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암 치료 목적으로 강아지 구충제를 먹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부작용을 경고하는 전문가들 목소리는 ‘내가 효과를 봤다’고 맞서는 일부 환자들의 체험담 앞에서 힘을 잃고 있다. 수의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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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고 값싼 구충제
그때만 해도 매스컴에 펜벤다졸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 않은 때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며 오래 생각지 않고 넘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매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펜벤다졸 성분 구충제에 진짜 항암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에 대해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부분은 의사선생님들이 설명해주실 내용’이라고만 답하고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펜벤다졸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역사가 아주 오래된, 값싼 구충제 성분이라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때부터 이 약에 호기심이 생겼다. 강아지도 사람처럼 암에 걸리는 데다 최근에는 암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보호자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약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서 펜벤다졸을 구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병원에서는 해당 성분의 구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만약 있다 해도 수의사법·약사법 위반이라 드리기는 힘들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 안타까움이 생겼다. 이 약을 구하시는 분의 심정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 심정 말이다. 전문가들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간부전 등 부작용이 우려되니 복용하지 말라고 해도 그런 말쯤은 무시하고 싶은 그 마음도 알 것 같았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사실 처음 펜벤다졸 성분 구충제가 항암제로 쓰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한때 이슈가 된 ‘안아키’ 사건의 복사판이 아닌가 싶었다. 처음 이 주장을 편 조 티펜스라는 사람이 혼자만의 착각으로 희망이 꺼져가는 사람들 마음을 뒤흔든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실험실상 효과
환자 폐를 촬영한 사진. [GettyImage]
그렇다면 이들 논문에서 주장하는 펜벤다졸 성분의 항암효과 기전은 무엇일까? 그 내용은 강아지에 쓰이는 구충 작용의 기전과 매우 유사하다. 우선 세포 구성과 세포분열에 아주 중요한 구조를 억제하고, 세포에 필요한 당의 이용을 방해한다. 이 성분은 많은 항암제가 갖고 있는 내성 문제에서도 자유롭다고 한다.
암은 빠른 세포분열을 통해서 필요 없는 세포가 과도하게 증가하는 게 문제다. 이러한 세포분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정 구조를 억제하고, 세포 분열 시 반드시 필요한 당도 쓰지 못하게 하며, 내성까지 없다니. 이렇게만 들으면 마치 기적의 항암제 같다. 하지만 대체 왜 의사는 이 약을 암환자들에게 처방하지 않는 것일까.
현대 사회에서 약을 환자 치료에 사용하려면 많은 실험을 거쳐야 한다. 의학은 세상 그 어떤 학문 분야보다 보수적이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몇몇 성공 사례가 있다 해도 잘못 사용하면 병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도 그런 사례가 많다. 한때 기적의 명약으로 추앙받다 심각한 부작용 문제로 폐기처분된 물질 중에는 수은, 라돈(방사능물질), DDT 같은 것도 있다.
그래서 하나의 약을 개발하고 시판해 치료에 사용하려면 아주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인체가 아니라 암세포를 배양한 실험실 내에서 항암효과를 확인한 것 정도로는 안 된다. 또 논문에 보고된 성공사례도 극소수이거나 펜벤다졸 성분의 영향이 아닐 수 있다. 조 티펜스 등 펜벤다졸 성분 구충제를 사용해 효과를 봤다고 주장하는 환자 상당수는 다른 항암치료도 같이 받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약물 시험 과정은 이렇다. 1. 전임상시험(신약후보물질을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투여해 부작용, 독성, 효과를 알아보는 시험) 2. 임상1상시험(건강한 사람 20~80명에게 투여) 3. 임상2상시험(대상 질환 환자 100~200명에게 투여) 4. 임상3상시험(대규모 환자에게 장기 투여하고 비교대조군과 시험처치군을 비교) 5. 임상4상시험(시판 후 조사)
현재 펜벤다졸 성분은 이 가운데 전임상시험을 통과한 정도로 보면 된다. 펜벤다졸 성분 구충제는 지금까지 동물에게 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약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료계는 왜 그다음 단계 임상시험을 하지 않을까? 임상시험에는 엄청난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미 오래전에 개발돼 특허권이 다 풀린 펜벤다졸 성분의 항암효과를 확인하고자 수천억 원에 이르는 돈을 쓸 회사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약품을 개발해 판다 해도 투자금을 다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말기 암 환자들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임상시험 후의 많은 과정을 스스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메벤다졸, 알벤다졸
펜벤다졸 성분 구충제를 사람에게 처방하면 약사법 위반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GettyImage]
해외직구를 통해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 또한 법적으로 수량 제한이 있다. 장기 복용할 수 있을 정도의 약을 사들이면 세관에 적발된다. 그렇다면 합법적으로 이 약을 먹을 방법은 아예 없을까.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앞서 설명한 펜벤다졸의 항암효과와 같은 원리를 가진 약물이 이미 항암제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펜벤다졸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약이다 보니 더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이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만약 이렇게 허가된 약을 포함해 현재 사용되는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는 분이 있다면 메벤다졸, 알벤다졸 등 펜벤다졸과 같은 계열에 구조도 유사한 성분이 포함된 사람용 구충제가 있음을 알려드린다. 조금만 검색해보면 메벤다졸, 알벤다졸 등도 펜벤다졸과 같이 실험실상에서 항암효과가 확인됐다는 논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불법적으로 펜벤다졸을 사용하기 꺼려진다면, 펜벤다졸을 꼭 사용하고 싶은데 구할 방법이 없다면, 정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면 전문가와 메벤다졸, 알벤다졸에 대해 상의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많은 분께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한다.
신동아 12월호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