냥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줄줄 흘러내렸다. 자극이 강해선지 눈도 충혈돼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약간의 자극에도 심하게 반응하는 질환이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이 질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감이 왔다.

    하지만 그 뒤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이 ‘대세’가 될 줄은 몰랐다. 그 무렵 알레르기성 비염의 치료법이 나름대로 구체화됐다. 의외로 소청룡탕이라는 처방이 효과를 봤다. ‘동의보감’에도 맑은 콧물과 재채기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치료법은 없었다. 기껏해야 몇 쪽에 불과한 처방이 전부였다. 소청룡탕은 그 뛰어난 효과에 힘입어 알레르기 비염의 명방(名方)으로 퍼져나갔고, 많은 한의원이 ‘비염 전문’으로 간판을 내건 것도 이러한 처방의 연장선에 있었다.

    코는 음기로 다스려라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것 같던 치료법은 알고 보니 ‘반쪽 치료법’에 불과했다. 알레르기는 면역이 과민해서 생기는 질병이다. 면역 질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온도를 높여 바이러스와 세균의 접근을 막는 것이 그 하나이고, 점액을 분비해 방어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전자는 양기가 부족한 것이고 후자는 음기가 부족한 증상이다.

    소청룡탕류의 처방은 체온을 높여 콧물을 치료함으로써 양기를 다스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점액 분비 측면의 음기를 다스리는 방법은 간과했다. 폐가 차가워지거나 체온 유지와 관련돼서 생기는 알레르기, 그리고 코가 건조해서 생기는 음기 측면의 알레르기는 증상에도 차이가 있다. 체온 조절에 실패해 생기는 알레르기는 콧물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는 데 비해 점액이 부족하면 재채기와 가려움증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점액은 인체의 음기이자 물이다. 분비하는 방식은 전체적인 체액과 관련이 크다. 적혈구, 백혈구, 호산구, 호염기구, 대식세포가 혈액간세포라는 하나의 세포에서 분화되듯 코에서 분비되는 점액도 눈물, 콧물, 혈액, 침, 정액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샘에서 나온 뒤 갈라져서 분비된다. 인체 내부의 샘인 음기가 말라가면서 점액의 분비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동의보감’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 몸의 기혈은 밤낮 쉬지 않고 위아래로 돌아간다. 이것은 강물이 동쪽에서 바다로 흐르면서 마르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산과 큰 강은 구멍으로 물이 연결돼 있다. 물은 땅속으로 돌면서 서로 왔다갔다한다. 인체도 내부 기혈은 서로 연결돼 있다.”

    시대가 질병을, 질병이 시대를

    그렇다면 왜 음기는 줄어들고 점액은 사라졌을까. 음양은 태극기의 붉은 부분과 푸른 부분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하나가 크면 하나는 줄어든다. 음기가 줄어든 것은 곧 반대편인 양기가 과잉된 것이다. 양기는 고추, 마늘, 커피, 인삼, 양파 등 양적인 음식물을 많이 섭취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식품들이 양기의 과잉을 조장하는 측면도 크다. 또 잠을 적게 자도 음기가 줄어든다.

    작은 차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임상 경험이 지속되면서 낫는 사람과 낫지 않는 사람이 생기고, 각각의 원인을 규명함에 따라 코 내부의 차이가 점진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코가 건조하고 예민하다는 사람들이 구별되자 또 다른 질병이 무섭게 번져나갔다. 다름 아닌 아토피성 피부염이다. 그 원인은 알레르기성 비염과 마찬가지로 면역의 과민성이다. 점액이 피부에서 분비되지 않아 피부의 장벽 기능이 사라졌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알레르기 반응의 1형으로 폭풍같이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아토피는 빠르게 혹은 느리고 지속적으로 반응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런 콧물이 사라지면서 알레르기가 크게 유행하게 됐다는 견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면역유전학을 전공해 면역학의 노벨상인 폰베링상을 수상한 다다 도미오의 의견도 비슷하다.

    “왜 알레르기 환자가 늘었을까.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것은 환경의 변화이다. 그 원인은 대기오염과 영양과다, 스트레스 증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황산가스, 자동차 배기가스 등도 기도를 자극한다. 그러나 이것이 알레르기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어린이의 코와 목구멍의 감염증이 변화한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아이들이 늘 누런 코를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소매 끝으로 자꾸 닦아서 소매 끝은 늘 반질반질해 있었다. 누런 코에는 녹농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세균이 있었고, 그것이 분포함으로써 면역계를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코는 음기로 다스려라
    李相坤

    1965년 경북 경주 출생

    現 갑산한의원 원장. 대한한의사협회 외관과학회 이사, 한의학 박사

    前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

    저서 :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코 박사의 코 이야기’


    누런 콧물이 사라지고 알레르기성 비염이 유행하게 됐다는 것은 곧 음기가 부족해졌다는 뜻이므로 새로운 치료법이 제시돼야 한다. 음기는 기름이 든 콧물인 점액으로 대표되는 물질이다. ‘누런 코는 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 대안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시대가 질병을 만들고 질병이 시대를 만든다는 질병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잘 보여주는 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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