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실미도’, 그 지옥의 묵시록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입력2015-03-20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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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립무원의 섬. 그곳엔 사형수와 무기수 등으로 구성된 ‘죽음의 부대’가 있었다.
    • 김일성 암살을 위해 조국에 목숨을 바쳤다. 하지만 그들은 버려졌다. 그리고 지워졌다. 하룻밤 악몽처럼, 휙~!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이때쯤이면 강우석이 나와야 한다. 그건 곧 실미도가 등장해야 한다는 얘기와 같다.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의 배경이 된 섬, 실미도는 영화 ‘실미도’가 나온 2003년까지 32년간 감춰진 섬이었다. 아니, 금기(禁忌)의 섬이었다. 30년 넘게 거기에는 섬이 아예 없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 섬을 기억하지 말아야 했다.

    그 긴 역사의 아우성과 영화를 만들던 소음을 생각하면 실미도는 꽤나 요란한 장소일 듯싶다. 영종대교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잠진항. 실미도행 소형 페리에 차를 싣자 왠지 가슴이 설렌다. 마치 멀리 떨어진 미지의 섬으로 여행을 가는 느낌이다. 섬은 늘 정서상 거리가 느껴지는 존재다. 코앞에 있어도 저 멀리, 뚝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엔 왠지 아름다운 여인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미인도(美人島)이길 바라는 욕망이 부글거린다.

    배에 차 한번 싣는 게 이처럼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한다면 ‘가격 대비’ 훌륭한 위안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복잡하면서도 때론 참 단순하다. 육지는 지금 미국 대사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등 난리북새통이다. 괴한은 한때 독립영화인이었다. 민중 소재의 영화를 기획하곤 했다. 그러나 성사된 작품은 한 편도 없다. 독립영화인들 사이에서도 그는 늘 외따로 떨어져 있던 사람이다. 그 울분이 저런 극단적인 행동을 만들어냈을까. 어쨌든 나는 지금 그 아수라장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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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미도’의 한 장면.

    ‘설마’가 1000만 잡았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영화 ‘실미도’ 포스터

    실미도에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무의도에 내린 뒤부터는 마음이 다시 차분해진다. 행락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뒷전으로 두고 해변을 따라 실미도로 들어가는 길. 모래사장에 찍히는 발자국만큼이나 마음속은 자꾸 ‘말없음’ ‘이만 총총’이 돼간다. 터벅터벅 같이 걷던 포토그래퍼 김성룡이 자꾸 뒤로 처진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상념에 젖어 섬을 걷는다.



    모래사장을 끊임없이 물었다 놨다 하는 파도는 아직 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1968년 684 북파(北派)용 침투부대를 만들 당시, 이곳 실미도를 생각해낸 자가 과연 누구였을까. 그게 누구든 진실로 기가 막힌 곳이 아니었겠나. 지금처럼 물길과 뱃길이 자유롭지 않던 당시에 고립무원의 용병부대를 훈련시키기에 여기만한 곳이 또 어디 있었겠나. 사형수를 비롯해 모두들 어두운 과거를 지닌 자들로만 구성된 죽음의 부대. 일명 ‘주석궁 폭파부대’는 결코 어디에도 그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될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2003년 개봉 당시 사람들은 왜 그토록 ‘실미도’에 열광했을까. 뭔가 빗장이 풀린 듯, 봇물이 터진 듯 사람들은 너도나도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기억이 난다. 당시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맡은 ㈜시네마서비스의 김인수 대표와 지방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말했다. “관객 수가 얼마까지 갈지 지금으로선 전혀 짐작이 안 갈 정도야. 이런 적이 없었어.”

    그때만 해도 관객 1000만 명을 넘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설마 1000만이라는 숫자가 현실화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그건 ‘가능한’ 수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는 결국 그걸 넘어섰다. 2003년 말 개봉한 ‘실미도’는 이듬해 2월까지 상영이 이어지면서 최종적으로 1108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관객들의 ‘입소문’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진부하고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얼마나 실화에 근거한 것인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벽장 뒤 현대사

    영화 ‘실미도’의 주축이 된 일명 ‘실미도 사건’을 여기서 굳이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만, 신세대 독자들을 위해 잠시 시간을 갖자면 내용인즉 이렇다.

    1968년 북한은 남한을 무력 적화통일하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회를 엿보던 북한은 김신조를 포함한 21명의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는 도발을 감행했다. 특수작전 부대로 철저하게 훈련된 이들은 허술하던 남한 수비망을 뚫고 대통령의 거처인 청와대 뒷산까지 공격해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도발은 실패로 끝나고, 당시 유일하게 체포된 김신조에 의해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는 그들의 목적이 세상에 드러났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이런 상황에서 북한 김일성 정권이 했던 것과 똑같이 북파 공작원을 훈련시키기 위해 창설됐다. 사형수나 무기수로 구성된 실미도 특수부대는 지옥 같은 훈련을 받고 북한 침투를 기다리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변하던 국제정세는 이 같은 강경보수 일변도의 대북 군사정책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결국 특수부대의 이용 가치도 사라졌다. 당국엔 이들이 오히려 짐이 되기 시작했다. 군 일각에서는 이들을 은밀하게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다 실미도 북파 공작원들이 이를 사전에 감지하면서 일이 터졌다. 부대원들은 중무장을 하고 섬을 탈출해 주석궁이 아닌 청와대로 향했다. 버스를 탈취한 뒤 승객들을 인질로 삼아 서울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다 서울 외곽에서 군 병력에 의해 포위되자 인질들을 모두 내리게 한 뒤 버스 안에서 부대원 전원이 자폭했다. 이른바 실미도 사건이다.

    1971년에 벌어진 이 엄청난 사건은 당시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진실은 철저히 통제된 채 실미도와 함께 땅에 묻혔다. 그렇게 실미도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정부와 어용학자들은 이 사건을 냉전시대 최대의 치부로 간주해 수십 년 동안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일부의 집단적 악몽에 불과한 일쯤으로 여겨졌다.

    실미도 사건이 공식적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고 표명된 것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열린 사회로 진일보한 것이다. 영화를 만든 2003년, 강우석 감독은 바로 이 점을 포착해냈다. 사람들에게 잊힌 역사적인 사건을 다시 조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상업적으로도 타이밍이 기막혔다. 대중은 새로운 사실, 은폐된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고백하는 과정을 영화가 대신해주기를 갈망했다. ‘실미도’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적극적으로 구현되던 시기의 한가운데에서, 얼룩지고 더럽혀진 채 벽장 뒤편에 숨겨둔 현대사에 대한 대중의 극적인 호기심을 결합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가 흥행 기록을 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실미도’는 한편으로는 의미와 비중이 뛰어난 현대역사극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매우 상업적인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마디로 시대를 상업적으로 잘 읽어냈다는 얘기다. 감독이자 제작자, 혹은 배급업자로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강우석의 동물적 흥행 본능이 제대로 작동했다.

    섬은 남아서 외롭게 견뎌낸다

    영화 ‘실미도’의 촬영지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안내판밖에 없다.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역사는 바닷물과 함께 쉼 없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락날락한다. 영화의 영광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미 과거 속에 스러져갔다. 사람들은 늘 ‘언제 때 영화 얘기를 하고 있냐’며 짐짓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하긴 그사이에 ‘태극기 휘날리며’도 나왔고 ‘괴물’도 나왔고 ‘도둑들’ ‘광해 : 왕이 된 남자’ ‘명량’이 나왔다. ‘실미도’는 아주 오래전 영화처럼 느껴진다.

    지난 영화가 남기고 간 흔적일랑 그래서 항상 키치(통속적이고 천박함)적인 느낌을 준다. 실미도에서 영화 ‘실미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안내판 정도다. 처음에는 이것도 없었다. 엉성한 플래카드 수준이던 것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 폼은 나게 만들어놨다. 거기에는 비교적 젊은 시절의 설경구가 한가운데 휑뎅그렁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 이곳이 ‘영화 실미도 촬영지’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 옆에 안성기의 모습도 보이는데 사람들은 이 안내판 앞에서 킬킬대기 일쑤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바로 이 말 때문이다.

    “그건 비겁한 변명이십니다아아아~!”

    설경구가 실미도를 탈출하기 전 중대장 안성기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악을 쓰던 대사다. 영화 속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장면인데, 영화 흥행 이후 이상하게도 여기저기서 코믹한 패러디의 소재로 쓰였다. 누군가가 뭔가 어쭙잖게 일을 정리하려 하면 이구동성으로 소리치곤 했다. “그건 비겁한 변명이십니다아아아~!”

    관객들이 꼭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지만, 영화 ‘실미도’를 전부 실미도에서 촬영한 것은 아니다. 주요 장면, 특히 수중 장면 같은 경우는 실미도가 아니라 유럽의 몰타에 가서 촬영했다. 일부는 제주도에 있는 수조 세트에서도 찍었다. 실미도에서는 군용 막사를 세트로 지어놓고 주로 해변에서 훈련하는 장면들을 찍었다. 그때 지어놓은 막사 세트장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일찌감치 철거해버렸다. 그냥 놔뒀더라면 꽤 짭잘한 관광 수입원이 됐을 텐데 아쉽다.

    바닷가에 나와 있으면 뭍에 있을 때보다 괜스레 배가 고파진다. 실미도로 넘어 오기 전 약간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온 것은 정말 잘한 일 같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린다. 무인도라 사람도 없지만 요기할 곳도 없다.

    영화가 촬영되던 2003년 3월에서 10월 사이에 제작진이 늘 허기진 배와 고픈 ‘술배’를 달랜 곳은 무의도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매 조개구이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기본적으로는 조개구이집이지만 가정식 백반도 먹을 수 있다. 손칼국수 맛도 일품이다. 값싸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늘에 감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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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칼국수 맛이 일품인 무의도 ‘자매 조개구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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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미도에 들어가려면 잠진항에서 무의도를 오가는 배를 이용해야 한다.

    감독과 제작자의 경계

    사실 강우석만큼 한국 현대영화사에서 논쟁적인 인물도 드물다. 한때 영화계에서 그는 영화감독보다는 영화사업자로 더 많이 인식됐다. 그에 대한 평가는 미학적인 것보다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이뤄진 게 더 많다. 그건 매우 부당했다.

    강우석 감독이 박찬욱이나 홍상수, 이창동 감독처럼 작품성 면에서 제대로 조명된 적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건 상업영화라면 일단 평가절하부터 하고 보는 한국 영화계의 예술지상주의적 태도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강우석도 엄연한 작가형 감독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데는 지금껏 그의 영화 인생이 늘 감독과 제작자의 경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강우석은 영화를 만드는 예술적 장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파는 판매상이기도 했다. 그는 1988년 ‘달콤한 신부’에서 2013년 ‘전설의 주먹’에 이르기까지 무려 20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24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기획 및 투자 배급한 영화는 그 몇 배나 된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서 급작스럽게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을 위시해서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등등이 칸, 베를린, 베니스 등지에서 감독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쓸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한국 영화산업이 탄탄한 산업적 기반을 갖춘 덕분이다. 그 중심에 강우석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그는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과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등 수많은 영화에 투자하고 제작을 맡았다. 어떤 영화는 꽤나 성공했지만 어떤 영화는 10원 한 푼 안 남은 경우도 허다했다. ‘실미도’로 벌어들인 수십억 원의 상당액을 이광훈 감독의 ‘천년호’에 털어넣었다가 한순간에 날리기도 했다.

    강우석의 히트작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마누라 죽이기’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그리고 ‘투캅스’ 시리즈와 ‘공공의 적’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그의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 중 흥행에서 가장 실패한 영화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다. 1990년에 만들어진, 물경 25년 전의 작품임에도 당대의 스타 이덕화를 주연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웃기고, 슬프고,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현재적인 느낌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지금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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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미도는 썰물 때 드러나는 바닷길을 따라 무의도에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백일몽의 불편한 진실

    이 영화는 오프닝 장면부터 눈길을 끈다. 품이 큰 트렌치코트를 입은 주인공 백수건달이 한껏 인상을 쓰며 마감 직전의 은행으로 들어선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주인공은 은행의 셔터가 내려가는 순간 품 안에 있던 군사용 소총을 꺼내 들고 주변을 장악한다. 노련한 솜씨로 사람들을 몰아세운 후 자루에 한가득 돈을 터는 데 성공한 주인공은 아뿔싸, 은행 문을 나서자마자 자신을 포위한 경찰과 마주친다. 마치 시드니 루맷 감독, 알 파치노 주연의 1975년작 ‘뜨거운 오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주인공 백수가 다시 은행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그야말로 뜨거운 오후의 대치극을 벌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백수는 무모하게도 경찰에게 먼저 총을 발사하고 그 결과 이 친구는 경찰의 총에 난사당한 채 쓰러진다. 이때 영화는 홍콩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의 총격 신으로 넘어가면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든 주인공 백수가 비명을 지르며 깨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든 것이 영화 속 주인공의 꿈이었다는 얘기인데, 이 한 장면은 주인공이 현재 아주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단박에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도입부터 착실하게 관객의 시선을 잡아챈 영화는 이후 주인공 남자의 아이러니한 상황극으로 잇따라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때로는 은실(이응경)이라는 여자 때문에, 때로는 돈은 많지만 못돼먹은 슈퍼마켓 주인(박인환) 때문에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주인공 백수건달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한편, 그 웃음이 결코 웃을 만한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관객들은 속으로 울고 싶어진다.

    강우석은 늘 웃음과 코미디, 시대극을 통해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애써왔다.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는 비록 코미디에서 시작하지만 슈퍼마켓 주인에게 겁탈당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은실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에게서 웃음을 싹 거둬가버린다. 한국 사회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은실(=국민)’을 강간하려는 것처럼 천민자본주의화했다는 것을 영화는 은근하게 비판한다. 또 주인공과 같은 청년 실업자를 양산해놓고서는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철저한 서열화 속에서 주인공처럼 사람들은 ‘날마다 일어서려고’ 노력하지만 한낱 헛된 꿈에 불과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한다.

    이 영화의 원제가 ‘백일몽’인 것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이게 1990년 영화라고? 그렇다면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지난 25년간 한국 사회가 결코 앞으로 나아간 게 거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뼈아프면서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할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시대 속에서 살아남아 과거와 현재 속에 용해돼 있는 우리 자화상을 성찰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강우석의 영화는 늘 안 그런 척, 나름대로 사회의 기상도를 그려내려 애써왔다.

    ‘지옥도’ 펼쳐지는 뭍으로

    사람은 가도 섬은 남는다. 그리고 영화도 남는다. 남는다는 건 그 영원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외롭고 쓸쓸하게 역사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떠나는 존재보다 남는 존재가 그래서 더 어려운 법이다.

    실미도는 한때 지옥이었다. 그때의 원혼들은 가끔 이곳을 들를까. 아니면 원혼이 됐다 해도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 됐을까. 우리 역사는 그 상처에서 벗어나고 있기나 한 것인가. 다시 소형 페리에 차와 함께 몸을 싣는다. 피곤함이 몰려드는 것은 어지러운 상념 탓이다. 우리는 다시 온갖 사건의 지옥도가 펼쳐지는 뭍을 향해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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