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의 성과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자 재무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하드웨어의 진화는 빠르게 일어났지만 자금 압박으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축소가 불가피했다. 결과적으로 소니는 자부심이던 ‘기술력’까지 상당부분 잃게 됐다. 고객에게 소프트웨어를 덧붙여 새로운 소니로 인정받기도 전에 제조사로서 소니다움을 놓쳐버렸다. 이제는 고객의 마음속에 ‘이전과 다른 소니다움’으로 자리 잡아야만 부활이 가능한, 힘겨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과거 성공 요인이 재기의 버팀목이 돼준 기업들이 있다. 품질경영으로 대표되는 도요타,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상징하는 디즈니, 장난감 블록 하면 떠오르는 레고,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고수하는 애플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때 업계를 대표하는 성공 기업으로 영예를 누렸던 이 기업들은 쇠락의 위기를 자사만의 존재 이유와 강점을 기반으로 극복했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몰락의 길로 들어선 기업은 당장의 생존에 급급해 비용과 불어난 몸집을 줄이려서두르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지속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성공 요인마저 자칫 잃어버리기 쉽다.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취하는 활동은 비용절감과 사업 구조조정이다. 성장은 고사하고 일단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부터 대폭 절감한다. 고도 경제성장 시절 일본의 최대 자동차업체로 부상했던 닛산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판매부진 등으로 2000년 한 해 적자가 62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코스트 커터(Cost-Cutter)’라는 별명을 가진 카를로스 곤을 CEO로 영입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적자 공장을 폐쇄하고 계열사 및 부품 메이커를 매각하고 나서야 닛산의 회생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용절감이 강도 높게 이뤄졌다고 해서 곧바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아니다. 기업 위기의 핵심 중 하나는 고객이 떠나는 것인데, 결국 고객 니즈를 반영한 혁신이 수반돼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수십억 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IBM은 단순히 비용절감 및 구조조정에만 그치지 않고 고객이 진실로 원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회사로 변신을 시도했다. IBM은 하드웨어 중심의 회사에서 IT서비스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해 되살아날 수 있었다.
반면 추락한 HP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추진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창업자 빌 휴렛의 인본주의 경영철학이자 이 회사 성공의 근간을 이룬 ‘HP Way’마저 흔들리면서 재도약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는 레노버에 밀리는 신세가 됐다.
비용절감? 그 이상의 것!
비용절감과 사업 구조조정의 처방만으로 재기가 어렵다면, 근본적으로 어떤 방향의 혁신이 필요할까. 더구나 섣부른 혁신이 오히려 쇠락을 가속화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과거 성공 기업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지켜야 하며 어떻게 이를 판단할 수 있을까. 기업 특유의 정체성, 미션에 대한 자문으로부터 해답을 찾은 기업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① 창업 정신으로 복귀한 도요타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승승장구하던 도요타도 위기를 피해갈 순 없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 차량 안전 결함에 따른 1000만 대 규모의 리콜 사태, 거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의 악재 속에 추락했다.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도요타의 자존심인 품질에도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도요타는 창업 이래 최대 실적이자 전 세계 자동차 업체 판매량 중 최고 기록인 998만 대를 판매하며 부활의 날개를 완전히 펼쳤다. 때마침 엔저 환율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만, 재기의 주요 동인은 ‘품질경영’이라는 창업정신으로의 복귀에서 찾을 수 있다. 위기의 원인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도요타 경영진은 자신들이 성공에 도취해 ‘품질’이라는 가치 대신 생산대수 같은 가시적인 성과에 과도하게 집착해왔음을 인정했다.
일차적으로, 부품을 더 규격화하고 관리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심지어 건물 엘리베이터 운행 시간까지 단축하는 고강도의 비용절감 노력이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게 ‘도요타다움’이라는 미션을 다시금 강조하며 모든 경영활동을 품질이라는 가치 중심으로 재정렬한 결과다. 이를 입증하듯, 향후 3년간 신규 공장을 증설하지 않겠다는 회사 방침에도 기존 공장의 생산효율성 제고를 통해 확대된 생산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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