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애마부인’ 안소영의 눈물

큰 가슴에 갇혀 꺾여버린 배우의 꿈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입력2012-12-27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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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를 회상할 때면 늘 매캐한 최루가스와 함께 ‘애마부인’이 떠오른다. 쓸쓸하고 황량하던 그 시절, 나는 술을 마시면 친구들과 심야상영관으로 몰려가 에로영화를 보며 청춘을 흘려보냈다. 하얀 속옷만 입은 채 빗속을 질주하던 안소영은 그 무렵 우리에게 ‘가슴 큰 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실은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배우였다는 걸, 대사 한 마디 없는 장면에서나 제 모습이 까마득히 멀어져 점처럼 보이는 순간에조차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려 한 연기자였음을 그때 알았다면, 안소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사회성 짙은 영화에서조차 옷을 벗어야 했던, 정사(情事) 신을 촬영한 뒤 세트장 한편에서 홀로 통곡하던 안소영의 눈물을 추억한다.
    ‘애마부인’ 안소영의 눈물

    배우 안소영이 하얀 속옷 차림으로 빗속을 질주하던 영화 ‘애마부인’의 한 장면.

    1982년 2월. 고등학교 졸업식 하루 전날, 졸업식 예행연습을 위해 학교에 간 나는 대학학력고사 보기 한 달 전부터 고이고이 기른 머리카락을 잘릴까봐 가위를 들고 다니는 선생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 도망 다니는 힘든 하루를 보냈다. 교문을 나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오늘이 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 날임을 깨달은 나는 친구들과 뭘 하면 오늘을 뜻 깊게 보낼 것인지를 의논했다. 종로통으로 진출해 보란 듯이 술을 먹자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을 때, 한 친구가 다른 의견을 냈다. ‘미성년자 관람 절대 불가’ 영화인 장안의 화제작 ‘애마부인’(정인엽 감독)을 보고 술을 먹어야 오늘을 뜻 깊게 보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영사기에 16mm 프린트를 걸어 그 유명한 ‘엠마뉴엘 부인’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가 가진 엄청난 부와 그의 선심에 고마움을 느꼈던 우리는 그의 주장을 따르기로 했다. 여배우의 가슴이 어마어마하다느니, 원래 제목은 ‘愛馬부인’이었는데, 검열 때문에 ‘愛麻부인’으로 바뀌었다느니 하는 소문을 신문에서 보았고, ‘완전 성인영화! 관능, 에로티시즘’ 같은 선전 문구를 떠올리며 ‘이제 에로티시즘이란 것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 종로 3가 서울극장 앞에 도착했다. 평일 오후 2시쯤이었는데도 극장 앞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남자였다. 그들 모두 애마부인을 만나러 온 것이다. 세상에! 백주 대낮에 이렇게 할 일 없는 남자가 많다니. 하하하. 나는 그렇게 애마부인 안소영을 처음 극장에서 대면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만큼이나 수많은 애마 시리즈가 극장에 걸렸다. 2대 애마 오수비는 말만 탄 것이 아니라 해변에서 사타구니를 벌리고 파도에 흠뻑 젖은 관능의 워터 쇼를 보여줬고, 3대 애마 염혜리(나중에 김부선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백치미라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줬다. 점입가경. 4대째에 가서는 ‘파리애마’가 등장해 88올림픽과 함께 글로벌 애마의 시대, 이제 우리는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해줬다.

    내가 20대를 보낸 1980년대는 애마부인의 시대였으며, 아직도 생각만 하면 코끝이 매캐해지는 최루가스의 시대였다. 술을 마시고 나서 우리는 신림역 주변의 동시상영관으로 우르르 몰려가 심야상영으로 애마부인들을 섭렵했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애마부인’과 ‘산딸기’ 시리즈, ‘뼈와 살이 타는 밤’ 같은 에로영화를 보는 것으로 소중한 시간을 죽였다. 어찌 보면 참 쓸쓸하고 황량한 20대였다.

    예술과 음란 사이



    ‘애마부인’ 안소영의 눈물

    1980년대 에로영화 전성시대를 연 안소영 주연 영화 ‘애마부인’ 포스터.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이 1980년대 대한민국 극장가에서 벌어진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여배우와 남자배우가 정사 신을 찍었다는 것만으로 감독이 교도소에 수감되고 출연배우가 검찰 조사를 받았었으니 말이다. 1969년 7월 3일, 검찰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저속한 외설을 뿌리 뽑겠다며 특별단속반을 편성해 일제 단속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단속의 칼날은 먼저 도서 출판 쪽을 겨냥했다. 당시 대중잡지였던 ‘아리랑’과 ‘인기’가 음란소설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음란죄 철퇴를 맞았다.

    칼날은 곧이어 영화 쪽으로 향했다. ‘벽 속의 여자’(박종호 감독, 1969) ‘당신’(이성구 감독, 1969) ‘내시’(신상옥 감독, 1968) ‘이조여인 잔혹사’(신상옥 감독, 1969)가 수사 대상이 됐다. 신상옥 감독과 박종호 감독이 음화 제조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김지미와 문희, 신성일과 윤정희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시나리오 검열 때 남녀의 정사 장면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촬영을 강행했고,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검열에 다시 걸리고 나서야 정사 장면을 삭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열과 표현의 자유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유현목 감독의 목소리가 컸다. 유현목 감독을 괘씸하게 본 검찰은 그가 몇 해 전 만든 영화를 갖고 꼬투리를 잡았다. 1965년 상영됐던 유현목 감독의 영화 ‘춘몽’을 음란물유포죄로 기소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영화가 이미 검열을 통과해 극장에서 상영됐고, 문제가 된 남녀 배우의 정사신은 삭제 후 개봉했다는 점. 별문제 없는 것인데, 검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삭제해 일반에 공개했더라도 정사 신을 촬영한 것 자체가 음란죄라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검찰은 삭제해 보관 중이던 필름을 조사했고, 법정에서 유현목 감독은 음화제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표현의 자유와 여배우의 옷을 벗겨 돈벌이하는 것의 차이는 어찌 보면 애매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기 십상이다. 당시만 해도 여배우의 노출이, 그래봤자 약간 농도가 짙은 키스 신이나 여배우의 어깨 또는 허벅지가 드러나는 정도였지만, 화제가 됐고, 그것은 당장 흥행 성공으로 연결되는 시대였다. 그래서 제작자와 감독은 검열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노출 수위를 높였다. 검열의 가위가 약간 느슨해지면 노출 수위가 높아지고, 검열이 강화되면 움츠러드는 숨바꼭질이 무한 반복됐다.

    1970년대 중반, 조금씩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가 나오기 시작하자, 검열의 가위는 노출 수위 쪽에 느슨해지고 정권에 비판적인 영화 쪽에 바짝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1974년. 당시 뉴 페이스로 남성 팬의 관심을 끌었던 양정화 주연의 영화 ‘성숙’(정소영 감독)에서는 비록 1, 2초에 지나지 않고 대역 여배우의 가슴을 노출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배우의 가슴이 노출된다.

    주인공 양정화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다. 아이의 아버지인 애인은 적반하장. 자신과 섹스해 임신한 양정화를 정조 관념이 희박하다고 탓하며 결별을 선언한다. 애인에게 배신당한 그의 배가 불러온다. 이상한 점을 눈치 챈 아버지는 양정화를 불러다놓고 폭력적으로 상의를 벗긴다. 이때 여배우의 가슴이 드러나는데,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관객의 눈요기만을 위한 아주 뻔뻔한 노출 장면이었다.

    폭우 속의 질주

    ‘애마부인’ 안소영의 눈물

    육감적인 몸매보다는 연기력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배우 안소영.

    1975년 개봉한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감독)에서도 비록 뒷모습이기는 하지만 여주인공 염복순의 상반신 누드가 검열에 걸리지 않은 채 관객을 만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웠고, 창녀가 주인공인 영화도 검열에 통과한다는 전례를 만들어냈다. 이후 만들어진 여배우가 주인공인 영화들에서는 어떻게 하면 배우를 벗길 것인지에만 골몰하는 불쾌한 기운이 느껴진다. 장미희가 주연한 ‘겨울 여자’(김호선 감독, 1977)는 상반신 노출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내용과는 별 상관도 없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다른 영화들도 검열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여배우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신인 여배우들이 주연으로 발탁돼 옷을 벗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직업을 가진 여성이 늘어났고, 영화는 그들에게서 소재를 찾았다. 호스티스나 창녀, 여대생, 현지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고, 때마침 흥행이 보장되는 여배우 세 명이 등장했다.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이 그들이다. 이 세 명의 여배우와 그들의 자리를 노리는 신인 여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다. 아직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검열의 가위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여배우들은 속이 비치는 얇은 옷에 노브라 차림으로 연기했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언제나 하얀 속옷 차림이거나, 하얀 잠옷 차림, 또는 얇은 하얀 옷차림이었다. 남성 관객들은 비에 흠뻑 젖어 사시나무처럼 떠는 그녀들의 영화 속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젖은 옷이 딱 달라붙어 훤히 비치는 가슴만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야금야금, 찔끔찔끔거리다 마침내 1982년 ‘애마부인’의 개봉으로 서슴없이 여배우의 가슴 노출을 선전하고, 여배우의 가슴 크기로 영화를 광고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애마부인’은 1970년대 중반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며 프랑스에서 개봉한 쥐스트 자캥 감독, 실비아 크리스탈 주연의 에로티시즘 영화 ‘엠마누엘 부인’(1974)을 비롯해 ‘O양의 이야기’(쥐스트 자캥 감독, 1975), ‘채털리 부인의 사랑’(쥐스트 자캥 감독, 1981) ‘빌리티스’(데이비드 해밀튼 감독, 1977) 등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여배우의 옷을 벗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애쓴다는 나름의 예술관을 표방한다. 그것이 바로 영상미이며 에로티시즘의 미학이다. 하지만 영화적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치졸한 수준의 포그 필터, 과도하게 관능적인 음악 등을 사용한 게 전부였다.

    육체파 배우의 등장

    ‘애마부인’ 안소영의 눈물
    ‘애마부인’의 흥행 성공은 댐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여성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극장가를 점령하고 나선 것이다. ‘애마부인’의 감독 정인엽은 얼굴이 예쁜 여배우보다 섹시한 매력의 여성들을 캐스팅하는 데 주력했다. 관능미, 백치미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새로운 유형, 즉 얼굴이 예쁘기보다는 섹시한 육체파 여배우를 선호했고, 신인을 주연으로 기용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 여주인공의 얼굴과 체형이 바뀌는 시대가 왔다.

    1960~70년대에도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여배우들이 있긴 했다. 최지희, 오수미, 문숙 같은 이들인데, 당시엔 그들의 매력을 표현할 방법이 별로 없었던지 ‘이국적인 마스크’라고 선전되곤 했다. 그들은 동양적으로 아름다운 미인의 얼굴을 선호하는 당시 남성 관객의 취향 때문에 주연보다는 도발적인 성격의 조연에 머물렀고, 비슷한 얼굴이던 염복순의 경우 영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단명하고 말았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전형적인 동양 미인의 얼굴이 아닌 안소영, 오수비, 염혜리 같은 배우가 육체로 승부를 걸었고, 영화제작자들은 그들의 육체로 관객을 설득한 것이다.

    ‘애마부인’의 여주인공은 언제나 정숙한 유부녀다.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 속에 ‘내가 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며 침묵하고 인내하는 여성이다. 그런데 주변 사회가 바뀐다. 여성이라고 해도 언제까지나 남편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해주기만 기다릴 수는 없고, 수동적인 자세로 성욕을 억제하며 살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남자들이 자신의 성욕을 밖에서 발산하고 다니는 동안, 참고 참았던 부인의 성욕이 폭발한다. 폭발의 도화선은 언제나 남편의 외도가 들키는 시점이다. “네가 한다면 나도 한다.”

    애마부인 안소영은 가슴 큰 여배우로 성공을 했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모든 영화는 가슴으로 홍보됐다. 두 번째 영화 ‘탄야’(노세한 감독, 1982) 역시 포스터와 내용 모두 ‘애마부인’과 비슷했다. ‘애마부인’이 성공한 그해 안소영은 ‘불바람’(김수형 감독, 1982) ‘암사슴’(김수형 감독, 1982) 같은 ‘애마부인’의 아류작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산딸기’(김수형 감독, 1982)에서는 현대 여성이 아닌 시골 처녀로 등장해 향토 에로물 시리즈의 시대를 연다.

    당시 현대 여성의 애욕을 다룬 영화의 다른 편에는 일제강점기 또는 조선시대 농촌 또는 산골을 배경으로 여성의 애욕을 그리는 시대물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그런 영화들이 붐을 이루기 시작한다. 문여송 감독의 ‘처녀의 성’(1977)은 당시 신인이던 김영란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정진우 감독은 정윤희 주연의 향토 에로물을 만들었다. 이두용 감독의 ‘뽕’(1985)은 최고의 흥행작이 됐고, 현대 에로물에는 담을 수 없는 고금소총류의 해학이 담긴 이런 영화들은 ‘변강쇠’(엄종선 감독, 1986)에 가서 정점을 찍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현대 에로물과 함께 비디오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에로 비디오의 시대를 열게 된다.

    배우라는 자존심

    ‘애마부인’ 안소영의 눈물

    배우 안소영은 ‘애마부인’에서 욕망에 충실한 유부녀를 연기했다..

    안소영의 초기 출연작은 임권택 감독의 ‘내일 또 내일’(1979)이다. 당시 신인 여배우가 첫 등장할 때 주로 맡는 배역 중 하나는 스타급 여배우와 스타급 남자배우 사이에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이루는 축 역할이었다. 정윤희가 처음 맡은 인물도 신영일과 김창숙 사이에 끼어든 발랄하고 아름다운 부잣집 딸이다. ‘내일 또 내일’의 안소영도 그랬다. 이덕화와 정희 사이에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만드는 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여대생이다.

    안소영은 이 작품을 들어, 자신이 가슴 때문에 배우가 된 것이 결코 아님을 항상 강조하곤 했다. 자신은 극단 출신으로 연극에서 연기의 기초를 배웠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배우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일 또 내일’에서 신인 연기자 안소영의 연기는 합격점이다. 이후 조연배우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주어진 ‘애마부인’ 역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배우의 길에서 멀어지도록 할 줄을 그는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안소영은 자신이 연기자라는 자존심을 가진 여자였다. 그래서 더 이상 가슴 노출을 하는 배역이 아닌 연기로 승부를 걸려 한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의식이 강한 이 여배우가 스타가 된 후 처음으로 가슴을 선전하지 않는 영화에 출연한 것은 ‘티켓’(1986)이다. 자신을 배우로 만들어준 감독 임권택의 영화였다.

    강원도 속초. 서쪽에는 태백산맥이 버티고 있고, 동쪽에는 검푸른 동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 바다를 상대하는 사나운 남자들과 이북에 고향을 둔 삼팔따라지 인생들이 모여 사는 남자들의 도시다. 남자 상대하는 직업을 전전하다 이곳까지 흘러온 여자들은 속초의 직업소개소에 모여 자신을 데려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다방 사장 김지미가 직업소개소로 들어온다. 그녀는 냉혹한 얼굴로 자신의 다방에서 일을 할 레지들을 고른다. 첫 번째로 고른 여자는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묶고, 디스코 바지를 입은, 딴에는 유행의 첨단을 걷는 빠꿈이 같은 여자 안소영이다. 안소영은 술에 취하거나 싸울 때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또박또박 서울말을 쓰며 남의 일에는 신경 안 쓰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동료 다방 레지의 단골손님도 빼앗아버리는 야무진 또순이다. 그가 장거리 커피 배달을 나선다. 다방에서 오토바이를 모는 남자가 뒷자리에 그녀를 태우며 한마디한다. “꽉 잡아. 떨어져서 죽어도 난 모른다.” 그렇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남자가 속력을 내자 안소영은 보라색 실크 목도리를 휘날리며 탄성을 지른다. 남자가 소리친다. “스피드 좋아해?” 안소영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한다 “죽어!” “미쳐.” “오빠 달려!” 좀 놀아본 여자를 저렇게 단숨에 표현할 수가.

    욕망과 현실

    야무진 다방 레지 안소영은 속초의 바닷가로 촬영온 영화 촬영 팀을 보고 나이 많은 조연급 배우 장혁에게 다가간다. 팬이라는 것. 그는 영화배우의 꿈을 갖고 있고, 언젠가 만났던, 아마도 서울의 어느 다방에서 손님으로 와 아무 생각 없이 농을 걸었을 영화감독의 헛소리를 금과옥조로 믿고 있다. 그 감독에 의하면 자신은 영화배우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 장혁은 그녀를 자신의 호텔 방으로 부른다. 감독에게 소개해주기 전 연기 테스트를 하겠다는 것. 장혁은 안소영을 앉혀 놓는다. 왼쪽에 라이트, 그리고 앞에는 카메라. 남자는 이제 카메라가 서서히 안소영의 얼굴로 다가간다며 그녀를 마음껏 농락한다. 안소영은 다방에서 레지 일을 할 때는 빠꿈이일지 몰라도 늙고 추한 배우라는 남자 앞에서는 바보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 캐스팅됐다고 믿고 촬영 팀 숙소인 호텔로 다시 찾아간다. 가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꽃다발까지 준비한 채. 호텔 현관 앞.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스태프들에게 안소영은 장혁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스태프들은 그가 이미 촬영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 빠꿈이는 그제야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카메라는 그녀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그녀의 행동을 관찰한다.

    안소영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보여줄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임을 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다. 호텔 현관은 그늘져 있고 그녀의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늘 속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다. 안소영과 임권택이 빚어낸 최고의 장면이다. 자신이 커다란 가슴만으로 스타가 된 배우가 아니라 연기자라는 것을, 안소영은 이 단 한 장면으로 증명한다. 하지만 그녀는 ‘티켓’ 이후 연기자로 인정받고 더 좋은 영화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표현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 1988년 또 한 편의 사극 에로 영화 ‘합궁’(남기남 감독)에 출연한 후 그녀는 사라진다. 그리고 무수한 소문이 돌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후처로 들어갔다느니, 결혼을 했다느니…. 그리고 잊혔다.

    1992년 안소영은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진지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인정받던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출연을 결정한다. 임권택의 ‘티켓’ 이후 또 한 번 ‘애마부인’이 아닌 연기자로서 변신할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의 스태프였다. 안소영이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맡은 배역은 ‘벌떡녀’. 여자 혼자의 몸으로 해녀 일로 먹고 사는데 남자를 좋아해 ‘벌떡거린다’고 동네 여자들이 붙인 별명이다.

    서러운 눈물

    안소영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자신의 연기력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옷 벗는 연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벌떡녀’는 남자를 밝히는 여자였고, 동네로 흘러들어온 땜장이와 눈이 맞아 정사를 하는 장면이 시나리오에 있었다. 안소영에게 가장 부담되는 것이 바로 그 장면이었다. 세트에서 정사 신을 찍던 날, 그녀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정사 신을 다 찍은 후 세트장 구석에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게 옷 벗는 연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또 하게 된 것이다. 스태프들은 여배우의 서러운 눈물을 보며 할 말이 없었고, 숙연한 기분이었다.

    내가 영화 일을 하기 위해 연출부의 막내가 됐을 때, 처음 본 스타급 여배우가 안소영이다. 영화사 사무실에 처음 찾아온 안소영은 제과점에서만 팔던 고급 아이스크림을 한보따리 사왔더랬다. 그는 자신이 애마부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우리에게 자신이 가슴 크기로만 스타가 된 배우가 아님을 다시 강조하며 연기로 승부를 걸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에는 여배우가 네 명이나 출연했고, 연출부들은 각자 한 명의 여배우를 전담하기로 했다. 나는 안소영 담당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감동한 것은 추석이 지난 9월 말의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해녀 연기를 할 때였다. 카메라 바로 앞에서는 떠오르는 스타 심혜진이 물에 빠지는 연기를 하고 있었고, 안소영은 저 멀리에서 바닷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해야 했다. 심혜진이 물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야 하는데 바닷물이어서 그런지 몸에 추를 주렁주렁 달아도 완전히 잠수가 되지 않고 그녀의 모습이 바닷물 위로 어른거려 연거푸 재촬영을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끝난 뒤 나는 담요를 들고 안소영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나에게 “점으로 보인 내 연기 어땠어요?” 하고 물었다. 연출부 막내에게 화를 내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던진 농담이지만, 설움의 감정을 다 숨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후배 배우가 연기하는 뒤, 저 멀리 배경에서 점으로밖에 안 보여도 맡은 역은 해내는 연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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