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다. 부연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해졌다. 1929~32년 대공황 기간 중 미국 주식시장은 78.5% 하락했다. 21세기 들어 다시 위기를 맞이한 주식시장은 10월 중순 현재까지 38.25% 하락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위기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위기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뿐 아니라 이 위기가 어디서 왔는지도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원인과 전망은 언제나 그렇듯 동전의 양면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달러화의 공급과잉은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해온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가치를 흔든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따른 과도한 달러 공급과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포기했고,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중심 체제가 등장한 바 있다. 위기를 맞은 현재 미국의 대응 역시 새로운 국제경제체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미국이 그동안 세계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축이 달러화의 힘이었음을 감안하면, 이제부터 미국의 지위 역시 본격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잠시 1980년대로 가보자. 경제 저성장이 이어지던 1980년대 중반 미국은 최악의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1985년 플라자합의 등을 통해 일본과 서독이 엔화와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하도록 ‘팔을 비틂으로써’ 가까스로 달러화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 전문가들은 미국의 패권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의 저자인 폴 케네디를 필두로 로버트 길핀, 스테판 그래즈너, 그리고 리처드 로스크랜스 등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이미 쇠퇴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보통국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흔들리는 ‘구조적 위상’
이때 제기된 반론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됐다. 우선 브루스 러셋 예일대 교수는 ‘The Mysterious Case of Vanishing Hegemony: or Is Mark Twain Really Dead?’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 세기 전 건재해 있는 마크 트웨인이 죽었다는 오보가 유럽에서 나왔듯 이번에는 미국의 패권이 사라지고 있다는 오보가 나오고 있다’고 일갈했다. 러셋 교수는 “당장 경제사정이 어렵다 해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물리적 힘과 문화적 힘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 또한 코카콜라와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대중문화가 전세계에 뻗어나가 있는 한 패권은 건재하다는 논리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 출신으로 런던 정경대의 원로 교수였던 수전 스트레인지의 견해는 그보다 더 강력했다. 러셋이 말한 군사력과 대중문화 이상으로 미국의 패권을 지탱하는 기제는 월가(街)의 금융시스템이라는 것이었다. 세계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것이 다름 아닌 미국의 자본주의이므로, 미국은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구조적인 힘(structural power)’을 갖고 있다는 스트레인지의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과정을 거쳐 1990년대가 도래했고, 주지하다시피 1차 걸프전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의 부양책이 성공하면서 과거의 위상을 회복했다. 이러한 호조는 부시 행정부로 이어졌고, 학계에서도 “미국이 돌아왔다”는 담론이 주류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제 미국은 다시 위기 앞에 서 있다.
이 위기의 성격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핵심이었던 미국 금융시스템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리먼 브러더스,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이들은 단순한 은행이 아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회사들이다. 이들의 붕괴 또는 약화는 미국이 가진 ‘구조적인 힘’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리적 군사력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는다 해도 미국 패권의 ‘구조적 위상’에 대한 문제 제기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군사력 역시 장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10월8일 미 대선후보 2차 토론회 논쟁은 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이 미국의 군사력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존 매케인 후보는 관계가 없다는 논지로 답했지만, 버락 오바마 후보는 단호하게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제력 없이 어떻게 군사력을 증강할 것이며, 경제적 뒷받침 없이 어떻게 세계 곳곳에 미군을 전진 배치할 수 있겠느냐는 답변이었다.
‘불확실성’의 세 가지 효과
다시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그렇다면 이 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원인은 ‘시장의 실패’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애덤 스미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장지상주의는 금융거래든 상품거래든 ‘보이지 않는 손(가격기능)’에 의해 조정이 이뤄져 평형(equilibrium)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해왔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자유방임사상(laissez-faire)이 등장해 ‘야경국가’ 등 국가 역할의 최소화를 주장한 것 역시 이러한 흐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시장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을 모두가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거래행위가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테면 리스크 관리의 실패인 셈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법에 현재 위기를 대입해 풀어보면 이 리스크 관리 실패의 핵심이 무엇인지 비교적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우선 미국 금융업계가 자신들의 수리모델이나 계량방법론을 과신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무시했다는 점을 짚어야 할 것이다. 1+1이 단순히 2가 아니라 5, 6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는 사실이 위기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한 첫째 이유다. 둘째는 지연효과 또는 복잡계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나비효과다. 지금 벌어진 일이 즉각적으로는 큰 영향이 나타나지 않아도 나중에 엄청난 폭풍이 되어 밀어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문턱(threshold) 효과다. 어떤 패턴, 특히 수학적 파생의 연쇄고리로 순환 연결돼 있는 패턴은 일정 수위를 넘어서면 갑자기 그 증가세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10월3일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뒤 낸시 펠로시(왼쪽 아래) 미 하원의장이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모기지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무엇이 나쁘겠는가. 그러나 갑자기 주택시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자 이 두 요소가 결합해 그 파생상품의 연쇄고리에 얽혀 있는 세계 곳곳의 평범한 투자자들을 울리는 거대한 폭풍으로 돌변했다. 이건 시장의 실패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현재 상황을 두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관론이 옳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연사로 참석했을 때 필자가 만난 조지 소로스 회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를 “탐욕(greed)”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신도 헤지펀드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텐데, 최근 투자은행의 행태를 보자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놀라게 된다는 얘기였다. 조만간 엄청난 후과(後果)가 있으리라고, 연초의 상황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그는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그 예언은 놀랄 만큼 잘 들어맞아 이제 현실이 되었다.
탐욕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사모펀드 자산 운영자가 기업 인수합병 한 건을 성공하면 총 거래액의 20%를 수수료로 챙긴다고 한다. 100억달러짜리 ‘딜(deal)’ 이면 20억달러를 버는 셈이다. 세상에 이런 탐욕이 또 어디 있는가. 이쯤 되면 이것은 시장이 아니라 야바위판이고 도박판이다. MBA를 졸업해 겨우 3~4년 일했다는 사람들의 연봉이 100만달러를 헤아리고, 거기에 또 수백만달러의 보너스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미친 듯이 파생펀드를 만들어 ‘어떻게 하면 한탕 먹고 튀어볼까’만을 궁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시장의 실패는 시장 시스템의 실패이자 리스크 분석의 실패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탐욕에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욕망이 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근본 명제부터 잘못됐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욕망이 절제와 중용의 선을 넘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단기간에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계속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고 막대한 돈이 그 이어지는 파생상품의 연쇄고리 위를 돌고 도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면서 현재의 위기가 배태됐기 때문이다.
시장의 실패와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국가의 실패’다. 이는 관리감독 혹은 규제의 실패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국가는 그렇듯 무기력했는가. 왜 국가는 뻔히 보이는 위기마저 막아낼 수 없었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 뿌리는 결국 1980년대 이후 주요 국가들의 경제정책 방향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1970년대 미국과 영국의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 많은 이가 앞 다투어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나섰다. 케인스주의 성향의 경제정책 때문에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본령이 오염됐고 그 때문에 시장이 활력을 잃어 침체에 빠졌다는 비난이었다. 큰 정부, 과도한 정책개입과 규제, 생산수단의 공공화가 악(惡)으로 지탄받는 반면,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노믹스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공급자 위주의 경제정책, 공기업 민영화, 복지지출 감축, 탈규제, 투자자에 대한 대규모 감세정책과 이를 통한 재투자 유인 등이 지고의 선(善)으로 칭송됐다.
루빈, 폴슨, 그린스펀
문제는 그러한 정책들이 하루가 다르게 괴물로 성장하는 금융시스템을 감시해야 할 정부의 역할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들 정책을 운용하는 주체들은 시장을 견제하기보다는 합일을 지향하기에 이르렀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은 현재 시티그룹의 고문을 맡고 있고, 부시 행정부의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신보수주의(neo-conservative)를 표방하는 사람들, 특히 금융시스템에서 이를 주장하는 이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사실상 없애버렸다.
미국 재무장관 같은 주체(agent)들의 면면이 바로 이를 상징한다. 아무리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도 민간영역 출신 장관 등 주요 주체들의 정책결정과정에는 민간영역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개입할수록 신뢰가 약화되고 시장의 활력이 줄어드니 아예 개입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식의 접근법이 융성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숨어 있다. 특히 이번 위기의 배후에는 세계 경제의 대통령으로 숭앙받던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이 있다. 하이예크를 추종하는 그린스펀은 신보수주의자들보다 더 강력히 시장의 순기능을 믿고 정부를 불신하는 자유론자(libertarian)였고, 파생상품을 강력히 지원하는 후원자였다. 파생상품에 대한 미 의회의 규제 입법 움직임을 막아낸 것도 그린스펀 본인이었다.
이렇게 정부의 규제가 사라지자 미국의 금융시장, 특히 파생상품 부문은 사실상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는 지경에 놓였다. 1929년 대공황 이전이나 다름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공황을 겪기 전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공정거래 위반이나 독과점 등 시장의 규칙 자체를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도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 자유방임이라는 원칙 아래 증권거래 감독조차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한 무작위 거래가 대공황을 불러왔다는 반성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많은 대응책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대응책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사실상 무력화되고, 그 결과가 국가의 실패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위기의 탄생에 큰 몫을 차지한 것이다.
세 번째 짚어야 할 부분은 ‘전쟁’이다. 위기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서의 전쟁을 말한다. 이런 유의 위기가 닥치면 전통적으로 국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해 해소해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두 건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의 재정 상태는 이를 뒷받침할 여력이 없다. 미국의 연 국방비가 5000억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그보다 많은 공적자금 70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이제는 끌어다 쓸 돈이 없는 것이다.
10월7일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의 벨몬트대에서 열린 대통령후보 간 2차 TV토론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왼쪽)가 자리에서 일어나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는 미국이 1960~70년대 경제침체기에 겪은 일련의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침체 역시 베트남전쟁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쟁 기간 많은 군사비를 소진하고 있던 미국은 여기에 더해 존슨 행정부가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의 기치를 걸고 추진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사업에도 엄청난 재정지출을 단행했다. 이 때문에 발생한 재정적자와 국제수지 적자가 겹치면서 경제운용의 어려움은 가중됐고, 미국은 결국 달러화를 대규모로 추가 발행하는 강수를 뒀다.
그러나 그 여파는 단순히 미국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국제 외환거래의 기본틀 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당시는 브레튼우즈 통화체제에 의해 만들어진 금본위교환제도(gold standard exchange)가 국제 외환거래의 바탕이었다. ‘달러화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준다’는 미 연방은행의 보증이 달러화의 가치를 떠받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달러화를 계속 찍어내면서 이 보증의 신뢰성이 의심받았고, 결국 닉슨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금본위교환제도의 포기를 공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통화질서의 기본축 역할을 했던 브레튼우즈 통화체제는 해체되고 말았다.
악화되는 국제수지를 만회하기 위해 1971년 닉슨 행정부는 서독과 일본에 대해 무역제재를 가한다. 이 또한 미국이 만든 GATT체제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지고 보면 자유무역의 상징인 GATT와 역시 자유무역을 위한 원활한 유동성 보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브레튼우즈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경제 시스템의 양대 축이었다. 이들 시스템이 다름 아닌 미국의 손에 의해 붕괴되고 약화된 것이 바로 1970년대의 악몽이다.
이렇듯 1970년대에 벌어진 국제경제체제 변화의 근본 원인이 결국 베트남전에 의한 미국의 경제침체에 있었음을 돌이켜볼 때, 2008년 우리 눈앞에 와 있는 이 위기 역시 미국이 치르고 있는 두 건의 전쟁과 관련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전비로 재정부족에 시달리는 미국이 위기사태 해결에 투입할 공적자금을 달러화를 찍어내 마련하려 한다면 달러화 과잉공급과 가치하락이 국제경제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부분은 ‘신뢰의 실패’라고 본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운용 능력에 대한 신뢰, 월가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실패를 말한다. 돌이켜보면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누가 감히 리먼 브러더스가, 메릴린치가, AIG가 이러한 어려움에 봉착하리고 상상했겠는가. 이는 월가 금융회사 직원들은 물론 바다 건너 한국의 금융 종사자들, “절대 손해날 리 없는 펀드”라는 그들의 말을 믿고 쌈짓돈을 투자한 갑남을녀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누가 책임자인가’
그러나 이번 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미 연방정부의 대응능력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다. 이는 위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원인으로도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가 대략 위기의 ‘원인’이었다면, 이제부터 살펴볼 것은 위기의 함의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 앞서 ‘구조적인 힘’에 관해 언급한 바 있지만,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미국이 ‘절대 강자’가 아닌 ‘여러 강자 중 하나’로 전락하고 있다는 흐름이다.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핵심주제 가운데 하나가 ‘누가 책임자인가(Who is in charge?)’였음은 지금 생각해보면 흥미롭기 이를 데 없다. 1월23일 벤 버냉키 FRB 의장이 0.75% 금리 인하를 긴급히 발표했음에도 당초 예상과 달리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자, CNN, CNBC 등 미국 언론을 비롯한 많은 이가 ‘누가 세계 경제의 책임자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에 뛰어들었다. 결론은 “미국은 이제 여러 큰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FRB 역시 더 이상 앨런 그린스펀 의장 시절의 잘나가던 위상은 끝났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위력적이었던 브릭스(BRICs)나 헤지펀드 등이 미국 연방정부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Fed’로 약칭되던 FRB 혹은 미 재무부의 한계는 드러났고, 경제 장악력 하강은 중기 혹은 장기적으로 군사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11월 대선에서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지위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흔들리는 추세 자체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미국 국민의 관심이 국가안보에서 국내 문제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육, 의료, 복지 등의 이슈에서 미 국민이 갖고 있는 불안을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차기 행정부의 당면과제가 될 공산이 크다. 금융위기 국면에서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가속화할 경우 미국은 이전에 비해 매우 조심스러운 외교정책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테고,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그러한 ‘미국 대외정책의 극적인 변화’를 야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샹들리에형 국제체제
결국 이러한 흐름은 국제질서의 다극화(mutipolar)를 촉진할 것이다. 물론 미국은 그 가운데서 여전히 최대 강국으로 남겠지만, 혼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국가들과 힘을 합해야 하는 샹들리에 같은 형태의 국제체제로 변모해 나가리라고 본다. 미국이 중심에 서 있으되 이를 지탱할 몇몇 국가가 있어야만 유지가 가능한 체제가 가장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그림이 아닐까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이는 G7 + 중국, 러시아, 인도의 그림일 수도 있고, 혹은 G20일 수도 있다. 무역에서는 현재의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계속 역할을 이어가겠지만, 금융에서는 이들 주요국가가 모여 새 국제협의체제를 만듦으로써 현재 거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IMF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44년 영국의 케인스가 제안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던 ‘국제청산 및 결제은행’ 의 설립이나 근래에 제프리 가튼 예일대 교수가 제안한 ‘글로벌 금융감독기구’ 구상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 분야에서도 커다란 전환이 예상된다.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 구조에서 국제적 협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한 다자안보협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엄청난 경제적 압박에 봉착한 미국으로서는 이전처럼 특정 상황에 독자적으로 개입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기는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다자안보기구든 군사동맹이든 협의를 통해 우방들의 힘을 빌려야만 세계질서를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러한 흐름이 점진적인 경향성의 문제였다면, 미국이 이번 위기로 떠안게 된 대규모 공적자금의 부담으로 이를 강제하는 재정적, 구조적 원인이 생겼다고 본다. 당장 또 다른 분쟁이 발생한다 한들 미국은 예산을 확정해 이에 개입할 돈이 없다. 미국 납세자들의 민심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부분은 ‘자국중심주의’의 경제 행태가 세계 경제에 던지는 함의다. 미국의 7000억달러 투입 계획에도 시장이 혼돈을 멈추지 못하고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 가능성이 점쳐지자, 10월 초순 유럽연합(EU) 주요 국가들은 유럽연합이라는 틀을 팽개치고 각자 제 살길을 도모하는 행동방식을 보였다. 각 나라 정부가 자국 국민의 예금을 보호하는 데만 주력하고 주변국가의 위기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1930년대의 유럽
이는 1930년대 유럽에서 벌어졌던 무역전쟁의 부활을 연상케 한다. 1930년 미국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에 서명하고 유럽의 관세정책에 대해 보복관세를 선언하자,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관세전쟁이 벌어졌다. 불길은 곧 유럽 국가들 사이의 관세전쟁으로 옮겨 붙었고 이렇게 가속화된 위기는 결국은 히틀러의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는 경제사회적 배경으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최근의 위기를 맞이하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첫 번째 움직임이 바로 이때의 사건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필자의 눈에 매우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금융 패닉은 한 국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다국적 금융회사의 지구적 확산을 통한 금융부문의 세계화와 상호의존 구조의 심화는 ‘나 홀로 살겠다’는 자국중심주의에 구조적 제약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10월10일을 넘기며 각국 중앙은행이 동시에 금리인하를 발표하는 등 조율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G7 국가 중앙은행 행장들이 정책조율을 의논하고 실행하는 모습, G20 수준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이를 앞서의 논의와 연결해 생각해보면 위기를 타개해나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적인 힘은 약화되고 대신 다자적 협력을 통해서만이 사태를 관리할 수 있다는 합의가 점차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의한 한중일 금융정상회담 방안은 분명 의미가 있다. 전세계 달러 보유고의 거의 절반이 집중돼 있는 곳이 바로 한중일 세 나라다. 중국 1조8000억달러, 일본 9710억달러, 한국 2400억달러다. 금융 경색을 겪고 있는 서방국가들에 이들은 구세주나 다름없다. 따라서 한중일 3국 정상 간의 협의는 동북아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주는 함의가 크다.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상호간에도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한중일 세 나라가 미국 중심의 금융체제 위기와 관련해 나름의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시도는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도가 장차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같은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든 그렇지 못하든, 이번 사례를 통해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든지 독(毒)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세 나라가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심장하다. 마찬가지 논리로 미국 일변도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이명박 정부는 ‘미국을 보는 시각’에 대해 진지한 내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성찰의 시기
바꾸어 말하자면 이러한 성찰은 국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위기가 탈규제와 감세정책 등 국가 개입 최소화로 요약되는 신보수주의(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고 본다면, 국가와 기업 사이에 어떠한 분업질서가 있어야 하며 어떤 조건하에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고 관리 감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새로운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최소한 ‘규제 혁파는 절대선’이라는 그간의 분위기는 이제 종장(終章)에 이르렀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국가 역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첨단 파생금융상품의 작동방식과 구조를 감독하고 감시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과제를 새로 부여받았다. 새로운 금융기법은 쏟아져나오는데 금융감독원 등 감독기관이 이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면 게임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니터링 기능을 최소한이라도 유지하려면 금융 분야의 실력 있는 인재들이 공공영역에 투입될 필요가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논의가 곧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작될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논쟁 역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 신보수주의의 세계화란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모델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드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투명경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그러한 요구의 선결조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 대선 레이스 동안 오바마 후보가 여러 차례 명확하게 밝혔듯, 세계화가 과연 우리에게 축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가 양극화를 불러오고 있으며 이 양극화를 해결할 방법은 국가의 개입뿐이라는 그의 주장이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화의 두 가지 큰 축이 무역과 투자였다고 할 때, 무역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지만 ‘투자를 통한 세계화’에는 상당히 무거운 쐐기가 박힐 것이다.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국제 투자시장에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주역들이 기존 질서를 바꿔나갈 것이다. 벌써 노무라 등 일본 계열의 금융회사들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 단서다.
바야흐로 세계화로 표상되는 금융시장의 통합, 국경을 넘어서고 국가의 권위를 능가하는 단일시장의 구성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심각한 성찰의 시기가 오고 있다. 결국 이 위기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세계 곳곳에서 ‘세계화는 항상 옳은 것인가’ 혹은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모델은 어디서나 수용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맞이할 다음 세대 자본주의의 얼굴이 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마지막으로 탐욕과 리스크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남아 있다. 투자은행을 포함한 전세계 금융종사자들에게 직업윤리의 문제는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가면서도 투자자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약속의 땅인 양 이야기하는, 그럼으로써 결국은 동반자살의 길로 가는 이러한 방식에 대한 회의가 곳곳에서 넘쳐난다. 투자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보다 자신이 더 많은 커미션을 챙기는 것을 절대 과제로 생각하는 공격적인 방식에 대한 비판론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탐욕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욕구라고는 하지만 이로써 야기되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가 새로운 숙제가 되었다. 이를 철학적, 윤리적 측면에서 혹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가 고민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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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이윤의 추구, 사람도 모르고 시장도 모르는 연구실의 수학자들에게 새로운 모델을 만들라고 주문해 막대한 자금을 끝없이 돌고 돌게 만드는 21세기 초반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양태는 근본적인 반성에 맞닥뜨렸다. 그간 잊고 있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라는 화두가 다시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이유다. 필자에게는, 예측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미지의 세계는 충분한 검증을 거쳐가며 조금씩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화두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 패러다임 속에서 국제질서 역시 지난 수십년과는 다른 차원으로 바뀌어갈 것이라고 본다.
위기는 차원을 뛰어넘는 도약을 부른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다. 우리는 지금 다시 그 자리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