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1등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매회 탈락자들에 대한 걱정이 더 많았어요. ‘저들이 탈락을 또 다른 실패로 여기지 말아야 될 텐데’ 싶었죠. ‘톱 11’이면 이미 국민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뭔가를 이뤄낸 것이니까요. ‘저들의 꿈이 접히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 ‘슈퍼스타K’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과감한 투자입니다. 이번 시즌2를 제작하는 데 80억원을 투자하셨죠? 케이블 방송으로서는 적지 않은 규모인데, 잘될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까.
“‘슈퍼스타K’ 시즌1을 시작할 때 제작비 40억원을 쏘겠다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당시 경제위기가 와서 많은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줄여갈 때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넷이 과감한 투자를 결정 할 수 있었던 건 콘텐츠 산업에 대한 CJ의 철학과 문화 때문입니다. 엠넷 대표의 과감한 투자 결정이 용인될 수 있는 곳이 바로 CJ라는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
이미경 부회장의 제안
엠넷은 CJ E·M(Entertainment · Media)의 계열사 중 하나다. 엠넷이 어려울 때 더욱 과감히 베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경 CJ E·M 부회장의 지원도 한몫했다.
▼ 이미경 부회장이 ‘슈퍼스타K’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안은 부회장님이 주신 거예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 들은 것이 2004년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기획된 ‘아메리칸 아이돌’ 얘기를 하시며, ‘음악방송인 엠넷이 이런 걸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하나의 상품이 성공하면 ‘미투 제품(Me too product·원조 제품을 따라 한 유사품)’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MBC가 11월 초 선보인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은 ‘슈퍼스타K’와 흡사하다. 이 프로그램은 멘토제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지만, 첫 방송 후 “급조한 티가 역력하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미투 제품’이 원조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르기도 한다. ‘위대한 탄생’의 등장을 박 대표는 어떻게 바라볼까.
“사실 ‘오디션’이란 포맷은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오디션 프로그램 ‘배틀신화’를 2005년 시작했어요. 그렇게 때문에 (‘위대한 탄생’이) ‘슈퍼스타K’를 모방한다고 폄하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슈퍼스타K’가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공뿐 아니라 ‘국민과 음악 산업에 어떤 메시지를 던졌느냐’ ‘음악 산업 발전의 선순환 고리로 역할을 했느냐’로 평가받았으면 해요. 이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고, 단순히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강호에 숨어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많이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적인 시각에서, ‘케이블이 이런 걸 만드는데 지상파가 왜 못하겠느냐’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겠죠.”
그가 자신감에 넘치는 이유는, 엠넷이 지난 4~5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국식 오디션 포맷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과거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배틀신화’를 통해 엠넷은 오디션 프로그램 연출과 제작 노하우를 얻었다.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과 달리, 합숙을 통해 본선 진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슈퍼스타K’만의 매력이었다. 비슷한 포맷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슈퍼스타K’의 경제효과
‘슈퍼스타K’의 진가는 광고 매출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슈퍼스타K’ 시즌1의 협찬사는 모기업인 CJ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코카콜라, 다음, 르노삼성, 모토로라, 랑콤 등 대기업이 협찬사로 참여했다. 올 초 이미 최종회 분까지 광고가 다 팔릴 정도였다.
▼ ‘슈퍼스타K’의 경제효과가 얼마나 될까요.
“슈퍼스타K는 애초에 단위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됐습니다. 프로그램이 TV, 온라인, 모바일을 통해 전달되고, 오프라인 공연도 이어졌습니다. 각지에서 치러진 현장 오디션은 ‘지역의 축제’가 됐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출연자들이 기획사에 들어갈 수 있게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경제적 효과라고 하면, 엠넷만이 그 수혜자는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더 큰 수혜가 산업계로 돌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난해에는 40억원의 제작비를 우리가 쏟아 부었다면, 올해는 두 배 가까운 제작비를 광고 매출로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